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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0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02화

202화. 붕천무신의 말로

 

 

"네, 네, 네놈……."

"미안. 그냥 맞아줘도 되는데, 내 동업자분께서 싫어하셔서."

"이, 이익!"

색귀가 몽둥이를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고자 용을 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천강의 몸과 한 몸이라도 되듯 딱 붙어 꼼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기까지 빠르게 빠져나가는 행태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색귀가 왼손에 힘을 주나…….

덥석.

천강이 그 손목을 움켜쥐고 힘껏 비틀자, 그가 비명과 함께 여인의 목을 움켜쥔 손을 놓아주었다.

"더 보여줄 것 없어?"

색귀의 시선이 천강의 얼굴에 가닿는다. 환하게 웃는 천강의 낯에 그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가."

"글쎄."

"그러지 말고 이보게 흐, 흑살마신. 흑살마신 맞지? 자네 나와 동업 어떤가?"

"동업?"

"그래, 동업! 나는 이곳 지상에 무릉도원을 만들 생각이네!"

"무슨 무릉도원을 만드는데 이런 짓을 해?"

천강의 시선이 여인들에게 가 닿자, 충분히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그가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자고로 무릉도원이면 아름다운 절경과 술, 미녀들 아닌가! 그래서 내 중원에서 잘난 여인들을 이리 데려온 것이네!"

슥 여인들을 둘러보았다. 과연…… 놈의 말을 듣고 본즉, 얼굴이 많이 상하긴 했어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용모들이었다.

"잘 생각해보시게. 저기 보이나? 저기? 한때 중원의 3대 미녀로 불린 하북팽가의 안주인도 있다네."

노인의 검지 끝을 따라가 본즉, 그곳엔 절세의 미녀로 불렸을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강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이야. 당신 참 대단해. 후환이 두렵진 않아?"

"두려울 게 뭐 있나. 이미 정파에서 낙인찍혀 쫓겨난 몸. 퉤. 씨부럴 것들."

"흠."

천강이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기자 색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반대로 그들을 바라보던 여인들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혹여나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어떤가? 이 나와 함께 풍운을 만들어보는 것은! 우리가 중원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것이네!"

"중원의 새바람이라……. 좋아. 재미있겠네."

아……. 여인들의 입에서 탄식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푹 떨구는 이들에게 색귀의 기분 좋은 음색이 날아들었다.

"이놈들. 지금 뭐 하는 게냐! 이 기쁜 날, 어서 술상을 내어오지 않고! 하하핫!"

그러고는 색귀가 천강에게 헤실헤실 웃었다. 그는 천강의 양손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좀 놓아주는 건 어떠한가?"

"왜 그리 급해?"

"그, 그게……."

슬슬 내기가 바닥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마 여인들이 보는 곳에서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흠흠. 한배를 탄 기념으로, 내 자네에게 좋은 선물이나 하나 줄까 해서 그렇지."

"오. 무슨 선물인데?"

"이것 놓고 말하면 안 되겠나?"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린다.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다리에, 색귀의 동공 또한 함께 흔들거렸다.

"자, 자네가 지금 내 내기를 다 뺏어가니…… 내가 서 있기가 좀 힘이 들어서 그러네."

"아, 그렇군? 하핫. 그런 거면 빨리빨리 좀 말할 것이지."

천강이 미안하다며 손으로 그의 팔을 툭툭 쳤다.

내기가 다 빨려 나가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에게 천령초로 강화된 천강의 손은 꽤 매서웠다. 아니 많이.

"끄읍……."

이런 썅. 이러다가 온몸의 뼈가 다 으스러져 뒈지겠네!

"응? 왜 표정이 그리 썩었어? 이 기분 좋은 날?"

"그, 그 기분 탓일세. 하……하핫."

여인들이 상과 술을 내어와 평상에 깔았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십 보에 불과했으나 색귀는 그 거리가 마치 십 리와 같이 길게 느껴졌다.

천강이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엉덩이를 붙였다.

