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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0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8화

208화. 음존과의 동행

 

 

"으, 음존?"

"진짜 음존이야?"

"이런 미친. 존자가 나타났다고?"

이 여인이 음존…….

왠지 낯이 익다. 외모 말고 분위기가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천강은 말없이 음존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중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외모. 색목인의 외향을 가진 여인을 보는 건 천강으로서도 처음이었다.

'땡추가 말한 것보다 더 매섭구만.'

겉으로 보기엔 상냥해 보여도, 그 속에 자리한 기운은 투파창귀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거칠다 못해 흉흉했다.

"대협?"

천강이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천수향 또한 그러하자, 여차여차 함께하는 일행이 된 일천귀검이 천강의 의식을 조용히 환기시켰다.

퍼뜩 정신을 차린 천강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음존이면 일전에 도움을 받은 전적도 있고, 실력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바…… 괜찮겠지.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요."

그러고는 여인 같지 않게 불쑥 손을 내미는 음존.

성격이 남자 같은 건가? 대수롭지 않게 그 손을 맞잡는 순간, 천강이 깜짝 놀라 홱 손을 거두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협?"

일천귀검이 의아한 얼굴로 천강을 바라본다. 그러나 천강은 고개를 들어 천수향을 노려보았다.

잔잔한 미소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눈. 도무지 무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

"……아무것도 아냐."

기분 탓이겠지. 홍랑이 살아있을 리 없잖아. 저번에 당소여에게 확인도 했고.

근데 하필 많고 많은 느낌 중 홍랑과 똑 닮은 기운이라니.

꺼림칙함이 다소 느껴졌으나 천강은 그걸 훅 털어버리고는 두 사람에게 진식 통과하는 법을 조용히 일러주었다.

"그럼 한 명씩 따라오라고."

 

***

 

천강이 안으로 사라지고, 그 모습을 천수향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천강보다 한발 먼저 이곳에 도착했었다.

루주로부터 흑살마신의 소재지를 들은 즉시 천수향은 곧바로 이곳 산서로 날아왔고, 무영신투의 비고가 자리한 하늘에서 수천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곧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씨! 이 새끼 또 중간에 애먼 길로 샌 거 아냐?'

예부터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치 계획이란 게 머릿속엔 없는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돌아다니고 싶은 대로 돌아다녔다.

물론 천강은 매번 철저히 계산하고 움직였지만, 그 속내를 늘 숨기는 탓에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 행보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길 가다가 웬 여자 도와준다고 딴 길로 샌 건 아니겠지?'

아무튼 더 씩씩대본들 힘만 빠지기에, 그녀는 머리카락을 잘 감추고는 마을 객점에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그러다 듣게 된 한 소식.

"들었는가? 이번에 따라 들어간 이들의 말에 따르면, 흑살마신이 무덤에 500보나 들어갔다더군."

"그게 정말인가?"

뭐야. 흑살마신 녀석, 벌써 비고 안에 들어간 거였어?

천수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자세한 내막을 추궁하려는 순간, 좀 이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곳에 온 지 벌써 6일째 아닌가. 첫날 100보가량 들어갔다가 나왔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

6일째?

이상했다. 루주는 분명 흑살마신이 천수향 그녀보다 4일 먼저 출발했다고 했다.

전력으로 날아온 그녀가 약 이틀 만에 이곳에 당도했으니, 흑살마신이 6일 전 이곳에 도착했다는 말은 뭔가 안 맞았다.

그 말인즉슨 사천에서 출발한 날 이곳에 도착했다는 뜻이 아닌가.

'뭐지.'

중원에서 경공으로는 제일로 친다는 풍월대주라도 그리 빨리는 이동하지 못한다.

결국 머릿속에 의아함만을 가득 채운 채 식사를 마친 천수향. 무영신투의 비고에 다시 올라간 그녀는 흑살마신이 나타나길 가만히 기다렸다.

'대체 이 새끼는 언제 오는 거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그러다 여명 빛이 밝아오는 새벽에 그녀는 볼 수 있었다. 한 남자를.

신장과 덩치, 뒷모습……. 비록 얼굴은 복면을 써 눈 주변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 잔재하던 흑살마신과 똑 닮은 인영을.

