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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2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당학사 2화

‘오늘 하루는 무척 분주할 듯하니, 일단은 배부터 채워야겠다.’

 

호현의 젓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

 

*

 

죽대 선생이 동생(童生)들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죽대 선생은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대석학이다. 그런 사람이 십 년 동안 한 명의 학사들도 들이지 않다가 갑자기 동생(童生)들을 가르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호북에 사는 학사들, 그중에서도 특히 동생(童生)들의 입장에서는 가뭄에 소나기가 쏟아진 격이나 다름없었다.

 

대석학인 죽대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학사들에게는 한 가지 이로운 점이 더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죽대 선생이라는, 일종의 대단한 간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원시를 볼 때 감독관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누구라도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죽대 선생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같은 점수를 받은 학사들 중에 죽대 선생 밑에서 수학을 한 학사가 더 이로울 것은 분명하다.

 

하여튼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리자 방헌학관을 향한 동생(童生)들의 두들김이 계속 되었다.

 

방헌학관은 연일 찾아오는 동생(童生)들로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학관에 있던 네 개의 수학실(修學室)은 이미 만원이 되었고, 이로 인해 미처 수학실에 들어가지 못한 학사들은 임의로 마당에 천막을 쳤다.

 

죽대 선생은 몰려든 학사들로 인해 터지기 일보 직전인 학관을 학사의와 학관까지 차려 입은 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피곤함이 짙게 깃들어 있었다. 한림원에서 학사들을 가르쳐 본 적도 있고, 개인적으로 제자를 들여 가르쳐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백 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가르침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시루 안의 콩나물처럼 우글대는 학사들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던 죽대 선생은 뒤에 있는 호현을 보며 말했다.

 

“현아, 이곳이 시장터이냐?”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이 학사들이 조용히 학문을 익히며 마음을 수양하는 학관이 맞느냐는 말이다.”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당연히 학관이 맞습니다. 그러니 학사들이 이처럼 모여서 수학(修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허…… 수학이라니. 저렇게 번잡한 데서 어찌 수학이 되더란 말이냐? 모름지기 수학이란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담는 것이지요.”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호현의 모습에 죽대 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그것을 잘 아는 네가 어찌 이렇게 학사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이냐? 지금 저런 상태에서 학사들이 옛 성인들의 말을 마음에 담을 수 있겠느냐?”

 

“그래도 어찌하겠습니까? 스승님의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을 받고자 천리 길이 멀다 않고 왔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금과옥조는 무슨……. 모두 원시(院試) 때문에 모였다는 것을 내 다 알거늘.”

 

“원시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학을 하고자 모인 것은 맞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들 덕에 이제 더 이상 죽순 요리는 드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죽순이라는 말에 죽대 선생이 헛기침을 했다.

 

호현의 말대로 동생(童生)들이 학관에 들어온 이후 반찬의 질과 종류가 확실히 좋아졌다.

 

그것은 이러한 번잡한 일로 인해 죽대 선생이 느끼는 딱 한 가지 좋은 점이었다.

 

“에잉! 내가 네 녀석을 잘못 가르쳤구나. 스승의 말에 한 치도 물러섬이 없어!”

 

자신의 말에 계속 토를 다는 호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죽대 선생은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수업을 하기 위해 동생(童生)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죽대 선생에게 호현이 슬며시 말했다.

 

“매난국죽, 네 방의 문을 모두 떼어 냈습니다.”

 

“문을?”

 

“문을 떼어 내고 그 앞에 있는 마루에서 강연을 하시면 네 방 안에 있는 모든 학사들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室)을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시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편하실 것입니다.”

 

“흐흠, 알겠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학사들에게는 제가 강연을 할 생각입니다.”

 

“네가?”

 

“이번에 원시(院試)가 치러지는 부(府)의 시험에 도교 경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도교 경전이라는 말에 죽대 선생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떤 놈이 책임자이기에 국가의 중대사인 원시에 감히 도교 경전을 사용한다는 말이냐. 옛 성현의 말을 깨우치고 마음에 담으려면 평생을 전진해도 모자라거늘! 대체 누구냐? 이번 원시의 책임자인 학원(學院)의 원주(院主)가!”

 

“동진 학사로 알고 있습니다.”

 

“동진? 설마 풍소경 그 미친 늙은이의 제자라는 그 동진?”

 

“맞습니다.”

 

“허! 풍소경 그 미친 영감이 이제는 제자들까지 시켜서 유림의 전통을 훼손하려 하는구나.”

 

풍소경은 죽대 선생이 한림원에 있을 때 경쟁자 관계에 있던 유림의 거두다.

 

문득 풍소경을 욕하던 죽대 선생의 얼굴이 구겨졌다.

 

“네가 도경에 대해 강연을 하겠다는 말은…… 설마?”

 

죽대 선생의 말과 표정을 지켜보던 호현의 얼굴에 낭패함이 어렸다.

 

‘이런!’

 

“설마 그리도 누누이 일렀건만, 그동안 내 눈을 속이면서 도경을 보고 있었다는 말이냐?”

 

죽대 선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경지에 이르기도 전에 다른 데 시선을 파는 것이다.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한 자가 다른 것을 파고드는 것을 방만함이라 여기는 것이다.

 

죽대 선생의 눈에는 호현의 학문은 그 경지가 아직 미완이었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파문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예전에 호현은 도교와 불교 경전을 보다가 죽대 선생에게 파문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죽대 선생은 유교 서적이 아닌 다른 책을 볼 경우 파문을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스승님께서 내린 엄명을 거역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네가 도경을 강연하겠다는 것이냐?”

