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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1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16화

216화. 제일 이득을 본 자

 

 

쿠구구구구.

마른하늘에 천지가 요동을 친다.

큰 흙먼지를 일으키며 움푹 가라앉는 무영신투의 비고를 바라보며 태감(太監)이 사신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빠져나올 때까지 흑살마신과 사자왕이 싸우고 있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흑살마신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제아무리 흑살마신이라 한들 땅속에 파묻히면 답이 없다. 자연경이 아닌 이상에야, 대자연의 흐름 앞에 인간은 한낱 미생물에 불과한바.

봉인이 풀리고 무너져 내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무영신투의 비고를 말없이 바라보던 태감이 사신들과 함께 사라졌다.

조금 있자 그 진동과 소란을 느낀 사람들이 우수수 달려오고, 그들은 허망한 얼굴로 무너져 내린 비고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라앉아 버린다면, 국가에서 인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발굴해 내는 건 사실상 글렀기에.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이 왔던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그 모습을 으슥한 그늘 속에서 바라보던 천수향이 으득 이를 갈았다.

"어이. 뼈다귀 영감. 진짜 표식 남기고 나온 거 맞아?"

"뼈, 뼈다귀 영감?"

사자왕(死者王)이 어이가 없단 얼굴로 천수향을 쳐다보았다.

"왜? 내가 부르는 호칭에 불만 있어? 서열 정리 함 할까?"

사자왕이 고개를 저었다.

현경이라도 다 같은 현경이 아니다. 음존 천수향의 경우엔 아주 특별했다.

근거리 싸움이면 싸움, 원거리 암기술은 물론, 광역 기술 하나만 빼면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실력자였기에.

특히나 그녀의 독은 현경조차도 살 떨리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서, 사실상 무림에서 그녀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라도 쳐도 될 정도였다.

제아무리 왕이나 존자들이라도 만독불침이 아닌 이상에야 독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천수향이 짜증을 내며 사자왕의 멱살을 잡았다.

"아, 근데 왜 천강이 안 나오냐고오오!"

"자, 잠깐. 진정하시게. 이러다가 태감(太監)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지금 그게 중요해? 엉?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깟 놈이 중요하냐고!"

"지, 진정하시오."

사자왕이 제갈현과 일천귀검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으나 그들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광존의 협잡질로 인해 현재 무림에서 음존에 대한 소문은 사상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천수향에게 멱살을 잡히며 흔들거리는 그때였다.

그들이 숨어 있던 앞 땅이 작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어어?"

"자, 잠깐만요. 두 분 이것 좀 보십시오. 땅이 솟아오르는데요?"

"설마……."

일천귀검과 제갈현의 두 눈이 마주쳤다.

천강이 강시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적의 무위를 본 두 사람은 후다닥 그곳에서 멀찍이 도망갔다.

"튀, 튀십시오!"

"늦게 도망치면 휩싸입니다!"

과연 점점 부풀어 오르는 지면 바닥.

그러나 폭발은 일지 않았다. 그저 땅속에서 웬 비단이 쏙 고개를 내밀 뿐.

그것은 두더지마냥 주위를 둘러보더니 파닥파닥 흙먼지를 털었고, 이내 흙 아래서 제 몸통을 끄집어 올렸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기운에 천수향이 사자왕을 냅다 던지고 후다닥 뛰어간다. 천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건 천강이었다.

"천강. 왔구나!"

"아아. 별일 없었지?"

천수향이 천강에게 손을 내밀었다. 천강이 주변을 슥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아니, 진짜 꼭 그거 해야 해?"

"왜. 싫어?"

……일단은 맞춰 주자.

천수향의 손을 잡고 일행들에게 다가간다. 멀찍이 도망갔던 제갈현과 일천귀검은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태감은?"

"아무래도 돌아간 듯합니다."

"용케도 안 걸렸네?"

천강의 말에 사자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지. 끌끌. 황실을 오래 비울 순 없을 테니 급히 돌아가는 것 같더군."

"천 대협. 근데 그 천은 무엇입니까?"

한눈에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니다. 천강의 몸을 두르고 있는 기이한 비단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왠지 만져보고 싶어하기에 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건들지 않는 게 좋아. 욕심이 많아서 무언가가 자기를 건들면 먹이인 줄 알고 잡아먹거든."

"예? 잡아먹어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때마침 한 나무 위로 까마귀가 내려와 앉기에 천강이 그것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촤르륵- 비단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쏘아져 나가더니 단숨에 까마귀를 집어삼켰다.

우두둑. 우두둑.

뼈를 씹어 삼키는 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

잠깐 사이에 소화를 마친 탐(貪)은 뱀마냥 스윽 몸을 움직여 천강의 몸을 둘렀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천강의 겉옷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꿀꺽. 그거 신병이기 같은 건가요?"

"어. 요 밑에서 찾았어."

"그럴 리가. 비고는 태감(太監)이 싹 털어갔는데 어찌……."

"아까 너희 따라 나가려는데 바닥 밑에 공간이 비었더라고. 확인해보니 이게 있었지 뭐야."

"역시 무영신투. 보통 도둑이 아니었군요."

보통 도둑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당사자였건 혹은 이철괴에게 의뢰를 받았던 것이건, 어찌 됐든 이런 무지막지한 흉수를 가둬놓았으니까.

"근데 원래 이 비고엔 뭐가 있었던 거야?"

천강의 질문에 다른 이들 또한 궁금하다는 듯, 모두의 시선이 사자왕에게로 향했다.

천강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노인이 이야기했다.

"흔하디흔한 것들이 있었네. 만년설삼이나 인형삼 같은 영약부터 해서, 몇몇 질 좋은 무기와 비급들. 그리고 원나라 때 황실의 보물 등등."

