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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8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2화

182화. 남궁세가와의 칼부림

 

 

무료한 나날이 지속됐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짝 귀찮은 일상이.

"천! 이쪽이오!"

천강을 향해 손을 흔드는 한 남자.

한사를 본 천강의 얼굴이 티 나지 않게 와락 구겨졌다.

- 어떻게 밥 먹으러 내려오는 순간마다 만나는 게냐.

'내 말이.'

- 제가 살펴봤는데,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반 시진 일찍 나와 아예 기다리더군요.

그 말은 작정하고 날 기다렸단 말인가?

아니, 대체 왜?

천강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그래도 객점에 사람이 좀 있었다.

"어디 상인 행렬이라도 지나가는 건가? 표사들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물어보니 남궁세가의 귀한 분이 무사 수행 중이라 하더군."

"무사 수행이라……."

그것참 요란하게 하는구만.

얼추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선 족히 사십은 되어 보이는 숫자다.

어디 원정을 가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실력들도 꽤 출중했다.

"근데 천, 그대는 어디 가는 길이오?"

"그건 왜 꼬치꼬치 캐물어."

"하핫. 이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길이 같으면 같이 가려 함이오."

"그럼 넌 어디 가는 길이었는데?"

"곤륜에 잠깐 가볼까 했었소. 그쪽에서 내 실력도 좀 검증해볼 겸."

곤륜에 실력을 나눌 만한 이가 있었나?

잠시 떨거지 다섯을 떠올린 천강이 검지를 치켜들었다.

"이런. 이거 어떡하나. 난 사천으로 가는 중인데. 반대 방향이라 동행은 못 하겠네."

그러자 한사가 하하 웃으며 말한다.

"그럼 곤륜은 다음에 가야겠구료."

"뭐? 아니, 왜?"

"사람이 그 무엇보다도 중한 것 아니겠소. 이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난 이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소이다."

이런 눈치 없는 녀석.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 아냐?

천강은 심안(心眼)으로 한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혹여나 음흉한 목적으로 접근한 건 아닌가 하여.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은 선(善). 직(直).

절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하아. 잘못 물렸네. 잘못 물렸어.'

요새 중원이 어찌 돌아가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도움도 받을까 하여 어울렸다가 아주 단단히 꼬이고 말았다.

연화봉에서 내려온 지 이제 석 달. 무림 초출인 탓에 어찌 보면 천강보다도 아는 게 없었던 탓이다.

돈이 궁한 건 덤.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때,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주문하신 만두 나왔습니다, 대협!"

후우. 그래도 먹을 게 들어갈 생각을 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진 천강이었다.

50년 전과 확 달라진 음식의 수준. 최근 들어 중원행 중 천강에겐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 소년, 얼굴이 확 밝아졌습니다?

이런 너무 티 났나?

아무튼 이제는 음식이 왜 맛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흑살마신이 한창 크고 활동하던 50년 전은 이전 왕조가 망국에 접어들고 곳곳에서 굶어 죽는 자들이 속출하는 시기였다.

음식 맛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던 때였단 의미다.

그러나 이젠 그 상처와 후유증이 거의 다 아물어가는 지금 시기에 다시 맛이 살아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

천강이 슬쩍 보니 한사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반 시진 전부터 미리 나와 음식 냄새 맡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뭐 당연하리라.

그렇게 만두 접시 두 개가 천강의 상 위에 올라오려는 순간, 다가오는 점소이에게서 한 남자가 그것들을 낚아채 갔다.

"어어? 손님?"

"뭐야? 우리 거 아녔어?"

"그…… 이분들이 먼저 시키셨습니다."

"그래? 근데 이를 어째? 만두가 이미 다 사라졌네?"

마치 보란 듯이 가져가 입에 넣는 사람들.

점소이가 천강 쪽 눈치를 보았다. 분명 저들이 잘못한 것이긴 하나, 객점에서 점소이의 목은 가볍다.

무인들을 상대하는 만큼 언제 어디서 머리가 홀라당 날아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점소이는 꽤 눈치가 빠른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꾸벅 허리를 숙여 천강과 한사에게 사과를 하는 점소이.

"죄, 죄송합니다. 바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손님."

"뭐…… 어쩔 수 없군. 그만 가보게."

한사가 점소이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화가 나긴 하지만 음식 하나 가지고 사고를 친다면 이곳 장사하는 이들이 피해를 받을까 우려한 것이다.

"예, 그럼……."

"잠깐."

그러나 한사 앞에 앉아 있는 사내는 그런 걸 신경 안 쓰는 자였다.

"네가 왜 사과하냐?"

"네?"

"야. 내 만두 접시 가져간 놈. 그리고 그걸 같이 처먹은 놈들. 당장 사과해라."

천강의 말을 들은 남궁의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파안대소했다.

"하. 그러니까 댁 말은 우리에게 사과받고 싶다?"

"이마를 바닥에 대며 정중히 사과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한사와 남궁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배를 잡고 다시금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들이 누구인가?

중원 사람이라면 어린애라도 아는 대 남궁세가의 사람 아닌가?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니 저리 까부는 게지. 거 검 들고 있다고 다 같은 무인인 줄 아나 본데, 우리와 네놈들은 급이 다르다."

접시를 가져간 놈이 앞으로 나와 칼을 빼 들었다. 한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맞댔다.

"넌 빠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허튼소리. 남궁이라는 가문에 수치가 될 자가 여럿이구나. 잘못했다면 잘못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게 진정 무인이거늘."

"하. 무림 초출이냐? 이곳 무림에서 약한 건 죄다. 대신 강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 그랬기에 내가 네놈들의 만두를 가져간 것이다. 우리를 이길 자신이 있거든 어디 덤벼 보거라."

