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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9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1화

191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사천당문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가까이한다.

다른 이들은 계획하지도 못 할 일이지만, 이미 태아에 있을 때부터 그 어미를 통해 독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태어난 당가의 사람들은 가능했다.

이들은 단전에 내공이 쌓이는 순간부터 독에 대한 지식을 몸으로 습득해 대략 열 살 전후에는 자신의 독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런 면에서 당소여는 매우 특출했다.

열두 살에 가주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독을 제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그걸로 용봉지회에서 이름을 날렸고, 다섯 봉 중 하나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고인이 된 가주가 약 30년에 걸쳐 만든 독을 3년 만에 만들어낸 자신이다. 그동안 이것으로 그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고수들도 모두 쓰러뜨려 왔다.

말 그대로 이 독은 그녀의 자존심 그 자체.

그런데 상대에게는 일절 효과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혹시 얕았나? 배에 무언가를 차고 있다던가?

그래. 그런 거야.

순간 독이 안 통해 당황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찾은 그녀는 손가락 사이에 침을 끼고는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공격을 뒷짐을 진 채 다 맞아주는 천강.

당소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몸뚱어리야!'

집요하게 달라붙어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천강의 몸에 고슴도치마냥 수백 개의 침이 꽂힌다.

그러나 공격을 하는 당소여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결국 그녀는 제풀에 지쳐 숨을 고르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다. 당소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천강을 노려봤다.

"헉. 허억. 대체 정체가 뭐냐? 혹 금강불괴를 익힌 것이냐?"

"내 정체가 무엇이건 그게 뭔 상관일까. 곧 죽을 사람이."

흠칫.

천강이 한 발 다가간다.

당소여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천강이 또 한 발 내딛자, 당소여가 뒷걸음질 치다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는 기어서 도망가나, 이내 등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이다.

천강이 손을 치켜들었다.

'젠장.'

당소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하니 오늘이 이승에서의 자신의 마지막 날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평소 조금 더 열심히 수련을 해둘걸.'

자만하지 않고 그랬다면, 어쩌면 오늘 이 자를 쓰러뜨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물밀듯 밀려오고, 여러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갈 때 돌연 머리 위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당소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이 상황에 머리에 딱밤을 맞은 게 의아했던 것이다.

"무, 뭐야?"

대답 대신 천강이 그녀의 품에서 무언가를 슥 빼냈다.

한동안 사천에서 지내야 하기도 하고. 굳이 일을 크게 만들고 다닐 이유는 없는바, 가볍게 딱밤 한 번으로 용서해준 천강이었다.

"이거 해독제 맞지?"

"어? 어어……."

해독제를 집어 든 천강은 곧바로 한사에게 가, 그 입에 해독제를 털어 넣었다.

채 일다경(一茶頃)이 되기 전, 시퍼렇던 한사의 혈색이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티 나지 않게 아주 찬찬히 흡공을 써 내기를 빨아들이자, 모든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모든 조치가 끝난 천강은 심호흡 후, 한사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찰싹찰싹.

"억. 어억! 누, 누구?!"

"어이. 정신이 좀 들어?"

"처, 천 형?"

"언제까지 잘 거냐? 밥 먹자. 음식 다 식었다."

"아, 알겠소."

얼떨떨한 얼굴로 기어서 자리에 앉는 한사.

남궁선 또한 자기 자리에 조용히 착석하고, 천강의 시선은 당소여에게 향했다.

흠칫.

"무, 뭐? 왜 날 쳐다보는데?"

잠깐 당소여를 가만 바라보며 고민하던 천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무, 무슨…… 오지 맛. 꺄악! 내, 내가 잘못했으니까!"

"뭐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돌연 사과를 해대는 당소여를 천강이 번쩍 어깨에 들쳐 멨다.

그 상태로 빈자리, 정확히 말하면 천강 옆자리에 떡 앉혀 놓는다.

"에?"

"한판 싸운 것도 인연이고, 싸움이 끝났으면 깔끔하게 같이 밥 먹으며 푸는 게 무림의 방식이지. 어여들 먹자고."

당가는 은원관계, 그중 원한에 관한 한 지독한 집안이다.

이대로 당소여를 돌려보냈다간 괜히 복수심을 불태울까 봐 선수를 친 천강이었다.

아직 무림 초출이기도 하고, 천강의 말이라면 끔벅 죽는 한사와 남궁선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그들과 합석하게 된 당소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음식과 천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빤한 시선에 천강의 얼굴이 와 닿는다.

"뭐해. 안 먹어?"

"머, 먹을게……요."

 

***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과 그 안으로 세워져 있는 수많은 건물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수없이 많은 군사들까지.

성벽 안으로 들어서는 흑귀는 감탄을 흘렸다. 일전에 봤던 때하고는 그 모습이 다소 상이했던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꽤 허름했거늘.'

황제가 이곳을 새 도읍지로 결정하며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것들을 싹 치우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새로이 지은 것이다.

흑귀는 앞서가는 환관의 뒤를 따라 조용히 궁궐을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웬 빈 건물이었다.

'궁에는 쓸 용도가 없어도 일단은 만들어두고 비워두는 경우가 많다더니.'

주위를 슥 둘러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흑귀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부르셨습니까, 태감(太監)."

"그래. 그동안 잘 지냈나?"

"예. 늘 풍족히 지원해 주시는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거움 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군."

"그런데 무슨 용무로 절 부르셨는지요?"

마교 출신으로 좀처럼 경어를 쓰지 않는 흑귀지만, 그는 눈앞의 환관에게 최대한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껏 그가 지원해 준 자금만 따져 봐도 능히 성 한 채는 살 수 있었던 탓이다.

