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0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6화
206화. 객점에서 정보를 얻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거대한 굴 앞으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른 장작과 같은 상태였다. 툭 건들면 그대로 가루가 돼 내려앉을 느낌의.
그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사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 백면수라가 간신히 고개를 쳐들고는 자신의 앞에 선 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자신의 모든 내기를 쏟아부은 절기다.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사내를 끝장내기 위해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의 일격은 실패했다. 아니, 일격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상대에게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상대는 그가 쏘아 보낸 공력을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설마 네놈은…… 50년 전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던 흑살마신?"
상대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머리를 잡아 비틀 뿐.
***
산서 중부. 무영신투의 비고가 발견된 높은 산자락.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아가던 천강은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운 채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탓이다.
- 생각보다 사람이 더 많은데요, 소년.
'그러게.'
무영신투의 비고라는 게 정말 대단은 한 모양이다. 이리 몰리는 걸 보면.
슥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니 대부분 무기를 들고 있는 게 그쪽 계통의 사람들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눈을 빛내며 나아가는 수많은 일반인들.
그중 어떤 이들은 보물을 찾으러, 또 어떤 이들은 사람이 몰리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장사를 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번 일을 통해 모두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한탕 크게 해 먹기 위해서.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기나긴 행렬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가장 가까운 마을에까지 이어졌고, 마을은 때아닌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거…… 밥 먹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전 마을에서 먹을 걸 잔뜩 사 들고 올 걸 그랬나.
냄새를 맡아 객점을 찾아가 본즉 역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가게 주인은 물이 들어온 이때에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듯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손님을 상대하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만개한 상태였다.
음식값을 계산하는 이들을 본즉 왜 그런지 다소 이해가 되었다.
- 이전 마을의 10배는 받는 것 같구나.
- 어떡할 것이냐?
어떡하긴. 제아무리 현경 고수라도 밥을 안 먹으면 힘이 안 나는 법.
비싸더라도 밥은 먹자는 생각에 자리를 찾아본다.
그러나 그 자리조차도 쉽사리 나지 않고…… 확 그냥 힘으로 밀어버릴까란 생각을 하는 순간, 한 자리가 나왔다.
천강은 잽싸게 그곳으로 뛰어가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뛰어온 다른 이들은 혀를 차며 발길을 되돌렸다.
- 흐음? 그냥 돌아가는구나.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시비를 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 안에 이름난 실력자가 있는 모양이야.'
괜히 싸움이 커졌다가 고수의 식사를 방해라도 했다가는 제 목숨 건사하기 쉽지 않기에.
흔히 있을 일이었다. 인파가 몰리는 곳에선.
그건 그렇고 한여름에 무인들이 많아서일까, 더위도 더위지만 사방에 땀내가 진동했다.
천강이 코를 살짝 잡고는 같은 상에 자리한 다른 세 명에게 가볍게 예를 차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합석 좀 하겠습니다. 주인장, 여기 주문 좀 받지?"
"예, 예!"
사람은 많아도 만두와 국수는 금세 나왔다. 지금 이 현상이 오늘이 처음은 아니란 뜻이리라.
그렇게 음식을 반쯤 먹었을 때 같이 식사하던 이들이 하나둘 교체되고, 이내 아까 천강과 자리 경쟁하던 이들 중 하나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아까 일로 뭔가 배알이 꼴렸는지, 식사를 하는 천강에게 큰 소리로 시비를 걸었다.
"하. 이런 어린 애송이도 비고가 탐나 오다니, 말세구만 말세!"
그 외침에 천강을 돌아보는 사람들. 이내 그 사람의 말에 동조하고 나선다.
"확실히 너무 어리긴 하구만."
"지학(志學)을 막 넘긴 건가?"
주변에 천강 정도 어려 보이는 이는 없었다. 모두 험한 일을 많이 겪어 겉늙었는지는 몰라도 스물 이상의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아주 개나 소나 다 오는구만. 참 내! 이러니 무림맹에서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지, 안 그렇소이까?"
딱 봐도 선동질을 해 집단적으로 눈치를 주고 쫓아낼 생각으로 보였다.
그 말하는 행태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이며 옹호하는 걸 본즉,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좋지 않았다. 천강은 그가 뭐라 하든 무시하고 맛나게 음식을 즐겼다.
'확실히 중원 음식 실력이 전체적으로 늘었어. 이 집은 국수가 기가 막히네.'
뻔뻔하기로 치면 전생 시절 마교에서도 손에 꼽혔던 인물이다.
뭐라 말하던 음식만 잘 먹는 천강의 행태에 선동질을 하던 남자는 괜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이 새끼가?'
원래는 적당히 주눅이 들면 그만하려 했으나 도리어 아무런 영향이 없자, 오기가 생긴 그는 더더욱 열의를 불태우며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다.
그렇게 발견한 한 사람.
"아니 이게 누구시오. 일천귀검 아니시오!"
일천귀검? 사람들의 시선이 일천귀검에게 쏠렸다. 식사를 하던 일천귀검과 천강의 시선 또한 마주쳤다.
일천귀검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
일천귀검.
하북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다. 팽가 출신이 아니면서도 해당 지역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무인이다.
그의 사문이 일인전승에 명망이 높기도 했고, 본인 또한 어린 나이에 그 뛰어남을 증명한 탓이다.
그 뛰어남이란, 고작 열셋의 나이에 하나의 산채를 송두리째 뽑은 일에 기인한다.
