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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0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3화

203화. 무영신투의 비고

 

 

"이게 대체……."

짙은 어둠이 물러나고, 환한 태양이 떠오른 아침.

밤새 가리어졌던 아미산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성문 근처에 있었던 큰 소동과 이후 천수향의 지시가 떨어지면서 아미산에는 많은 이들이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고수 몇 명이 싸움을 한 탓이겠거니 했으나, 조사를 위해 올라온 관원들과 무림인들은 아미산에서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으니…….

마치 작은 전쟁이라도 치른 듯, 수백에 해당하는 시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던 탓이다.

그 대부분이 사천에 상주하는 무림인들이었으니 더더욱 말이 많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모든 문파가 이리 아미파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는지."

"뭔가 짚이는 건 없으십니까?"

"전혀."

그로 인해 난감한 건 사천의 문파들이었다. 그들로서도 그 이유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은 탓이다.

"그쪽에 생존자는 없나?"

"없습니다."

"북쪽은?"

"이쪽도 없습니다."

"서쪽?"

찾아도 찾아도 아미산에서 발견된 건 그저 짐승에게 갈기갈기 찢겨 낭자하게 흩어진 시체뿐.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모습에 한 병사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 정도면 거의 멸문 아닌가?"

"후우. 그러게 말일세. 그래도 중원을 돌아다니며 수행 중인 아미파 사람들을 다 소환하라 일렀으니, 그 명맥을 이을 순 있겠지."

그러나 그 수를 합쳐본들 채 몇 명이나 될까?

그 후로 수색은 무려 칠 일 가까이 이루어졌고, 그 사이 아미산에 도착한 아미파 일원은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말로는 수행 중인 이들을 다 불러 모은다 해도 열 명이 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더 조사해본들 나아질 건 없다고 판단한 관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병사들을 집결시켰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 앞으로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등장에 관원은 물론 모든 무림인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음존, 오셨습니까?"

"너는?"

"사천성의 안찰사 도군이라 하옵니다."

"음? 당신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전달받아 직접 현장을 감찰하기 위해 뛰어왔습니다."

확실히 그가 움직일 만하였다. 어찌 됐든 아미산은 하나의 문파가 자리한 곳이기 이전에 불교의 성지니까.

그곳을 관리하는 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이는 관에서 볼 때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리라.

천수향이 발을 옮기며 말했다.

"찾아보고, 조그마한 무언가라도 발견하면 내게 말 좀 해주고."

"예, 예."

이곳 사천에서 당가의 힘은 관군이나 황실보다 드세다. 안찰사가 돌아가기 위해 모여드는 병사들에게 손짓하며 조용히 그들을 도로 현장으로 돌려보냈다.

"근데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아."

천수향. 그녀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다른 그 누구보다도 이곳 시체들의 상태를 먼저 점검한 그녀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으니, 몇몇 시체에서 흡공의 상흔이 발견된 것이다.

'그날 흑살마신은 이 산에 있었어.'

특히 독수의 목숨을 취한 이는 분명 흑살마신이었다. 다만 남쪽으로 향하던 중, 돌연 흔적이 사라져버려 추격에 차질을 빚고 있던 그녀였다.

설마하니 남쪽 산자락 평지에 무릉원이라는 비밀 거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까닭이다.

제아무리 현경이라도 그 낌새를 눈치 못 챌 만큼 교묘히 만들어진 그곳은 전대 제갈세가의 가주가 무려 3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곳이었다.

혼자서 찾다가는 흑살마신의 흔적을 놓치고 말겠다고 판단한 천수향이 관군의 도움을 얻고자 이곳에 되돌아온 것이었다.

"사람들을 남쪽으로 보내서 조심히 흔적을 찾아보라고 해. 용의자가 남쪽으로 도주한 것 같으니까. 뭣하면 그쪽 도시 관원들하고도 협업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그녀 또한 다시 추격을 시작할까 하여 몸을 움직이는 순간,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안찰사님!"

"그래. 뭣 좀 발견했느냐?"

