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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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5화
235화. 배신자들의 최후
북경?
"갑자기 북경은 왜? 설마하니 태감을 잡으러 가자는 건 아니지?"
묵현이 자신을 뭐로 보느냐는 듯 눈을 반만 떴다.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태감(太監)이 사신 시술을 받았다는 것이지."
"뭐? 그 말은……."
"이젠 태감이 사신처럼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몸은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해졌다는 뜻이다."
천강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신검과 신물(神物)을 들고 있을 적에도 간신히 잡은 녀석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문제는 사신 백여 명을 만들 수 있는 양을 집어넣어, 얼마나 강할지 예측이 전혀 안 된다는 거다. 우린 그 약점을 캐러 갈 생각이다."
"그래 좋아. 언제라도 태감과 맞붙을 수 있는 만큼 준비해 두는 게 맞겠지. 그런데 천천히 알아봐도 되는 거 아냐?"
할 일이 많다. 우선순위를 따져볼 때 그보다 급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당장 신선환의 문제를 제대로 알릴 필요도 있었고, 무림인들을 하나로 뭉치는 작업도 진행되어야 했다.
설치고 돌아다니는 사신 녀석들 처리 또한 마찬가지.
"좀 귀찮지만 한동안 도망 다니면 돼."
녀석이 그 시술을 받았다는 건, 잔챙이들이 걱정돼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존자들과 왕, 그리고 교주와 자신 때문일 터.
천강은 녀석으로부터 얼마든지 도망 다닐 자신이 있었고, 설령 녀석이 천산으로 넘어온다고 해도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신 시술을 했건 어쨌건, 신물(神物) 앞에서 그는 장비 하나 안 갖추고 홀딱 벗은 몸이나 매한가지니까.
그러나 묵현의 이어지는 말에 천강은 그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검은 가루에 대한 비밀을 아는 자가 한 달 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우린 그전에 그와 접점을 가져야 한다, 천강."
***
결국 묵현과는 내일 출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의도치 않게 이야기가 길어진 탓에 시간이 늦은 걸 확인한 천강은 천수향과 서둘러 남궁세가로 향했다.
"맹주, 미안. 일이 있어 좀 늦었어."
"아니오. 이번 용봉지회에 도움을 주어 도리어 고맙소이다, 음존."
천수향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남궁태우의 시선이 천강에게 향한다. 그는 속으로 꽤 놀라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모를 인물이군. 내기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그 정도의 강함이라니.'
보통 외공 고수라 해도 내기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따로 심법을 수련하지 않더라도 몸에 천천히, 하지만 그 어떤 기보다도 정순한 기가 축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에게선 그 어떤 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선전 때는 잘못 봤나 생각했고, 본선에서는 거리가 있어 제대로 못 느꼈나 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전혀 느껴지는 게 없었다. 마치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게 신기루라도 되듯.
그렇게 남궁태우가 속으로 놀라는 사이 천강이 예를 갖추었다.
"인사드립니다. 일합무신입니다."
"하하핫. 반갑소. 남궁세가의 주인 남궁태우라 하오. 그런데 그대 정도의 고수가 이제껏 무림에 한 번을 안 보이다니 흥미롭군."
"아아. 이번이 무림초출이라 그렇습니다."
"그런가?"
"예. 보다시피 도통 놓아주질 않아서."
천강이 왼팔을 슥 들어 올린다. 그 손을 꽉 잡고 있던 천수향의 손이 따라 올라왔다.
"하하핫. 내 이해했소이다. 두 분께선 금슬이 참 좋으시구려."
……금슬은 무슨.
그러나 겉으론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그걸 본 천수향이 기분이 좋은지 옆에서 흐응흐응 콧노래를 부른다.
남궁세가 가주와 인사가 끝이 나자, 그가 팔을 벌리며 한 여인을 가리켰다.
"인사드리리다. 이쪽은 내 부인인 자청옥검이외다."
