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0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0화
명백의 말에 진만과 호현이 탁자에 앉았다. 둘이 앉자 동진이 펼쳐져 있는 서책에 붓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어느 속가 문인과 함께 온, 어디의 누구인가?”
“진검장 오태석 문주와 함께 온 장석현의 진만입니다. 장석현에서 작은 학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관을 운영할 정도의 학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사족을 다는 진만을 동진이 힐끗 보고는 서책에 그에 대한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호현이 바라보았다.
‘나를 기억하시려나? 하긴 마지막으로 본 것이 십 년 전이고 그때는 여덟 살이었으니……. 기억 못하시겠구나.’
스승인 죽대 선생과 동진의 스승인 풍소경 노사는 경쟁자 관계였다. 그리고 서로가 추구하는 학문적 견해가 물과 불의 관계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호현의 기억에 있는 풍소경과 동진은 어린 자신에게 가끔 당과를 쥐어 주었던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호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진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속가 문인과 함께 온, 어디의 누구인가?”
질문을 하는 동진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무단표국 호불위 국주와 함께 온 방헌현의 호현입니다.”
호현의 신상을 서책에 적으려던 동진의 고개가 치켜들어졌다. 그러고는 가만히 호현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가 아는 그 호현이 맞느냐?”
자신을 알아보는 동진의 모습에 호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진 학사께서 아는 호현이 저 말고 또 있다면 모를까, 제가 그 호현이 맞을 듯합니다.”
“하하하하!”
호현의 말에 동진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그렇지 않아도 호북에 내려 온 김에 너를 한 번 보고 가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너를 보게 되는구나.”
“동진 학사께서 방헌에 오신다면 스승님의 죽대가 즐거워하겠군요.”
“쩝! 설마 지금도 때리실까? 예전에야 한림원 대학사 신분이신지라 후학 지도를 위해 죽대를 드셨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
“스승님 성격을 모르십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아!”
동진이 품에서 작은 부채를 꺼내 호현에게 내밀었다.
“평서 그 친구가 호북에서 너를 보게 되면 주라고 하더구나.”
“대사형이요?”
평서는 죽대 선생에게 파문을 당한 호현의 대사형이었다.
동진이 내민 부채는 귀한 오죽(烏竹)으로 되어 있었다. 부채를 바라보는 호현을 향해 동진이 말했다.
“작년에 네가 향시에 합격한 것을 알고 그 친구가 무척이나 기뻐하더구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방헌에 내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나…….”
동진이 말을 멈추자 호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셨다면 스승님께서 대노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친구가 너를 만나러 가지 못한 것이다. 죽대 선생께서는 아직도 그러하시냐?”
동진의 물음에 호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죽선을 펼쳤다.
오죽에서 풍기는 청아한 향과 함께 부채에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학사 차림을 한 다섯 젊은이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는 곳에는 노학사가 어린 학동을 데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회(回)
돌리다, 돌아가다의 의미를 가진 글자를 가만히 어루만지던 호현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짙은 먹향이 느껴지는 것이, 사형이 이것을 그릴 때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었던가?’
그림 속에 있는 모습은 죽대 선생이 사형들을 파문시키고 호현만을 데리고 낙향을 할 때의 모습이었다.
그림을 보던 호현이 가만히 부채를 접었다. 그러고는 동진을 향해 오죽선을 내밀었다.
“왜?”
“사형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허나…… 스승님이 낙향을 하신 것은 사형들 때문입니다. 돌아가야 할 사람은 스승님이 아니라 사형들입니다.”
“네 생각이 그러한 것이냐?”
“제 생각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허나 평서와 네 사형들이 돌아간다고 해서 죽대 선생께서 받아 주지는 않으실 것이다.”
“사형들이 돌아오신다면…… 스승님께서는 죽대를 드실 것입니다.”
호현의 말에 동진이 쓰게 웃으며 오죽선을 바라보았다. 죽대 선생이 죽대를 든다는 의미는 훈계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죽대 선생의 죽대는 아무에게나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을 떠올린 동진이 한숨을 쉬고는 오죽선을 다시 호현에게 밀었다.
“평서 그 친구가 너에게 오죽선을 전하라 했다. 그리고 다시 가지고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필요가 없다면 네가 버리든지 하거라.”
호현이 오죽선을 다시 돌려줄 것을 염려해 동진이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너와 내가 회포를 푸는 자리가 아니니, 더 할 말이 있으면 다음에 하도록 하자구나.”
그러고는 호현에게서 고개를 돌린 동진이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호현은 한숨을 쉬며 오죽선을 만지작거렸다. 십 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대사형이 보낸 것이다.
호현도 오죽선을 가지고 싶었다. 오죽선에는 자신의 향시 합격을 축하하는 의미와 함께 자신과 스승에 대한 사형제들의 그리움까지 담겨 있다.
오죽선을 보던 호현이 동진을 바라보았다. 동진은 진만에게 도교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호현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렇게 눈동자 굴리면 사팔뜨기가 됩니다.’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이 오죽선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동진의 눈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어쩔 수 없지. 스승님의 처분에 맡기는 수밖에.’
오죽선을 버리든 태우든 스승님에게 보이고 난 후 결정을 하기로 한 호현은 품속에 있는 오죽선을 만지작거렸다.