"그게…… 아미파의 생존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미파의 생존자? 천수향의 신형이 돌풍같이 사라졌다.

"음존…… 이런. 벌써 가셨군."

그녀가 사라진 걸 안찰사가 알아차린 순간, 이미 천수향은 이미 그들 앞에 당도해 있었다.

황금빛 머리칼이 휘날리고, 그걸 본 아미파 사람들이 정중히 예를 갖춘다.

"음존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내 물어볼 것이 있다. 사실대로 말해다오. 혹 흑살마신을 만났느냐."

아미파 여인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무릉원에서 나올 적, 흑살마신이 자신이 도운 것을 비밀로 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미파와 천수향은 아주 오랜 기간 돈독히 지내왔다. 그들 사이는 친자매와 다름없었다.

"그게……."

"왜 말을 못 하는 것이냐. 내 두 눈을 똑바로 보거라!"

천수향이 한 여인의 양어깨를 잡고 흔드나, 무림인에게 은원관계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송구합니다."

"그 반응은…… 흑살마신을 만난 게로구나. 그렇지?"

"……."

"너희들을 구해준 것도 녀석이고? 그걸 함구해주길 바랐을 거고 말이야!"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

사천의 여인들은 강하다. 그곳에 자리한 아미파의 여인들은 더 강하고 독하다.

더 역정을 내고 닦달을 내본들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아주 잘 아는 천수향은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흑살마신 어디로 갔어? 아니, 너희를 도와준 이는 어디로 갔나? 그것만 말해다오."

희열에 찬 천수향의 물음에, 여인들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아미산의 북쪽. 천수향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홍루로 돌아갔구나!'

팡. 음존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

 

홍루의 낮은 늘 그렇듯 조용하다.

물론 아침엔 밤새 더러워진 곳을 청소하느라 좀 활기차긴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즈음 되면 마치 높은 산 위에 세워진 절간마냥 매우 조용했다.

호숫가 또한 마찬가지. 일렬로 나열된 나룻배 위에서 초아가 암룡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언니. 진짜 천강 어디 간지 몰라요?"

[ 응. 말씀 안 해주고 자리를 비우셨어. ]

"언제 돌아오는지도요?"

[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만 하셨어. ]

푸우우. 초아의 입에서 한숨이 나지막이 터져 나왔다.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건지.

벌써 기다린 지 삼 일째,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고 있었다.

답답함에 한숨을 푹 쉬기를 잠시, 문득 든 생각에 초아가 암룡에게 물었다.

"언니."

[ 응? ]

"언니는 천강 옆에서 오래 지켜봤잖아요."

오래 지켜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암살자들은 습관적으로 상대를 분석하는 습성이 있다.

의도했든 안 했든, 그의 주군에 대한 거라면 꽤 제대로 알고 있다 판단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천강은 어떤 여인을 좋아해요?"

음. 잠시 고민에 잠긴 암룡. 이내 흘끗 초아의 눈치를 보고는 말한다.

[ 사실대로 말해도 돼? ]

"물론이에요!"

[ 충격 먹을지도 몰라. ]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은근 정신적인 부분에 강하니까요."

암룡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주군은 너 같은 성격 싫어하셔. ]

"네……?"

초아, 동공지진.

암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나 충격이 심하네.

그래도 곧이곧대로 이야기해준 건, 나름 응원을 하는 차원에서다.

[ 주군은 마교 여인들은 싫어하시면서도 중원 여인들에겐 약한 모습을 보이신단 말이지. ]

"약해서 그런 거 아녜요?"

[ ……얌전하고 순종적인 성품을 좋아하시는 거야. 특히 집착하는 건 아주 싫어하시더라고. ]

이 정도면 충분히 은혜를 갚은 것이려나.

그 은혜란 암운신공을 가르쳐준 것에 대한 부분.

그녀가 암운신공을 배울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초아와 그녀의 어미인 서아의 영향이 컸다.

오목골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때 문득 자신의 사문에 들지 않을 거냐며 제안해온 것이다.

