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3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6화
236화. 진실을 말해 주다
이각(二刻) 전. 자청옥검의 행태를 가만 살펴보던 천강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심안(心眼)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곧 몇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미움, 살심, 단호, 두려움, 기대. 』
기대?
앞의 네 감정은 이해할 수 있다. 남궁선에게 후계 자리를 빼앗겼으니 필연적으로 느낄 만한 부분.
그러나 마지막이 이해가 안 갔다. 기대감이라니?
그녀의 몸 곳곳을 티 나지 않게 내기로 살핀 천강은 자청옥검의 품 안에 있는 병 하나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당가나 제갈 출신도 아니면서 병을 들고 다닌다?
그때 천강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탐(貪).
- 음? 재미있네. 꽤 강력한 독이잖아? 톡 쏘는 게 필요했는데 맛있겠다.
탐을 통해 자청옥검이 음식에 독을 탈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한 천강은 고심에 잠겼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해서.
- 그냥 지금 처리해버리는 게 어떠하냐.
- 아니면 사실을 말하세요, 소년.
'아니.'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사실을 말한다 한들 내 말을 믿어준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믿더라도 가족이라 모질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죽여 버리기엔 아직 밝은 대낮.
- 그럼 그냥 날 보내라. 내가 감쪽같이 먹어 치워 이 세상에 흔적 하나 없게 할 테니.
탐의 대답에 잠깐 끌렸으나 천강은 그조차도 거부했다.
대신 은밀히 내기를 방출하였다. 탐이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에 양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으나, 곧 그들이 있는 공간 안으로 천강의 내기가 자욱이 깔리게 되었다.
'북명신공의 내기는 참 특이하지.'
대자연의 기라 할 순 없지만 그와 매우 흡사하다. 굉장히 깨끗해 도사들의 내기보다도 정순하고 영물의 것과 비등할 정도로.
그에 천강이 내기를 방출해 방에 가득 쌓아도 함께 있는 이들은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와중에 천강이 주의할 일은 그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보통 기에는 의지가 심어지곤 하기에, 기의 주인이 특정 감정을 띠면 그게 전염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는 음식들.
- 병이 사라졌느니라.
천강은 티 나지 않게 음식을 먹어보았다. 과연 혀끝이 알알한 게 독이었다. 그것도 천강에겐 꽤 낯이 익은.
***
"젠장. 하필 저년의 방해 때문에!"
자청옥검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음존이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이번 일을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음존이 흑살마신의 뒤통수를 깐 바람에 독을 섭취하지 못한 것으로 오인했다.
그러나 피식 미소를 흘리는 천강.
"멍청한 거야,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거야?"
"뭐?"
천강은 대답을 주는 대신 음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하나씩 목구멍 뒤로 넘기기 시작했다.
"이야. 맛있네. 이거 미안하게들 됐수다. 독이 들어서 이 맛난 음식을 나밖에 못 먹네."
"어, 어떻게. 그건 현경조차도 중독시키는……."
"무형지독이라고?"
철렁. 자청옥검의 동공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음식을 먹으며 눈웃음을 짓는 천강의 두 눈을 직시하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세상의 그 어떤 독을 준비해왔더라도, 아니 그 어떤 계책을 준비해왔더라도 저자에게는 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럼 지금 우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맞아. 지금 이 공간에는 내가 방출한 내기가 가득 차 있어. 너흰 음…… 굳이 표현하자면, 흑살마신이라는 연못에 몸을 담그고 있는 물고기라 할 수 있지. 강물이 허락하지 않는데 어찌 그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헛소리!"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저 말이 사실이라 해도 말이 안 됐다.
어떤 인간이 그 정도로 내기가 많을 수 있단 말인가?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참네. 눈으로 보고도 못 믿으면…… 그래! 그럼 이렇게 하면 믿어주려나?"
천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청옥검이 몸을 움직인다. 그녀는 천강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 앞에 넙죽 엎드렸다.
그냥 엎드린 정도가 아니라 이마를 바닥에 바짝 붙인 채.
"무, 무슨……."
"이제 믿겨?"
"이런 치욕! 네놈, 죽여 버리겠다!"
"믿겠어, 못 믿겠어? 그것만 말해. 뭐 못 믿으면 더한 걸 체험시켜주는 수밖에 없는데."
