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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8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4화

184화. 남궁세가의 소가주

 

 

"헉. 허억."

"이런 미친."

"아까 봤어? 남궁적님이 힘도 못 쓰고 그냥 밟히는 거?"

쏟아지는 빗줄기 속, 남궁 사람들은 가쁜 호흡을 들이쉬며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직 강물이 심하게 붇지 않아 망정이지, 자칫 저 마을에 갇혔다가는 언제 어디서 비명횡사할지 몰랐으리라.

그때 두 사람이 그들을 쫓아와 호통을 쳤다.

"지금 다들 무얼 하는 것이오! 남궁선님을 내팽개치고 뛰다니!"

"하, 하핫. 그럴 만한 일이 있었소, 남궁진언."

"과연 소가주를 버리고 도주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이 일은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즉시 가주님께 보고드릴 것이오."

젠장. 욕지거리가 목 위까지 올라왔으나 남궁호는 환한 미소를 애써 드러내 보였다.

그의 손짓에 남궁 사람들이 모여 진형을 갖추었다.

"그럼 다음 마을로 이동하겠습니다, 소가주님."

"근데 조금 전 마을에선 왜 그리 급히 이동한 것인가?"

남궁진언의 물음에 남궁호가 대답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적의 습격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남궁적님이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남궁적님이?"

그 한마디에 바로 수긍하는 남궁선과 그의 직속 호위.

남궁적은 빠른 시일 안에 현경에 도달할 거라 여겨지는 실력자다. 그런 그가 비명횡사했다면, 보통 자들은 아닐 것이다.

'혹 또 다른 내분의 세력이 있는 것인가?'

남궁적은 가주의 둘째 부인 세력. 남궁진언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궁선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그의 시신은 어찌할 참입니까?"

"일단 객점 주인에게 돈을 주고 맡겼습니다. 본가에 도착하는 대로 바로 가지러 갈 터이니, 그때까지 잘 보관해 달라고 말입니다."

말이나 마차라도 빌렸으면 가는 길이 편하련만, 걸어서 사천까지의 거리는 한참을 나아가야만 했다.

심지어 땅 곳곳이 진흙탕이 돼 나아가는 속도는 극히 더디었다.

결국 그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노상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나무 아래 각기 자리를 잡고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남궁진언."

"예. 도련님."

"혹 남궁적은 작은어머니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요?"

"글쎄요. 어쩌면 다른 이유로 명을 달리한 걸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 그 또한 무림인. 누군가와는 은원관계가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따라 날씨가 더욱 쌀쌀하군요. 일가 사람이 죽어서 그런 건지."

남궁선이 옷을 더욱 두껍게 추슬렀다.

그때 다른 나무 밑에서는 은밀히 작당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래대로라면 이 부근에서 거사를 치를 계획이었다.

그들의 주인은 소가주인 남궁선이 사망해 자신의 아들에게 그 권위가 내려오길 바랐다.

그러나 일이 틀어져도 너무 틀어졌다.

알 수 없는 고수와 괜히 한바탕 싸움이 나 그들의 지휘관인 남궁적이 죽고 만 것이다.

"결정하셔야 합니다, 형님. 자칫 성공하지 못한 일을 빌미로 저희를 무능하다고 판단해 모두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방계는 많다. 여기서 인정받지 못하면, 설령 목숨 줄은 건져도 끝없이 밀려나야 한다.

"애들을 준비시켜라. 지금 바로 친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이판사판이다.

소가주인 남궁선과 그 호위 남궁진언을 죽이고, 가문에는 정체 모를 적습을 받아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면 된다.

때마침 십검의 수장인 남궁적의 시체도 떡 하니 생겨나지 않았던가?

이것은 기회였다. 그들 주인의 눈에 아주 쏙 들 기회.

"준비 끝났습니다."

"자, 그럼 이동한다."

남궁 사람들이 검을 들고는 자신들의 소가주를 빙 둘러싸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남궁진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호를 질렀다.

"네 이놈들! 무슨 수작들이냐!"

"진짜 몰라서 묻는 거요, 아니면 알면서도 굳이 묻는 건가?"

"지금 네놈들이 칼을 빼 들은 상대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것이냐!"

