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3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3화
233화. 용봉지회 결승
"자, 여러분 그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준결승전의 막이 열립니다!"
우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회자가 관중들을 향해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보이십니까! 제왕검형을 배운 동생을 공격 한 번 하지 않고 쓰러뜨린 남궁의 장자! 남궁세가의 미래! 남궁선입니다!"
"감사합니다."
겸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몸은 여리여리하고 외모는 여인 같으나 그 들고 있는 검은 무거운 중검이니, 사람들은 그 기괴한 조합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열렬히 응원에 나섰다.
사회자가 이번에는 우측으로 손을 뻗었다.
"자, 그리고 그의 적수는 바로! 모든 적들을 단 일합에 쓰러뜨린 의문의 외공 고수, 일합무신입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천강이 그 어떤 인사도 하지 않고 좌중을 그저 한 번 눈으로 쓸었다.
그로 인해 남궁선보다는 환호하는 이들이 적었으나, 도리어 여자들 쪽에서는 더 열을 내고 나섰다.
그 싸가지 없는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꺄아악! 일합무신님, 이쪽도 한 번 봐주세요!"
"어머어멋. 오늘도 시큰둥한 표정이 너무 멋지셔!"
어째 광대가 된 기분이로구만.
- 주변에 먹을 게 너무 많다.
'……참아.'
탐(貪)을 진정시킨다고 시선을 멈추길 잠시, 순간 날아오는 싸한 기운에 천강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러자 심사관들 사이로 도끼눈을 뜨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 천강?
- 오해야, 오해. 탐(貪)이 자꾸 주변에 밥이 널려 있다고 해서 진정시키느라 그랬어.
- 그래? 그럼 저년들을 밥으로 주면 되겠네?
저년들이란 의도치 않게 천강의 시선이 머문 곳에 있던 여인들이다. 현재 용봉지회에서 천강은 여인들의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상 용봉지회에서 용을 뽑는 기준 중 하나에 여인들의 지수가 있는 만큼, 대다수 사람들은 천강이 용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자, 그럼 양측 선수 준비가 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천강과 남궁선의 시선이 서로에게 가 닿는다.
천강이 목을 한 번 풀고는 물었다.
"그래. 많이 준비했냐."
"예. 일합에 쓰러지진 않을 것입니다."
"……꿈이 크네. 근데 이왕 꿈을 크게 가질 거면 더 크게 가지지. 날 이긴다거나."
사회자가 '시작!'을 외치고는 경기장 밑으로 내려갔다. 남궁선이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앞으로 내세웠다.
"꿈을 이루는 데 중요한 건, 내 주위 현실을 잘 살피는 거라 배웠습니다. 그 꿈은 조금 더 성장한 뒤에 꾸겠습니다."
"후훗. 좋은 자세야. 자, 그럼 덤벼 봐."
"예, 오늘도 한 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선이 자세를 낮추고는 천강의 주위를 찬찬히 돌기 시작한다. 그 눈빛은 마치 사냥에 임하는 맹수와 같았다.
그러나 좀처럼 긴장감만 올라갈 뿐, 움직임은 없었다.
도저히 틈이 안 보였던 것이다.
'생각 없이 덤볐다가는 일합에 끝난다.'
그러다 보니 쉽사리 공격을 펼치지 못했던 것.
그동안 제왕검형 파훼 연습을 하며 숱하게 천강에게 나가떨어진 경험 또한 그 행동을 하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저마다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남궁세가의 장자라 뭐가 다르긴 다르구만.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는 모양이야."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이번에는 잘하면 일합에 안 끝날지도 모르겠는걸."
"일합이 뭔가? 아마 박빙의 싸움이 이루어질 걸세."
워낙 이전 싸움에서 남궁선의 대련하는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던지라, 사람들은 남궁선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내기도 사용할 줄 모르는 외공 나부랭이 아닌가.
무공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내가중수 한방이면 제아무리 어린아이라도 9척 거구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들은 이번 싸움에 남궁선이 이길 걸 확신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남궁선으로서는 이마에 땀이 나는 상황. 천강이 픽 웃으며 말했다.
"어이. 생각이 많으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그 말이 맞다. 행동이 없다면 결과도 없는 법!
남궁선의 눈이 빛나고 그 신형이 잔상을 일으켰다. 단숨에 천강에게 접근해 매섭게 칼을 휘둘렀다.
'큰 기술은 소용없어.'
제왕검형 2식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남궁선은 힘을 빼고 정직하게 횡베기를 시전했다.
그걸 본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가르친 보람이 있는 녀석이야.'
마교의 현 교주도 다짜고짜 큰 기술을 날리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력이 늘수록 무인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악습인데…… 그도 그럴 게, 그냥 검을 휙 한 번 휘두르는 것보다야 여러모로 낫지 않은가?
주변에 지켜보는 이들에겐 멋져 보이고, 그 자신은 기술을 한 번 연습하면서 상대의 반응을 통해 배울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적들의 기세를 억압하는 효과 또한 따라온다.
무엇보다 큰 기술을 완성해 적을 쓰러뜨리는 데에는 어떤 쾌감 같은 게 있으니…… 사실상 그것들 때문에 못된 습관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근접전에서 자신과 실력이 엇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상대와 싸울 때는 큰 기술보다는 작은 기술이, 어쩌면 그냥 검을 휘두르는 게 더 나았다.
최소 제풀에 지쳐 순식간에 당하거나 반격을 당하진 않을 테니까.
'어디 보자. 기교도 좀 늘었네.'
검을 살짝 일찍 휘두르며 접근하는 소년. 그 탓에 남궁선의 검 끝이 천강에게 닿을 말 듯 아슬아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즉 자신의 무기 사거리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는 뜻.