흠칫. 몸을 한 차례 떤 그녀의 입이 조용해졌다. 이제야 본인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된 듯하다.
현경답게 어느 정도 내기를 회복한 천수향이 목을 좌우로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주먹을 쥐고 자청옥검에게 다가가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천강이 남궁세가 가주 앞으로 가 섰다.
"이번 대 남궁세가의 가주여. 믿기 어렵겠지만 난 흑살마신이다. 나와 대화할 요량이 있다면 그 독을 풀어주겠다."
"……."
"솔직히 남궁선을 생각하면 그냥 풀어주고 싶은데, 괜히 풀어주고 내 손으로 다시 숨을 거두느니 미리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대로 놔두면 부인에게 독살당한 거지만, 천강이 손을 쓰고 나면 천강이 죽인 꼴이지 않은가?
괜히 귀찮은 은원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은 천강이었다.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남궁세가의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찌 됐든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니 그 제안에 응하겠다. 그러나 마교에 협력하라느니 하는 개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그냥 죽이는 게 그대에게 좋을 것이다."
"그런 걱정은 마라. 중원은 물론, 네 부인과 아들까지 연관된 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 말이야."
***
"가가! 설마 저따위 마인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죠!"
신교의 전대 교주가 같은 독으로 독살을 당하고, 이후 여울나무라는 배신자 무리와 싸우는 일부터 그 승리를 거두기까지.
그 흑막이 태감(太監)인 것과 무림 전체가 그 수중 안에 떨어져 있으며, 마교가 그걸 저지하기 위해 배신자들을 쓸고 있는 부분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선환을 통해 언제든 마교와 같은 일이 중원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소상히 이야기를 전해 들은 무림맹주 남궁태우의 얼굴은, 나름 감정을 숨기고 있음에도 그것이 얼굴 위로 표출되고 있었다.
"그럼 각 문파의 본가가 습격을 당한 것도……."
"그래. 태감이 키워낸 사신이라는 자객들이 돌아다니며 벌이는 일이지. 암존과 그 세력이 추격을 벌이고는 있는데 영 성과가 별로인 모양이야."
천강은 일부러 암존의 이름을 팔아먹었다.
그 효과가 제법 괜찮았던지, 남궁태우의 눈에 믿음이 살짝 올라간 게 느껴졌다.
"이 일을 아는 존자들과 왕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르쳐 줄 수 있나?"
"어렵지 않지. 지금 옆에 있는 음존과 암존, 왕 중에는 사자왕과 미오왕이 알고 있다."
"그럼 그들에게 부탁을 하면 되지 않나?"
존자들과 왕들은 알게 모르게 무림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남궁태우는 그 부분을 언급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나머지 왕들과 존자들에게도 내가 도움을 취해보겠다."
역시 무림맹주라 그런가. 인맥이 좋구만.
"근데 그러지 않는 게 좋을걸."
"그건 무슨 의미지?"
천강이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일단 광존은 음존이 죽였다."
"광존을?"
"그리고 사자왕은 내게 투항했지. 둘 다 태감 쪽 편이었단 의미다."
즉,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알 수 없다는 뜻.
무림맹주답게 그가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는 신음을 흘렸다.
음.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는데.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데.
"그리고 다섯 존자 중 하나인 지존이 태감(太監)이다."
그건 엄청난 이야기였다.
음존을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 한쪽에 포박돼,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던 배신자들조차 그 사실에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지존이……?"
"그래. 그게 다가 아니야. 녀석의 경지는 생사경이다. 그를 넘어설 자는 이 중원에 없다고 봐도 좋을 거야."
굳이 뽑자면 천존 정도. 그러나 천강은 일부러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천수향 또한 천강의 의도를 알아듣고는 그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하는 남궁세가 가주.
'충격이겠지.'
다섯 존자 중 하나가 무려 무림을 파괴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뒤에서 무림인들을 죽이고 다녔다고 하니.
천수향에게 들어본즉, 지존은 그 명성이 자자한 이로 무림이 곤란할 때 꽤 여러 차례 나서 도움을 주곤 했었다고 했다.
중원에서 그의 인지도가 꽤 좋게 퍼져있을 정도로.
굳건히 닫혀있던 남궁태우의 입이 움직였다.
