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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3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4화

234화. 묵현의 정체

 

 

용봉지회가 막을 내렸다.

최종 승자는 천강으로, 무려 결승에서까지 상대를 한 합에 끝내 압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 상대는 한사였는데 별도리가 없었다. 화경이 상대하기에는 천강은 너무 강력했다.

3위와 4위는 각각 남궁선과 당소여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미 절정일 시절에 당소여는 남궁선에게 질 뻔한 적이 있었던 만큼, 화경에 다다른 남궁선을 당소여가 이길 재간이 없었다.

독을 바른 그 어떤 암기도 남궁선에게 다다르지를 못하니, 그녀로서는 몇 차례 던지다 기권을 선언했다.

그래도 빠른 선택 덕분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진 않아, 사람들의 인상엔 꽤 좋게 박힌 그녀였다.

그 아래로 하북팽가의 장자, 무당의 일대제자 등이 쭉 나열됐고. 결과적으로 이번 용봉지회의 용으로는 세 사람이, 봉으로는 두 명이 선정되었다.

"흥미롭게 이번 시합에 고수들이 별로 참여하지 않았네요. 뭐 그 덕분에 저도 세 손가락에 들 수 있었지만요."

"흠흠. 별로 안 한 게 아니라 중간에 사라진 것이오."

"아. 그런 건가요?"

한사의 대답에 남궁선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용봉지회 도중 실력자들이 우수수 사라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으나, 모든 진실을 들은 한사의 얼굴은 사뭇 무거웠다.

그는 몇 차례나 그 사실을 다른 이에게 말을 하려다가 이내 도로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버린 그의 사형 진소가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한 것 때문이었다.

진소는 한사가 입을 잘못 놀려 태감(太監)의 눈에 띌까 염려해 그런 것이었다.

"한사."

"음?"

"저번에도 보셨겠지만, 작은어머니가 좀 매섭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시오. 매서워 본들 형수님만 할까."

"어…… 한사. 그 발언은 좀 위험한데요?"

한사가 퍼뜩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주변에 당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한 차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사가 남궁선과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천강 일행은 남궁세가의 가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고, 천강과 천수향은 잠시 들를 곳이 있다 하여 이렇게 둘만 따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남궁세가의 임시거처에 두 사람이 발을 들이자, 남궁 사람들이 나아와 안내를 했다.

식사 자리에는 가주와 그 부인인 자청옥검이 먼저 와 있었다.

한사가 양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외다, 맹주."

"나야말로 응해주어 고맙네, 화산의 새 장문인이여."

"응당 응해야 할 일이었소이다."

"하하.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숱한 초대를 받았고, 그중 우리 남궁에 제일 먼저 와주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그랬다. 새로운 화산의 장문인 한사.

아직 약관(弱冠)에도 못 이른 나이에 화산의 잃어버린 절기를 스스로 완성해낸 그를 무림인들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십 년 안에 현경에 들고, 100년 안에 생사경에도 들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말 그대로 주목받고 있는, 그에 미리 친분을 쌓고 싶은 1위의 인물이 바로 한사였다.

사실 천강이 더 주목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천강의 알려진 유명세는 외공 쪽이다 보니 은연중에 무시당하는 그런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아무튼 남궁의 가주로서는 한사의 선택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록 그 아들로 인한 친분이라 해도, 이는 남궁의 명예를 높여주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핫. 이쪽으로 앉으시오."

"고맙소이다."

"그런데 일합무신과 음존께서는 함께 오시지 않았소이까?"

"예. 급히 볼일이 있다 하여 이곳에서 만나기로 하였소이다."

"그렇군. 그럼 우리끼리 한잔하고 있도록 합시다."

 

***

 

"제조소가 하나가 아닙니다. 꽤 여럿 됩니다."

하오문 하남지부. 천수향과 천강의 앞에서, 지부장이 전달받은 사실을 소상히 보고 올렸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굉장히 공손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는데, 정보를 다루는 자들인 만큼 천수향과 천강의 가치를 얼마나 잘 아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장 발견된 숫자는 넷이고, 아마 중원에만 열한 개 정도는 있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열한 개라…… 어떻게 할 거야, 천강?"

