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8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6화
186화. 문제 해결
신검합일(身劍合一).
쉽게 말해 검과 내가 하나가 된 경지다.
누구나 처음 검을 들 때는 낯설다. 무거운 날붙이인 그것을 매일 품에 안고 자고, 옆에 끼고 다니고.
마치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인 양 몇 년, 혹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을 그리하고 다녀야 마치 제 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이조차도 신검합일이라 일컫지 않는다.
제삼자가 봤을 때 마치 검처럼 느껴지고, 본인조차도 하나의 검이 되어 종횡무진 하면 비로소 첫발을 내디딘 것이요.
수많은 검술을 섭렵하면서 그 어떤 검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두 번째요.
그 어떤 검술이라도 몇 번 본 것만으로도 그 원리를 깨닫게 되는 게 마지막 한 걸음이다.
즉 신검합일이란, 검에 대한 걸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해 및 운용하게 되는 경지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검을 든 자들이 꿈꾸는 경지.
천강이 조금 전 이룬 경지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천강의 손이 막야를 움켜쥐었다.
'……대단하군.'
검을 잡기만 해도 어찌 사용해야 가장 효율적일지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천강 본인의 경험과 막야의 경험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였다.
막야를 내려놓은 천강은 이번엔 공포를 집어 들었다.
공포와 막야는 그 형태가 상이한바, 같은 검이라 해도 크게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스스슷-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 무게감과 중심을 몸으로 느껴본다.
막야 때와는 다르게 뭔가 아리송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막야를 정복하듯 공포 또한 이해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래. 지금 내게 있는 모든 신병이기들의 경험치를 다 축적한다면, 이제 막 들어선 신검합일의 경지를 완전하게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천강이 밖으로 나가 마을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공포를 들고 힘껏 무력을 발산했다.
쿠콰콰콰콰-
- 하하핫. 그것참 속 시원하구나!
공포(工布)는 막야와는 달리 일격필살의 일격들을 좋아했다.
그 소원을 들어주자 자연스레 이해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르러서 그런가? 막야 때보다도 더 빠르군.'
천강은 그렇게 하나하나 검으로 된 신병이기들을 접수해 나갔다. 막야를 제외한 11개의 검을 이해하는 데에는 고작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
대낮인데도 잔뜩 낀 구름으로 인해 자욱이 깔린 어둠.
우수수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마을 사람들이 한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 앞으로는 기다란 수룡이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강대한지 금세라도 지상 위로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를 어찌합니까. 이러다 얼마 전 심은 농사를 다 말아먹게 생겼습니다!"
"지금이라도 둑을 쌓는 건 어떻소?"
"재작년에 시도했는데 실패하지 않았나요?"
그랬다. 물의 기세가 너무도 강해 그대로 둑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마을 전체에 쏟아지는 빗줄기다. 강물을 통해 물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마을과 논밭이 물에 잠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을 거듭하는 그때, 결국은 강물이 넘치고 말았다.
한 번 범람하기 시작한 그것은 금세 온 마을을 뒤덮기 시작했다.
***
"천! 좀 도와주시오!"
남궁선과 식사를 하는 도중, 한사가 흠뻑 젖은 생쥐 꼴로 들어와 소리쳤다.
천강은 만두 접시를 가리켰다.
"일단 자초지종은 밥 다 먹고 들을게."
"천!"
"소리 높여도 소용없으니까, 너도 먹으면서 기다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오.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오!"
음식을 먹던 천강이 한 손에 턱을 괸 채 한사를 바라보았다. 한사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어찌 됐든 천강은 남궁적을 아주 처참하게 짓밟은 은둔고수.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한시가 급한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한들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러나 그걸 포착한 천강이 한발 먼저 움직였다.
"한사. 너 공자님이 뭐라 하신 줄 알아?"
"그…… 뭐라 하시었소?"
"멈추지 않으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고로 대부분의 일은 급히 해결한다 해서 해결되는 게 아냐. 확실히 해야 해결되는 거지."
그제야 한사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남궁선이 그 행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한사께서는 어찌 만두는 안 드십니까?"
"흠흠. 여기엔 다 사정이……."
식사가 대강 끝난 천강이 찻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뭐야. 할 말이?"
"지금 밖에 보이시오? 강물이 불어 결국 마을이 잠기게 되었소이다."
"그렇군. 근데 뭐 이미 예상한 바 아닌가? 그래서 장마가 그칠 때까지 이곳에서 체류하기로도 했고."
그러자 한사가 손을 크게 움직이며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 말을 가만 들어본즉,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을 도와 같이 둑을 세우자 이 말이야?"
"그렇소."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중인데?"
"그렇소이다."
