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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0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7화

207화.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응? 흑살마신?'

- 뭐죠?

- 왜 네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냐?

누군가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대답에 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과연…… 역시나인가."

"아무래도 현경급 고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흑살마신을 넘어서긴 힘들다고 봐야겠지."

"뭐 차차 참여들 하지 않겠소이까. 지금까지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애매했으나, 저번에 보지 않았소. 황실 사람이 금덩이를 쏟아붓고 가는 거."

"후우.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구만."

이야기를 가만 들어본즉, 이곳에 흑살마신이 있다는 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인 것 같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건가?'

아무튼 흡공을 쓰는 가짜라…… 흥미가 도는구만.

차까지 여유롭게 다 마신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다들 자리를 털고 객점을 나서기 시작했다.

마을의 인파는 식전이나 식후나 별반 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북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을에서 숙박하긴 그른 것 같고.'

바로 비고로 올라가 볼까.

하여 주변을 돌아본즉 가는 길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산길로 드나드는 숱한 무리가 있었던 탓이다.

그곳으로 발을 찬찬히 옮기는데, 누군가 천강 옆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일천귀검이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쪽도 잘 지냈나?"

"예. 저번엔 감사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흑살마신을 죽이는 의뢰에 참전했던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천강의 덕이었다.

수많은 마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강이 그냥 돌려보내자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천강은 천산에서 일어난 일이 제대로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를 살려 보냈었다.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도 소상히 이야기했었고.

일천귀검이 송구하단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으나, 제 입김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소문이 좀 번지려고 하면 거짓 선동과 날조가 일어나고, 사실을 전파하는 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바람에……."

"암살인가?"

"그건 아닙니다. 주변 이들 말로는 동창이란 조직에 끌려갔다는데……."

동창(東廠).

나라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만든 황제의 직속 조직이다.

물론 겉으로는 거창하고 좋은 이유로 세워졌지만, 실상은 반란의 조짐이 없나 감시하기 위해 만든 정보기관에 불과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온 정보로 인해 명을 달리했고, 태감(太監)은 그 조직을 관리하는 수장이라 할 수 있었다.

"계속했다가는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하여 더는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했어. 내가 봐도 더해본들 의미가 없어 보이네."

이미 저잣거리 곳곳에까지 그들의 손길이 장악을 완료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면 마교 쪽에서 넘어오는 신선환과 그 관련 사실들도 다 묻히고 있다고 봐도 좋겠군.'

은혜를 갚지 못해 정말 송구하다며 연신 사과를 거듭하는 일천귀검을 달래며 산길을 오른다.

대략 그렇게 일곱 번 정도 사과를 받았을까? 돌연 주위 나무들이 싹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수많은 사람들이 대신했다.

족히 사천은 되어 보이는 숫자.

그걸 본 천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도착했군. 무영신투의 비고에.'

 

***

 

"제갈현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식량이 곧 바닥입니다."

"뭐 벌써?"

"예. 아무래도 여름이다 보니 많이 챙기질 못했습니다."

"그럼 별수 없군."

바닥함정을 분석하던 제갈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제갈세가의 현 가주 다음으로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이곳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건만 아직도 비고의 겉만 핥고 있었다. 심층부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얼마나 들어왔지?"

"입구로부터 200보 정도 들어왔을 것입니다."

"200보라…… 하. 내 능력이 부족하다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뒤에 있던 다른 정파인들도 모두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일행은 아니나 그들이 그리 행동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이 나서본들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갈세가 쪽에서 이렇게 돌파하다가 보물이 나오면, 그때 선수를 칠 생각에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승냥이 같은 것들.'

그래도 제갈 쪽이 그들을 가만 놔두는 이유.

종종 강시들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어차피 이건 초입부에 불과하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기관진식들이 나타날 거야. 아마 대부분이 환상진이겠지.'

그때는 따라오려고 해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방법을 알아야 지나갈 테니.