세상 그 누구를 데려와도 눈앞의 사내만큼의 투자처를 찾을 수 없을 거란 걸 확신하는 흑귀의 공손함에 태감이 수염 없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신 연구와 그에 대한 실험은 어찌 되어가고 있지?"

"사실상 끝자락입니다. 이제 신선환을 이용하면 화경 수준으로도 양산 가능합니다."

"안정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매우 안정적입니다."

태감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올라왔다.

"좋군. 따라오게."

태감을 따라 황실을 가로지른다.

그는 어느 으슥한 곳으로 발을 옮기더니, 이내 소가 멍에를 메고 있는 수레 앞으로 다가갔다.

수레에는 덮개가 깔려있어 그 밑으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운철이다."

"예?"

아니, 그 귀한 운철이 이리 많이?

"이, 이 정도면 능히…… 사신 백 명은 만들 수 있겠군요."

그러나 고개를 젓는 태감.

"아니. 이건 나 하나를 위한 양이다."

"그게 무슨……."

"지금부터 내 몸에 그걸 실험한다."

 

***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음식을 함께 먹다 보니 다소 그런 부분이 사라진 천강 일행과 당소여.

그래도 아직 도도한 성정이 있는 그녀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없었다.

또한 남궁선의 경우엔 그녀보단 천강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한사는 아까부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대화는 자연스레 천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근데 너 만두는 싫어하냐?"

"잘 먹을게요."

기다렸다는 듯 천강이 집은 만두를 낚아채 가는 여인. 곧바로 천강에게 묻는다.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제 독을 어떻게 막은 거죠?"

"막기는……. 아주 팔다리에 수백 개 구멍들을 내놓았으면서."

"근데 어떻게 독이 안 통할 수 있죠? 아니면 내력으로 억제를 하고 있는 건가요?"

천강이 대답 대신 만두를 입에 집어넣자, 당소여가 덥석 천강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주물주물 여기저기를 주물러보기 시작했다.

"뭐하냐."

"이상하네. 내기도 거의 없는 이런 비리비리한 몸뚱어리가 어떻게……."

내기가 거의 없다니…… 실은 그 반대였다.

체내에 기가 꽉 차 더는 들어설 자리가 없는 상황. 설마하니 몸에 가득 차 있는 게 내기라고는 생각 못 한 당소여의 오해였다.

천령초로 인한 신체 강화와 그 고유한 특색으로 인해, 천강의 몸속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아무튼 당소여로서는 그저 황당할 따름.

"말씀 안 해주실 건가요?"

"당가라 그리 분석적으로 나오는 건가? 간단하잖아, 답은."

"예?"

보다 못한 남궁선이 대신 대답한다.

"만독불침이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천님?"

"마, 만독불침?!"

당소여가 상을 쾅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요!"

만독불침.

그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과연 중원에 몇이나 될까?

한때는 현경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만독불침은 꿈의 경지 중 하나였다. 노력으로 노려볼 수 있는 신검합일과는 다르게 운까지도 따라줘야 했기에.

"지금 이 중원에 만독불침이라고 해봐야 채 열 명이 안 된다고요. 존자들과 왕들을 다 포함해서요! 그런데 지금 그중 하나라는 건가요!"

"믿기 싫으면 말아. 귀찮게 내가 해명해야 할 이유도 없고."

잠시 천강을 말없이 노려보던 당소여가 천강의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양손으로 감싼다.

"뭐야. 왜 이래?"

"어떻게 얻었어요?"

"……그렇게 알고 싶냐?"

끄덕끄덕. 당소여의 눈에 반짝반짝 광채가 인다.

하여튼 당가의 여인들은 욕망에 너무 충실하다니까.

"말해줘도 의미 없을 텐데."

"듣고 나서 생각할게요."

탁. 한숨을 쉬고 돌아보자, 한사와 남궁선도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상황에 천강이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백사의 내단을 먹어서 천독불침이 됐어."

"백사의 내단. 천독불침……. 그다음은요?"

어느새 종이를 꺼내 기록하고 있는 당소여를 잠깐 본 천강이 말을 이었다.

"흑사의 내단을 흡수해 만독불침이 됐고."

"그렇군요! 백사와 흑사의 독기를 흡수하면 만독불침이 될 수 있는 거였어……!"

마치 당장이라도 뒷산의 흰 뱀 검은 뱀을 다 잡을 기세에 천강이 한마디 보탰다.

당가는 정말 엉뚱한 데서 은원관계를 만들어내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놔두면 정보를 잘못 가르쳐줘서 자신이 개고생했다느니, 시간만 날렸다느니 하며 물고 늘어질 것이기에 미리 확실히 해줄 필요가 있었다.

"근데 걔들 각각 천년 묵은 놈들이야. 아마 그런 놈들을 찾기는 힘들다고 봐야지 않을까?"

"아……."

당소여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진다.

빠르게 불타오르더니 그만큼 빠르게 식어버린 당소여였다.

"근데 나도 뭐 하나만 물어보자. 지금 너희 가주 누구야?"

"가주요?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임시로 맡고 있어요."

"할아버지 별호가 어찌 되시는데?"

"일각독사에요."

찻잔을 기울이던 천강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로 인해 입술에서 턱 끝으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일각독사.

일각산독을 만든 장본인이자, 환생 전 객점에서 천강에게 까불다가 아주 단단히 혼이 난 인물이다.

'그 당시에도 가주였는데 지금껏 가주로 지내왔다니.'

그러나 천강이 이리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천강은 턱 끝에 매달린 물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물었다.

"너 그럼 혹시 홍랑이라고 알아?"

홍랑. 본명 당소오.

일각독사의 첫째 딸.

천강은 불현듯 홍랑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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