그에 대한 천강의 답변은 간단했다.
***
"아니, 어찌 저리 냉담할 수 있단 말이오. 조금도 생각 않고, 바로 '싫어'라니."
입이 삐죽 나온 한사의 표정에 남궁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자고로 실력 있는 무인일수록 이런 일에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남궁선의 아버지 남궁태우 또한 그러했다.
아무튼 두 사람이 강에 도착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돌을 날라 쌓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량의 물이 수시로 그 위로 넘나들며 마을에 물을 계속 공급하는 상황이었다.
"더 서둘러!"
"빨리 날라! 어서!"
그곳에 합세해 함께 돌을 쌓는 두 사람. 그러나 쌓는 속도보다 넘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한 한사가 검을 집어 들었다.
"한사,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쌓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소. 그렇다면 반대로 땅을 파내어 강물의 물길을 넓히면 될 터."
한사가 자세를 잡았다. 그의 검이 한 차례 넓게 회전하고, 이내 그 검이 지면을 빠르게 훑었다.
매화낙섬(梅花落暹).
검강이 둘린 일격에 땅이 길게 파여 나간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도 둑을 세우기보단 물길을 넓히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에 힘입어 더욱 검을 휘두르나, 매화의 검은 애초에 파괴력이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내력 소모에 비해 너무 효과가 미비했다.
'이런. 이대로는…….'
그때 한 차례 큰 진동이 일었다. 뭔가 하여 본즉 그의 옆에서 남궁선이 중검을 들고는 바닥을 내리친 효과였다.
산산조각이 나는 지반.
'과연 제왕의 검이로구나!'
단 일격일 뿐인데도 그가 다섯 번의 기술을 사용한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새삼 그의 스승이 남궁세가의 검격을 칭송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후우. 힘들군요."
한 차례 이마의 물기를 닦아낸 남궁선과 한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빙그레 웃는 두 사람.
그러나 무인 두 사람이 뛰어든다고 해서 대자연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바…… 그들의 기운이 탈진할 즈음에는 마을 사람들 또한 반쯤 포기한 채 곳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발목 정도 차던 물은 어느새 무릎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사.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그만 포기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
"이 정도면 저흰 충분히 할 만큼 한 것 같습니다."
그랬다. 그러나 낙담해 있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본 한사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 그는 달음박질하여 객점으로 뛰어갔다.
마치 그가 올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천강은 차 두 잔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아까의 깨달음을 기억한 한사가 자리에 앉아 찻잔을 기울였다. 거친 호흡이 진정이 될 즈음, 찻잔 또한 깨끗이 비워졌다.
덩달아 그 잠깐의 기다림 동안 한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정돈할 수 있었다.
"천."
"듣고 있다. 말해."
"좀 도와주시오. 그대 힘이라면 능히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소?"
"이 사태라면 어떤? 지금 마을을 뒤덮는 수해?"
"그렇소."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막을 수는 있지."
한사의 얼굴이 확 펴졌다.
"그럼 당장 도와주시……."
"근데 싫어."
"아니, 어째서?"
천강은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그 행태에 실망한 한사가 크게 소리쳤다.
"어찌 큰 힘을 가지고도 구경만 한단 말이오! 이들에겐 생계가 걸린 일인데!"
한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도로 뛰쳐나갔다.
"천! 정말이지 실망스럽소!"
……생계가 걸린 일이라.
천강이 한사가 사라진 방향을 가만 바라보았다. 막야가 그런 천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소년, 정말 도우러 가지 않을 겁니까?
'글쎄. 어떻게 할까.'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
"천님은 안 오십니까?"
남궁선의 질문에 한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됐소. 아무래도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한데……. 후우. 아니오. 우리가 더 힘을 내면 되는 것이오."
그러나 이미 마을 사람들의 반은 자리를 비운 뒤였다. 남은 반도 대부분이 포기 상태였고.
그 상황에 두 사람이 힘을 써본들 큰 효과는 없었다.
어느덧 한사의 검 끝에도 내기가 전혀 실리지 않아, 물만 베는 지경에 이르렀다.
털썩. 기력이 쇠해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는 두 사람.
"자연이란 게 이리 컸었던가."
"대자연의 흐름은 하늘의 뜻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어쩌면 천님도 그래서 안 움직이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찌 도전 한 번을 안 해볼 수 있는지……."
한사와 남궁선의 시선이 강물에 닿았다.
조금씩 물이 불어나면서 파도가 일고, 그것은 점차 사람들의 몸을 천천히 바깥으로 떠밀어내기 시작했다. 다량의 물은 덤.
그런 그때였다.
"뭐야. 기운차게 말하더니 다 끝난 거냐?"