한쪽에 서 있던 여인이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인다.
외모는 전체적으로 아름다우나 눈 끝이 매섭게 치켜 올라간 게 본디 성품이 어떨지 쉽게 유추가 되었다.
'이 여자인가.'
남궁선의 작은어머니이자 남궁세가의 안주인. 그리고 남궁세가에 뿌리내린 배신자들의 수장.
물론, 이제 남은 배신자라고는 고작 그녀와 아들, 그리고 그 수족 넷뿐이지만.
"저는 그럼 음식을 내오라 하겠습니다."
"그러시오."
자청옥검이 꾸벅 예를 갖추고는 물러난다. 그제야 한사와 남궁선이 다가와 아는 체를 해왔다.
천강의 시선이 잠시 자청옥검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일각(一刻) 이내로 완성될 것입니다."
"완성된 음식들은 어디 있지?"
"이쪽입니다."
이번 요리를 맡은 주방장이 자청옥검을 이끌고 한 곳으로 이동했다.
거대한 탁자가 자리하고 그 위로 접시들이 놓여 있다. 각 접시 위로는 뚜껑이 덮여 있어, 조리를 마친 요리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9할 정도 완성이 되었고, 나머지 또한 속속들이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음식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것이니 나머지도 어서 마무리해서 가져오거라."
"예."
주방장이 나가고 자청옥검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품에서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건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남궁태우가 남궁존을 후계로 지목하기만 했어도 모든 건 좋게 해결될 터였다.
남궁선은 적당히 가문에서 쫓겨나고, 누구 하나 더는 피 흘릴 사람도 없고.
그러나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오래전 태감(太監)을 통해 받아둔 독을 꺼내, 음식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그 위에 뿌려댔다.
'이것 한 방울이면 현경의 고수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했지.'
비록 물을 타서 희석했더라도 그 독성은 그대로 유지가 될 것이다.
주방 일을 보조하는 이들이 음식을 새로이 가져왔다. 그녀는 그것들에 모두 다 독을 잔뜩 뿌려놓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만만하게 발을 옮겼다.
***
"저희 본가가 아니라 차린 게 미흡합니다. 그래도 여기 주방장이 힘을 기울였으니 마음껏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이 상 위에 빼곡히 놓이고, 하나둘 식기를 집는다.
모처럼의 만찬에 한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사, 너 침 떨어진다."
"으읍. 천 형! 거 장난을 치다니, 너무하오!"
하하핫. 한차례 웃고는 음식들을 입에 넣는 사람들.
그런데 돌연 천수향이 눈을 크게 뜨고는 천강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게 아닌가.
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놀랄 새도 없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움켜쥐었다.
"큿. 이게 무슨……."
"이건 독?"
모두의 시선이 남궁세가의 가주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남궁세가의 가주 또한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필사적으로 몸속의 무언가를 막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시선을 돌리는데, 천수향의 눈에 멀쩡한 인물이 한 사람 들어왔다.
"네년이구나! 연기해도 소용없다!"
"쳇."
천수향의 금나수를 경공으로 피해 달아나는 자청옥검.
그러나 무려 존자다. 이내 천수향의 손아귀에 목을 붙들려, 벽에 등을 대고는 켁켁거렸다.
"말해라. 해독제는 어딨어?"
"후, 후훗. 독으로는 제일이라는 음존께서 해독제를 찾을 정도라니…… 과연 그 독이 참으로 신통하긴 하군요."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천수향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러나 곧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긴 해도 자청옥검은 여유가 넘쳤다.
독이란 곧 시간이 무기.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되기에.
이미 가르쳐줄 생각이 없다는 걸 파악한 천수향이 손아귀에 힘을 주는 순간, 뒤에서 한 사람이 제지했다. 남궁태우였다.
"부인. 대체 왜 그런 것이오?"
잠잠한 남궁태우의 물음에, 자청옥검이 눈을 표독스럽게 떴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남궁선을 후계자로 책정해서! 그래서 그런다고요!"
