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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0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4화

204화. 산서로

 

 

무영신투.

신형은 물론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도둑이다.

그가 한창 활동할 시기인 500년 전 당시에도 그 얼굴을 아는 자가 손에 꼽을 정도라 하니, 그의 능력이 새삼 어느 정도인지 유추할 수 있으리라.

무영신투는 그 뛰어난 능력으로 수많은 보물들을 훔쳐냈고, 그것을 훔치는 데에 그 어떤 제약도 두지 않았다.

귀한 것이라면 그 누구의 것이라도 훔쳤다.

그게 뛰어난 무인의 것이건, 어느 강력한 집단의 것이건, 혹은 황실…… 황제의 것이건 말이다.

그러다 한 차례 큰 소문이 돌았으니, 그 내용인즉슨 이러했다.

- 굉장히 넓은 곳이었소. 기다란 복도엔 각종 함정을 설치하게 했고, 그 끝엔 거대한 공동이 있었는데…… 무엇을 위한 용도인지는 모르오나 이것 한 가지는 확실했소. 보물을 숨겨두기 위한 창고란 것을 말이오!

출처는 당시 해당 비고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삯꾼의 말이었다.

그는 공사가 다 끝나고 밖으로 나가는 도중 자신이 만든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고, 이후 꼬박 하루를 정신을 잃었다가 운 좋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일에 참여한 모두가 죽임을 당한 걸 간과했던 그의 가벼운 입은 그에게 화를 불러왔다.

비싼 값을 부르는 이에게 그곳의 소재지를 말해 주려다가 어느 날 서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후 수많은 무인들이 무영신투의 비고를 찾기 위해 산서의 산들을 훑고 다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종종 술을 마시며 말하곤 했다.

『 중원 어딘가에 무영신투의 비고가 있다. 그걸 발견하는 자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부호가 될 것이요, 천하를 호령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

그런데 그런 전설의 비고가 실제로 등장했다는 소식이 돌았으니 어쩌겠는가?

"지금 온 중원이 그 이야기로 떠들썩해요. 마교의 침공은 순식간에 묻히고 말았죠."

"그래서 회의가 늦어지는 거군."

"맞아요. 마교의 침공을 함께 대비해야 하는 이 시점에 서로 칼을 들고 싸우게 생겼으니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지요. 후훗."

"그래도 가만히 있을 무림맹이 아닐 텐데?"

다른 건 몰라도 행동력 하나는 기가 막힌 곳이다. 그러나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문이 도는 순간 필사적으로 거짓으로 몰았는데 소용없었대요. 결국 사람들을 보내 제지했으나, 그런다고 무림인들이 그 말을 들을까요?"

"들을 리가 없지."

마교만큼이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마교보다도 더 비급과 무기 등에 욕심을 부리는 게 중원의 무림인이다.

마교 출신으로서 볼 때, 중원의 무림인들은 좀 대박과 환상을 노리고 의지하는 그런 성향이 더 짙었다.

'그런데 하필 이 박자에 무영신투의 비고라…….'

흠. 천강이 생각에 잠기자, 신병이기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조용히 피력했다.

- 너도 가보는 것이 어떠하냐?

- 그래. 가는 게 좋을 듯 보이는구나.

'내가 왜?'

영약이야 더는 쓸모가 없고, 비급은 더더욱 그러하다.

북명신공, 암운신공, 지천뇌공, 독목신공, 천마신공 등등…… 지금 있는 무공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너희들이 있는데.'

- 흠흠. 그런 낯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 물론 우리도 있지만, 일전에 네가 보여준 신검이나 신물처럼 뛰어난 무구들도 더 있을지 모른다.

- 생사경인 태감(太監)과 어떤 식으로 싸우게 될지 모르는 만큼, 가서 손해 볼 건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소년.

그야 그렇긴 한데.

- 다른 이들이라면 가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큼 말리겠지만, 솔직히 지금 소년에게 그 누가 위협이 될까요?

고민을 하던 천강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눈치 빠른 루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천 대협도 가시려고요?"

"음? 가라고 내게 말해준 것 아니었어?"

천강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루주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보니 대협도 영락없는 무림인이네요. 천 대협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잠깐 구경만 하고 올 거야. 500년 만에 나타난 전설적인 비고인데, 구경은 해야지."