그는 고통받는 인근 마을과 상인들을 위해 그 어떠한 대가도 없이 그 일을 하였으니, 그의 첫 강호행치고는 화려한 신고식이었다.
이후에 이루어지는 행보도 대부분이 그와 비슷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파와 자주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다 사파의 고수 중 하나인 역천노괴와 호각을 이루면서 약관의 나이에 일천귀검이란 별호를 받으니, 그의 위용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런 일천귀검이지만 지금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강호의 고수 중의 고수, 일천귀검 아니오이까!"
혹여나 잘못 봤을까 하여 천강이 있는 곳을 다시 한번 쳐다본 일천귀검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맞군.'
그는 과거 흑살마신을 잡는 의뢰를 위해 천산에 갔다가 유일하게 생환한 이다.
광존을 애 다루듯 다루는 흑살마신의 모습은 당시 그에게 큰 충격을 선사해주었고.
이내 상당히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 얼굴이 마주친 순간 바로 상대가 흑살마신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얼굴을 못 드는 이유는 이러했다.
"일천귀검! 이분이야말로 진정 무영신투의 비고에 들어갈 실력자 아니오이까? 그런데 저런 애송이가 겁도 없이…… 쯧쯧. 일천귀검의 생각은 어떠시오. 저런 보잘것없는 녀석은 목숨 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되돌려 보내야 한다, 생각하지 않소이까?"
아니, 왜 그걸 나한테 묻고 그래?
흑살마신과 그 자신의 실력을 비교하자면…… 비교조차 민망했다.
그 유명한 광존을 애 데리고 놀 듯하고, 광존의 강한 일격조차도 손가락 하나로 막았었다.
그런데 그런 이를 상대로 보잘것없……. 일천귀검은 자신을 추켜세우는 남자를 무시한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국수를 먹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끝낼 기세가 보이질 않았다.
"우리 일천귀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북에서 이름난 실력자! 저런 애송이 수백이 몰려와도 상대가 안 되지. 암!"
……젠장. 쪽팔리게.
지속된 칭송에 일천귀검이 극한의 수치심을 느끼고는 고개를 더더욱 숙였다.
'이봐. 당신이 손가락질하는 그 사내가 능히 이곳에 모인 전부를 다 저승 문턱으로 보낼 수 있는 실력자거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칫 흑살마신이 마교 출신인 것까지 이야기해야 했기에 결국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러다 폭발이라도 한다면…….'
문득 든 불안감에 일천귀검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잠자코 식사를 하던 천강이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그저 구경 왔소이다."
"구경?"
"그렇소. 무영신투의 비고가 발견된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거 옆에서 구경이라도 해야 나중에 지인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먹지 않겠소?"
그 말에 사람들이 웃으며 긍정을 표하기 시작했다.
"하핫. 과연……! 그 말이 일리가 있구만!"
"암만. 족히 죽을 때까지는 얻어먹을 수 있겠어!"
단 한마디에 객점의 분위기를 싹 뒤바꾼 천강.
그 솜씨에 선동질을 하던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와 앉고, 일천귀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의외네요. 한바탕 피라도 볼 줄 알았는데요.
'아아. 다른 땐 몰라도, 이런 중인환시에 사고를 칠 순 없지.'
대신 받은 건 돌려주는 게 흑살마신의 철칙.
천강은 은밀히 의자 다리 하나에 내기를 쏘아보았다. 천강에게 한 소리 했던 사내는 음식이 나와 먹으려는 순간, 우지끈 다리가 부러지며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져야 했다.
물론, 그러면서 뒤쪽 손님들에게 피해를 줘 그는 식전에 한 차례 땀을 쏟아야 했다.
아무튼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천강은 음식 먹는 속도를 확 줄이고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근데 무영신투 비고가 어디까지 발굴이 되었답니까?"
"글쎄올시다."
"듣기로는 아직도 입구에서 서성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 뭔가 대답이 시원찮은데요.
-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개 안 하려는 게지.
천강이 봐도 그런 상황.
솔직히 생판 모르는 남에게 친절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이유는 없겠지.
이럴 때는 직방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약이 있다.
- 그게 뭔가요?
천강이 주인장을 불러 술 다섯 병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술을 몇 잔 돌리니, 바로 천강 주위로 모여들어 사람들이 이야기를 푼다.
"……하여 고작 도입부밖에 못 들어서고 후퇴했다는 것 아니겠소."
"함정이 보통이 아니라 하더군."
"듣기로는 무덤 곳곳에 강시들까지 있다던데."
역시 무인들이 서로 친해지는 덴 술이 최고지.
'그건 그렇고, 강시라. 뭔가 재미있네.'
천강 입장에서도 강시는 다소 생소하다.
혈교가 건재할 땐 중원에서 자주 목격되곤 했다는데, 그들이 망해 사라진 뒤로는 강시는 그저 숱한 신비적 존재…… 예를 들면 신수나 이무기들과 같이 민간설화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강시를 볼 수 있단 말이지?'
왠지 이곳에 온 보람이 생긴다. 천강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는 그때였다.
"그럼 지금까지 제일 깊숙이 들어간 이는 누구요?"
"그자라더군."
"그자?"
"거 왜 있잖은가. 50년 전 마교에서 넘어와 이름을 떨쳤던."
찻잔을 기울이던 천강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흑살마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