"여어. 빨리 좀 와. 아까까지만 해도 팔팔하던 노인네가 갈 때가 되었나, 왜 이리 힘이 없어?"

큿. 이런 망할 새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네놈의 그 모가지를 반드시 비틀어 버릴 것이다!

목 위까지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집어삼키고는 색귀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걸어오던 색귀가 결국 다섯 보를 남겨두고 쓰러졌다.

여인들이 입을 가리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행태에 필사적으로 일어나려 하나, 꼼짝하지 않는 몸뚱어리.

'다섯 보 걸은 것도 용한 거지. 아주 내기를 쪽 빨았으니까.'

다른 무인들 같았으면 하루를 꼬박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하거늘.

참으로 대단하달지……. 뭐 그러니 여인을 삼십이나 끼고도 추가로 열 명을 더 데려온 것이겠지만.

아무튼 충분히 때가 무르익었다 판단한 천강이 한쪽 무릎을 세워 팔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얹었다. 그러며 왈.

"내가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봐도 이게 손해 같단 말이지."

"무, 무엇이 말인가?"

"동업을 하자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영감을 죽이면 여긴 다 내 건데."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색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노인이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사, 사, 살려주시게."

"개방의 방주치곤 꽤 특이한 행보를 보이기에 제법 기대했는데, 유언은 그저 그렇구만."

"제발!"

천강이 타구봉을 집어 들었다.

휘적휘적 허공에 타구봉을 돌리던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색귀의 혈을 짚기 시작했다.

"무, 무슨?"

"너무 놀라지 마. 그저 대자연의 기를 흡수 못 하게 막아두는 것뿐이니까.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무엇을 말인가……?"

"간단한 검증이지. 나랑 동업할 자격이 되는지 안 되는지."

천강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그곳에서 이곳 평상 위로 올라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동업해줄게."

"참말인가?"

"그래. 이 흑살마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니 믿어도 돼."

"고, 고맙네. 정말 고맙네!"

비록 몸에 내기 한 줌 없다 하나 이를 악물고 움직이면 못 할 건 아니었다.

다만 평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다소 힘을 비축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 바닥을 기어야 한다는 게 조금 쪽팔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깟 고생쯤은…….'

색귀가 화색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육지를 걷는 거북이마냥 엉금엉금 바닥을 기는 노인.

여인들이 입을 막고는 더욱 수군거린다.

저깟 잡것들 앞에서 이리 꼴사납게 긴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들었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쌍년들. 두고 보자.'

오늘 비웃은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그가 속으로 이를 갈며 2보의 거리를 움직였을 때였다. 돌연 천강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오오. 역시 보통 영감이 아냐. 그 상태로 잘도 움직이네. 근데 너희들은 뭐해?"

"예?"

천강을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는 여인들.

"저대로 놔둘 거야? 너희들 주인은 나 하나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하는데. 내 착각인가?"

"……."

여인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다시 천강을 돌아본다.

천강이 그들을 향해 눈웃음을 짓자, 말귀를 알아들은 여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바닥을 네발로 기고 있는 색귀를 빙 둘러쌌다.

"어?"

사색이 된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보는 색귀에게 여인들의 손이 높이 들렸다. 그들은 언제 챙겨온 지 모를 여염집 살림 도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자, 잠깐. 그동안 내가 많이 예뻐들 해주지 않았던가? 그간 함께한 정을 봐서라도……."

그러나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여인들의 눈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몇몇의 표정은 야차와도 같았다.

그에게 동정을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매서운 손길이 색귀의 몸통에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몽둥이로 개 잡는 듯한 소리가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무슨 일인가 하여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른 여인들…… 요리와 치료, 시체를 묻던 이들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와 색귀를 때려댄다.

그 행위에는 그동안의 울분이 담겨있어서인지, 꽤 거침이 없고 잔혹했다.

"이, 이런 씨부랄 년들이!"

결국 참다 참다 폭발한 현경 고수 붕천무신이 노호성을 지르나.

