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19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197화
197화. 사해단주
'뭐야. 저 좆밥은.'
천강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 향했다.
'설마 저게 사해단주는 아니겠지?'
근데 말하는 분위기로 보아하니 맞는 것 같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녀석들이 놈을 보더니 화색을 띤다.
"어이. 네가 사해단주냐?"
"그렇다."
"그 중원 제1살수 살혼의 제자인?"
"그래."
"그런데 그런 놈이 인질을 잡아?"
그랬다. 중원 제1살수의 제자란 놈은 지금 홍루의 여인 하나를 잡고는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녀석이 천강을 향해 낮게 윽박질렀다.
"쓸데없는 짓 할 생각 말고 그 자리 가만히 있어. 이년 목에 구멍 뚫리는 꼴 보기 싫거든 말이야."
"처, 천 대협!"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본 여인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발이 아작난 놈들 몇몇이 몸을 일으켰다.
사해단주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애들아. 끝내라!"
"진짜 치사하게 구는구만. 스승과 자신의 명성에 똥칠을 하고 말이야."
"하. 미안하지만 난 지극히 현실주의라서 말이야.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힘들게 싸울 필요는 없겠지."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런 천강의 생각은 정확했다.
홍루에 도착해 애들을 풀 때까지만 해도 사해단주는 천강을 별 볼 일 없는 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잘해봐야 명문정파의 이대 제자 정도.
그러나 부하들이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걸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저놈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잡지 못한다.'
그에 수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여인 하나를 인질로 붙잡은 것이었다. 저런 영웅 행세하기를 좋아하는 놈들은 이러면 꼼짝을 못하니까.
설령 인질을 무시하고 덤빈다고 해도 경공엔 자신 있는 그였다.
'인질을 무시하고 날 잡으려 한다면, 네놈의 그 선한 가면도 벗겨질 것이다.'
사해단주가 소리를 높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쳐라!"
사해단원들이 매서운 눈으로 천강에게 다가온다. 절뚝절뚝 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눈엔 살의가 그득했다.
"천 대협!"
"꺄아악, 어떡해!"
소리치는 여인들. 천강을 둘러싼 사해단원들의 날붙이가 하늘 높이 치켜 들렸다.
홍루의 관리자인 소선이 도착한 것도 딱 그때였다. 여인들의 소식을 듣고는 허겁지겁 달려온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만요! 멈춰 주십시오, 사해단주! 멈춰주시면 그 보상을 넉넉히 해드리겠습니다!"
천강은 미오왕의 명패를 들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이곳에 와 잘못됐다는 사실이 미오왕에게 전달된다면, 그녀로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으리라.
그에 어떻게든 협상해보려는 그녀였다.
"풉. 보상이라. 우리 애들 발이 다 저 모양 저 꼴이 됐는데, 얼마나?"
루주가 주머니를 펼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좌중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야. 금원보 열이라……. 통이 크구만. 역시 홍루야."
"이 정도면 평생 놀고먹어도 될 것입니다."
사해단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리 큰 액수를 지금껏 못 본 탓이다.
그러나 사해단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근데 싫어."
"예? 어째서?"
"어차피 이 새끼 정리하고 며칠 지나면 이 홍루가 내 건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 금원보 잘 챙겨두라고. 그것도 내 거니까 말이야."
"그런! 사천의 문파들이 가만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 너희의 생각이 아닌 다 내 계획대로 될 테니까. 우리 루주님도 몸 잘 닦고 계시고. 내 조만간 안으로 갈 터이니."
사해단주의 시선이 도로 천강에게 향했다.
"애들아. 쳐라!"
하늘 높이 치켜들려 있던 날붙이들이 천강의 몸 곳곳에 짓쳐 든다. 이내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눈을 가리고는 비명을 질러대는 여인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기이한 신음이 깔렸다. 무기를 내려친 사해단원들이 당황해 내는 소리였다.
"이, 이런 미친?!"
"어떻게 된 몸뚱어리야?"
분명 힘껏 내리쳤는데 천강에게 아무런 타격도 없었던 것.
"뭐해? 발 다쳤다고 설렁설렁 치지 말고 제대로 쳐!"
사해단주의 외침에 다시 자세를 잡고는 후려치는 사람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사해단원들은 겁을 집어먹고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고수다. 보통 고수가 아냐."
"서, 서, 설마 외공 중 최강이라는 금강불괴?!"
사해단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는 여인의 목에 단검을 가까이하며 천강에게 윽박질렀다.
"어서 금강불괴를 풀지 못해! 안 그럼 이 여인은 죽는다!"
그러나 천강으로서는 당당히 할 말이 있었다.
"병신이냐?"
"뭐?"
"금강불괴인지는 내기를 느껴보면 알 터. 내기도 사용 안 하고 가만 있구만 뭔 놈의 금강불괴. 그냥 네 수하들이 너무 약한 거야."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공을 꽤 수련한 놈인 모양.
"쓸모없는 것들. 비켜라!"
수하들이 비켜서자, 그는 단검에 내기를 실어 천강에게 던졌다.
그래도 그는 명색이 화경 고수. 내기를 실은 그의 단검이라면 능히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의 단검이 날아가 천강의 이마에 툭 박혔다.
"꺄아악!"
다시금 여인들의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아까보단 소리도 좀 작고, 길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모종의 확신을 가진 탓이다. 그들 앞에 있는 사내가 보통이 아니란 것을.
그리고 과연…… 단검이 천강의 이마에 꽂혀있긴 하나, 말 그대로 붙어 있는 수준에 불과하고.
그 행태에 사해단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올라왔다.
"미, 미친. 어찌 내 일격을!"
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낮게 비명을 지른다. 천강의 이마엔 피 한 방울도 맺혀 있지 않았다.
