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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1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13화

213화. 오해를 먹고 사는 사이

 

 

천강과 가짜 흑살마신이 서로 마주 섰다.

놈은 복면을 쓰고 있어 눈 주위만 보였는데, 피부는 꽤 생기가 있어 보였다. 대충 본다면 살아있다고 오해할 정도로.

'사기(死氣)로군. 어떻게들 생각해?'

- 맞아요, 소년.

- 사기(死氣)에다가 흡공으로 흡수한 내기들이 몸을 유영하고 있구나.

아무래도 상대에게서 흡수한 내기로 내공도 쓰고 그러는 모양이다.

뭐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자, 그럼 어디 가짜 낯짝 좀 보실까?"

천강이 성큼 놈에게 다가가자, 사자왕(死者王)이 웃음을 터뜨렸다.

"흥. 그건 가짜가 아니다."

"뭐래. 진짜가 여기 떡 하니 있는데."

"헛소리. 오히려 네놈이 사칭 중이겠지. 흑살마신은 50년 전 죽었다. 마교의 배신자들을 처리하다가 같이 죽었지."

당시 사자왕은 마교에 은거 중이었다.

태감(太監)이 마교를 집어삼킬 계획이란 걸 우연히 알게 된 그는 질 좋은 육체를 얻기 위해 마교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수많은 마두들을 단신으로 쓸어버리는 괴물을!

원래는 천마의 육체를 얻으려 했으나 보는 눈이 많기도 했고, 흑살마신의 흡공을 본 뒤로는 천마의 육신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의 무공인 흡공이야말로 사자왕 자신의 강시 비법과 놀라울 만치 잘 어울릴 거라 확신했기에.

그에 훔쳤다. 괴기나한이 제를 지낸다고 눕혀놓은 시체를 은밀히 빼돌린 것이다.

"내가 마교에서 흑살마신의 시체를 직접 들고 와 만든 진짜 흑살마신이다. 어찌 가짜가 나서서 설치느냐!"

사자왕의 말을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 떠지는 사람들.

특히 천수향의 경우엔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흑살마신이 죽었다고……?"

"그래. 이종진기의 문제가 터져 결국은 명을 달리하고 말았지."

"거짓말. 녀석이…… 그리 허무하게 죽을 리 없어……."

"그러나 죽음 이후엔 더욱 강해졌으니! 무쇠보다 단단한 신체와 모든 걸 막아내고 적을 제압하는 흡공을 과연 어느 누가 막을쏘냐! 하하핫!"

사자왕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단순 그게 전부는 아니었기에.

저 몸에 축적된 전투의 경험치는 일반 무림인들을 아득히 넘어서는 그런 게 있었다.

그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걸작!

"마교 최강자의 몸과 최고 기술자의 기술이 합쳐진 압도적인 힘을 어디 느껴 보거라! 크하하핫!"

사자왕의 광소가 울려 퍼짐과 함께, 천강을 가만 응시하던 가짜 흑살마신이 몸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친숙해 천강조차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다가와 금나수를 펼치는 녀석. 그러나…….

쿠구구구구.

"어어?"

사자왕의 광소가 놀람으로 바뀌었다. 천강에게 달려든 녀석은 단 한주먹에 땅에 처박혀 파들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래 봤자 가짜일 뿐이지."

일전에 주태에게도 설명했지만 뻔히 다 아는 형태의 공격이 통할 리도 만무하거니와, 놈이 전생의 육체를 가져간 게 사실이라도 쳐도 애초에 화경 수준이었다.

지금 천강은 현경이고.

힘이면 힘, 속도면 속도. 모든 게 천강보다 한참 뒤떨어졌다.

가장 결정적으로 흡성대법 또한 북명신공의 아류에 불과하지 않은가?

모든 게 당시를 넘어선 천강에겐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뭐 튼튼하긴 하네. 사람보단."

지천뇌공.

콰드득.

가짜 흑살마신의 몸 곳곳이 부서져 그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진다. 복면은 진즉에 찢겨 날아갔고, 그렇게 드러난 몰골은 과연…… 천강과 꽤 닮아 있었다.

썩지 않게 노력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50년이 지났는데도 형체가 남아있는 걸 봐선.

'그건 그렇고, 이전의 내 몸뚱어리를 팬다는 게 기분이 참 묘하군.'

아무튼 싸움은 끝났다.