부수려 해도 보통 이런 곳의 진식은 그 수식이 벽 깊이 안쪽에 숨겨져 있기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때까지만 적당히 이용하면 될 것이다.

"자자. 어서들 가자고."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어?"

갑자기 굴 밖에서부터 들어오던 빛이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막아선 것이다.

아직까진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통로이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누구시오?"

"사파 쪽에서 들어온 거 아닐까요, 형님?"

지금 이곳은 입구에서 50보 정도 들어오면 양측으로 길이 나뉘었다. 그중 일단 오른쪽을 정파가, 왼쪽을 사파가 뚫어보기로 잠정적으로 약조를 맺었다.

시작부터 칼부림이 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다는 합의하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아무튼 사파 쪽 사람들이란 게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너도나도 걸음을 선선히 바깥으로 옮겼다.

그런 그때였다.

"컥……."

누군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병장기 소리와 함께 앞서 굴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 강시다!"

"앞으로 나와 도와주시오! 숫자가 너무 많소이다!"

"몇이나 되는데 그러는가?"

"끄, 끝이 보이질 않소. 좌측 사파 쪽에서 쉼 없이 나오고 있소이다!"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퇴로를 확보해보고자 하는 사람들.

그러나 싸우고 싸워도 반대로 점점 뒤로 밀리고, 어느덧 함정과 강시들 사이에 갇히는 상황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이 뒤로는 더 이상 가지 못하오! 막으시오. 막아!"

"미친. 이걸 어떻게 막아!"

궁지에 몰린 걸 느낀 걸까? 싸우던 강시들이 갑자기 무식하게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 맹렬하고도 거침없는 물량 공세에 전방에 있는 이들은 검도 휘두르지 못한 채 밑에 깔리고, 뒤에 있던 자들은 함정에 빠져 토막토막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

"끄아아악!"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비고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강시들의 조용하지만 묵직한 기척만이 나직이 울려 퍼졌다.

비척- 비비척-

우드득.

 

***

 

떡하니 서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온통 사람 사람 사람으로 그득하다.

그들은 연극이라도 보듯 가락지마냥 빙 둘러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안쪽으로는 희한하게도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금 사람들이 서 있는 곳도 원래는 숲이었으나 서 있던 나무들을 잘라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고.

무리의 중심부는 그 정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나무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긴 천강이 일천귀검에게 물었다.

"딱 봐도 저기에 비고가 있는 것 같은데, 저건 왜 저리 놔둔 거야?"

"저 주위로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답니다."

"기관진식?"

"예. 그래서 외부에서 볼 땐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는 숲같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그 안쪽엔 나무가 거의 없답니다."

오호. 그것참 흥미롭네.

이전 같으면 저게 기관진식이라는 사실을 바로는 안 믿었겠지만, 얼마 전 무릉원인가 하는 색귀의 비밀 거처를 드나들어 보지 않았던가.

그곳처럼 여기도 이질적인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주변 나무들을 다 베어놓지 않았다면 그 이상함을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래도 자세히 보니 뭔가 다른 건 느껴지네.'

눈에 내기를 실어 심안(心眼)과 독목신공으로 그곳을 자세히 보자, 마치 파도와 같은 내기의 흐름이 바닥에서부터 저 하늘 위로 밀려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근데 왜 다들 이러고 있는 거야? 안으로 안 들어가고?"

"그게…… 아무래도 안에 들어가서 찾기보단, 누군가 들고나오면 그걸 강탈해 가는 게 더 쉽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니, 사파나 마교는 그렇다 쳐도…… 정파인들도 그리한다고?"

돌연 궁금증이 생겨 물어보자, 일천귀검이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물론 칼 들고 내놓으라 하진 않겠지만요. 제값을 치러줄 테니 넘겨라, 뭐 이런 식으로……."

응당 그 제값은 입에 발린 말일 뿐. 그렇게 싸게 사서 이후에 비싸게 팔아먹거나 혹은 본인이 챙기거나, 뭐 그리한다는 뜻이리라.