"뭐해. 이게 끝이야?"
주춤주춤 물러나는 사해단주 적월.
"너의 신비로운 재주는 여기까지인가 보네. 참 내. 살혼의 제자라더니 별거 없구만. 괜히 기대했잖아."
일귀에 비하면 진짜 형편없네. 저런 놈이 어찌 살혼의 제자가 된 거지?
"넌 살혼의 비기 못 써? 응? 막 회오리 생기는 거 말이야."
천강이 목을 좌우로 풀었다. 움직이면 여인의 목에 구멍을 뚫는다고 소리쳤던 적월이었지만 이미 기세에서 밀려버린 그는 자신이 한 약조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오로지 이 자리를 어떻게 도망치나만 생각할 뿐.
그래도 천강이 한발 다가서자, 그는 곧바로 여인의 목에 다시 칼을 겨누었다. 그건 본능적이었다. 이러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본능적 움직임.
"솔직히 말해. 너 살혼 제자 아니지?"
"무, 무슨 소리냐! 나는 살혼의 제자가 맞다!"
"내가 살혼은 못 만나봤어도 그 제자는 만나봤거든. 근데 이리 형편없지 않았어."
일귀가 보여준 투척술은 보조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에게 투척술이란 상대의 움직임을 봉인함과 동시에, 상대를 끝내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준비.
그 준비란 최종 비기를 말한다.
일귀는 보통 투척을 할 때 이마가 아닌 몸통 부근을 노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고, 마무리는 직접 지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상대가 강하건 약하건 그는 동일하게 행동했다.
"만약 네가 정녕 살혼의 제자였다면 내 가까이 와서 직접 찔렀을 거다. 그러나 넌 그러지 못하지. 왜냐면 살혼의 제자가 아니니까."
"……."
"자, 기회를 주겠다. 칼 내려놔. 그리고 부하들 데리고 꺼져."
"시, 싫다면?"
"싫다면 별수 없지."
천강이 고갯짓했다. 그러자 그 순간, 검은 안개가 사해단주의 뒤로 나타나 그를 덮쳤다.
뼈와 살이 잘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리고, 단검을 들고 있던 사해단주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밖의 잔당들을 처리한 암룡이 천강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사해단주를 급습해 팔을 잘라낸 것이다.
"끄아아아악!"
사해단주의 나지막한 비명이 홍루에 크게 울려 퍼졌다.
***
"고맙습니다. 천 대협. 그리고 암룡님도."
수많은 여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두 사람.
천강의 시선이 홍루의 입구를 향했다. 그곳에선 사해단원들이 막 밖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그걸 같이 본 루주 소선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오늘 호된 교육이 됐으니 다시는 행패 부리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 천 대협 덕분입니다."
"나야 부탁받고 한 일일 뿐이니,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저희 아이들이 한 명도 다치지 않게 해주셨으니 천님께선 저희의 은인이십니다. 앞으로 이곳에 오시면 성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은인이면 공짜로 해주는 뭐 그런 혜택도 있는 건가?"
그러자 루주가 입을 가리고는 눈웃음을 짓는다.
"그럴 리가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장사 말아먹을 일 있습니까? 후훗."
미오왕이 사람 하나는 잘 뽑았네. 무림인 같았으면 올 때마다 무료로 해준다고 통 크게 약조를 해줬을 건데.
아무튼 가볍게 일 처리는 했고, 이제 사천의 배신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취해보도록 하자.
***
어두운 골목.
사해단주를 포함한 사해단원들이 비틀거리며 사천의 뒷골목을 나아간다. 그들은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누워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나마 멀쩡한 부단주가 단원들을 챙기고는 물을 들고 단주에게로 나아갔다.
"단주님, 괜찮으십니까?"
"큽. 괘, 괜찮다."
"이제 저희 어떡합니까."
이대로라면 홍루를 집어삼키기는커녕 사천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심지어 단주조차도 한쪽 팔이…….
"걱정하지 마라. 청성파 1장로에게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아미산 거사에 참여하면 된다. 사천 일을 다 마쳤을 때, 그 애송이도 함께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래. 그러면 오늘의 치욕을 다 갚을 수 있으리라.
물론, 홍루를 집어삼키는 건 청성파 쪽과 나눠 가지게 되겠지만.
"애들보고 최대한 쉬어두라고 해라. 이틀 후에 바삐 뛰어다니려면 말이야."
"예, 단주."
그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문득 무언가를 느낀 듯 사해단주가 부단주의 팔을 잡았다.
"잠깐. 왜 애들 앓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것이냐?"
"예? 어. 그러고 보니……."
의아함을 가지고 부단주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곧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부단주의 목은 꺾여 있고 흥미롭게도 그의 몸엔 내기 한 줌 존재하지 않았다.
사박. 사박.
어둠을 뚫고 나오는 한 사내. 그를 본 사해단주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어, 어째서…… 우리를 살려주는 것이 아니었나?"
"내가?"
천강이 작게 웃었다. 그리곤 되물었다.
"내가 너흴 왜 살려 보냈을까. 어디 한 번 맞춰봐."
"저, 정파인이라서?"
"아니."
"그럼 혹여나 어떤 쓸모가 있을까 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천강이 사해단주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사해단주의 내기가 순식간에 천강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해단주의 눈이 부릅 뜨였다.
"다, 당신은……!"
"답은 간단해. 아깐 보는 눈이 많았잖아. 여긴 보는 눈이 없고."
"이런 씨부랄!"
"그럼 잘 가라고."
사해단주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나, 그건 단지 새의 부리에 물린 지렁이의 발악일 뿐.
곧 그의 팔은 힘을 잃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천강은 그의 목을 한 바퀴 돌려주고 그곳을 조용히 떠났다.
'일단 한 곳은 끝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