천강이 한 발 뒤로 물러나 그것을 피해낸다. 검이 지나가고, 한 박자 늦게 날카로운 검풍이 그 뒤를 뒤따랐다.
'남궁의 중검이 무서운 게 바로 이점이지.'
무거운 검을 휘두르다 보니 그 사이 공백이 큰데, 그것을 뒤에 따라오는 검풍이 메워준다는 것.
그로 인해 다음 동작까지의 보호를 받으니, 남궁의 검을 처음 상대하는 무인은 열 중 다섯이 이 검풍에 당하곤 했다.
그 검풍의 보호를 받으며 남궁선이 한차례 핑그르르 몸을 돌려 검을 다시 횡으로 휘둘러왔다.
아까보다 회전력이 더해진 강하고 빠른 검격.
'하핫. 점차 속도와 파괴력을 늘려가겠다?'
재미있는 전술을 구상해냈구만.
천강이 이번에도 한 발 물러나며 몸을 뒤로 홱 뉘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섭게 지나가는 검날과 검풍의 모습이 눈에 속속들이 들어왔다.
'자, 그럼 어디 새로운 깨달음을 줘 볼까.'
하나, 둘…….
셋. 검풍의 끝자락이 지나갈 때, 천강이 힘껏 발을 뻗어 남궁선의 다리를 걷어찼다.
멋지게 몸을 돌리던 남궁선의 얼굴에 당황 섞인 표정이 올라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검이 흔들리고, 매섭게 응축되던 검풍이 미풍이 되어 흩어진다.
그 사이 양손으로 땅을 박차며 몸을 일으킨 천강이 남궁선에게 바짝 붙어 어깨로 그 몸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그대로 시합장 바깥으로 나가떨어지는 남궁선. 그가 허망하단 얼굴로 천강을 올려다보았다.
"치, 치사해요."
"그래도 배움은 됐지?"
남궁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오늘의 가르침으로, 앞으로 수차례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
싸움이 끝나자 천수향이 다가와 천강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오. 제법이야."
"뭘 이 정도 가지고. 밥이지."
"그래. 꼭 잘 이기고도 나서 하는 그 건방지고 싸가지 없는 말투…… 역시 내 낭군이야!"
"푸훕."
젠장. 사례 걸릴 뻔했네.
"중인환시, 남들 다 모인 곳에서는 자제 좀 하지?"
"왜? 뭐가 문젠데?"
"남사스러워서 그렇다."
"참 별 걱정을 다 해.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네가 내 거인 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
"그래? 저쪽은 아닌 것 같은데?"
천강이 검지로 한쪽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그들을 바라보는 두 모녀가 있었다.
당묘오와 당소여였다.
"저것들 아직도 포기 안 했어?"
"그동안의 네 가문 사람들을 생각해 봐. 절대 쉽게 포기 안 할걸?"
"젠장."
그건 그렇고, 당소여 쟤도 좀 하긴 하나 보네. 준결승까지 올라온 걸 보면.
그러나 그 상대는 좋지 못했다. 한사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잘 부탁하오."
그는 이미 당소여를 이긴 전적이 있는 인물. 무엇보다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한사를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싸움은 손쉽게 한사의 승리로 돌아갔다.
'뭐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그렇게 다가온 대망의 결승전.
한사와 천강이 무대 위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사의 얼굴에 짙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이번 용봉지회를 통해 화산을 빛내고 싶다고 했지?"
"그렇소."
"날 이길 수 있겠어?"
"쉽진 않을 거라 생각하오."
오. 녀석 봐라. 못 이긴다고는 안 하네.
이건 남궁선보다 낫다고 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자라다고 봐야 하는 걸까.
-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소년?
- 홍루. 홍루이니라.
'아아. 그래.'
신병이기들의 생각은 대체로 동일했다. 그래도 싸움에 임하는 긴장감 하며 마음가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기지는 못해도 그 꿈을 포기하진 않는 모습.
그래. 인간이라면 이런 거지.
"최선을 다해 덤벼 보라고."
"걱정하지 마시오. 내 그럴 터이니."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한사가 눈을 빛내며 검을 일직선으로 세웠다. 허공으로 수백의 환검이 생겨나고, 그것들에는 자색의 검강이 강하게 맺혀 있었다.
'시작부터 필살의 일격이라.'
자하신공은 신비로운 심법이다. 다른 무공에는 별 효과가 없지만, 이십사수매화검법과 함께 사용하면 그 위력이 배가 된다.
천강의 시야에 자색 섬광이 화려하게 나부꼈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모든 것을 태울 만큼 뜨거운 양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뒷짐을 지고는 그걸 여유로운 얼굴로 바라보는 천강.
이미 일전에 청해에서 화산파의 약점과 한계를 본 탓이다.
천강이 힘껏 바닥을 내려쳤다.
쿠구구구구.
'역시 한사네. 뭔가 다르긴 다르구만.'
대련장이 크게 흔들거리는 데에도 눈빛도 검 끝도 흔들림이 없다.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너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걸?'
천강이 한 번 더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한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올라왔다. 돌연 천강과 한사 사이의 대련장 바닥이 떡 하니 시선 위로 올라온 것이다.
족히 사방으로 다섯 보는 될 직한 두께의 바위.
"처, 천 형. 이거 농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한사의 검격이 그 바위에 닿았다. 그러나 극한의 쾌검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지도, 자르지도 못하였다.
"아……."
내가 원한 건 좀 더 싸움다운 싸움이었는데.
쿵 소리와 함께 바위가 날아든다.
지척에 다다른 바위 앞에서 한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바위와 혼연일체가 되어 시합장 밖으로 날아가는 것뿐이었다.
"천 혀어어엉. 너무 하오오오오!"
한사의 나지막한 비명이 용봉지회 시합장 위로 크게크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