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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18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180화

180화. 줄을 잘못 섰다고 생각해

 

 

중원에는 다양한 문파와 가문이 있다.

열 명 이하의 작은 규모부터 해서 일인전승까지 치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그중 곤륜은 악가가 멸문한 이후로 속세와 가장 단절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파일방 하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며 명문이라 불리는 건, 그들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에 자리를 잡았고 숫자도 많진 않지만, 짙은 영기 속에서 오로지 깨달음에 정진한 탓에 하나하나가 실력 있는 고수들로 이루어진 탓이다.

그런 그곳엔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명망 있는 네 명의 장로가 있었으니, 하나같이 모두 현경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노고수들이었다.

다만 짙은 그늘은 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젠장! 왜 안 되는 거지?'

현경에 도달할 듯 말 듯한 장로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록 같은 자리를 맴돌았고, 그 사실은 그들에게 조급함을 주며 그 마음을 조금씩 좀먹어 갔다.

'현경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할 텐데.

결국 그 간절한 욕망은 그들로 하여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마교와 손을 잡은 것이다.

"닷새 후면 투파창귀께서 오시겠구먼."

"허헛. 오늘은 어떤 깨달음을 주실지."

"그건 그렇고, 대가는 준비했는가?"

4장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날짐승 종류의 내단일세. 이 정도면 이번 값은 충분할 것이네."

이들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투파창귀에게 현경의 가르침을 받고, 그 대가로 곤륜에 자리한 영물들을 사냥해 그 내단을 바쳐왔다.

또한 투파창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은 친 장문인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마교에 호의를 갖는 자신의 세력들을 불려 나갔다.

이제 남은 건 갓 들어온 떨거지 다섯과 장문인뿐.

언제고 현경에 도달한다면 장문인을 합심해 제거하고 곤륜을 손에 넣을 계획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어서 투파창귀님께서 오셨으면 좋겠구먼. 허허헛."

그렇게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그때였다.

- 이리 오너라!

웬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파공음이 들린다 싶더니, 쿠콰콰콰- 지붕이 무너지며 무언가 천장에서 툭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이 본 그건 바로 문짝이었다.

"이게 대체……?"

의문을 품기가 무섭게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

"적이다!"

 

***

 

곤륜파의 무인들이 천강을 완전히 둘러싸고는 흉흉한 살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천강은 그 중심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 기다렸다.

- 뭐 하는 건가요, 소년?

'어.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 이왕 움직이는 거 다 모였을 때 한 번에 처리하면 쉽잖아?'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붕이 무너진 건물 안에서 네 노인이 튀어나왔다.

수준이 하나같이 비슷한 게, 천강은 저들이 바로 곤륜의 네 장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천강을 보더니,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아, 그것참 미안하게 됐수다. 살짝 문을 걷어찬다는 것이 거까지 날아가 버리고 말았네. 그러게 문 좀 튼튼하게 만들지."

"저런 맹랑한!"

"진정하시게, 3장로. 그래. 네놈은 누구냐?"

1장로의 물음에 천강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응대했다.

"글쎄. 내 이름이 그리 중요한가. 떠돌이라 마땅히 이름은 없는데."

장로들이 목에 핏발을 세웠다.

"아무래도 대화가 통할 놈이 아니로구나. 여봐라. 아주 흠씬 혼을 내서 쫓아내거라!"

"훗. 바라던 바야. 자고로 무인이란 입보단 몸으로 대화해야 맞는 것이지."

천강이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었다. 천강 주위로 사람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천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검 안 드냐?"

"네깟 놈 상대하는 데 검이 필요할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문을 고쳐놓는다면, 적당히 팔다리 하나씩으로 끝날 것이다."

이건 뭐…… 내가 사파에 와 있는지 정파에 와 있는지 모르겠구만.

"귀찮다. 한꺼번에 덤벼라."

천강이 손을 들어 까딱까딱 흔들었다.

"너희들도 덤벼. 장로 형씨들."

"이, 이익! 쳐랏!"

사방에서 천강을 향해 몰려들었다. 천강은 하늘 높이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스르륵 머리 위 하늘에서 내려와 천강의 손아귀에 안착하는 검 하나.

막야를 움켜쥐는 순간, 천강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잔상을 일으키며 전방위를 휩쓸었다.

'천마신공 쾌검격 제3식, 선풍지회!'

공기를 가르는 듯한 절삭력이 귓가로 느껴지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천강의 신형이 두 번 더 회전했다.

스슷- 스스슷-

"어, 어?"

"방금 무슨……."

곧바로 몸이 반 토막 나, 고꾸라지는 백여 명의 사람들.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그러게 내가 검 들라 했잖아. 하여튼 말로 하면 안 들어요, 꼭."

천강의 시선이 생존자들을 슥 훑는다.

방금 천강에게 덤빈 이들은 잔챙이들. 지금 살아 있는 녀석들이 진짜다.

아랫것들에게 일을 맡긴 뒤 본인들은 뒤에서 일을 잘하나 지켜본 것이다.

스물두 명의 적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검을 빼 들고는, 둘씩 짝지어 천강에게 달려들었다.

'합공인가?'

들어본 적 있다. 곤륜은 꽤 합공에 능한 무공들이 있다고.

사각지대에서 두 사람의 검이 천강에게 짓쳐 들었다. 그 어떤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일격.