"악. 악. 끄아악. 자, 잘못했다! 아아악!"

……곧바로 제압되고.

비명은 한참을 이어졌다. 결국 그는 다섯 보의 거리를 채우지 못한 채 그렇게 여인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내기를 다 빨린 녀석은 그저 힘 좀 센 늙은이에 불과하지.'

아무튼 오늘로써 사천 쪽 일도 끝났군.

 

***

 

아미파 여인들의 포박과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들은 천강에게 구해준 은혜에 감사해하면서도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저희도 손 좀 봐주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풀려날 즈음에는 이미 색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던 것.

현재 색귀는 무술을 익힌 그들이 힘껏 때렸다가는 일격에 사망할 수 있는 그런 상태였다.

천강이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그들을 달랬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나, 그동안 이곳에 갇혀 있던 자들은 얼마나 분통이 쌓였겠습니까. 단전도 파괴된 상태인데."

그랬다. 이곳에 있는 여인들 모두 단전이 파괴되어 있었다. 무술을 익히든 익히지 않았든, 혹여나 탈출 시도조차 못 하게.

"이해합니다. 그래도……."

아미파 또한 누군가는 원망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들의 문파는 하루아침에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나, 남은 복수의 대상이라고는 그저 다 죽어가는 늙은이 하나였던 것이다.

그조차도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울분이 차오를 터였다.

그때 아미파 사람들의 자초지종을 들은 여인들이 그들에게 부탁을 해왔다.

"우리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되갚아 주세요."

그 고통이란 간단하다.

"제, 제발 단전만은……."

색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이들의 눈엔 조금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사지 똑바로 붙드세요."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이윽고 한 노인의 쉰 비명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아랫배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통증에 색귀는 피거품을 물고는 그대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 일을 시행한 아미파의 일대제자는 아쉽다는 얼굴로 한마디 할 뿐이었다.

"이런. 힘을 너무 준 모양이군요."

그렇게 무릉원의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천강에게 나아와 몇 번이고 감사를 하는 사람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너무 고마워할 것 없어. 그저 지나가다 손이 닿은 것이니까."

"근데 흑살마신이면…… 정말 마교 출신이신가요?"

"너무 그렇게 보지 말라고. 마교도 사람 사는 동네라 기본적인 협과 의는 있으니까."

여인들은 천강이 마교 출신이라는 것에 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마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해도 큰 인식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천강이 아미파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일단 아미파는 다들 이곳을 나갈 테고, 또 나가기를 희망하는 사람?"

- 끔찍한 악몽이 자행된 곳입니다. 왜 당연한 걸 묻는 것이죠?

- 그러게 말이다. 응당 다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몇몇은 무림인들이니까.'

무림인들은 필연적으로 은원관계를 쌓는다. 무림 생활을 하다 보면 든든한 조력자도 생기지만, 반대로 원수도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 힘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에게 바깥으로 나가란 말은 곧 죽으란 뜻이야.'

천강의 물음에 과연 열셋의 사람이 남기를 희망했다.

무려 반 가까운 숫자.

천강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지나갈 때 한 번씩 들르겠다는 약조는 해주었다.

이백 명이 넘게 살아도 될 만큼 풍족하고 넓은 땅이지만 아무래도 기본적인 물건들은 필요할 테니까.

"그럼 잘생긴 남자도 배달해 주나요?"

"그러지 말고, 나는 어때?"

"어멋. 정말요?"

"저희야 그럼 환영인데."

"당장 오늘 밤 어떠세요?"

힘든 시기를 끝내고자 농담을 던지기에 천강도 웃으며 받아주었다. 아픔을 겪은 곳이지만, 함께한 이들이 있으니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갈 사람도 정해졌고, 어디 나가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할까.'

- 근데 소년. 저 여인들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요?

'농담 맞아.'

천강은 심안(心眼)을 강하게 억제하며 찬찬히 발을 옮겼다.

아마 농담 맞을 거다. 응.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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