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7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7화
‘나는 죽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도 더 내딛기 힘든 상황에서 한 시진이라니…….
휘익! 휘익!
창백하게 얼굴이 굳어 있는 호현의 뒤로 한 사람이 날듯이 달리며 산 위를 오르다 호불위를 보고는 그 옆에 내려섰다.
“호 사형 아니십니까?”
자신의 옆에 내려선 사람을 보고 호불위가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오 사제, 잘 지냈나?”
호불위의 말에 오 사제, 오태석이 웃으며 등에 업고 있던 사람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호불위가 이마를 찡그렸다. 오태석의 등에 업혀 있던 사람이 학사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그동안 무당산을 오르다 호불위를 보고 인사를 한 속가 사형들과 사제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사들을 한 명씩 업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사람을 업고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거기에 경공까지 시전하며 달리니 오태석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숨을 고르며 땀을 닦던 오태석이 말했다.
“호 사형도 공문을 받으셨나 보군요.”
“그러는 자네도 공문을 받았나보군.”
“그러니 이렇게 학사를 업고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단표국은 잘 되십니까?”
“나야 늘 그렇지 뭐. 그나저나 표국 일도 요새는 많이 힘들어. 어찌 된 것이 본파 속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표국 사업에 뛰어드는 것인지.”
호불위의 말대로 무당파 속가제자들은 열 중 다섯은 표국을 차리거나 표국에서 일을 하는 형편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자기도 표국을 운영하고 있으니 다른 속가제자들이 표국을 차리거나 표국에서 일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들 호북에서 표국을 차리고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로서야 무당의 영향권 밖에서 표국을 차리는 것보다는 확실한 무당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호북이 안전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물론 호불위도 그것 때문에 호북에서 표국을 차린 것이지만 말이다.
“후후후! 이거 호 사형 사업이 그리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진검장에서 표국을 이용할 일이 있으면 무단표국을 이용하면 안 되겠나?”
오태석은 호북의 중소세가 중 하나인 진검장의 장주였다. 표물을 부탁하는 호불위의 말에 오태석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어렸다.
“저도 호 사형을 도와주고는 싶지만…… 저희 진검장과 거래하는 표국이 석진 사형이 일을 하는 곳이라서…….”
석 사형이라는 말에 호불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도 무당의 속가제자였다.
같은 속가제자끼리 표물 건으로 얼굴을 붉힐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잊어버리게.”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나. 그럼 먼저 올라가시게.”
“같이 올라가시죠?”
“쩝! 내가 모시고 온 학사께서는 튼튼한 다리가 있는데 왜! 남의 등에 업히냐고! 절대! 업혀서는 가지 않으시겠다는군.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굼벵이 기어가듯 가는 중이라네!”
일부러 호현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을 한 호불위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있는 돌을 발로 찼다.
탁!
돌이 근처 나무에 맞고 떨어지는 것을 보던 오태석이 힐끗 호현을 보고는 자신이 데리고 온 학사를 업고는 말했다.
“그럼 해검지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시게.”
오태석이 학사를 업고 산 위를 향해 경공을 시전하는 것을 보던 호불위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호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고 자네도 저 학사처럼 내 등에 업혀서 가는 것이 어떤가? 자네가 괜한 고집을 피우는 통에 지금 우리를 앞질러 간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아는가?”
다른 속가제자들보다 먼저 무당파에 당도하려던 것이 자신의 계획이다. 헌데 죽어도 업혀서는 도교의 영산, 무당을 오를 수 없다는 호현의 고집 때문에 일이 틀어져 호불위는 속으로 열불이 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속가제자들보다 한시라도 빨리 학사를 데리고 왔다는 것은 그가 무당파를 그만큼 생각한다는 것을 본산의 사람들에게 대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헉헉헉! 힘든데 말 시키지 마십시오.”
자신을 노려보는 호불위를 향해 중얼거린 호현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힘이 들기는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제자리일 뿐인 것이다.
‘무당산이 하늘에 닿아 있는 것도 아니고, 가다보면 끝이 있겠지.’
길은 언제가 끝이 난다는 작은 깨달음을 곱씹으며 호현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산을 오르며 자신들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십여 명을 넘길 때쯤, 호현과 호불위는 무당파 입구라고 할 수 있는 해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해검지에는 호현 등을 앞질러 간 무당 속가제자들과 학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파 제자들로 보이는 순백의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그들에게 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해검지를 책임지고 있는 무당파 일대 제자 명수는 해검지에 속속 도착하는 속가제자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학사들에게 물을 나눠 주었다.
물을 나눠 주던 명수는 학사 한 명을 업고 해검지에 도착하는 중년인을 보고는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오느라 수고했네.
명수의 말에 업고 온 학사를 막 내려놓던 진검장 장주 오태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문의 일인데 수고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형은 잘 지내셨습니까?”
오태석이 비록 속가이기는 하지만 명수의 스승인 청정진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니 오태석과 명수는 같은 스승을 둔 사형제 간인 것이다.
