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0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9화
209화. 경이한 성과
흑살마신, 그를 만나면 어찌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50년 전이다. 사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었다.
대체 왜 도망을 다니는 건지에 대해.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고. 도통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자 천수향에게 남은 건 결국 미움뿐이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흑살마신을 애타게 찾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혹시 물어도 될까?"
천강의 질문에, 천수향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만나면 아주 씹어 먹으려고.'
50년간 뒤꽁무니를 쫓게 해준 대가를 아주 철저하게 갚아줘야지. 얼마 전 만난 광존의 수십 배는 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실제로 그리 내뱉진 않고 잘 순화해서 말했다.
"한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어서요. 그걸 갚으려고요."
"은혜?"
"있어요. 워낙 옛적의 일이라…… 아마 당사자는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르죠. 그에겐 그저 지나가는 한 줄기 봄바람에 불과했을 테니."
천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심안(心眼)으로 보니 거짓이 아닌 진실.
그녀는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천강은 더더욱 아리송한 상황이 되었다.
'정말 내가 도와주고도 까먹은 건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해도 잘 안되고. 그때 당시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물어보려는 순간, 갑자기 일천귀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처, 천 대협!"
"무슨 일이야?"
"강시가 다수 몰려옵니다!"
천강과 천수향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굴을 가득 메우며 나아오는 시체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현경 둘에 화경 하나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강시 수천이 몰려온다 한들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천수향과 일천귀검이 그것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수가 수인지라, 강시들을 상대하는 천수향이 그것들을 발로 걷어차며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씨. 귀찮게 뭐 이리 많아?"
마음 같아선 한 방에 끝내고 싶어도, 그녀의 무공 특성은 쾌(快), 유(柔), 환(幻).
지역을 강타할 정도의 광범위한 기술이 없을뿐더러, 유일하게 있는 만천화우와 같은 것도 이런 좁은 곳에선 의미가 없었다.
작은 암기나 독 또한 강시에겐 부질없는 짓이고.
천수향이 다시 한번 힘껏 걷어차자, 수십의 강시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나 이내 그 빈 공간을 다른 놈들이 순식간에 메우고는 다시 덤벼든다.
"어이. 너 빨리빨리 좀 못 움직이냐?"
"죄, 죄송합니다!"
일천귀검이 더욱 빨리 검을 움직여 적들을 섬멸한다. 그러나 그로서도 압도적인 수에 조금씩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의 행태를 가만 지켜보던 천강이 앞으로 나섰다.
"어이. 둘 다 내 뒤로 빠져."
"천 대협. 어떻게 하시려고?"
"어떻게 하긴."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천강이 검은 안개에서 흑색 절굿공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걸 수평으로 쥐고 뒤로 쭉 잡아당겼다.
그런 천강 뒤로 후다닥 내빼는 두 사람.
"발바닥에 내기 실어라. 빨려 들어가기 싫으면."
강시들이 양손을 내밀며 천강을 향해 짓쳐들어온다.
그러다 제일 선두 녀석의 손끝이 천강에게 닿으려는 순간, 검은 몽둥이가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지천뇌공.
쿠콰콰콰콰-
맹렬한 태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순식간에 강한 기류를 만들어, 전방의 모든 것들을 갈가리 찢고 그대로 굴 밖으로 휩쓸고 나갔다.
그런 뒤 남은 것은 그저 시원한 산들바람뿐.
- 아슬아슬했어요, 소년. 만약 양손으로 사용했으면 굴이 무너졌을 겁니다.
'그러게. 생각보다 지반이 약하네.'
천산을 생각하고 휘둘렀다간 자칫 매몰될 수도 있었으리라.
아무튼 단 일격에 처리한 천강의 무위에 일천귀검과 천수향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대, 대, 대단합니다. 역시 천 대협!"
"……."
"뭘 그리 놀라. 현경 급 실력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자자,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고."