'걔들 말로는 이제 고작 지학(志學) 정도 된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상대는 약관(弱冠)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복식도 아이들이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결계로 다가서는 남자.

"잠깐!"

뒤늦게 상대의 목적을 눈치챈 천수향이 그 행동을 막고자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가기도 전, 그는 순식간에 기관진식 안으로 사라졌다.

'젠장!'

따라 들어가려 해도 시간대가 바뀌면서 그러지 못하고, 결국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변을 서성이다 그제야 천강을 발견한 천수향이었다.

비록 직접 만나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초아 일행의 설명을 수차례 들은 그녀는 한눈에 천강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닮았어?'

오늘 새벽 보았던 흑살마신과 너무도 닮았다. 아니, 전생의 흑살마신과.

그저 차이가 있다면 어리다는 것뿐.

그에 손을 내밀어 본 것이었다. 상대의 기운을 느껴보기 위해.

"두 번째로 들어가십시오, 음존. 제가 마지막으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천수향이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 바라보더니 발을 옮겼다. 흥미롭게도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내기는 기존 흑살마신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역시 이쪽이 가짜인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은 천수향이 조용히 천강의 뒤를 따랐다. 일단은 어린 흑살마신을 따라다니며 그 행태를 가만 지켜보기로 결정한 그녀였다.

 

***

 

결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일천귀검이 말했던 대로였다.

바깥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결계 내부로는 나무가 몇 없었다.

대신 잔디로 덮인 거대한 언덕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엔 거대한 굴이 파여 누가 봐도 그 안이 비고로 향하는 길임을 알게 해주었다.

'이 정도면 거의 대놓고 가져가라고 해놓은 정도인데.'

숨겨놓은 것도 아니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니.

혹여나 주변에 다른 입구는 없나 살펴보았으나 아쉽게도 사방에 결계가 쳐져 있었다.

오로지 들어온 입구 외에는 다른 결계는 통과할 수 없었다.

- 아무래도 이곳에 나 있는 12개의 입구를 각 결계로 나누어 봉인한 모양이다.

'그러게. 흥미로운 방식이긴 한데 왜 이리 귀찮게 한지 모르겠군.'

12개 길을 파내고, 그 안에 함정을 일일이 설치하는 수고를 들이느니…… 그냥 하나로 길게 만들면 얼마나 좋아.

안전하고. 시간도 덜 들고.

혹여나 먼 훗날 후대들이 자신의 창고를 발견했을 때, 출입구가 하나면 서로 피 터지게 싸울까 봐 걱정이라도 들었던 건가?

모를 일이다.

그에 의아해하는 그때 막야가 기가 막힌 한마디를 했다.

- 소년 같은 사람 때문이겠죠.

'내가 왜?'

-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소년이라면 길 따라 안 가고 흑색 몽둥이로 중간에 땅 파고 들어갈 거 아니에요. 길게 공들여 만드느니 초입부터 복잡하게 하는 게 훨씬 낫죠.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네.

- 솔직히 이렇게 되면, 12개의 문들도 모두 비고로 향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렇게 막야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덥석. 누군가 천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천강이 순식간에 몸을 돌려, 다섯 보 뒤로 물러났다.

"너어……."

"왜 그러신가요, 대협?"

천강을 보며 생긋 웃는 천수향.

"……아무것도 아냐. 근데 너 음존이라며. 말 편하게 해. 나도 편하게 할 테니까."

"아뇨. 전 존칭이 편해서요."

"그래?"

그러나 뒤에서 막 결계를 지나온 일천귀검이 두 손을 모으며 예를 갖추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인사가 늦었습니다. 음존을 뵙습니다, 하북의 일천귀검입니다."

"그래. 난 천수향. 앞으로 잘 부탁해."

조금 전 존칭이 편하다 하지 않았나?

- 혹 저 둘은 나이 차가 심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 음존이면 확실히 나이가 꽤 될 테니.

- 너보다는 어린 모양인 게지.

그런가……?

신병이기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고 판단한 천강이 발을 옮겼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온 횃불에 불을 붙여 입구로 들어섰다.

"내가 선두에 설 테니 둘 다 잘 따라붙으라고."