제갈현과 일천귀검이 입맛을 다셨다.

사자왕이나 천수향, 천강에겐 정말 흔하디흔한 것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영약 하나만 있어도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에.

그 모습을 본 천강이 두 사람의 손에 환 하나씩을 쥐여주었다.

"이게 뭔가요, 대협?"

"영약이야."

"예?"

"그래도 날 믿고 따라 나서준 만큼 대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대협……!"

"감사합니다!"

천강이 두 사람에게 내어준 환은 선계의 토끼로부터 빼앗은 절구로 만든 것이다.

재료에 따라 효능이 어찌 달라지나 확인하고자 한 번씩 만들어놓은 것으로, 천강에겐 사실상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동 어린 눈으로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는 두 사람을 보니 꽤 만족스럽다.

그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기를 잠시, 이내 천강의 옆에서 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천강, 나는?"

"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예의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절대강자가 생긋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얜 영약 정도로는 만족 못할 텐데.

'너희들 중 나 떠나서 홍랑에게 가고 싶은 사람?'

이왕이면 자진하는 이를 보낼까 하여 신병이기들에게 물으나, 대답들이 없다.

한 명 한 명 콕 짚어 물어도 하나같이 거부한다. 심지어 투파창귀 쪽에서 넘어온 이들까지 그러했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천강이 편해서였다.

내기가 많아 늘 허공에 떠다니는 편안한 승차감.

'야. 너희들 중 하나는 가야 해.'

- 절대 안 갑니다.

- 나도 안 가느니라.

- 그냥 네가 한 대 맞고 끝나는 건 어떠하냐?

'저게?'

결국 모두가 싫다 하는데 억지로 보낼 수도 없고, 잘 생각해보니 굳이 내 무기를 다른 이에게 줄 이유도 없다.

그에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사이 천수향의 미간 사이로 주름이 잡혔다.

결국 생각하고 생각하다 순간의 기지를 발휘한 천강은 그녀를 덥석 등에 업었다.

"어어?"

당황해 어버버하는 여인.

좋았어. 일단 시작은 좋아!

이제 입에 발린 말 한마디 얹어주면 끝.

"너 아까 다친 발목 아직 안 나았잖아. 그거 다 나을 때까진 업어줄게."

"……고, 고마워."

후우. 성공이다.

자고로 일자천금이라 했다. 말 한마디만 잘해도 천금의 가치가 있는 법!

천강의 성공에 신병이기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 속에서 막야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 아니…… 지금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불화가 일 만한 게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등에 업은 여인을 못마땅해하는 건가요, 소년?

글쎄다. 왜 그럴까.

막야의 말을 듣고 가만 생각해보니, 그녀 말마따나 잘 챙겨주고 하면 되는 걸 왜 피해 다니나 싶다.

뭐 혼례 올리기로 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등에 업혀 있던 천수향이 고개를 앞으로 불쑥 내밀고는 말했다.

"천강."

"응?"

"아직 남자 경험 없는 여인이 가만 내어준 건 진(眞) 사랑인 거다."

"뭔 소리야?"

"요거."

천수향이 검지로 천강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내 인생에 궁둥이 만지도록 가만 놔둔 남자는 네가 처음인 거 알지?"

"그래그래. 알지."

난 또 뭐라고.

"그래서 말인데, 오늘 밤……."

천강과 천수향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천강은 50년……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5년 만에 그녀에게서 도망 다닌 이유를 떠올렸다.

'아…….'

그래. 이거였어. 이것 때문이었어!

아무리 호랑이가 사슴을 예뻐한다 한들, 사슴 입장에서 호랑이가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천강의 등에 업혀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그녀를 보는 순간, 천강은 초식동물의 기분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천 대협! 빨리 오십시오! 때마침 객점에 방들이 비었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안 돼!

천강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필사적으로.

그러나 그 행위는 마음속으로만 이루어지고, 천수향이 허락하는 신호를 보내자 일천귀검과 제갈현이 후다닥 객점으로 들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

"천강, 뭔 생각해?"

"아, 아냐. 태감을 어떻게 쓰러뜨릴까 고민 중이라고 할까?"

천강은 비척비척 발을 옮겨 객점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사자왕이 불쌍한 중생을 보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이번 무영신투의 비고에서 제일 큰 이득을 본 건 천강 본인이었으나, 아마 실질적으로 따지면 그의 등에 업힌 천수향이 아닐까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천강은 터덜터덜 객점 안으로 들어섰다.

 

***

 

"들었는가?"

무림맹 근처 자리한 객점.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 수군거렸다.

"이번 무영신투의 비고가 함정이었다는군."

"그게 무슨 소린가?"

"그곳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로 퍼지는 소문은 이러했다.

무영신투의 비고 소식을 알리고 소문을 퍼뜨린 것은 마교이다. 그곳에 참여했던 이들 대부분이 흑살마신과 마인들의 손에 그 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말을 그 누구도 믿지 않았으나, 실제로 죽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이들이 동일하게 진술하는 말인 만큼 금세 신빙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이가 이내 으슥한 골목으로 가 한 복면인에게 전했다.

"태감께 전해라. 소문은 성공적으로 불이 붙었고, 퍼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곧 그 소식은 무림맹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각 조직의 장문인들은 만장일치로 하나의 안건을 통과시키고.

이내 각 도시로 다음과 같은 공고가 붙기 시작했다.

 

『 최근 마교의 습격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게 사실로 밝혀졌다. 하여 무림맹에서는 내년에 있을 용봉지회를 1년 앞당기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단순히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자리가 아니요, 마교의 토벌대를 결성하는 자리임을 밝히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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