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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9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2화

192화. 홍루

 

 

'그럴 리 없어.'

그녀가 살아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일각독사가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단다. 심지어 그 자매가 현 당가의 임시 장문인이기도 하다고.

그런 상황에 과연 홍랑이 안 살아 있을까?

"……."

천강은 홍랑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천강이 북명신공의 비급을 찾겠다고 중원 곳곳을 누비던 때였다.

한동안 소식이 없고, 그러다 홍루에서 한 정보가 나왔으니…… 아미산 어딘가에 먼 옛적 어느 고수가 숨겨둔 비급이 있다는 전설이었다.

그 길로 아미산에 올라가다 웬 불량스러운 무림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 여인을 구해주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홍랑이었다.

'……설마하니 그런 무서운 계집인 걸 알았다면 절대 구해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 뒤로 허구한 날 홍랑은 천강을 졸졸 따라다녔다.

밥을 먹건, 여행을 가든, 심지어 볼일을 보러 갈 때도!

당가의 집요함을 천강은 그때 처음 깨달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솔직히 그때 여지를 주면 안 됐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은 홍루에 정보를 얻기 위해 갔던 때 일어났다.

홍루에 여자라곤 맨 창기(娼妓)들뿐이니, 천강을 따라온 홍랑을 어떤 손님들이 같은 기녀로 착각한 것.

본인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해도 못 알아 처먹는 행태에, 지금까지 같이 한 정도 있겠다 그 망나니들을 흠씬 혼내줬는데…… 그 뒤로 애가 눈빛이 달라졌다.

그때의 눈은 마치 일생의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의 눈이었다.

천강은 그 길로 잠적했고. 그런 그를 찾겠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홍루에 나타나 매섭게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고는 사람들은 홍루의 이리라 하여 홍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진 않겠지? 암. 그럴 거야.'

애써 합리화를 해 보아도,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은 명백히 천강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아씨. 갑자기 홍루 가기가 찜찜해지네.'

설마 미오왕도 매수돼서 둘이서 짜놓은 함정인 건 아닐 테지?

당소여가 검지를 입술에 대고는 가만 생각하더니 말했다.

"홍랑이요? 누구죠? 처음 듣는데."

"어? 홍랑 몰라?"

"네."

"그럼 당소오는?"

"당소오?"

고개를 갸웃갸웃. 가만 보니 홍랑의 본명도 모르는 눈치다.

'그렇지!'

천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홍랑과의 과거 회상과 다시 그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불결한 상상으로부터 빠져나오자, 천강은 아주 세상 살맛이 났다.

방금 밥을 먹었는데도 다시 입맛이 돌았다.

'홍랑아. 이 세상 잘 즐기다가 갔길 바란다!'

그러나 그건 천강의 단단한 착각이었으니, 그저 그녀의 본명과 그 흔적을 가문 내에서 오랫동안 쉬쉬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당소여는 천수향의 본명을 몰랐다.

그 진실을 모르는 천강은 신이 나 남궁선과 한사에게 농담을 던지고, 좋은 소식을 전달해 줬다며 당소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검은 먹구름은 천강을 바짝 뒤쫓아 오고 있었다.

 

***

 

하남과 섬서 사이.

강물이 둥글게 흐르는 산서의 밑 끝자락에는 거대한 무력 조직이 있다.

중원의 수많은 무인들의 이득을 조정하고 그 향방을 이끄는 곳. 바로 무림맹이다.

그곳에 때아닌 급한 발걸음이 향하고 있었다.

범천과 오죽은 급히 무림맹 정문에 서서 문지기들을 향해 서신을 들어 보였다.

"헉. 허억. 고, 곤륜에서 왔소이다."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시한을 다투는 급한 서신이오. 무림맹주께 직접 전하라 하셨소."

예부터 곤륜이 급한 서신을 들고 오는 경우는 단 하나. 문지기들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서로 시선을 한 차례 교환한 그들은 한 명을 차출해 두 사람을 안으로 인도했다.

