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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1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11화

211화. 사자왕(死者王)

 

 

무영신투 비고의 소식은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다.

특히 황실에서 큰돈을 주고 물건을 사 갔던 소식까지 접한 무림인들은 너도나도 훈련을 때려치우고 산서로 향했다.

"지금까지 추정되는 숫자는 몇이나 되는가?"

"족히 7천은 넘었습니다."

"무림인들은?"

"못해도 3천 이상은 됩니다."

무림인 3천…….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물론 중원 전체 인구를 통틀면 큰 의미 없는 숫자이나, 문파에서 정식으로 수련을 한 무림인 하나가 일반인을 능히 백 명 가까이 상대할 수 있다고 할 때, 절대 적지 않은 숫자임은 자명한 현실이었다.

이대로라면 무림맹에서 걱정한 1만은 족히 채우고도 훌쩍 넘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모이는 건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

그렇게 무림맹에서 보낸 이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보며 통제를 하는 그때, 무리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락이 왔다. 지금 작업을 해야 한다는군."

"조금 이른 감이 있지 않나?"

"많이 이르지. 그러나 그만큼 고수들도 모이는 바람에 더는 버틸 수 없는 모양이다."

복면을 쓴 오십 명의 사신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대장격으로 보이는 이가 나직이 말했다.

"곧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결계 안으로 따라 들어가도록."

 

***

 

'아쉽네.'

- 효과가 없나요?

'그냥 그저 그런 독이야. 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

천강이 혀를 차며 혈강시의 이빨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 결계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바로 들어가실 거죠, 대협?"

"어어. 오늘 안에 끝내고 쉬는 건 각자 집에서 하자고."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일 다 끝나면 같이 한잔해야죠."

천강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금발에 벽안을 가진 미녀가 천강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다.

왠지 싸한 기분에 천강은 한 차례 몸을 오소소 떨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우리 일 끝나면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그 한마디에 돌연 사방으로 내려앉는 한기. 천강은 후다닥 결계 안으로 발을 옮기며 외쳤다.

"그,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천강 일행이 하나둘 결계 안으로 사라지고, 반 시진쯤 지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살마신이라 불리는 자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나타나 한 말 때문이었다.

"들어들 보시오! 흑살마신님 말씀으로는, 인시(寅時)에 열리는 결계에 비고로 보이는 석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야. 그게 정말이야?"

"인시가 진짜 출입구였군!"

"그에 이번에 들어가면 비고에 닿을 것 같긴 한데, 그 안에 강시 수가 너무 많아 다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하오. 그래서 도움을 줄 이들을 차출할 겸 결계 통과하는 방법을 여기 남기고 가겠다 하셨습니다!"

우오오- 사람들이 환호성이 새벽하늘을 가득 메웠다.

흑살마신이라 불린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결계 안으로 사라지자, 그들은 너도나도 결계 앞으로 나와 그 통과 방법을 숙지했다.

그리고는 우르르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가!"

"비켜, 애송이들아!"

처음에는 그저 이천 명 정도 응했으나, 너도나도 응하는 모습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결국 대기하고 있던 인원의 9할 이상이 결계 안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 남은 이들조차 뒤에 남은 태감의 수족들이 바람을 불어넣자,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고 말았다.

"늦게 가면 살 기회조차 없다고. 어서 가세."

"이곳에 나올 때쯤엔 이미 다 끝날 거야."

눈치를 보다 결국 장사꾼들마저 안으로 따라 들어가고, 결계 밖으로는 채 백 명도 안 되는 수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자들로, 이곳에 있어도 늦지 않고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말로는 서늘한 시체가 되는 것이었지만.

"컥…… 누, 누구?"

"끄윽……."

외부에 남은 사람들을 모두 처리한 사신들이 서로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결계 안으로 후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사신들이 외부를 정리하고 따라 들어오는 사이, 사람들은 흑살마신이라 불리는 이를 따라 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일렬로 서면 능히 한 번에 다섯까지도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굴은 사람들로 빼곡히 메워진 상태였다.

그렇게 따라 들어온 이들이 반 정도 굴 안으로 들어선 그때였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오십여 명의 복면인들.

바깥에서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들의 특이한 복식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사신들은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이내 다 같이 손을 입에 대고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걸 들은 굴 안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수군거리고.

"방금 들었나?"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여 갑시다, 흑살마신."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도리어 몸을 반대로 돌리는 남자. 그를 따르던 이들이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따라오던 이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무, 뭐야."