천강 밑에 깔린 녀석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천강에게서 내기를 빼앗으려 하나, 웃기게도 역으로 내기를 뺏기고 있었다.

제아무리 큰 바람으로 흐르는 물을 역으로 밀어낸다 하더라도 모든 물은 흘러 바다로 향하듯, 그 거대한 물줄기는 막을 수 없다.

흡성대법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세상의 이치를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50년간 돌아다녔다니…… 수고 많았다, 내 이전 육신아. 이제 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거라.'

천강의 그 뜻을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온몸에 내기를 다 빨려 더는 움직일 힘이 없는 것일까.

강한 저항을 하던 가짜 흑살마신의 저항이 잦아들고 이내 그 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천강이 흑색 절굿공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참 안식을 선사해주려는데, 누군가 달려와 천강을 뒤에서 붙들었다. 음존 천수향이었다.

"안 돼!"

"뭐야. 저리 안 꺼져?"

"안 된다고!"

아, 진짜 아까부터 귀찮게.

홱 고개를 돌려 매섭게 노려보길 잠시, 이내 떨떠름해지는 천강의 얼굴.

"너 왜……."

얘 왜 울고 있냐?

 

***

 

지금 나만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걸까.

천강은 잠시 멍하니 음존, 다섯 존자 중 하나를 가만 바라보았다.

-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가?'

그런데 처음에 봤을 땐 아주 철천지원수마냥 달려들었고, 중간엔 아는 체하며 발로 내려찍고. 이후엔 독침…….

'이 여자, 지금 내가 이놈 죽이면 본인은 은원관계 청산 못 하니까 쪽팔려서 그런 거 아냐?'

그렇지 않은가?

무려 존자가 돼서 듣도 보도 못한 나한테 먹잇감을 빼앗겼으니 그 얼마나 쪽팔리겠느냔 말이다.

- 소년…… 제 생각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에이. 막야. 네가 무림인들을 몰라서 그래. 무림인들에게서 힘과 명예 빼면 시체나 다름없다고. 그놈의 명예 때문에 가족끼리도 암살하고 그런다니까?'

천강이 천수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는 모양새가…… 진심이 느껴지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어휴. 진실을 몰랐으면 저 연기에 끔벅 속을 뻔했네.

"제, 제발 천 대협. 흑살마신을 한 번만 살려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사실 지금 이건, 가짜와 싸우느라 내기를 크게 소모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부탁이었다.

그러나 천강은 거침없이 그녀를 날려 보내고, 이내 흑색 절굿공이를 힘껏 내려쳤다.

가짜 흑살마신 몸이 산산조각이 나 그대로 움직임을 우뚝 멈춰 섰다.

그걸 보고는 몸을 덜덜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천수향.

"아……. 아……."

어. 말을 못 하는데? 먹잇감 뺏긴 게 그리 충격인가?

결국 답답함을 느낀 신병이기들이 일제히 나서 천강에게 뭐라 하기 시작했다. 늘 고분고분하던 뇌명까지.

- 저건 아무리 봐도 원한이 아닌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지 않느냐!

- 딱 봐도 모르겠나요?!

- 정말 실망입니다.

- 투파창귀보다 더한 냉혈한이 여기 있었군요.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고 본즉 그제야 천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아까 천수향이 보인 행동이.

'하긴. 예부터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고, 부처님 속마음만큼이나 알기 어려운 거랬어.'

진짜 은공 갚을 이를 내가 죽인 거라면…… 아무래도 오해는 푸는 게 좋으리라.

천강이 천수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넋을 잃은 채, 망부석마냥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자리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몸은 꿈쩍도 안 하는데 눈물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 대체 나랑 과거에 무슨 연이 있기에 그러는 거야?"

그러나 대답이 없는 여인.

가짜의 죽음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영 꼴 보기 싫은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짜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복면이 벗겨진 그것의 얼굴을 멀찍이 떨어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어이. 정신 차려. 이거 강시야. 이미 죽은 시체고, 가짜라고."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강하게 부정하며 엉금엉금 기어 오는 꼴에 탁 한숨을 쉰 천강이 쭈그려 앉아 그 앞을 막아서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야. 다시 한번 물을게. 너 흑살마신 왜 찾냐. 내 기억에는 너에 대한 게 전혀 없거든?"

"비켜. 비키라고!"

"땡추랑 주태한테 물어도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더란 말이지."