다시 굴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흑살마신을 천수향이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아는 흑살마신은 이런 무위를 펼칠 줄 모르는 인간이다. 그저 쓸 줄 아는 거라곤 흡공 하나뿐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용케도 그거 하나로 살아남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시 흑살마신이 아닌가?'
잠시 뒤쪽을 가만 살펴보던 천수향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
"오오. 자시(子時)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오는군!"
"이보게들. 얼마나 들어갔는가?"
무영신투의 비고 주변. 수다를 떨며 대기를 하던 수천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막 결계에서 빠져나온 무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0보 정도 들어갔소이다."
"50보면 많이 들어간 것 아닌가?"
"뭐 그렇긴 한데……."
다른 이들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그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때 결계에 파동이 일었다. 후다닥 자리를 비켜서자, 그 안에서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축시(丑時)에 들어간 이들이로구먼."
"그쪽은 얼마나 들어갔나? 제갈세가 쪽은 여전히 잘하고 있다던가?"
축시에 들어간 무리가 이마의 땀을 닦고는 말했다.
"이상하오. 중간에 길이 엇갈린 것인지, 그쪽 무리가 전혀 보이질 않더군."
"혹시 비고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간과할 수 없지. 아무튼 제갈세가 쪽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우리가 아는 곳까지 확인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소."
이야기를 들은 무림맹 사람이 그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너도나도 이야기를 듣겠다며 몰려들 것이고 그러다 보면 불가항력적으로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무림맹에서 보낸 사람들은 최대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런 사소한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때 결계가 또 한 차례 출렁였다.
"이번에는 누구……."
그러나 이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이곳에서 제갈세가만큼이나 진일보 중인 자였기에.
"오오. 흑살마신이 나오는군!"
"이번엔 얼마나 들어갔으려나."
"다들 내기한 거 있지? 돈들 준비하라고."
복면을 쓴 남자가 무림맹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술렁이던 무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흑살마신. 그대는 얼마나 들어갔는가?"
흑살마신이라 불린 이는 그냥 걸음을 옮겨 무리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 그를 뒤따라간 이들이 대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무림맹의 사람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7, 7, 700보?!"
"오오오!"
"하루 만에 200보를 더 들어가다니!"
"이 정도면 이달 안에 비고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아니오?"
사람들의 환호성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보물산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 게 수치상으로 보인 탓이다.
무리의 상당수가 엉덩이를 털고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흑살마신이 막 밖으로 나왔으니, 지금이 밥 먹기에 적기였다.
무림맹 사람들도 식사를 위해 주변 정리를 하고, 그렇게 모두가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이었다.
"어? 결계가 또 출렁이는데?"
그 한마디에 뭔가 하여 몸을 돌리고는 결계를 바라보는 사람들.
결계에선 세 사람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바로 천강과 음존, 일천귀검이었다.
사람들이 자리에 도로 앉고는 그들의 결과를 관심 있게 귀 기울였다.
"자네는 저들이 얼마나 들어갔을 것 같은가?"
"그래도 무려 존자가 있으니 300보는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그렇지? 나도 딱 그 생각이었네."
그러나 천강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얼마나 들어갔는가?"
"들어가긴 약 1,000보 이상? 끝까지 들어갔지?"
"끄, 끝까지?!"
***
강시들을 처리한 천강은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혹여나 아까의 여파로 굴이 무너질 수 있으니, 후딱 끝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들 앞으로는 그저 막다른 길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혹여나 비밀 통로라도 있을까 하여 이리저리 살펴보는 천수향과 일천귀검. 그러나 이미 신병이기들과 살펴보길 끝낸 천강은 작게 혀를 찼다.
- 길 없어요. 역시 12개 중 하나만이 진짜인 모양이에요.
'귀찮게 만들어 놨구만.'
결국 별수 없이 다른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도로 밖으로 나온 천강 일행이었다.
그러다 무림맹 사람이 다가와 물었고, 그저 묻기에 별 중요한 정보도 아니고 해서 사실대로 툭 대답해준 것이었고.