"미친. 이 미친 것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흑살마신이 미쳤다! 놈들이 우릴 죽이려고 해!"

그 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검을 빼 드나, 통로는 좁았고 사람 사이사이 거리는 더 좁았다.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만큼.

"비켜! 비키라고!"

살기 위해 휘두른 칼부림에 앞 옆 사람이 다치고, 결국 자기들끼리 싸움까지 일어나는 기이한 상황.

흑살마신이라 불린 남자가 그런 그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반대로 사신들의 학살에 굴 안으로 피신하려 하고.

운 좋게 일부만이 결계 출입구를 지키던 사신들을 뚫고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그렇게 가운데 갇힌 채 이승을 떠야만 했다.

- 731호. 밖으로 도망친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놔둬라. 태감(太監)께선 그런 이들은 그냥 보내라 하셨다. 바깥에 있는 이들이 알아서 선별해 보낼 것이니, 우린 이곳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4천에 가까운 학살.

결계 내부는 곧 피와 시체로 가득하게 되었다.

 

***

 

"천 대협. 이번엔 강시가 안 나오네요."

축시(丑時)의 시간대에 결계 안으로 들어선 천강 일행. 진즉에 나와야 할 강시들이 실제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씨가 마른 거 아닐까."

"하긴. 혈교가 판을 칠 때도 이 정도로 강시가 많진 않았을 겁니다."

"이미 누가 쓸고 간 것일 수도 있지. 원래 이곳은 제갈세가 애들이 파던 곳이라며?"

하긴. 놈들이라면 진즉에 그것들을 만나 처리했을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중원에서 기관진식과 함정 쪽으로는 최고로 조예가 깊은 가문이니까.

얼마 전에도 보고 감탄하지 않았던가. 색귀의 비밀 거처인 무릉원 결계 말이다.

강시들은 천강이 나아가도 계속 나오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굴 제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헛발이군요."

"이 정도면 진짜 무리를 이끄는 대장을 의심해 봐야 해."

재미를 붙인 듯 그러고 천강을 쳐다보는 두 사람. 천강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려는 순간, 돌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응? 이게 대체……."

"땅이 흔들리네?"

뭔가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는 천수향과 일천귀검.

그러나 굴에서 갖은 일들을 다 겪어본 천강의 얼굴이 뻣뻣이 굳었다. 그는 곧바로 두 사람을 안고는 전력으로 출구를 향해 뛰었다.

그제야 천수향의 눈도 부릅떠졌다.

"설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천귀검의 질문에 천수향이 급박한 얼굴로 외쳤다.

"결계와 함께 굴이 무너지는 거야. 자칫 잘못하면 땅에 파묻혀 즉사야!"

그러나 천강이 중간쯤 도착했을 땐 이미 천장이 무너져 입구가 막힌 상황이었다.

"으아아! 어떻게 합니까요!"

강호에 들어서며 어떻게 죽을지는 수십 번 생각하고 상상해본 일천귀검이다.

칼 밥 먹는 만큼, 죽음이란 게 멀리 있지 않기에.

그런데 설마하니 칼에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독도 아니고, 산채로 매몰돼 죽는 건 생각도 못 한 그였다.

그에 그가 머리를 부여잡고는 절망에 몸부림치는 그때, 돌연 옆 벽이 움직여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누군가 손짓했다.

"어서 이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어서!"

천강의 신형이 그 안으로 사라지고, 이내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히며 흙먼지가 안으로 급습해 휘날렸다.

무사히 굴이 무너지기 전 문을 닫을 수 있었다.

"고맙군. 그대는 누구지?"

두 손을 모으고는 예를 갖추는 천강의 질문에 상대 또한 공손히 자세를 갖춰 말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갈세가의 제갈현입니다. 음존 천수향님과 일천귀검, 그리고 이름은 모르오나 뛰어난 실력을 갖추신 선인, 천 대협을 뵙습니다."

 

***

 

천강 일행을 구해준 이는 다름 아닌, 실종되었다 알려진 제갈세가의 장자 제갈현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갇힌 경위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굴 깊숙이 들어왔다가 강시들이 나타나고, 운 좋게 혼자만 살아남게 된 경위를.

"놈들은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목적은 무림인들의 몸이라 할 수 있지요."

"몸?"

"그들은 이곳에서 죽은 무림인들을 데려다가 강시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수가…… 거의 군대를 양성하고 있는 수준이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천강은 왠지 짚이는 곳이 있었으나 가만 입을 다물었다.