범천과 오죽으로부터 서신을 전달받아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무림맹주 창천검제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 무림맹주. 나 팔룡구검이오. 지금껏 잠잠하던 마교가 기어이 움직이기 시작했소. 현재 곤륜은 괴멸 직전에 상황에 처했고, 그 화마는 곧 중원으로 이어질 것이오. 그러니 미리 대비토록 하시오. 』

"현재 곤륜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인가?"

"장문인과 아직 정식 제자로 입적되기 직전인 저와 제 동기 넷을 제외하고는 모두 명을 달리하였습니다."

"……."

무림맹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사람을 불렀다.

"지금 즉시 발 빠른 자들을 보내, 각 문파의 수장들을 불러 모아라."

"뭐라 하면 되겠습니까, 맹주 어르신?"

"마교의 습격이다."

 

***

 

"오늘 즐거웠다. 조심히 들어가라."

"드, 드, 들어가시오, 소저. 흐흠."

"다음에 연이 닿으면 또 뵙겠습니다."

천강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가게 밖으로 나온 당소여. 그녀는 잠시 멍하니 가게 위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당묵정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아가씨.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예. 그리하지요."

평소와 같은 얼굴. 늘 그렇듯 수많은 인파의 칭찬을 받고도 도도한 표정.

그러나 현재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게…….

'딱밤에 들쳐 메기라니! 남자에게 딱밤을 맞고 들쳐 메기를 당하다니!'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7살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머리 쓰담쓰담을 당했다. 길을 걷던 당소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 이런 굴욕!'

수치심에 얼굴을 시뻘겋게 만든 여인.

천만다행히도 노을이 지는 시간대라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을 쒸익쒸익 콧김을 뿜은 그녀는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었다.

"당묵정."

"예, 아가씨."

"아까 그것들 은밀히 사람 붙여서 뭐 하고 다니나 조사하세요."

"알겠습니다. 실력 있는 자들로 붙여, 일거수일투족 감시해 보고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당소여가 수치심에 볼을 붉게 물들일 무렵, 그 일을 만든 당사자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양옆에서 한사와 남궁선 또한 옷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묻는다.

"그…… 천님. 근데 진짜 홍루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하지."

"그, 그런 곳에 가기엔 아직 좀 어리지 않소?"

"누구? 우리? 걱정 마. 거기 가면 우리 나이대 아주 많으니까."

"그, 그렇소이까?"

좀 발랑 까진 애들은 지학(志學)이 되기도 전에 다니고 그런다. 돈깨나 많은 집안 아들은 허구한 날 거기서 살고.

천강이 볼 때 나이로는 아무 문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짓 하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술도 안 마실 거고, 여자도 안 낄 거다. 그것만 안 해도 돈을 상당히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오로지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만큼, 그런 부분을 불편해하는 손님을 위한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자, 가자."

천강은 볼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을 이끌고 가게를 나섰다. 의외로 한사와 남궁선은 재깍 천강의 뒤를 따라붙었다.

 

***

 

사천 땅을 밟으면 필연적으로 들러볼 곳이 몇 군데 있다.

일단 첫 번째는 이름 있는 식당이다.

사천 하면 향이 강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그 강렬한 맛은, 한 번 맛보면 1년에 한두 번은 생각이 나곤 할 정도다.

둘째는 두 명산인 아미산과 청성산이다.

각각 불교와 도교의 4대 명산으로 꼽히는 두 산은 특히 무림인이라면 한 번은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들러봐야 할 곳이 바로 홍루.

사내로 태어나 수많은 미인들을 끼고 밤을 지새우는 건 아마 누구나가 한 번쯤은 꿈꿔본 일일 것이다.

이곳 홍루는 그게 가능했다.

전생에 그곳을 수없이 드나든 천강조차 못생긴 여인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다른 가게와는 질적으로 물이 달랐고, 기본적으로 시설도 여인들도 굉장히 청결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었다.

그리고 지금 천강 일행은, 그 홍루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유곽 거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여, 여기가……."

"꿀꺽."

고개를 든다.

길가 좌우로 건물이 쭉 늘어서 있고, 그 외벽과 건물 사이사이로 붉은 등이 가득 매달려 있다.

그 아래 거리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서서 숱한 남정네들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중이었다.

천강은 눈을 감고는 가만히 숨을 들이켜 보았다.

폐에 한가득 들어오는 분 냄새.