"그 말을 제가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달포. 그쯤이면 다시 돌아오겠네."

그러며 천강이 금원보 세 개를 건넸다.

"이건 뭔가요?"

"나랑 같이 온 애들, 그리고 내 호위 숙박비."

"마지막 분은 도리어 저희가 돈을 줘야 하는데. 후훗. 뭐 주시는 거니 감사히 받을게요."

"한 번을 거절을 안 하는구만."

찻잔을 다 비운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여유롭게 해도, 행동은 늘 번개같이 하는 천강이다.

"그럼 달포 후에 보자고."

"네.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오시면 일행분들 일 시킬 거예요. 일찍 돌아오세요."

한 차례 손을 흔든 천강이 아지랑이마냥 스르륵 사라졌다. 어린 나이에 참으로 신묘하다 생각하던 여인이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어멋. 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는 게 깜빡했네."

그 사람들이란 무진 일행이다.

잠시 가만히 고민을 하던 루주가 생긋 웃었다.

"달포만 더 기다려 달라 하지 뭐. 위치를 물으면 정보값을 받으면 되고!"

 

***

 

"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네."

"저도요, 언니."

누각의 뒤편. 귀한 손님들을 맞는 숙소에 천강을 따라온 여인들이 각자 짐을 풀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얼굴은 가족들을 볼 생각에 하나같이 환해 있었다.

"진짜 나 없는 동안 딴 여자 들였기만 해봐."

"설마 그랬으려고. 우리 동생 실종된 일로 술독에 안 빠졌길 바라렴."

"뭐…… 이이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요. 서희 언니도 남편분 빨리 보고 싶죠?"

서희가 대답 대신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 행태에 소리 내어 웃는 사람들.

무릉원에 있을 적 그녀는 늘 입만 열면 남편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지금은 웃기만 하니 어찌 아니 그럴까.

'우리 가가께서 나 없이 잘 지내고 있으려나.'

입 밖으로 내진 않고 속으로 그리 걱정을 하는 그때, 밖에서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접니다. 서희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건물 앞에는 천강이 공손히 예를 갖추고 있었다.

사흘 전 무릉원에서 색귀를 가지고 놀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요?"

"제가 산서로 길을 떠나는 중이온데, 지금 무림맹에 각 문파 장문인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합니다. 혹 원하신다면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무영신투의 비고가 발견된 곳은 산서 중부다. 그리고 무림맹은 산서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천강의 말에 서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안 그래도 언제쯤 집으로 돌아가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하던 차 아니었던가.

"그래 주시면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천 대협!"

"그럼 짐 싸서 나오시지요. 다른 분들과는 작별 인사를 나누시고요."

"예!"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여인. 이내 건물 안쪽으로 작은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무릉원에서도 한바탕 헤어지며 눈물을 보이더니, 이번에도 그러는 모양이다.

서희를 기다리며 잠시 주변 전경을 둘러보는 천강에게 신병이기들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 귀찮게 여인은 왜 데리고 가는 것이냐? 발만 느려질 터인데.

- 그러게 말이다. 이곳 사람들이 알아서 잘해줄 거 아니냐. 돈까지 주었으면서.

'아아. 이왕이면 직접 데려다주는 게 성의 있어 보이지 않겠어?'

서희. 그녀는 하북팽가의 안주인이다.

하북팽가 가주의 부인이란 뜻이다.

그녀를 가주에게 직접 데려다준다면, 하북팽가에 은원관계를 확실히 다져놓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가는 길에 있어서이지만.'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서희가 자신의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나온 다른 여인들은 소매로 눈물 닦아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보자, 애들아. 하북 지날 일 있으면 꼭 들르고."

"네, 언니."

"조심히 가셔요."

작별 인사를 마치고 이동하는 두 사람.

어느덧 신시(申時)에 접어든 하늘은 뜨거운 열기가 잦아들고, 선선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홍루를 벗어나려는 그때, 누군가 천강을 부르며 후다닥 뛰어왔다.

"천 대협!"

"음? 아, 홍연 소저."

"사흘 만에 나타나셔서 얼굴도 안 보고 가시다니. 그러는 거 아니에요."

"미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그런데 그건 뭐야?"

홍연이 천강에게 고급스러운 천으로 싸인 보따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오늘 저녁하고 밤참이에요."

"뭘 이런 걸……."