그 생각을 똑같이 느낀 막야가 한마디 했다.

- 태감 측이로군요.

일천귀검이 허탈한 심정으로 물었다.

"그럼 보물은 어떤가?"

"이미 보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아니, 얼마 전 황실에서 사 갔다고……."

고개를 젓는 제갈현. 그가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직이 말했다.

"이 일에 황실이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한패지요."

"그걸 어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들의 대화도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황제의 최측근인 태감(太監)의 지시라는 걸 이 두 귀로 직접 들었으니까요."

그때 천수향이 끼어들었다.

"잠깐. 제갈세가의 장자라고는 해도 고작 화경에 불과한 네가 어떻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지?"

꽤 예리한 질문. 제갈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조용히 따라오시지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길은 좁고 더러웠다. 마치 방 사이사이, 혹은 천장과 지붕, 바닥의 빈 공간을 지나가는 것처럼 좁고 불편했다.

간신히 혼자서 지나갈 정도로.

그나마 천장에 야광석이 하나씩 박혀 있어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땅굴을 파고 다니는 두더지의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리라.

"이곳은 대체 뭐야?"

천수향의 짜증 섞인 질문에, 제갈현이 그 제일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 관리를 위해 편의상으로 만들어둔 통로 같습니다. 이걸 만든 이나 무영신투 본인 정도만 알고 있겠지요."

"고장 난 함정을 점검할 때나 쓰는 관리자 전용 통로라 이 말이군?"

"예. 이곳에 들어선 건 지극히 우연이었습니다."

밀려드는 강시들에 쫓겨 제갈현은 급한 대로 함정에 뛰어들다가 운 좋게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전엔 독으로 가득했을, 그러나 500년의 세월 동안 말라버린 그곳은 더 이상 함정으로서의 가치가 없었고.

독에 의해 약해진 벽 부분을 강기로 뚫다가 우연히 이 관리자 전용 통로를 발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적들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전체적으로 기척을 차단하는 진식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요."

한참을 나아가던 중, 숨을 헐떡이며 제자리에 주저앉는 제갈현. 바로 뒤에서 따라붙던 일천귀검이 그에게 바짝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괜찮나? 어디 상처를 입은 건가?"

그러나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천강은 검은 안개에서 물건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아니. 기력이 다 떨어져서 그런 거야. 어이. 이거 받아."

천강은 마을에서 사 온 먹을 것과 물을 좀 건네주었다. 제갈현이 크게 감사를 표하고 그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힘을 회복한 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 대협이라 하셨지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 또한 목숨 빚을 지게 되었군요."

"그럼 피차 갚은 것으로 하지. 근데 왜 여기 계속 있어? 그것도 굶어 죽을 순간까지."

천강에게 수통을 돌려주며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나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사방에 녀석의 눈이 있는지라. 놈도 아마 절 찾고 있겠지요. 어쩌면 이젠 음존과 일천귀검, 천 대협도 찾을지 모르고요."

그는 천강 일행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고 했다.

천강의 무위를 본 그는 천강이라면 능히 자신을 이곳에서 꺼내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고.

"그동안은 이곳 길에 익숙하지 못한 바람에, 제가 당도할 때쯤엔 늘 돌아가신 뒤였던 터라 별수 없었습니다."

발을 옮기던 제갈현이 양팔을 활짝 펼쳤다.

그가 천강 일행을 인도한 곳은 어느 넓은 공동이었다. 야광석이 수십 개 박혀 있음에도 간신히 주변을 살필 정도의.

천강 일행에게 조용히 하라 경고한 제갈현이 바닥을 향해 손짓했다.

바닥 곳곳엔 구멍이 뚫려 그 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보이십니까?"

그들이 자리한 요 바로 밑은 거대한 석실이었다. 곳곳에 무얼 올려놓기 위한 선반들이 빼곡히 자리한.

그러나 텅텅 빈 게 확실히 이미 물건들은 전부 털어간 것 같았다. 대신 그 빈 석실을 강시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천강 일행이 그 아래를 내려다본 지 일다경(一茶頃)쯤 되었을 때, 석실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저자는 누구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노인이 이번 일의 원흉입니다."

이번 일의 원흉?

자세히 쳐다본다. 그러나 천강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에 신병이기들은 혹시나 알까 하여 물어보려는 순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알아."

천수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녀석…… 다섯 왕 중 하나인 사자왕(死者王)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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