“산에서 지내는 내가 잘못 지낼 일이 무엇이 있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형, 본산에서 학사는 왜 모으는 겁니까? 오는 길에 보니 저 말고도 속가 문인들이 학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무당서고 중에는 도경을 모아 놓는 곳이 있네. 그런데 도경을 모으기만 했지 정리를 하지 않아 이제는 서고가 그만 포화지경(飽和之景)이 되고 말았다네.”
“포화지경요?”
“그 뿐이었다면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았겠지만, 장문인께서 우연히 서고가 그 지경인 것을 보시고는 대노를 하셨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도경 서고를 정리하기 위해 학사들을 모은 것일세.”
명수의 설명에 오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서고를 정리할 학사를 모으는데 공문까지 보냈다는 말입니까?”
“그게 고작이라고 할 경지가 아니네. 가서 보게 되면…… 휴!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네. 서고에 있는 서가란 서가에는 도경들이 가득 차 있고, 서가에 꽂을 자리가 없는 도경들은 이리저리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네.”
“그 정도입니까?”
“자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네.”
오태석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명수의 눈에 해검지를 향해 다가오는 한 학사가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너무나 힘겹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중년인의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에 명수가 물통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명수가 호불위 사형을 뵙습니다.”
호불위가 속가제자로 입문한 것이 명수보다 먼저이기에, 명수가 호불위에게 예의를 표했다.
엄격한 무당의 규율은 본산의 제자라해도 속가제자들의 배분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명수의 인사에 호불위도 포권을 했다.
“오랜만이네.”
“올해 원정(元正)에 뵈었으니 반 년만이군요.”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
둘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힘들게 호흡을 이어나가던 호현은 명수가 들고 온 물통을 보았다.
‘무, 물이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산을 오르느라 타는 갈증에 목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눈앞에 물통이 보이자 호현이 급히 명수에게 다가갔다.
“무, 물 좀…….”
호현의 갈라진 목소리에 명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통에서 물을 떠서 건네주었다.
“벌컥! 벌컥!”
급하게 물을 마시는 호현에게 명수가 말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커억! 콜록! 콜록!”
명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이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 냈다.
“이거 참……, 사레 걸립니다.”
기침을 하는 호현을 보며 고개를 저은 명수가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툭! 툭! 툭!
기침을 해대는 호현을 보며 호불위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내 등에 업혀 왔으면 얼마나 좋나. 괜한 고집을 부려서는…….”
“휴! 어찌 당당한 사내대장부가 자기 두 발 놔두고 남의 등에 기대어 산을 오른단 말입니까?”
“마음대로 하게.”
명수가 준 물을 먹고 나니 이제 어느 정도 살 것 같은 호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검지 주위에는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한 학사들 십여 명이 쉬고 있었다.
‘나 말고도 학사들을 더 모은 건가?’
“무당파에서 저 같은 학사들을 많이 모으는 모양이군요.”
호불위도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호현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직 옆에 있는 명수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학사들을 모으는 것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나?”
호불위의 물음에 명수가 오태석에게 해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호현이 급히 물었다.
“도경들이 창고 하나 가득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세상에, 도경이 창고에 가득하다니…….’
도경이 가득 차 있는 서고를 떠올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스승인 죽대 선생이 도경이나 불경 등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보고 싶어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런 도경들이 창고에 하나 가득 있다니…….
도경들로 가득 차있는 서고를 떠올리자 호현의 몸이 달아올랐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서 올라가시죠.”
방금 전까지 더위 먹은 개처럼 핵핵거리며 힘들어 하던 호현의 서두르는 모습에 호불위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힘이 솟나보군.”
“도경들이 서고에 가득이라잖습니까.”
방헌에서 균현까지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호현이 도경이나 불경 등을 좋아한다는 것을 들었던 호불위가 물었다.
“도경이 그리 좋나?”
“그럼요.”
‘무공비급도 아니고 답답한 철학 이야기나 가득 들어있는 도경이 뭐가 그리 좋다고……. 학사란 존재는 알 수가 없군.’
호불위도 무당파에서 수련하던 시절에 속가제자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노자도덕경을 읽은 적이 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어야 했던 그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며 호불위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군.’
그런 호불위에게 호현이 재촉했다.
“어서 움직이시죠.”
“휴! 자네를 데리고 언제 무당파에 도착할는지…….”
“네? 무당파에 다 온 것이 아닙니까?”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무당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해검지일세.”
“초입? 그럼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해검지는 무당파로 오르는 중간에 위치해 있네. 그러니 지금까지 올라온 만큼 더 올라가야 무당파가 보일 걸세.”
그 말에 호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여기가 고작 절반이라고?’
핏기가 가신 호현을 보며 호불위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무당파에서 계단을 만들어 놨으니, 조금은 수월할 것이네.”
‘계단이 있다고 그 거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에구! 나는 죽었다.’
속으로 한숨을 쉬던 호현은 애써 마음을 다 잡았다.
오르고 오르다보면 산의 정상에 오르는 법이요
걷다 걸으면 길의 끝이 나오는 법이라
멈춰 있으면 영원히 그 자리이나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새로운 자리에 도착하리라
속으로 시 한 수를 읊으며 마음을 잡은 호현이 호불위에게 말했다.
“가시죠.”
“그러세.”
호불위가 걸음을 옮기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속가제자들과 학사들도 무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