그러나 그 한마디에 온 무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에워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이들은 끽해야 30보, 50보 내는 성과를 불과 한 시진 만에 1,000보 이상 갔다 하니 어찌 아니 그럴까.
"무덤 끝이라고?"
"말도 안 돼. 거짓말 아냐?"
"어이, 애송이! 뚫린 입이라고 막 거짓말하면 뒈진다?"
그러나 직접 두 눈으로 본 일천귀검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말했다.
"나 일천귀검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저 말이 사실이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 일천귀검의 명성은 하북에서나 높지, 타 지역에서는 그저 그랬던 탓이다.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잡놈이래, 저건?"
"다 같이 짜고서 입 터는 거 아녀?"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성과를 올린 천강 일행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두둑 우두둑 사방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 입을 틀어막았다.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는 건, 그 목숨 줄이 가볍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렷다. 어디 더 지껄여봐. 방금 뒈진 239명의 뒤를 따르고 싶은 놈."
그 누구도,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조금 전 저들을 싸잡아 욕한 것은 분명 음존의 명성까지 함께 깎아내린 행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고하다며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무덤 끝까지 갔다 온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에 대한 사실 증명을 요구하려거든 나한테 하도록. 물론, 증거 없이 명예를 훼손한 대가는 그 목숨을 취할 것이니 잘들 처신하고."
그러고는 그녀가 떡 하니 자리에 앉자, 그제야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수향의 괴팍한 성격은 광존 덕택에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어, 사람들은 혹여나 기분이 나빠진 그녀가 이곳 모두를 학살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아무튼 음존까지 긍정하고 나서자, 곧 무리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그들 중 성질 급한 몇몇이 조용히 일천귀검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럼 거기서 뭘 발견한 것이오?"
"하,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되겠소이까?"
"혹 비급 안 나왔소? 내 큰 값을 치르고 사리다!"
그들의 행태에 다시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 그러나 일천귀검은 다들 진정하라며 양손을 높게 쳐들었다.
"미안하게도 우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우리가 들어갔던 시간대에선 그 끝이 막다른 벽이었소. 아무래도 다른 11개의 입구 중에 통하는 길이 있는 모양이오."
"그, 그런……."
쑥덕거리는 소리가 어수선하게 울린다. 설마하니 그런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일천귀검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이, 바닥을 가만 들여다보던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했다.
"야. 가자."
"예? 천 대협 어딜?"
"어디긴. 한 시진 지났으니 다음 거 들어가잔 뜻이지."
사람들이 황당한 얼굴로 천강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들의 얼굴은 더욱 황당해졌다.
천강 일행이 들어간 지 채 한 시진(時辰)도 안 돼 도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초행길이라 조심했지만, 이미 뻔히 어떤 구조인지, 함정은 어떤지 파악이 끝난 천강이 거침없이 쭉쭉 안쪽까지 나아간 것.
그로 인해 시간이 대폭 감축한 터였다.
"이, 이번에도 끝까지 갔다 왔소이까?"
"그렇소.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꽝이오."
그렇게 두 번 세 번 이어지자, 사람들이 천강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오늘 안에 비고까지 도달할 기세라, 어떻게든 그 일행이 돼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가차 없이 자르는 천강.
"어이. 너희들. 공자님과 맹자님이 뭐라 하셨는지 알아?"
"뭐라…… 하셨소이까?"
"이미 끝난 일을 말하여 무엇하며, 이미 지나간 일을 비난하여 무엇하겠느냐. 지혜가 있다 한들 운세만 못하고, 좋은 농기구가 있다 한들 때를 기다리느니만 못하느니라."
천강이 검지를 치켜세우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난 웬만해선 두 번 제안하지 않는다.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하는 거다."
그러고는 천강이 결계 안으로 사라졌다. 천수향의 눈에 혼란스러움이 비쳤다.
공자님 소리는 흑살마신이 입에 습관적으로 달고 다니던 것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