 

“얇은 지식이나마 예전에 노자도덕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호현이 본 도경은 노자도덕경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승인 죽대 선생이 서점에 심부름을 보내면, 하루 종일 그곳에 죽치고 앉아 도경과 불경을 닥치는 대로 봤던 것이다.

 

스승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잘못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도경과 불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 스승인 죽대 선생이 대노를 할 것이 뻔하니 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스승님이 도경에 대해 가지고 계신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천리 먼 길에서 온 저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호현의 설명에 죽대 선생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냐?”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동안 저를 어떻게 보신 것이옵니까?”

 

“흠, 너를 잘 아니 묻는 것이다.”

 

죽대 선생이 마당에 있는 학사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동생(童生)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 내 밑에서 수학한 자들이 원시에서 떨어지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지. 어쩔 수 없군. 네가 아는 도경 지식이라도 저들에게 알려 주거라.”

 

“알겠습니다.”

 

죽대 선생이 동생(童生)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관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며 호현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마당으로 향했다.

 

*

 

*

 

*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한 짙은 눈썹을 가진 호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학사들을 훑어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눈에서 자신을 깔보는 듯한 생각을 읽은 것이다.

 

‘배움을 청하러 온 자들이 외양만 보고 사람을 업신여기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들을 내쫓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학관에 수업료를 내고 들어온 자들이니 그럴 수는 없었다.

 

이들이 낸 돈으로 오씨 부부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죽대 선생의 밥상에 고기를 올릴 수 있었다.

 

고기반찬이 올라오자 아이처럼 좋아하던 죽대 선생을 떠올리며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내가 향시에 합격했을 때보다도 더 좋아하시다니.’

 

호현이 향시에 합격한 것은 작년, 그가 열일곱의 나이였을 때다. 열일곱의 향시 합격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에 호현은 스승인 죽대 선생도 좋아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죽대 선생은 당연한 일을 가지고 왜 그리 수선을 떠느냐며 화를 내셨다.

 

하지만 며칠 후, 호현은 죽대 선생의 서재에서 자신의 향시 합격증서가 족자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자가 자만에 빠질 것을 염려해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호현의 향시 합격을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바로 죽대 선생이었다.

 

‘밥상에 계속 고기반찬을 올리려면 이들을 가르치는 수밖에…….’

 

스승님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위해 참기로 한 호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스승님이 주문해 놓은 고서적들에 대한 값도 치러야 하고 말이야.’

 

이들이 내는 수업료가 없으면 고기반찬은커녕 스승님이 주문해 놓은 곰팡이 슨 고서적들을 뜯어먹어야 할 상황이다.

 

입맛을 다신 호현이 학사들을 향해 말했다.

 

“입관 상담을 하실 때 저를 보셨으니 따로 예의는 차리지 않겠습니다. 죽대 선생님의 제자 호현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제 도경에 대한 강의를…….”

 

“그전에! 자네, 우리를 가르칠 능력은 있는 건가? 우리는 죽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거지, 자네와 놀아주려고 온 것이 아닐세.”

 

“그래, 맞아.”

 

“자네 말고 죽대 선생님을 모셔 오게!”

 

학사들이 보내는 야유에 호현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향시까지 합격한 거인(擧人)이다. 그런 자신이 향시도 아니고 원시 시험을 보기도 전인 학사들에게 왜 이런 야유를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여러분들의 도교 강의는 제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지금 다른 분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앞줄에 앉아 있던 반백발의 노학사가 입을 열었다.

 

“좋네. 우리가 늦게 와서 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죽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겠지.”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을…….”

 

“하지만 그전에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묻겠네. 태극이 뭔가?”

 

노학사의 물음에 호현이 눈을 찡그렸다.

 

“지금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네. 최소한 우리를 가르칠 자의 능력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나보다 못한 자에게 배우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것은 아닐세.”

 

노학사의 대답에 호현은 학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답변을 하면 당장이라도 이런저런 반박을 하려는 듯 입술이 달싹거리고 있었다.

 

‘가르침을 청하는 자들이 어찌 이리 건방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루를 가르쳐도 저들에게는 내가 스승이 되거늘!’

 

엄격한 스승 밑에서 자라 스승 보기를 하늘같이 여기는 호현으로서는 눈 앞에 있는 자들의 행동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무례한 것이었다.

 

호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태극에 대해 물으셨습니까?”

 

“그러네. 자네가 생각하는 태극을 이야기 해 보게.”

 

노학사의 말에 호현이 노자도덕경을 떠올렸다.

 

‘되도록 쉽게 설명해야겠구나.’

 

도교의 핵심이자 기본인 노자도덕경과 태극을 떠올린 호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물은 음(陰)을 받치고 양(陽)을 포용하여 조화를 이룹니다. 물처럼 행동하고 물처럼 생각하니 태극은 물과 같다 생각합니다.”

 

호현의 말에 노학사가 비웃음을 흘렸다.

 

“하! 말은 번드르르하군! 허나! 태극은 음양의 이치이네. 태극은 물과 같다고 누가 그러던가? 물이 있으면 불이 있고 바람이 있으면 땅이 있듯…….”

 

노학사의 말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한 태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도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기는 한 것인가?’

 

도경의 기본 서적인 노자도덕경, 그중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했음에도 노학사가 이해를 못하니 절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호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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