진만과 도교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동진이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기는 하나, 지금은 무당파에서 학사들의 능력을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상 공정하게 대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도(道)라 무엇이냐?”
동진의 물음에 진만이 눈썹을 찡그렸다. 자신의 질문과 호현의 질문이 달랐던 것이다.
진만에게는 몇 가지 도경의 이름을 말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물었다.
그런데 지금 호현에게는 도란 무엇이냐는 추상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호현 학사가 거인이라고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호현 학사와 아는 사이라 쉬운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
하여튼 형평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진만이 눈썹을 찡그리고 있을 때, 호현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도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살고 자식은 자식답게 살며, 군주는 군주다운 모습을 보이며, 신하는 신하다운 모습을, 백성은 백성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천하태평의 대도일 것입니다.”
호현의 말에 동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질문을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네가 내 질문을 잘못 알아들은 것인가?”
“무슨……?”
“네가 방금 말한 도는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이다. 네 마음에 품은 도가 진정 그것이라면 그야말로 좋다 할 수 있다. 허나 그것은 네 도이자 유교의 도이다. 내가 물은 것은 도교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동진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도교의 도 역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 제 도와 유교의 도 역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도에 대한 깨달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릅니다. 농부는 땅에서 도를 찾으며 어부는 물에서 자신의 도를 찾습니다. 농부는 자신이 뿌린 도로 식량을 수확하고 어부는 자신이 뿌린 도로 물고기를 낚습니다. 도를 추구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다르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도를 도교라느니 유교라느니 하는 큰 획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한 호현의 답에 동진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호현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호 거인께서 큰 깨달음을 내려 주시니 이 동 모 감사의 예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진의 예에 호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예를 표했다.
제1-5장 호현, 시험을 받다
호현과 예를 나눈 동진이 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북경으로 돌아가면 평서에게 크게 술 한 잔을 얻어먹어야겠군.”
“사형에게요?”
“자네처럼 훌륭한 사제를 가졌으니 그 친구가 나에게 술을 사야 하지 않겠나? 안 그러면 자네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테니 말이네.”
기분 좋게 웃는 호현을 보며 동진이 말했다.
“진만 학사와 호현은 그만 밖에 나가보게.”
동진의 말에 진만이 급히 물었다.
“시험에 통과는 된 것입니까?”
“그에 대한 결과는 이틀 후에 발표할 것이네. 그동안은 무당파에서 내어 준 숙소에서 편히 쉬시게.”
그 말에 진만과 호현이 포권을 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동진이 옆에 있던 명백을 향해 말했다.
“명백 도장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는 진만 학사는 도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고 호현 학사는 자신만의 도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동진의 말에 명백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명백도 호현이 자신의 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살짝 놀랐던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천하태평지도를 논하다니…….
허나 그 깨달음이 도경 정리에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당에서 원하는 것은 도경을 정리할 학사이지 천하를 올바르게 이끌 학사가 아닌 것이다.
‘도경에 대한 지식은 모르겠으나 호현 학사가 가진 깨달음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저 나이에 저런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 옆에 있다면 무당의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지도…….’
그런 생각이 든 명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상(上)으로 치도록 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명백의 허가에 동진이 붓에 먹물을 묻히고는 호현과 동진의 이름이 있는 곳에 글을 적었다.
호현 上
진만 上
*
*
*
태청전 밖으로 나온 호현은 자신을 안내하는 무당파 도인과 함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진만 학사가 따르고 있었다.
무당파 건물들 너머 학이 주둥이를 내밀고 있는 듯한 봉우리를 본 호현이 감탄을 하며 도인에게 물었다.
“저 봉우리가 무척 수려한데, 이름이 무엇입니까?”
호현의 물음에 무당파 이대 제자인 동수 도사가 미소를 지었다.
“승학봉입니다.”
“승학봉?”
“전설에 의하면 천 년을 산 선학이 하늘로 승천을 하면서 자신의 육신을 남겼는데, 그 육신이 저렇게 봉우리가 됐다고 합니다.”
“아, 선학의 몸이 저렇게 큰 봉우리가 됐다니…… 선학의 몸이 무척이나 컸나봅니다.”
“하하하, 전설이니까요.”
동수 도사가 웃으며 말을 하고는 한쪽에 보이는 삼층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이 학사님들이 머무실 선인각입니다.”
선인각은 무당파에 오는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다. 선인각을 향해 걷던 호현이 문득 동수 도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오신 호불위 국주는 어디에 계십니까?”
“호불위 사숙께서는 본 문의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시고 계십니다. 인사를 마치시면 모두 이곳 선인각으로 오실 겁니다.”
선인각에 도착한 호현은 태청전 앞에서 봤던 학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위자경이라는 책이 뭐요?”
“당신에게는 그것을 물었소?”
“그렇소. 내 살다 살다 수위자경이라는 책은 난생 처음 들어 보오.”
“나는 태초본경이라는 것을 물어 보더군.”
“그것도 처음 듣소.”
선인각에 모인 학사들은 동진에게서 받은 물음들을 서로에게 이야기 하며 답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진만 학사가 슬쩍 호현을 바라보았다.
‘다들 나와 비슷하게 도경 쪽에 대한 질문을 받은 모양이군. 그럼…… 이 호현 학사만 다른 질문을 받았다는 말인데. 쳇! 한림원 학사도 어쩔 수 없군. 인연이 있다하여 이자만 특별대우를 하다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