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6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6화
호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 죽대 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호불위를 향해 말했다.
“무당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균현에 있으니…… 여기서 거리로만 따지면 사백 리 길이 조금 넘을 것입니다.”
“흠!”
사백 리라는 말에 고민이 되는지 죽대 선생이 수염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나이에 그런 먼 길을 움직이는 것은 좀 그렇군. 귀찮기도 하고 말이야.”
‘태청신단을 받으러 가는 길이 귀찮아?’
만약 호불위 자신에게 태청신단을 줄 테니 받아 가라는 말을 한다면, 만 리 길이 아니라 불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태청신단을 얻으려고 하는 자가 고작 사백 리 길이 멀다고 귀찮아하다니. 열이 올라 속이 점점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호불위였다.
“표국 사람들을 보내면 성의가 조금 없어 보이니, 차라리 제가 직접 가서 받아 올까요?”
호현의 말에 죽대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군.”
“그리고 선물도 하나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빈손으로 가서 보약을 달라고 하면 청경진인 성격에 화를 내실 듯도 한데…….”
“하긴 청경 말코가 욱하는 것이 있기는 했지.”
“뒤끝도 좀 있으셨지요.”
“그랬지. 그런데 흐흠, 선물이라…….”
청경진인에게 보낼 선물을 고민하는 죽대 선생을 보며 호현이 말했다.
“아니면 이번에 무당에서 학사가 필요한 일이 있는 듯하니, 제가 그 일을 좀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현의 말에 죽대 선생이 미간을 좁혔다. 도사들에게 자신의 제자가 부림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읽은 호현이 급히 말했다.
“태청신단을 얻어 오려면 어차피 무당에 가서 청경진인을 만나야 합니다. 간 김에 스승님의 옛 지인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도 제자의 당연한 소임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어려움에 처한 지인을 돕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지 않는 것은 군자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 그런데 네가 가면 학사들의 도경 수업은 어찌하느냐?”
죽대 선생이 비록 대석학이기는 하나 도경 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시에 나올 만한 도경 수업은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금 총관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얼굴이 붉어진 호불위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이 잘 풀릴 모양입니다.”
자신의 말에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얼굴이 굳어져 있는 호불위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던 금 총관이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죽대 선생은 호현을 무당파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호불위를 향해 말했다.
“우리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굳이 설명은 하지 않겠네. 무당파에는 언제 갈 것인가?”
죽대 선생의 말에 호불위가 힐끗 호현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어린 학사가 능력이 있기는 한 건가? 괜히 본산에 데리고 갔다가 어디서 이상한 놈을 데려 왔다고 꾸중만 들으면 큰일인데……. 아니야, 청경 사숙과 저 늙은이가 절친한 사이일 수도 있어. 하긴 절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청경 사숙이 그 귀한 태청신단을 내놓았을 리가 없지. 그러면 능력이 안 돼도 청경 사숙의 입김이 있으면 무당에서 저 어린놈을 고용할 수도 있겠어.’
능력보다는 인맥이라는 생각을 한 호불위가 말했다.
“학사님만 준비 되시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네.”
호불위가 호현을 미덥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금 총관이 웃으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일이 잘 되려고 하니 모든 게 술술 풀리는군요. 이게 다 국주님이 평소에 쌓으신 공덕 덕분인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호현 학사가 무당파에 고용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말입니다.”
“하긴 청경 사숙의 입김이라면 학사 하나 고용 시키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겠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서 왜 청경진인의 이름이 나옵니까? 아! 국주님은 혹시 호현 학사님에 대해 모르십니까?”
“내가 알아야 하는 이름인가?”
“세상에! 어떻게 방헌에서 표국을 하는 국주님이 호현 학사를 모르십니까? 아까 제가 호현 학사와 한 이야기도 들으셨잖습니까?”
“이야기?”
“제가 호현 학사를 거인(擧人)이라고 했잖습니까?”
“거인?”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불위의 모습에 금 총관이 한숨을 쉬었다.
‘어찌 무식해도 이리 무식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거인이라는 말의 뜻조차도 모르다니.’
호불위를 보며 금 총관이 호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아홉 살에 동시를 합격하고 열넷에 원시 합격, 작년 열일곱의 나이에 향시까지 합격한 천재 학사가 바로 저 호현 학사입니다.”
거인은 몰라도 향시에 대해서는 아는지 호불위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그러고는 호현을 놀람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저리 어린 사람이 향시에 합격을 해?’
제1-3장 무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놀람에 찬 눈으로 호현을 보던 호불위가 금부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향시를 합격했다고? 저 어린 학사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제 저 호현 학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시겠습니까? 무림인으로 따지면 열여덟 나이에 절정 고수에 이른 것과 같은 겁니다.”
“절정 고수? 그럼 천재라는 말인가?”
깜짝 놀라는 호불위를 향해 금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천재라는 말도 약합니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금 총관의 말에 호불위가 호현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저 학사의 눈동자에서 총명함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군. 아! 향시까지 합격한 학사라면…… 흐흐흐! 무당파에 고용되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틀림없겠군.”
‘애송이가 아니라 복덩어리였군.’