남궁진언의 호통에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한 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쯧쯧. 애석하게도 지금 이곳에 소가주님 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 남궁진언 외에는 말이지요. 물론, 그조차도 곧 목이 떨어지겠지만."

"오만하구나. 내게 실력으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주제에."

"누가 혼자 싸운다 했습니까? 어디 저희 모두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지 보도록 하지요."

남궁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바람을 가르고 날아드는 그 검에는 묵직함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걸 상대하는 남궁진언의 눈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으니…… 번쩍 섬광이 일고, 이내 벼락같은 일격이 터져 나가 남궁호의 검을 강하게 쳐올렸다.

"큭."

"배신자여. 네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라!"

그러나 다음 일격을 먹이기 전 좌우에서 들어오는 두 개의 검.

마무리를 못 하고 남궁진언이 몸을 뒤로 내빼자, 남궁호가 진한 미소로 응대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이길 것 같군. 남궁진언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가?"

"젠장."

주위를 둘러본다. 적들이 촘촘히 둘러싼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적들의 수가 3할만 적었어도, 어찌어찌 소가주님과 함께하면 이길 수 있었을 터인데…….'

남궁진언 자신이 목숨을 건다고 하여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소가주님. 아무래도 한쪽을 뚫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거들지요."

웬만하면 싸움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여의찮아 남궁진언은 소가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가 기회를 만들면 먼저 나가십시오."

"그건……."

"그래야 저도 마음 놓고 몸을 빼낼 수 있습니다."

남궁진언의 주인인 남궁선은 선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세간에서 평가하길, 어찌 남궁세가에 저런 아이가 태어났나 의아해할 정도로.

물론 바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 어미가 일찍 독으로 사망하고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지면서 그 마음은 더욱 여려졌다.

그러나 남궁진언은 믿고 있었다.

성품이 선하고 유약하지만 언젠가 변화의 순간은 찾아올 것이라고.

그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 피지 못한 꽃처럼, 언젠가 하늘에서 적절한 기연을 내려주어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이라고.

'그 시기가 올 때까지 주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

사방에서 검을 들고 짓쳐 들어왔다. 남궁진언의 검이 움직인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남궁의 검은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태산을 움직일 힘이 있으니, 능히 하늘의 힘이라 불릴 만하다.

전방위 하단을 쓸어가는 검 끝 뒤로 물결의 파문이 인다.

그것은 뒤로 갈수록 점차 그 크기를 더해 갔고, 검이 한 바퀴 다 돈 뒤에야 한 박자 늦게 사방에 강맹한 기운을 떨쳤다.

쿠콰콰콰콰-

접근하다 검을 들고는 방어 자세를 취하는 적들.

그때 시야를 가린 작은 파도를 가르고 검이 튀어나왔다.

"이쪽이다. 피햇!"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궁세가의 검은 중(重)과 강(剛).

검이 지척에 이른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공격이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

남궁진언의 검 끝이 다다른 곳에 있던 적 세 명이 피를 흩뿌리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지금입니다!"

세 명이 쓰러져 생긴 작은 틈새로 남궁선이 몸을 빠르게 빼냈다. 그걸 본 남궁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이냐! 다들 죽고 싶어? 쫓아라!"

그러나 쫓는 이들의 발걸음은 이내 막히게 되었으니…… 남궁진언이 빗줄기가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는 목을 좌우로 한 번 풀고는 그들을 향해 이를 환히 드러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게, 참으로 검을 나누기에 좋지 아니한가."

"미친 새끼. 쳐라!"

……물론 죽기에도 좋은 날이고 말이지.

잠깐 남궁선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본 남궁진언의 몸이 움직였다.

지금 이 자리서 죽을 걸 생각하니, 15년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도리어 마음이 편안했다.

'마음이 편안하니 덩달아 몸도 가벼워지는구나.'

아쉽구나, 아쉬워. 십 년간 정체되었던 깨달음이 이제야 찾아왔거늘.

남궁진언의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피가 솟구쳤다. 분명 움직임은 매우 느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끝은 금세 도래했다.

열다섯 즈음 베었을까. 돌연 그의 가슴팍에 검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다.

"크큭. 드디어 끝을 보는구나."

"……남궁호.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 일에 가담한 건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힘써준다고 하셨다."