한사가 주위를 훑었다. 화경 둘에 나머지는 일류에서 절정 고수들.

쉽지 않은 싸움이 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더욱 불타올랐다.

'스승님께서 그러셨지. 절대 협을 저버려선 아니 된다고.'

비록 상황이 좋지 않긴 하나, 어찌 됐든 저들은 잘못된 행태를 당연한 듯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까지 하고 있었다.

'힘을 가진 자로서 그 행함에 있어 마땅히 악한 걸 멀리해야 한다.'

그러한 소신을 지닌 한사는 지금 이 상황을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에 한 발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바로 천강이었다.

"재미있네. 힘이면 다 용서된다라…… 아주 마음에 드는 사상이야. 너희 남궁은 늘 그래왔지."

천강이 찬찬히 걸음을 옮겨 검은 든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는 천강의 목에 검을 대고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근데 그거 아나?"

"뭘 말이냐? 지금 네 목숨 줄이 간당간당 하단 것 말이냐?"

푸하하핫. 곳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천강 또한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남궁조휘도 내게 그딴 말을 지껄였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지."

남궁조휘란 남궁세가의 가주다. 물론, 지금도 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 개소리냐!"

"입을 놀린 대가, 죽음으로 갚아라!"

"죽여라!"

사방에서 검이 짓쳐 들었다. 한사가 뒤에서 검을 들고 튀어나와, 전장에 합류하겠단 뜻을 밝혔다.

그런 한사를 도로 밀어 보내는 천강.

"천! 어째서?"

설마 혼자 다 짊어지려고?

내게 화가 미치지 않게 하려고?

그러나 의자에 엉덩방아를 찧고 고개를 쳐든 그 순간, 그는 말을 잃고 말았다. 달려들던 사십여 명 중 돌연 아홉 명의 목에서 피 분수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 무슨?!"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강의 손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내가 사고 치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그냥 참고 지나가려 했는데 말이야. 먹을 걸 건드는 건 아니지. 그래도 기회는 줬어. 네놈들 말마따나 실수였을 수도 있으니까."

천강의 검이 움직였다. 조금 전 만두 접시를 빼앗아 간 이가 검을 내던지고는 천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싹싹 빌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인."

그는 보았다. 천장에서 순간적으로 아홉 개의 검격이 날아오고, 이후에 사내의 손에 안착하는 검을.

그것은 절대 화경의 수준이 아니었다. 화경인 자신의 눈에 겨우 보일 정도라면 최소 현경이었다.

"근데 그 기회를 개 짖듯 취급하네. 그리 싫다면 별수 있나."

"제발 목숨만은."

"죽어야지. 안 그래?"

"아, 안 ㄷ……."

천강의 검이 손에서 사라졌다. 한사는 그 검이 눈앞의 상대를 베고 천장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열 명의 적을 이리 순식간에…….'

심지어 그중 둘은 화경이었다.

천강의 무위에 좌중에는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왜. 너희들도 나랑 한판 할래?"

천강의 질문에, 남궁의 사람들의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우르르 자신들의 숙소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점소이가 만두를 들고 나타났다.

"……어?"

"아, 만두 나온 거야?"

"예, 옙."

"이리로 얼른 가져와. 배고프다."

야차와 같이 서늘한 한기를 뿜어낼 땐 언제고, 음식을 앞에 두고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 천강.

한사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도로 검을 집어넣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벌벌 떨며 주변을 둘러보는 점소이의 등을 천강이 톡톡 두드렸다.

"어이. 받아."

"이것은……?"

"수고비. 자재가 부서지진 않았을 거다. 대신 시체 나르고 피 닦는 수고는 해야 할 거야."

"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그제야 천강이 벌인 일임을 알고는 꾸벅 허리를 숙이고.

점소이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더니, 주인과 함께 나와 이런저런 음식을 천강에게 내어주었다.

식당이 박살 나는 걸 배려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한사, 뭐해? 어서 먹어."

"아아. 그러겠소…… 아니, 그러겠습니다."

한사는 잠깐 주변을 슥 한 번 둘러봤다가 이내 조심스레 음식에 손을 댔다. 그는 만두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

 

"결행일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투둑투둑. 빗방울이 매섭게 떨어지는 마을 인근 거대한 나무 아래, 두 사내가 나란히 서서 비 오는 풍경을 가만 바라보고 서 있다.

그들 앞으로는 강물이 크게 불어 수위를 아슬아슬 넘길 듯 말 듯 하는 추세였다.

방계출신 남궁호의 질문에, 직계출신 남궁적의 시선이 저 멀리 객점을 향했다.

"흠."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주인을 위해 이 먼 곳으로 무사수행을 따라 나왔다.

그들의 주인은 자신의 아들이 다음 대 장문인이 되기를 원했고, 그걸 위해 현 소가주인 남궁선이 죽기를 바랐다.

마치 석상과 같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남궁적의 입술이 움직였다.

"사천. 도시에 들어가기 전 거사를 치른다."

"예."

그런데 그때, 저 멀리 객점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허겁지겁 빗속을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두 사람 앞에 도착하자마자, 흠뻑 젖은 몸을 정비도 하지 않고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 빗속을 그리 뛰어다니느냐?"

"그, 그게……."

남자는 자신이 본 것을 소상히 둘에게 이야기했다.

식사 중인 두 사내와 시비가 붙어 칼부림을 하게 됐고, 그 결과 열 명이 죽게 된 사연을.

물론, 상대측 만두를 뺏어 먹다 일어난 일이란 건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궁십검(南宮十劍) 중 한 명이자 그곳의 수좌인 남궁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대 남궁에게 칼을 들이밀다니. 앞장서라. 내 그 건방진 것을 직접 징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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