죽대 선생과 이야기를 하던 호현은 갑자기 몸에 이는 오한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빨아먹을 듯 바라보는 호불위를 볼 수 있었다.
‘저 사람, 왜 나를 저렇게 보는 거지?’
호현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호불위가 물었다.
“호현 학사,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는가?”
“갈아입을 옷들만 몇 벌 챙기면 됩니다.”
“알겠네. 그럼 학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준비가 되면 나오게나.”
호불위가 금 총관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죽대 선생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호불위에게 주려던 서찰과 함께 호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노자로 쓰거라.”
죽대 선생이 건네주는 주머니를 본 호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에 죽대 선생이 아차 싶었는지 슬며시 호현의 눈치를 보았다.
“어디서 나신 돈이옵니까?”
‘이런…….’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하는 죽대 선생을 보며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동생(童生)들이 낸 수업료는 학관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여기저기에 밀린 빚을 청산하느라 대부분이 쓰였다. 그래서 죽대 선생에게는 아직 돈을 주지 않았다.
즉, 죽대 선생은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 주머니를 내밀다니……
‘스승님의 비상금이로군.’
학관에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비상금을 축적했다는 사실을 추궁하고 싶었지만, 그 비상금을 노자로 내놓았으니…….
‘휴! 이대로 넘어가야겠군.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스승님이 비상금까지 내주신 것이니.’
변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아무거나 트집을 잡아 불호령을 내려 일을 덮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우물쭈물하는 죽대 선생을 향해 호현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스승님이 주신 노자, 감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응? 응! 그, 그래. 몸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되도록 빨리 돌아오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보중하십시오.”
고개를 숙여 보인 호현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죽대 선생의 말이 뒤에서 들려왔다.
“잡학은 잡학일 뿐이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거라.”
죽대 선생의 말에 잠시 멈칫했던 호현이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죽대 선생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녀석……. 도관에 간다니 너무도 좋아하는군.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휴가라 생각하고, 돌아오면 더욱 성심을 다해 학문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한림원 대학사까지 지낸 죽대 선생이다. 그 학문과 식견이 범상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구중심처인 황궁에 있는 한림원이다. 학문 익히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는 학사들의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도 모략은 존재한다.
그런 곳의 수장을 지낸 죽대 선생이다 보니 제자의 생각 정도는 손금을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평소 유학 이외의 학문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죽대 선생이, 그럼에도 호현을 무당파에 보내기로 한 것은 제자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막아서 그런 것인지, 호현은 도경과 불경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그동안 늙은 자신을 보살피며 학관 살림을 하느라 힘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호현을 무당파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에는 몸보신을 위한 태청신단도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천리마도 매일 달리면 지치는 법. 게다가 아직 어리니 휴식을 통해 더 높은 경지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죽대 선생이 문득 내실 한쪽에 있는 서가에 다가갔다.
서가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던 죽대 선생은 곧 제목이 적히지 않은 서적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표지는 깨끗한 새것이지만 그 안은 매우 낡은 고서적이었다. 표지만 죽대 선생이 새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무명서적을 보던 죽대 선생이 책을 펼쳤다. 새 표지가 넘어가자 원래의 표지로 보이는 낡은 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진도해』
한림원에 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서적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전진교, 무림에는 전진파로 알려진 도가 일맥의 유산이었다.
한림원 서가에 꼽혀 있는 것을 죽대 선생이 남몰래 빼돌린 것이다.
물론 이 전진도해라는 서적이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빼돌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유학을 공부해야 할 한림원 학사들이 있는 곳에 버젓이 도교 서적이 꽂혀있는 것이 못마땅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빼낸 것이다.
파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고서적을 좋아하는 죽대 선생인지라 차마 파기는 하지 못하고 호현이 보지 못하게 표지만 새로 해서 서가에 보관을 해두었다.
전진도해를 훑어보던 죽대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너무 현실적이지 못하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쯔쯔쯔! 인간의 몸으로 신선이 되기를 바라다니. 하늘과 뜻을 통하며 천인합일의 경지를 이루라? 어이가 없군. 어찌 인간이 하늘과 뜻을 통한다는 말인가?”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천인합일을 거론하는 전진도해를 보던 죽대 선생이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듯 책장을 덮었다.
“이런 교리를 가지고 있으니 망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전진도해를 서가에 꼽은 죽대 선생이 문득 방을 둘러보았다.
“호현 그 작은 놈이 없다고 벌써 방 안이 썰렁해 보이는구나. 그 어린 녀석이 벌써 내 품을 벗어날 때가 된 것인가?”
비록 며칠뿐이지만 늘 옆에 있던 호현이 없다는 생각에 문득 외로움을 느끼는 죽대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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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성 균현에 위치한 무당산에 일단의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무당산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중원의 영산이라는 표현과 빼어난 경치다.
하지만 문제는 빼어난 경치를 가진 명산치고 험하지 않은 산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험한 산세는 백면서생인 호현에게는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 있었다.
“헉헉헉! 국주님,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호현의 물음에 호불위가 입맛을 다시며 그를 돌아보았다.
“자네 걸음으로는 한 시진은 더 가야 할 듯하네.”
한 시진이나 더 가야한다는 말에 호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