"천!"
"천님!"
한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천강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천강은 강가 옆에 세워진 한 나뭇가지 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천이라면 도와주러 올 줄 알았소! 정말 고맙소!"
"도와주러 오긴. 뭔가 큰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대가 없인 잘 안 움직이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몸값이 꽤 높단 의미지."
한사가 천강을 올려보았다.
떨어지는 빗줄기로 인해 천강의 표정을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꽤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강의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한사의 귓가에 잠잠히 와 닿았다.
"자, 말해보라. 화산의 올곧은 매화여. 그대는 무얼 대가로 지불할 테냐."
"선인께서는 미흡한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그대가 해줄 수 있는 것."
한사가 양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 됐든, 내 반드시 부탁 하나를 들어 드리리다."
그 대답을 들은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다. 거래는 성립됐다."
그럼 다음은 마을 사람들 차롄가.
천강은 마을 사람들에게 진정 이 수해를 없애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자연에는 섭리가 있는 법이다. 진정 이 수해를 없애주길 바라나?"
그러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리만 해 주신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요!"
"제발 이 지긋지긋한 물 좀 치워주십시오!"
뭐 그렇게들 원한다면야.
천강이 폴짝 수면 위에 안착했다. 그의 손에는 흑색 절굿공이가 들려 있었다.
"다들 멀찍이 떨어져."
"얼마나 떨어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50보 이상."
사람들이 충분히 떨어진 걸 확인한 천강이 심호흡을 했다. 그의 시선이 범람하는 강물에 가 닿았다.
솔직히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이런 일을 살아생전에 해본 적이 있어야지.
다만 뭔가를 부수고 파괴하고 사고 치는 데에는 자신이 있는 천강이었다.
팟- 천강의 신형이 강물 정중앙 위로 뛰어올랐다.
"어어?"
"천님?"
그걸 보고는 눈을 부릅뜨는 사람들. 설마 하니 저 거센 강물에 몸을 내던질 거라고는 생각 못한 탓이다.
한사와 남궁선조차 깜짝 놀라 허겁지겁 강 쪽으로 달려왔다. 그런 순간이었다.
갑자기 크게 흔들리는 지반.
쿠구구구구.
폭음과 함께 강물이 위로 솟구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하류로 연달아 일어났다.
천근추로 강물 바닥을 부수며 안착한 천강이 하류를 향해 힘껏 절굿공이를 내지른 것이다.
그것이 전부라면 별것이 없었을 터이나, 천강은 팔 전체에 혈도를 열어 내력을 방출했다.
'지천뇌공.'
쿠콰콰콰콰콰-
하늘로, 물길 좌우로. 사방으로 물줄기가 터져나간다.
강물 바닥은 깊게 패고, 미약하게 굽이치던 강줄기가 일직선으로 새로이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기존보다 곱절은 깊어진 거대한 수로.
우오오오-
마을을 메웠던 물은 모조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하류를 향해 사라졌다.
사람들의 환호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은 마치고 객점으로 돌아온 천강에게 한사가 밝은 얼굴로 질문했다.
"천. 근데 이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바로 안 도와주신 것이오?"
천강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뒤늦게 들어오는 객점 주인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주인장. 혹시 이곳 농산물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매해 홍수로 피해가 커서 그렇지, 늘 알곡도 좋고 크게 자라 사천에서 비싼 값에 많이들 사간다오. 우리 마을을 유지해주는 원동력이지! 그런데 이제 그 수해마저 사라졌으니! 하하핫!"
비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주인장이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강이 말했다.
"잘 들어. 이곳 지방은 매해 저 수해 때문에 논과 밭이 물에 잠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양분이 많은 퇴적물이 함께 밀려와 땅의 기운이 매해 새로 충전되지."
"아……."
"그런데 난 그 수해를 제거했다. 그럼 앞으로 이곳 농작물은 어찌 될까?"
천강의 질문에 한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는 주인.
바깥의 전경을 잠시 가만 바라보던 천강이 잠잠히 말을 맺었다.
"모든 자연의 움직임에는 하늘의 뜻이 있는 법이다. 그걸 인위적으로 흩뜨리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른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 코앞을 보지 말고, 넓게 봐라."
천강이 한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마 한동안은 협을 위한 무식한 행동을 다소 자제할 것이리라.
- 근데 소년, 어째 얼굴이 밝아 보입니다?
'어. 방금 사고뭉치 하나 처리했잖아.'
저놈의 협 놀음에 놀아나다간 밑도 끝도 없다. 아마 남궁세가에 도착하는데 십 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그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라고 일부러 툭 던진 말이었다.
'이제 가는 길이 좀 편안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