"일단은 가만 놔둬야지. 없애려면 한 번에 없애야 해. 그 뒤로는 더더욱 찾기 힘들어질 테니까."

상대가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하도록 일제히 처리해야 한다.

천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하오문주에게 열심히 뛰어다니라고 해. 그럼 내가 나중에 좋은 선물 하나 준다고도."

"예, 예!"

그럼 일단 신선환 제조소는 해결이 됐고, 문제는 사신인가?

- 그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진짜 문제긴 한데 말이다.

사신. 그 어떤 내기도 느껴지지 않고, 몸은 엄청 튼튼해 상대하기 꽤 피곤한 놈들.

그래도 마교에 있던 시절 진짜 많이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중원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본즉 숫자가 꽤 불어난 듯 보였다.

- 소년, 역시 사신 만드는 곳도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누군가에게 의뢰를 맡기기에도 애매했다.

일단 사신들을 상대할 수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신들에게 죽지 않을 실력이 있어야 했고.

그들을 추격할 수 있는 탐색 능력을 겸비해야 하며, 그 와중에 황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이어야 했다.

'중원에 그런 조직이 있을 리 없지.'

아니, 없는 건 아니려나.

생각에 잠긴 천강이 건물 밖으로 나온다.

이왕 이쪽 골목으로 온 김에 마교 지부도 한 번 들르자는 생각에 발을 옮기는데, 그 앞에서 천강은 꽤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누더기를 입고 있음에도 은연히 품격이 흘러나오는 한 소년.

"묵현?"

"천강."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선다. 포옹이나 반가움의 표현이나 그런 건 하지 않았다.

주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애초에 둘은 그런 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양측 모두 지인들을 달고 있었다.

묵현이 천수향을 향해 양손을 모았다.

"음존을 뵙습니다."

늘 그렇듯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에, 천수향의 눈썹이 꿈틀했다.

"예를 배우다 만 놈이냐? 무슨 인사를 그따위로 하지?"

"사정이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지요."

그러고는 그 패거리와 함께 지부 안으로 들어가는 묵현. 따라와 달라는 눈빛에 천강이 천수향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천강 너보다 싸가지 없는 앤 내가 생전 처음 보네."

"……."

내가 그렇게 싸가지가 없나?

- 소년, 몰랐나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천수향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아니, 그렇잖아. 목에 뭐 철심이 박혔나? 응?"

"진정해. 가만 보니 뭔가 있는 것 같더라고. 미오왕도 굽신거리는 걸 보면 말이야."

"미오왕이?"

천수향의 시선이 묘해진다.

"난 잠깐 천강이랑 이야기 좀 하겠다. 내려가 짐들 풀고 있어라."

"알겠소.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끝나면 바로 불러주시오, 형님."

묵현의 지시에 그 똘마니들이 짐을 풀러 지하로 내려가고, 조금 있자 자리에 앉은 세 사람 사이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고급 식당에 시간이 시간인 만큼, 건물 내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딱히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천강이 물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야. 분위기로 봐선 날 만나러 찾아온 것 같은데."

서론이라고는 일절 없는 칼 같은 본론. 어찌 보면 예의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익숙하다는 듯 묵현이 답했다.

"맞다. 네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왔다."

"무슨 일 났어?"

"실은……."

그때 계속 생각에 잠겨있던 천수향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손끝이 정확히 묵현에게 향했다.

"아, 나 얘 누군지 알았어."

"누군데?"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정체 운운하는 게 좀 뜬금없었으나, 천강 또한 묵현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일전에 들을 뻔하다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가.

'어디 세가의 숨겨놓은 자식인가? 아니면 어디 새외의 유명한 세력?'

천강이 나름 그럴듯한 추론을 이어가는 그때, 천수향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너 황제의 아들이지? 삼촌에게 쫓겨나 잠적 탔다던."

엥? 순간 벙찐 표정을 지은 천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왜 말이 안 되는데?"

"솔직히 군인이 아니고서야 일반인은 일평생 황족 얼굴 한 번 볼까 말까인데, 그건 아니지."

"그 말이 맞긴 하는데, 내가 예전에 우연히 들었거든. 미오왕이 중원에서 종적을 감춘 이유가 황족과 거래를 터서 그런 거라고."

"뭐?"

