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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1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10화

210화. 혈강시

 

 

거대한 석실.

둥글게 쌓아 올린 천장에 야명주가 촘촘히 박혀 있고, 그 아래 공터로는 강시들이 두리번두리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기척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복면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태감(太監)께서는 이번 일을 통해 최대한 많은 무림인이 죽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에 우리보고 협조하라 이곳에 보내셨다."

"그래? 몇이나 왔는고?"

"오십이다."

"그렇군. 그 외엔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사신이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있는 강시들.

어떤 건 피부가 완전히 말라붙어있고, 어떤 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지켜본 그가 말을 이었다.

"무림인들을 어찌 사용하던 상관 안 할 테니, 최대한 실력 발휘를 해보라 하셨다. 일을 얼마나 크게 벌이던 뒤는 수습해 줄 테니 확실히만 해달라고도."

"그것참 마음에 드는 말이로군. 일할 의욕이 나. 끌끌."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끌끌. 걱정 말고 쉬고 계시게. 그대들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바로 부르겠네."

사사삭-

사신이 사라지고, 노인이 석실에 앉아 가만 눈을 감는다.

손님도 오고 새로운 강시를 제조하느라 한동안 주변을 못 살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나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부름에 그 주위로 모여드는 수많은 강시들.

근데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음?"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허공에 떠올라 강시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강시들의 수가 줄었다?

불과 반나절 신경을 안 썼을 뿐인데…… 몇몇 곳이 뚫린 건가?

그는 강시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주입해 두었다. 일정 구간 이상 들어오면, 비밀 통로를 통해 퇴로를 막아 무림인들을 죽이도록.

그렇게 얻은 새 시신은 다시 강시를 만드는 데 썼고, 어느덧 그 수는 이천을 넘어갔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강시들의 수가 확 줄어든 것이다.

자세히 확인해본즉 네 군데로 보낸 강시들이 복귀를 안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실력자가 들어선 모양이로군.'

슬슬 그럴 때가 됐지.

그럼 그것에 맞게 난이도도 올려줘야 하는 법!

그가 내기가 느껴지는 곳에 강시들의 수를 배로 늘려 보냈다. 아마 곧 강시들이 그들을 도륙해 그 시체를 가지고 이곳으로 귀환할 것이다.

"대체 어떤 이들일지 참으로 궁금하구먼. 끌끌끌."

그러나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녀석들.

한 시진이 지나고도 보낸 강시들이 복귀하지를 않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떠 있던 노인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재미있군. 이거 아무래도 대단한 놈들이 들어온 모양이야.'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줄곧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 기회가 이리 빨리 찾아올 줄이야.

노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는 강시들 중 특별히 신경을 써 만든 강시 삼백구를 차출했다. 그것들은 혈강시였다.

혈강시는 강기 이하의 공격엔 타격을 입지 않는다.

강기를 다루는 화경에 이르러서야 잡을 수 있는데, 그가 만든 혈강시는 매우 특별해서 그 강기조차도 어느 정도 타격을 상쇄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현경이 끼어있다 한들 막아내지 못할 것이야!'

혈강시들을 보낸 그는 대체 누가 쳐들어온 건지 확인하기 위해 본인 또한 조용히 발을 옮겼다.

 

***

 

여섯 번째 결계에 들어선 천강 일행.

다섯 번이나 다른 통로를 드나든 천강은 대략 이곳의 원리와 순번을 깨우쳤다.

평균적으로 함정 개수가 어느 정도나 되고, 그 종류는 어떠하며, 대략 어느 정도 되면 강시가 출현하는 것까지도.

"강시 나온다."

그 말을 하며 한 발 내딛자, 과연 저 뒤로 진득한 사기(死氣)가 느껴졌다.

천수향이 단검을 빼 들고 일천귀검이 칼을 늘어뜨리며 싸울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뛰어오는 적들을 응시하던 일천귀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것들 아까와는 다른데요?"

"뭐가 달라. 뭐 피부색이 좀 다른가?"

천수향이 힘껏 한 녀석의 복부를 후려친다. 녀석은 그대로 날아가 다른 녀석들을 밀치고 본인 또한 그대로 나자빠졌다.

그러나 도로 벌떡 일어서는 녀석.

"응?"

천수향이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약하게 찼나?'

아까만 해도 그녀의 발길질에 맞은 놈은 그대로 몸 곳곳이 부러져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는데…… 이번엔 곧바로 다시 달려오는 꼴을 보니 아무런 타격이 없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한 차례 갸웃한 천수향이 원거리서 내기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는 놈의 모가지를 잡아 홱 돌렸다.

그러나 응당 두세 번 회전한 뒤 끊어졌어야 할 목이 채 반도 안 돌아가 멈추어 선다.

"뭐 저런……."

천수향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끔벅이는 사이, 일천귀검이 한 놈의 목을 날리며 외쳤다.

"강기는 통합니다! 좀 뻑뻑하지만요!"

"그것참 다행이네!"

천수향이 발에 강기를 실어 걷어찼다. 과연 아까와는 달리 몸의 움직임이 굼떠진 게 선히 보였다.

그러나 그뿐. 여전히 건재한 놈들이었다.

"목을 노려야 할 듯합니다!"

"쳇. 나 단검밖에 없는데. 천 대협! 검 안 쓰는 거 있으면 하나만 빌려줘요!"

천수향이 천강에게 검을 빌려 달라 몸을 돌렸다. 그 사이 일천귀검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천강이 함정들을 해체하는 만큼, 강시 처리는 두 사람이 맡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화경 혼자서 혈강시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아까 뻑뻑하다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닌 듯, 한 녀석의 목을 가르던 일천귀검의 검이 강시 목 중간에서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어어?"