그제야 필사적으로 천강을 넘어가려던 천수향이 움직임을 멈추고는 천강을 돌아보았다.

"땡추? 주태……?"

둘 다 그녀가 아는 이름이다. 흑살마신의 지인들 이름은 진즉에 다 파악했기에.

"그래. 오목골에서 땡추 만났다며. 그 왜 늙은이 있잖아."

천수향의 머릿속에 맹익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때 그게 땡추였어?"

흑살마신을 따라 강호에 나온 그를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나이가 너무 들어 못 알아봤으나 그래도 왠지 낯이 익다 했더니 그런 이유였던 모양이다.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천강과 천수향의 시선이 마주쳤다.

"자, 말해 봐. 너랑 나 어디서 만난 거냐?"

천수향의 눈이 천강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 어이. 너희들. 공자님과 맹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 야. 근데 걸리적거리니까 저만치 좀 떨어져 있어 봐.

오늘 그가 한 말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 너어…….

손을 올리자 화들짝 놀라며 다섯 보 물러나는 기이한 행동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제야 천수향의 눈에 천강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흑살마신 얼굴이다. 그저 조금 어릴 뿐인.

"……당신이 흑살마신?"

"그래."

"근데 왜 내기 느낌이 달라?"

"아, 이건 사정이 좀 있어. 이종진기 문제 해결하다 보니 이리된 거라고 할까? 저 새끼 말마따나 마교 배신자들 진압하다가 진짜 죽을 뻔했거든."

그러자 울상이던 천수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워낙 순식간에 이루어진 변화라 천강 입장에선 의아함이 들 정도로.

천수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네가 진짜 흑살마신?"

"그렇다니까. 아, 진짜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현 교주랑 삼자대면이라도 해줘야 말을 들을……."

말을 하던 천강의 멱살을 천수향이 확 움켜쥐었다.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그래. 입가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으나, 눈엔 이글이글 알 수 없는 감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그제야 천강은 자신의 직감이 보내오던 경고를 이해했다.

"오랜만이야, 천강."

"어이. 농담이지……?"

"오랜만에 보네. 근 50년만인가?"

천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떨리는 입술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었다.

"너 죽은 거 아니었어?"

"내가?"

"어어. 그게 그러니까…… 네 조카가 널 모르던데?"

"뭐야. 그 뜻은 날 찾았었단 뜻이야?"

천수향의 눈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무언가가 조금 더 거세게 타올랐다.

"뭐…… 그, 그렇지? 내가 산속에…… 그러니까 어, 음. 맞다! 이종진기 문제 해결한다고 틀어박혀 있다 보니 50년이 훌쩍 지났더라고. 그, 그래서 널 바로 찾았지. 잘 지내고는 있나 해서."

"그런 거였어?"

천수향의 미소가 조금 달라졌다. 아까는 좀 섬뜩했다면 지금은 좀 인자로웠다.

물론, 천강 입장에선 이쪽이나 저쪽이나 둘 다 똑같이 두려웠지만.

"후훗. 난 또…… 50년간 날 피해서 도망 다닌 줄 알았잖아."

도망 다닌 것 맞다. 그러나 현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주둥이의 신중함도 같이 깨달은 천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근데……."

전생 때보다 의심이 더 늘었군.

심안(心眼)으로 천수향이 꺼내려는 말의 의도를 미약하게 파악한 천강이 마른침을 삼켰다.

"50년이나 걸릴 것 같으면 나한테 미리 말하고 갔어야지. 안 그래?"

"아. 그게 너도 신녀로 있으면서 내 역사를 들어봐서 알겠지만, 내가 좀 위험한 순간에 닥쳐서……."

천강을 가만 이리저리 살펴보던 천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진기 때문에 주화입마에 들었구나."

천강은 말을 아꼈다. 자고로 어느 정도 변명을 했으면 그저 입을 가만 다물어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일이 술술 해결된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천수향이 돌연 맹렬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진득한 살기까지 다소 첨가된.

'잠적한 것에 대한 소명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왜?'

눈을 크게 뜨고는 의아해하는 천강에게 날아드는 그녀의 말은 이거였다.

"너 근데 혼례식."

"응? 혼례식?"

"왜 안 나타난 거야아아아!"

혼례식……. 천강의 기억 속엔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남녀 사이엔 오해를 먹고 산다더니 이번 주제는 이것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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