귓가로 들리는 여인들의 교성.

천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이거지.'

천강은 이제야 새삼 자신이 사천에 당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천에 머물 때면 그 대부분의 시간을 이 거리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어이.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마치 이런 곳을 처음 본 것처럼."

"어, 음."

"흠흠."

"솔직히 중원 어느 도시를 가건 있잖아? 오고 가다 자주 봤으면서 뭘 샌님처럼 굴어? 자자, 빨리 가자고. 늦게 가면 좋은 자리 없다~"

한사와 남궁선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후다닥 천강의 뒤를 따랐다.

지나가는 그들을 향해 여인들이 다가와 눈웃음을 짓고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어멋. 우리 잘생긴 영웅호걸님은 어디서 오셨을까?"

"우리랑 같이 한잔하면서 이야기 안 하실래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줄게요. 후후."

"어엇. 죄, 죄송하오. 난 좀 바빠서……."

얼굴이 완전히 시뻘게져서 어버버 거리는 한사의 행태에 천강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의외로 여인들은 한사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달라붙고 있었다.

일단 남궁선 같은 경우엔 외양 때문에 같은 여자로 오해하고 있었고, 천강은 분위기 자체가 한두 번 와본 게 아닌 터라…… 자신들이 꼬드겨본들 홍루로 갈 것이라 판단한 탓이었다.

"처, 천 형. 같이 좀 가시오!"

"그냥 밀어내고 뛰어와."

"그 어찌 협에 어긋나는 행동을……."

여자들을 밀치거나 혹 몸에 손을 대는 것이 협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한사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한참을 시달렸고.

얼굴과 목에 연지 자국을 이십여 개나 찍힌 이후에야 천강 옆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남궁선이 걱정스레 묻는다.

"한사. 괜찮습니까?"

"아아. 난 괜찮소. 왜 그런 질문을 하시오?"

"그게 지금 한사의 얼굴이…… 반쯤 혼이 나갔습니다."

술도 안 먹은 주제에, 술에 취한 것마냥 비틀거리는 한사. 그 행태에 천강이 다시 웃으며 그 등을 가볍게 때려주었다.

"벌써부터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천강의 손짓에 한사와 남궁선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마치 이름난 세가의 담벼락처럼 높다랗게 쌓인 담 너머로 높다란 누각이 떡 하나 세워져 있다.

그 앞 정문에는 검을 찬 경비 여섯이 문지기로 서 있고, 그사이 열린 문틈으로 오색 빛깔의 불빛이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화려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사와 남궁선이 멍하니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천강은 경비를 통해 간단히 수속을 마쳤다.

그들은 천강 일행이 출입 금지 받은 인물들인지 한 차례 확인하고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자자, 안으로 들어가자고."

그렇게 눈 앞에 펼쳐진 별천지의 세상.

앞으로는 거대한 호수에서 뱃놀이가, 뒤로는 9층의 거대한 누각에서 술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 곳곳에 화려한 등불이 매달려 있었는데, 어찌나 많은지 여기서 번 돈을 모조리 저것들을 만드는 데 쓰는 게 아닐까 할 정도였다.

"소주(蘇州)의 절경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소."

"이곳에서 하는 뱃놀이가 꽤 재미있긴 하지. 한 번 출발한 배가 어딘가에 도착할 때까지, 어여쁜 소저들이 술도 따라줘 말 상대도 해줘. 웃어주기도 하니까."

"꿀꺽."

한사는 그렇다 치고, 이런 곳은 남궁선도 처음이었나 보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인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자고."

천강은 주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두 사람을 이끌고 누각 안으로 들어섰다.

 

***

 

어둠 속. 타닥타닥 타는 모닥불 주위로, 두 사람이 불침번을 서고 다른 두 사람이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천강을 쫓아 부랴부랴 천산에서 출발한 초아와 연화, 무진과 청청이었다.

그들이 자리 잡은 나무 위에서 가만 휴식을 취하던 천수향의 시선이 동쪽으로 향했다.

멀찍이 떨어진 이곳까지 화려하게 재색을 뽐내는 홍루의 불빛.

'……내일이면 도착하겠네.'

내일이면 잡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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