'초아만 원하는 거면 애매한데, 사모님께서도 꽤 원하시니까.'

언제고 이 빚을 갚아야지, 갚아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주군과 초아가 이루어진다면 나름 크게 돌려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그녀였다.

"……얌전하고 순종적이라 이 말이죠?"

초아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고, 그런 그녀에게 무진, 청청, 연화가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언니. 오늘 고마워요!"

[ 그래. 이따 저녁에 보자. ]

아이들이 사라지고. 따스한 햇볕 아래 잠이나 조금 더 자볼까 하여 암룡도 자리를 비운 그때, 홍루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천강과 무릉원에서 탈출한 여인들이었다.

1층 누각으로 들어서자, 천강을 발견한 한 여인이 후다닥 뛰어 들어가 루주를 이끌고 나왔다.

천강과 그 뒤 여인들을 슥 훑어본 루주가 호호 웃음을 짓는다.

"천 대협. 삼 일 만에 무사히 나타나신 건 좋은데, 이곳 홍루에 그런 미녀분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시다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

"미안. 사정이 좀 있어서."

천강은 금원보 다섯을 루주의 손에 쥐여주었다. 루주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게 뭔가요?"

"우연히 납치되었던 이들을 구출하게 되었거든. 이들이 돌아갈 곳이 여전히 건재한지 확인 좀 해주고, 안전히 데려다 달라고."

"참…… 대협이란 호칭이 부족하지 않은 분이시군요. 처음 본 여인들을 위해 이리 큰돈을."

사실 루주에게 건넨 금원보 다섯은 색귀의 집에 있던 것이었다. 천강은 그곳에 있던 재물 중 반을 가져와, 그중 1할을 방금 루주에게 대가로 지급한 것이었다.

나머지 9할은 여인들의 손에 나누어 주었다. 아마 그동안 고통받은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보답이 될 것이다.

"가능할까?"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도의적인 일은, 특히 여인들에 관한 일이라면 저희 쪽도 환영이에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어? 무슨 특별한 소식이라던가."

"아!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하나 있었어요."

루주가 아이들을 시켜 여인들을 방으로 인도하고, 천강은 루주를 따라 그녀의 전용 방에 들어가 앉았다.

그녀가 찻물을 끓이며 천강에게 물었다.

"근데 꽤 늦으셨네요."

"어. 여러 가지로 일이 꼬여서."

무릉원에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그곳을 나오려니 문제가 되고 말았다.

기관진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던지 무려 이틀을 꼬박 앉아 집중해야만 했다.

그나마 천강에게 심안(心眼)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족히 한 달도 넘게 걸릴 것이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자세히 살펴봐야지.'

꽤 공부가 될 것이다. 그곳의 진식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루주가 찻잔을 내어주고 코끝으로 그 향을 맡는다. 천강이 작게 미소 지었다.

"용정차네?"

"용정차를 좋아하시는가 봐요?"

"그나마 차 중엔 제일. 이것도 돈 받는 건 아니지?"

"정보값에서 같이 빼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길."

정말이지 돈 버는 덴 진심이군.

"그래서 어떤 정보인데 그래? 장문인들이 모인 것에 대한 결과가 나온 거야?"

얼마 전 그녀는 천강에게 마교의 습격과 관련, 중원의 모든 장문인들이 한데 모인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었다.

천강은 그 사실을 이용해 이번 배신자들을 남김없이 일망타진할 수 있었고.

'오히려 잠재적인 위험분자들까지 다 정리할 수 있었지.'

아무튼 그 부분에 대한 결과가 슬슬 나올 터였다. 그러나 루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부분은 아직도 회의 중이에요. 이번에 들어온 정보는 비고(祕庫)에 관한 거예요."

"비고? 무슨 비고?"

어디 산이 무너지면서 망국의 황제나 유명한 고수의 창고라도 우연히 발견된 건가?

루주가 한 입 머금은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500년 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도둑, 무영신투의 비고가 발견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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