"……많이 강한가?"
"심검(心劍)이라고 들어봤어?"
끄덕. 마른침을 삼키는 그에게 천강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에도 당사자 동의 없이 그 이름을 팔아먹으며.
"미오왕이 단 일격에 중상을 입었다. 거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의지만으로 베는 그 검을 현경들은 막지 못해."
"그 말은…… 이미 무림을 구할 방도는 없다는 뜻으로 비치네만."
"뭐 그렇긴 한데, 아직 녀석도 온전한 생사경은 아니더라고. 본인도 그걸 아는지 천산에서 허겁지겁 도망가 자취를 감춘 상태지."
천산에서 도망을 쳤다는 사실에 약간의 희망을 느낀 남궁태우가 찻잔을 기울였다. 목이 마른지 단숨에 들이켠 그가 물었다.
"좋다. 비록 흑살마신 그대의 말만을 믿고 따를 순 없으나, 어찌 됐든 나와 남궁선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와 음존께서 보증을 하는 만큼 한 번 믿어보지."
그러고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천강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래서 이제부턴 어찌할 생각인가?"
"안 그래도 그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는데. 달포 정도 북경으로 갔다 올 거야."
"달포라……."
"아마 다른 장문인들도 자신들의 본가가 걱정이 돼서 갔다 오려고들 하고 있겠지. 아냐?"
남궁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이자는 모르는 게 없구나.'
아니, 오히려 무지한 건 나였던 걸까? 무림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사실 남궁세가 가주를 포함해 각 가문에서는 배신자들로 인해 외부에 눈 돌릴 시선이 없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모든 건 변명.
남궁태우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천강이 그 속내를 알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달포 후에 집결지인 무림맹에서 만나자고.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또 하도록 하고."
"그러지."
"그럼 애들아, 가자."
천강이 일행들과 함께 방을 나섰다. 남궁태우는 주저주저하다, 나가고 있는 천강에게 나직이 말했다.
"고맙다."
"별말씀을."
밖으로 나서자마자 천수향이 바짝 다가와 묻는다.
"그런데 왜 배신자들의 처우는 안 물어본 거야?"
그녀는 혹여나 남궁태우가 그들을 살려주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 마. 무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 맹주까지 오른 자야. 공과 사 구분은 확실하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도 가족이라 다를 수도 있잖아."
그러나 심안(心眼)으로 본 천강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남궁세가 가주의 감정은 이러했다.
『 후회, 애탐, 사랑, 각오, 결심, 희생, 대의. 』
방출했던 내기가 스르륵 천강에게로 되돌아온다. 그것들은 방 안에 있던 두 모자의 죽음을 천강에게 알려왔다.
아마 나머지는 혹한 고문 끝에, 자신이 아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까지도 다 분 후에나 죽을 수 있으리라.
'아무튼 이로써 현 남궁세가 가주에게도 빚을 지운 셈인가.'
천강의 시선이 한사와 남궁선에게 향했다.
"너희들도 뭔가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남궁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목숨을 구명 받고, 이후엔 여러 도움을 받았다. 특히 최근에 천강으로부터 무당의 검을 가르침 받은 이후로는 가히 호감이 최대치에 다다른 그였다.
남궁선에게 천강이 마교인인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흑살마신이라는 사실은 꽤 놀라웠지만.
그러나 한사는 다른 모양이었다. 한사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천 형. 나 나중에 마교 한 번 데려가 주면 안 되오?"
"뭐? 왜?"
"듣기로는 마교의 여인들이 그렇게 매력이 넘친다 들었소! 솔직하고 활기차고 색다르다고!"
"뭐…… 그렇지?"
솔직하기보단 남자마냥 직설적이고, 활기차기보단 힘이 차고 넘쳐 주먹이 앞선다는 게 문제지만.
"네 말대로 색다르긴 하겠다. 좋아. 원한다면 아예 여자를 소개해 주마."
"천 형!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요!"
"걱정 마라. 너나 나중에 나 원망하지 마."
한사가 환호성을 내지른다.
남궁선이 부러운 눈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고, 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원의 물이 얼마나 좋은지를 모르는구만.'
그건 그렇고, 누가 좋으려나. 아무래도 연상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화정마녀 정도가 좋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