마치 나무 사이에 끼기라도 하듯 옴짝달싹하지 않는 행태에 일천귀검이 순간 당황하고, 검을 빼내려 하는 그 찰나에 다른 강시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아악!"

콰드득.

"여어. 괜찮아?"

"처, 천 대협? 저기 괜찮으십니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던 일천귀검이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강시들의 해일이 일천귀검을 덮으려는 순간, 천강이 튀어와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그로 인해 놈들은 일천귀검 대신 천강에게 달라붙어 할퀴고 이빨을 박아대고 있었는데, 천령초로 강화된 천강의 몸은 단단했다.

상처는커녕 흠집도 나지 않고 있었다.

"뭐. 보다시피."

"감사합니다, 대협! 또 한 번 목숨 빚을 졌습니다!"

천강은 느긋하게 일천귀검의 검을 빼 건네주었다.

"뒤로 멀찍이 물러나."

"예, 예!"

어찌나 힘이 좋은지 놈들은 그새 천강을 조금씩 밀어내려 달려들고 있었다.

일천귀검이 물러난 걸 확인한 천강이 훅 내력을 발산했다. 그리고는 힘껏 놈들을 반대로 밀쳤다.

우르르 넘어가는 강시들.

천강은 그중 제일 가까이에 있는 녀석의 머리를 힘껏 후려쳤다.

쿠구구구구.

"오오?"

흥미롭네. 두개골이 살짝 찌그러지긴 했어도, 무려 천령초로 강화된 근력을 버텨내다니.

과연 혈교에서 강시를 만들어 사용할 만하구만.

묘하게 사신 녀석들을 떠오르게 하는 놈들의 단단함에 천강은 거침없이 절굿공이를 빼 들었다.

'사신들 손봐줄 땐 요놈만 한 게 없었지.'

천강이 자세를 갖추자, 혈강시들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덤비기 시작했다.

천강의 절굿공이가 휘둘러지고, 한 번 검은 궤적이 그려질 때마다 혈강시가 하나둘 바닥에 쌓여갔다.

사신은 대략 두 번이면 전투 불능이 됐는데, 이것들은 단 한 번 휘두르는 걸로 충분했다.

 

***

 

'저, 저놈은 대체 뭐야?'

강시들의 활약을 고대하며 숨어 지켜보던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게, 가볍게 몸 풀듯 그가 만든 강시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화경의 반탄강기조차 뚫는 강시들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점은 단 일격에 쓰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돼.'

그가 만든 혈강시가 어떤 존재인가?

혈교가 망하고, 무려 이백 년에 걸쳐 연구하고 또 연구해 만들어낸 비법 아니던가?

이것을 완성한 날, 그는 망한 혈교의 부흥을 꿈꿀 정도였다.

그런데 그 꿈이 고작 한 사내와 절굿공이…… 그래. 어떤 명검이나 신병이기도 아닌 고작 절굿공이에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저 혈강시들이면 능히 남궁세가도 멸할 수 있거늘!'

이대로는 안 된다.

천강의 무력을 확인한 그는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

 

"진짜 운이 없네요."

"그러게. 어떻게 여섯 번 다 헛다리를 짚을 수 있지?"

강시를 싹 처리한 이후, 굴의 가장 끝까지 도달했으나 이번에도 허탕을 친 천강 일행.

일천귀검과 한 차례 투덜거린 천수향이 천강을 쳐다봤다. 천강은 양손을 들고 자기변호를 시도했다.

"잠깐. 이거 왜 이래. 난 그냥 순서대로 들어온 것뿐이라고."

아무튼 이번에도 길은 막혀 있었다.

돌아가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천강과 그 일행은 밖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혈강시를 보며 천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천귀검."

"예."

"이것 좀 봐봐. 얜 강시치고는 너무 옷이 멀쩡하지 않아?"

"음? 정말 그렇군요. 어떻게 300년 전 옷이 이렇게 새것 같을 수 있죠?"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모든 강시가 그런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 멀쩡한 옷을 입고 있는 강시들이 있었다.

천수향이 한 강시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얜 체액조차 상당히 신선해. 이 정도면 죽은 지 이틀도 안 됐다고 해도 믿을 수 있겠어."

"그 말씀은……."

천수향과 일천귀검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은 이내 천강에게로 향했다.

"뭐? 왜 그렇게 쳐다봐?"

"어,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주받은 망자에게 물리면 똑같이 변한다고."

"나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이 천강의 등과 어깨, 팔 부분을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그곳엔 아까 일천귀검을 구해준다고 끼어들었다가 강시들에게 생긴 이빨 구멍들이 선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주춤주춤 천강으로부터 물러나는 두 사람.

"이거 괜찮아. 상처 하나 없어."

"그건 모르는 거죠."

"아, 진짜 괜찮다니까."

"가다가 우릴 뒤에서 물면 어떡하지?"

"야. 나 진짜 상처 하나 없거든!"

천강이 빽 소리 지르고서야 그들은 농담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천강은 괜스레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천강 또한 옛 문서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탓이다.

'……별문제 없겠지?'

- 독초를 먹고도 살았는데 문제가 있을까요. 혹시 아나요. 무형지독이나 천령초 때처럼 전혀 새로운 능력이 생기거나 오를지.

찜찜함을 가지고 걸음을 옮기던 천강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 소년……?

갑자기 혈강시를 가만 내려다보더니, 천강이 허리를 숙여 한 녀석의 송곳니를 빼 품에 챙긴다.

- …….

왠지 하나로는 좀 애매할 것 같다고 생각한 천강은 가다가 추가로 더 챙겼다.

위로해준답시고 말한 막야로서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천 대협! 빨리 오십시오!"

"어어. 지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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