"옙!"

일천귀검이 후다닥 따라붙는다.

천수향 보고 안 오고 뭐 하냐며 천강이 손짓하자, 그녀가 생긋 미소 짓고는 따라 발을 옮겼다.

'반응은 확실히 흑살마신이네.'

 

***

 

비고로 향하는 길목엔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원시적인 함정부터 기관진식, 그리고 사람들이 말한 강시가 튀어나올 뿐.

그러나 남들은 한참을 걸려 돌파할 그곳을 천강과 그 일행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천강이 우뚝 멈춰 선다.

그러자 천강의 머리 위에 떠 있던 검은 안개에서 검 하나가 튀어나오고, 그것은 순식간에 벽 깊이 틀어박혀 가동 중이던 기관진식을 고장 냈다.

그 즉시 울리는 미약한 폭음.

천강이 신병이기를 회수해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뒤를 따르던 일천귀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아니. 흑살…… 흠흠."

"천 대협이라고 불러."

"예, 천 대협! 어찌 이리 함정 파훼를 잘 아십니까? 이건 거의 집주인이 돌아와 제집에 들어가는 수준인데요?"

뭐 놀랄 만했다.

바깥에서 그리 떠들지 않았던가. 가짜 흑살마신이 칠 일 만에 500보를 통과했다느니 뭐 했다느니…….

근데 지금 천강 일행은 한 시진도 안 된 상황에 500보는 이미 진즉에 넘어선 뒤였다.

기관진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인데다가 심안(心眼)까지 있는 천강에겐 이건 누워서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천강의 얼굴은 뻣뻣이 굳어있었다.

"천 대협? 근데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아아. 아무것도 아냐."

천강은 슬쩍 고개를 돌려 맨 뒤에서 따라오는 여인을 훔쳐보았다. 그녀의 입가엔 아까부터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상해. 아무리 봐도 이상해.'

아주 오랜 세월, 숱한 사선을 함께 넘어선 전우와 같은 직감이 천강에게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지금 위험하다고. 당장 저 여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마음 가득 퍼지는 불안감에 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기분 탓인가?'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뒤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천 대협. 근데 천 대협은 어디 출신이신가요?"

"그게 왜 궁금하지?"

"뭐랄까. 좀 닮은 것 같아서요."

천강이 마교 출신인 걸 아는 일천귀검이 웃는 낯으로 방어에 나섰다.

"하핫. 대체 누구를 말씀하시기에 닮았다 하시는지……."

"그 왜 흑살마신이라고 있잖아."

"히끅."

일천귀검이 딸꾹질을 하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난 처음에 천 대협이 흑살마신인 줄 알았다니까."

"흠흠. 왜 그리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중원에서 현경 단 이들은 다 알거든. 그런데 분명 현경은 현경인데 내가 모르는 얼굴이야. 그럼 마교 출신이다! 이리 생각을 한 거지."

앞으로 발을 옮기던 천강이 우뚝 멈춰 섰다.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낀 일천귀검이 후다닥 둘 사이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졌다.

몸을 돌려 천수향을 바라보는 천강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이미 이 여자는 내가 흑살마신인 걸 알고 있다.'

분명 얼굴을 맞댄 건 처음이다.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아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마교에 있던 시절, 정체를 숨기고 신녀 행세까지 하며 수차례 오목골에 드나들었던 여인이다.

무려 1년 가까이. 하루도 안 빼먹고.

천강이 중원으로 나서자 힘들게 오른 신녀직까지도 때려치우고 지금 그녀는 이곳에 있었다.

'날 따라온 게 분명해.'

근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전생에 색목인과의 은원관계는 일절 없었고, 존자들과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와중에 더더욱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바로 이거였다.

'왜 굳이 내게 확답을 받으려 하는 것이지?'

분명 내가 흑살마신인 걸 알 텐데. 그러니 여기까지 따라온 것일 텐데.

왜 내 입을 통해 확답을 받으려는 것일까. 대체 왜 자꾸 흑살마신인지 떠보는 것일까.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눈앞의 여인에게 나직이 물어본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흑살마신을 애타게 찾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혹시 물어도 될까?"

그러자 천수향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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