천강의 시선이 홱 묵현에게 향했다.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던 묵현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난 전대 황제의 아들이다. 현 황제는 아버지의 숙부 되시고, 내게는 숙조부가 되신다."

천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일반인이 황족을 볼 일이 얼마나 될까?

조금 전 말했듯이 거의 없다. 군인이 되거나 혹 관직에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일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 천강은 난생처음 보는 황족의 모습에 눈을 껌벅이며 묵현을 바라보았다.

"……너무 구경거리 취급하는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천강."

"아아, 미안. 너무 신기해서. 홍랑, 넌 안 신기하냐?"

천수향이 고개를 젓는다. 그녀는 살아온 세월도 있고, 현 가문 또한 힘이 막강해 황제를 직접 알현할 기회도 있었다.

왠지 혼자만 놀란 것 같은 상황에 천강이 볼을 긁적이며 묵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작은할아버지는 황제고, 이전에 설명한 것처럼 흑선마희는 네 의뢰를 받고 도와주는 사람이고?"

"그래."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천강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데 그동안 녀석이 보여준 행동을 가만 떠올려보면 이해가 가긴 했다.

천박하게 입을 놀리지 않으며, 은근 행동엔 기품이 있고. 받은 건 어떻게든 갚는다.

특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뻣뻣이 쳐들며 상대에게 절대 숙이지 않는 모습은 당시엔 미쳤나 싶었는데 황족이라니까 또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그 황위는 마땅히 내가 물려받아야 할 자리였다."

"넌 그걸 되찾기 위해 궁리 중이었는데, 때마침 황제가 동창(東廠)을 만들어 무림을 모조리 쓸어버릴 계획을 세운 걸 보고 이곳 마교로 흘러들어온 거다, 이 말이고?"

"그래."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천강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왜 마교로 온 거냐?"

그렇지 않은가? 이왕이면 어디 세가나 문파로 가면 더 좋을 것을.

"신교는 거의 하나의 독자적인 나라다. 교주와 힘을 합쳐 뜻을 편다면 기회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하긴. 황제의 치하 아래 있는 정파 놈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역으로 잡혀서 안 넘어가면 다행이리라.

묵현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 일은 비밀로 해다오. 음존께도 부탁드립니다."

뭐 그런 거라면야.

천수향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너 현상금이 어마어마하더라. 네가 어디 숨어있는지만 불어도 황제께서 거의 성 하나를 지어주려고 하고 있던데?"

"……아마 저를 고발해도, 성 값을 받기 전 저승 문턱을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 한마디는 많은 걸 함축하고 있었다.

황제가 묵현을 죽이기 위해 찾고 다닌다는 것과, 신의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

그리고 칼을 드는 데 있어 주저함이 전혀 없다는 것.

'일이 잘 안 풀리면 황제를 직접 찾아갈까 했는데, 그 방법은 포기해야겠구만.'

황제를 설득해 불안정한 안전을 보장받느니, 태감을 꺾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천강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푹 몸을 기댔다. 잠깐 묵현의 정체로 인해 끊긴 대화를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게 할 말이 뭐야?"

"천강. 잠시 시간을 내주어야겠다."

"얼마나?"

"늦으면 달포 정도 걸릴지도 모른다."

달포나? 천강이 고개를 저었다.

"야, 안 돼. 지금 용봉지회 개최된 이유 모르냐? 마교랑 한판 붙으려고 무림맹에서 사람들 끌어모았어. 난 지금 그곳의 얼굴 간판이고."

"걱정하지 마라. 무림맹은 마교에 선전포고를 할지언정 쳐들어가지는 못할 테니."

그게 무슨 소린가 하여 귀를 기울인즉, 묵현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했다.

현재 용봉지회를 개최하느라 비어버린 각 문파가 공격을 당했다.

장문인들로서는 그 피해 규모를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족히 달포가 넘게 걸릴 거란 뜻이었다.

"빨라야 초가을이다. 내 예상에는 늦가을에나 출정하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뭐라 할 말이 없네.

입을 삐죽 내민 천강이 한쪽 팔에 턱을 기대고는 물었다.

"그래 좋아. 근데 대체 어디 가려고 달포씩이나 시간을 내달래?"

그러자 묵현이 양손을 가운데로 모으고는 말을 이었다.

"북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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