무성무색의 검법은 곤륜의 절기 중 절기였다. 가히 사각지대에서 하는 기습은 물론, 야간에는 어떤 암살 무공과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앞에서 시선을 끌고 그사이 천강의 등 뒤를 노리는 데 성공한 그들은 자신들의 검이 천강의 몸을 뚫고 안으로 박힐 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하수들의 이야기일 뿐.

제아무리 토끼 두 마리가 힘을 합쳐본들 호랑이를 잡을 수 없는 법이다.

천강의 신형이 잠깐 흐릿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뒤에서 접근하던 이들의 목이 날아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어떻게……."

"뭘 그리들 놀라고 그래. 안 덤벼?"

주춤주춤. 물러나는 적들.

겨우 두 번 본 움직임이지만, 그들은 그제야 눈앞의 사내가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을 넘어서는 적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장로들에게로 향했다.

"쯧쯧. 뒤로 물러서라."

허공답보를 하며 천강을 둘러싸는 네 명의 장로.

"손속이 잔혹한 것이…… 정파인은 아닌 모양이구나. 정체가 무엇이냐?"

"내 정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지금 난 곤륜의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당신들의 제자들을 짓밟았고, 이 땅을 유린하였다. 그대들이 궁금해할 것은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너희 넷이서 과연 날 쓰러뜨릴 수 있느냐다."

"하!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 콧대를 오늘 단단히 꺾어주겠노라!"

네 장로가 천강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태는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듯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도적질을 하다 곤륜에 입적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70년을 함께한 이들이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였다.

"지금 바닥에 자빠져 있는 놈들 보이지?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전력으로 덤벼라."

- 그걸 사용합시다.

- 그리하세.

- 그러세.

- 바로 지금.

천강의 주위를 빠르게 회전하던 네 노인의 검이 중심부로 쏘아져 나갔다.

이동하는 움직임이 빠른 탓인지는 몰라도 마치 순간적으로 검이 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둘씩 짝을 지어 공격하는군.'

소리 없이 나아오는 일격은 마치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태극의 문양을 그리는 것 같았다.

두 개의 검이 천강의 전면 좌측에서, 다른 두 개의 검이 천강의 후면 우측에서 찔러 들어와 옆구리를 가격했다.

'성공이다.'

태극합검. 무려 10년의 공을 들여 만들고 합을 맞춘 일격이다.

현경의 고수인 장문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쾌검이기에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또한 양방향 중 한쪽을 막아도 다른 한쪽이 문제가 되며, 각각 두 개의 검이 겹쳐 나가기에 쳐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쳐내려는 순간 먼저 부딪친 검이 공격을 흘리고, 남은 하나의 검은 그대로 찔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는 절대적인 검격.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검격이 무너진 것이다.

"무, 무슨……."

"검이 안 박혀?"

"제법이네. 산속에만 틀어박혀 사는 도사들 주제에 잘도 이런 살초를 개발해 내고 말이야. 누가 보면 여기가 천산인 줄 알겠어."

"네놈 정체가, 윽?!"

검을 회수하려 하나 빠지지 않는 검.

그제야 그들은 눈앞에 사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오래 산 만큼, 중원의 이름 있는 자들에 대한 소식은 다들 접했던 탓이다.

"흐, 흑살마신?"

"오. 내가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네."

빨려 나가는 내력을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장로들이 소리쳤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우린 마교의 편이거늘!"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한 식구가 되자고 힘을 합친 사이가 아니던가?

"아아. 주인이 제집을 찾았거든."

"네?"

"뒷주머니 찬 것들을 처리하고 나니, 이제는 그 관련자들을 다 색출해 없애길 바라고 있다고 할까."

투파창귀와 손을 잡았지만 아직 마교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곤륜의 네 장로였다.

마교가 양분되어 있었으며 자신들이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투, 투파창귀를 불러주시오!"

"죽은 녀석을 뭐 하러 찾아?"

"그게 무슨……."

"그냥 줄을 잘못 섰다고 생각해. 본래 인생은 선택과 결과 아니겠냐. 그럼 잘들 가라고."

내력을 거의 다 뺏겨 부들부들 다리를 떠는 장로들에게서 천강이 마지막 내기마저 쪽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검을 전방위로 휘둘렀다.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네 개의 머리들.

그걸 본 스무 명의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강의 머리 위 검은 구름에서 병장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내 도망가는 그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이것으로 곤륜은 끝인가?'

주변을 넓게 펼쳐 봐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 기운.

- 끝이니라.

- 저도 여섯 기운 외엔 느껴지지 않습니다, 소년.

'그럼 이제 하산하자고.'

그러고 몸을 돌리는데, 문득 장로들이 열고 나온 건물 안쪽으로 무언가가 천강의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 다가가 본즉 푸른빛이 감도는 그것은 알이었다.

나름 수많은 책을 독파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박학다식하다 자부하는 천강조차도 난생처음 보는 종류의 알.

'이게 뭐지? 혹시 이게 무슨 알인지 아는 사람?'

- 흠. 거위알 아닐까요?

- 그건 아닌 것 같네, 막야. 거위알치고는 너무 커.

-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는가. 잘 먹은 거위가 힘들게 낳은 걸 수도 있지.

- 저런 걸 낳으면 똥구멍이 찢어질 걸세.

아무튼 신병이기들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흥미가 돈 천강은 그것을 천으로 싸 검은 안개에 챙겨 넣었다.

미약하게 영기가 느껴지는 게, 큰 급전이 필요할 때 팔아먹으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그럼 일도 끝났으니 이만 하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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