"그건 다 가문을 위한 일이었소. 왜 그걸 이해를 못 하는 것이오?"
그러나 그녀 입장에선 가문이고 뭐고 자신의 아들이 잘 되는 게 최고였다. 그녀에겐 가문보다 자식이 먼저였다.
"남궁태우. 당신은 죽는 순간까지도 날 이해 못 할 거야. 뭣들 하느냐!"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에 저 멀리서 다섯 사람이 뛰어왔다. 남궁존을 필두로, 남궁십검 둘에 방계 둘로 이루어진 마지막 남은 배신자들이었다.
"형. 오랜만이야."
"남궁존. 너……."
"내가 그때 형한테 지고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그래서 결정했어. 이왕 쪽팔린 거, 조금 더 명예를 버리고 어떻게든 가주가 되기로."
"이 치사한 자식이……. 쿨럭쿨럭."
남궁선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독이 슬슬 몸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는 미소 짓는 배다른 동생.
"치사하면 어때? 결국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인걸. 너무 욕심내지 말고 편히 가라고. 내가 형에 대해서는 잘 기록해 후세에 전달해줄 테니까."
남궁존이 검을 빼 들었다. 벼락같은 호통이 남궁태우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놈! 지금 무얼 하는 것이냐!"
"무얼 하긴요. 도통 가주 자리를 주시질 않으시니, 직접 넘겨받으러 왔나이다!"
그리고는 남궁존이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단숨에 남궁선의 목을 내려칠 기세가 남궁존에게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는 자청옥검.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남궁존의 검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들! 뭐 하는 건가요. 어서 내려치지 않고!"
"그, 그게……."
"형이라고 그새 정이 들어 그런 건가요?!"
어미의 말에 남궁존이 이를 바득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에게 남궁선을 죽이는 건 누워서 떡을 먹는 것만큼 쉬운 일로, 오히려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최근 매일 밤 꿈을 꿀 정도로.
그러나 그리 원하던 일을 하지 않는 덴 이유가 있었다.
"어, 어머니 몸이 움직이질 않아요!"
"뭐? 그게 무슨…."
"이익. 야. 너희들 뭐해. 당장 남궁선을 죽여!"
남궁존의 지시에 움직이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또한 몸이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무형의 기운이 그들의 몸을 에워싼 뒤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 외에는 고개조차도 좌우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잘 생각해본즉 마치 짙은 안개……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까지 했다.
"이, 이런 시발! 이거 왜 이래!"
결국 참다못한 남궁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고, 한 목소리가 그들 가운데로 내려앉았다.
"이야. 진짜 대단해."
"너, 너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지금 이 안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청옥검 쪽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굳었고, 그 반대쪽은 독을 억누르느라 몸을 운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한 남자만이 여유로운 얼굴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차 맛있네. 역시 차는 용정차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남궁선의 몸에 손을 올렸다.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소년. 한사가 옆에서 소리쳤다.
"천 형! 나도 얼른 해주시오! 얼른!"
얜 이게 무슨 안마라도 받는 건 줄 아나. 환하게 웃는 꼬락서니가 도저히 독 먹은 놈으로는 안 보인다.
그래도 웃는 애에게 침을 뱉겠는가. 그 내기를 쪽 빨아주자, 한사가 그대로 자빠져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걸 지켜본 다른 이들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거렸다.
남궁태우도, 자청옥검도, 그리고 남궁존과 그 아래 수하들도 모두.
"흐, 흡공?"
"어, 어떻게."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사람들의 질문 속에 천강이 천수향의 독기를 빨아냈다. 그리고는 그 몸을 의자에 잘 앉히며 말했다.
"뭘 알면서 물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원에서 흡공 쓰는 사람이 나 외에 또 있을까."
"흑살마신?!"
"오오. 정답."
맞춘 기념으로 천강이 대답을 한 십검의 이마에 구멍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