"직접 만든 거니까. 꼭. 꼭 다 드셔야 해요."

두 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에 천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연이 후다닥 다시 누각으로 돌아갔다.

무게가 묵직한 게 많이도 싼 모양. 덕분에 오늘은 밤새 이동해도 될 듯싶다.

그에 흡족한 얼굴을 하길 잠시,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팽가의 안주인이 천강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어멋.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말 편히 하세요. 저보다 연장자신데."

"뭐 그럼 그렇게 하지."

"근데 천 대협. 여인들에게 참으로 인기가 많으시네요."

……그런가?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전생부터 지금까지 꼬이는 여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적극적이고 힘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같이 서 있기만 해도 기가 빨릴 정도로.

대체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강 또한 숱한 마교인들 중 하나. 마교의 억센 여인보다는 아무래도 고고하고 조용한 성품이 끌리곤 했다.

'뭐 이번 생도 그런 인연을 만나긴 그른 것 같지만 말이야.'

천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발을 놀렸다. 그는 서희를 내력으로 들어 올려, 순식간에 사천성을 빠져나갔다.

그 뛰어난 경공에 서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나직이 한마디 했다.

"아깝네요. 만약 제게 딸 하나가 있었으면 바로 사위로 삼았을 텐데."

"……마교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드나?"

"마교 사람이면 어떻나요. 제가 보니 중원의 남자들보다 훨씬 낫네요, 뭘."

"어떤 점이?"

서희가 검지를 입술에 대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그 이유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협도 있고 의도 있고, 무엇보다 진솔하고 싸움 잘하잖아요. 솔직히 중원의 남자들은 무슨 계집마냥 머리싸움 하는 게 좀 있거든요. 근데 마교는 뭐든 남자답게 힘으로 싸운다면서요?"

대화를 몇 번 나눠보니 알 것 같다. 이 여자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구만?

"부인의 남자 취향엔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어때?"

"그럼 이런 건 어때요? 제가 남편이랑 딸 하나 낳을 테니, 천 대협이 15년만 기다려주는 거예요."

이 아줌마. 뭔 소리 하는 거야.

"미안. 사양할게."

"아이참. 아쉬워라."

 

***

 

쾅. 루주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서류를 살피던 그녀는 깜짝 놀라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태풍에 범람하는 호숫가처럼, 넘실거리는 푸른 눈의 주인이 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루주의 앞에 섰다.

쾅. 두 손바닥으로 상을 내려치니 그것은 그대로 가루가 돼 바닥에 내려앉았다.

"소선."

"예, 예? 천수향님, 무슨 일로……."

"흑살마신 어디 있나!"

"흐, 흑살마신이요?"

천수향은 홍루의 루주가 자신을 속였다고 판단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홍루를 드나드는 흑살마신을 모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에 이리 나온 것이나, 루주의 눈은 흑살마신의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아직도 모르는 눈치였다.

'설마 녀석…… 인피면구를 쓰고 다니는 건가?'

아무튼 루주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천수향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곳에 온 손님 중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녀석이 있을 거야. 나이는 지학(志學) 정도 되고, 머리는 이런 식으로. 복식은……."

사실 천수향은 이번 생의 천강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늘 그 행색을 입에 달고 묻고 다니는 초아와 연화 덕분에 아주 잘 묘사할 수 있었다.

천수향의 설명을 들은 루주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혹시 다른 일행 둘하고 나타나신 그분이요?"

"일행이 있어?"

"예. 화산파 사람하고, 남궁 사람이라 들었어요. 아, 호위도 하나 있고요."

그래서 내가 놓친 거로구나. 그 꼬맹이들도 그렇고!

루주의 입술이 잘게 떨린다.

"그, 그분이 흑살마신이었어요? 천수향님이 50년 넘게 찾아다녔다던……?"

"그 녀석 지금 어딨어?"

"나, 나흘 전에……."

"나흘 전?"

"예, 예!"

천수향의 살기 어린 분위기에 당황한 루주가 허둥지둥 설명했다. 흑살마신이 나흘 전 산서로 향한 사실을.

"산서엔 무슨 일로 갔는데?"

"그곳에서 무영신투의 비고가 발견되었어요. 그곳에 구경을 가신다고."

"이 새끼……."

천수향의 신형이 잔상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엉망이 된 방 안에서 루주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천수향님 웃으셨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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