"이거 완전 양아치구만."

"하핫. 좀 그렇지요."

그래도 그나마 정파인들이 가장 낫다.

마교와 사파는 그 적은 돈마저 안 주고 챙겨가니깐.

둘 중 비교하자면 그나마 마교가 좀 더 낫고. 사파에 걸리면 물건을 건네주고도 비명횡사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만도 아닙니다. 이쪽으로 와 보시지요. 저기 보이십니까?"

일천귀검을 따라 빙 옆으로 발을 옮기자, 이내 숲 앞에 모여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무리가 보였다.

"기관진식 해체 중인가?"

"아뇨. 외부에서 해체는 불가능하답니다. 저건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들어가?"

"예."

일천귀검의 설명은 이러했다.

무영신투의 비고 주변으로는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는데, 이게 각 시간에 따라 통과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십이시진에 따라 한 번씩 뒤바뀝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시간대는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 묘시(卯時)입니다."

"일부러 졸린 시간대에 돌파를 했군."

"예. 축시에 제갈세가가 가장 먼저 들어가고. 이후 인시에 흑…… 아니, 가짜 흑살마신이 돌파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각 시간대마다 기관진식이 바뀌듯 비고의 출입구도 달라지는데 상대적으로 쉬운 곳이 있고 그러지 않은 곳이 있다고 했다.

"어떤 곳은 혈강시가 나오지만 또 어떤 곳은 아예 강시가 안 나오기도 하고요. 그에 새로운 길을 뚫어보려 저러고 있는 것입니다. 함정이 없는 곳만 찾으면 무력으로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흥미롭네. 그 이야긴 무려 열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는 거 아냐?"

대체 무덤이 얼마나 큰 것이지?

천강이 찬찬히 기관진식을 푸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막 시간이 미시(未時)를 넘어간 참인지, 사람들이 욕설과 함께 바닥에 침을 뱉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 보자."

새로이 바뀐 기관진식을 살펴보는 천강.

"기관진식에 조예가 있으십니까?"

"뭐…… 심심할 때마다 배워두긴 했지."

천강의 대답에 주변에 있던 사십여 명의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아주 지랄도 풍년이네."

"꼬마야. 어른들 노는데 까불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미젖이나 더 빨아라."

그들의 행태에 괜스레 일천귀검만 안절부절못하고, 천강은 묵묵히 바닥을 살펴보았다.

이후엔 결계 너머에 자리한 나무들의 배치를.

'교묘하게 감추긴 했는데…… 이건 뭐지? 푸는 건 쉬운데?'

맹익이 오목골에 설치한 진식과 비교해도 형편이 없을 정도로.

'이 정도면 거의 들어가라고 설치해 놓은 수준이잖아.'

……혹시 함정인가?

그런 생각에 살펴보고 다시 살펴봐도 맞다.

천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의 주변과 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건 너무도 어이가 없어 나온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걸 오해한 사람들.

"왜. 자신 있게 해봤는데 너무 어려웠나 보지? 낄낄."

"아무렴 아니겠는가. 지켜보는 이가 무려 천 명 가까이 되는구만."

잠깐 그들의 말을 가만 듣던 천강이 나직이 말했다.

"지금 나랑 이 안으로 들어갈 사람?"

"응?"

벙찐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는 사람들.

"없어? 없으면 그냥 나 혼자 들어간다."

그때 일천귀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어, 그래. 또 없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천강이 허세를 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때 돌연 무리 내로 큰 술렁임이 일고, 천강과 일천귀검의 옆쪽에서 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햇빛을 받아 빛나는 찬란한 머리칼.

한여름의 호숫가를 담아낸 듯 푸른 눈.

그저 서 있기만 해도 사방에 떨치는 존재감에, 모든 이들이 시선이 그녀에게 모인다.

음존 천수향이 성큼성큼 걸어와 천강 앞에 섰다. 그녀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데려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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