"결국 개인의 욕망과 영달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그분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가주가 될 경우, 우리 방계들도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약조하셨다. 우린 그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멍청한…… 그 거짓된 말을 믿다니.

남궁세가의 가주에겐 두 부인이 있었다.

그중 두 번째 부인은 음흉하고 간계가 많아 혼례를 올릴 때부터 말이 많았던 인물이다.

입만 열면 거짓을 일삼는 여인. 그게 그녀가 남궁세가에 올 때부터 지켜봤던 남궁진언의 솔직한 평가였다.

'그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고 싶어도 더는 말이 나오지 않는구나.'

목구멍에 가득 차오른 핏물에 의식이 서서히 꺼져간다.

홀가분함과 약간의 미련.

'남궁선님, 죄송합니다.'

 

***

 

우레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청해의 땅.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선은 어둑해진 거리를 순간순간 번쩍이는 벼락을 길동무 삼아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의 귓가로 바짝 뒤쫓아 오는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진언…….'

그에게 남궁진언은 친형과도 같은 존재다. 기억이 있을 적부터 그를 돌봐주고 놀아주고 지켜주었으니까.

'진언…….'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으려면, 그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은 뛰어야 했다. 달려야 했다.

'비가 와 다행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남궁의 소가주나 되는 자가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남궁선이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다. 수천 번 남궁진언과 연습한 경공이 그의 몸을 앞으로 쭉쭉 밀어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아까의 마을로 돌아가야 해.'

저들을 영구적으로 따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남궁호만 해도 경공을 사용할 수 있는 내기 양부터가 자신보다 많지 않던가.

'따라잡힌다면 필히 죽이려 들 거야.'

그런 그에게 남은 선택지라고는 단 하나. 저들에게 공포를 심어준 자를 찾아가는 것.

남궁적을 죽이고, 그걸 지켜본 저들로 하여금 마을 밖으로 허겁지겁 도망가게 만든 장본인.

암살의 목표물인 자신마저도 놔둔 채 도망가게 할 정도라면, 그 객점에 다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절대 쫓아오지 못 하리라.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런……."

마을이 코앞에 보이는데 강물이 범람해 지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단전에 내력이 충분하다면 경공으로 어찌어찌 시도해보았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체내 기는 거의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적들이 빙 둘러 칼을 들이밀었다.

"후우. 참 발도 빠르십니다. 덕분에 이 밤에 비를 맞으며 피차 고생만 하지 않았습니까."

"……남궁진언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 그놈이요? 글쎄요. 비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장마가 그치면 승냥이들이 나타나 먹어 치우지 않을까요? 크큭."

"네 이놈!"

머리 위로 쳐들린 남궁선의 검이 남궁호를 매섭게 베어 내려갔다. 그걸 받아낸 남궁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꽤 묵직한 일격이었던 탓.

팡. 강하게 밀쳐내고는 바닥에 침을 뱉은 그는 손목을 주물렀다.

'과연 소가주는 소가주라는 건가.'

직계. 그것도 가주와 소가주만이 익힌다는 남궁의 제왕검형.

새삼 그 위력을 몸소 깨닫고 나니, 왜 그의 주인이 그토록 자기 자식을 소가주로 만들려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아직은 화경에도 못 이른 피라미.

"그럼 잘 가십시오."

"네놈들 모두 천벌을 받을 것이다."

"후후. 감사합니다."

남궁호의 신형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남궁선 앞에 다다른 그는 팔을 좌에서 우로 움직였다.

그에 따라 빗줄기를 가르고 나아가는 남궁호의 검날. 그렇게 그 날붙이가 남궁선을 베려는 순간이었다.

"여어."

낯익은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울렸다.

"멀리 도망가면 어쩌나 했는데, 여기들 모여 있었네."

고개를 든다. 한 사내가 남궁호의 앞에 떡하니 서 있다.

매섭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얼굴을 알아보는 덴 시간이 걸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남궁호와 그 패거리였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문득 너희들을 보내고 나니 깜빡한 게 있어서 말이야."

"이것은 우리 일가의 일이오! 제삼자는 빠지시오!"

"아아. 걱정 마. 너희 일가의 일은 관심도 없거니와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일이니까."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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