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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3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1화

231화. 자하신공

 

 

"사형. 준비 다 됐습니다."

"그래. 고맙다. 스승님께서는?"

진소의 질문에 이대제자 중 하나가 답했다.

"예정대로 오늘 아침 연화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신다고 하셔서."

"……그러느냐."

결국은…….

지금 이곳에는 배신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한데 섞여 있다.

그리고 배신자들은 지금 무림의 각 문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었다.

- 무영신투의 비고와 용봉지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황실에서 기른 사신들이 각 가문과 문파들을 돌 것이오. 그러니 다들 한동안은 그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시오.

그것이 상부로부터 전달받은 사실.

하지만 화산의 배신자들은 다른 문파와는 달랐다. 그들은 장문인과 장로들을 죽이기를 원치 않았고, 그 권력을 탐할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장문인이 연화봉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개 제자들이 장문인의 뜻을 어찌 꺾으리오.

"진소……."

동기가 다가와 그 어깨에 손을 올린다.

진소는 지금 상황을 만든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그 옛적에, 욕망에 점철돼 씻지 못할 실수를 만들고만 자신이…….

"애들아 가자. 시간이 다 됐다."

진소의 손아귀에서 뚝뚝 붉은 액체가 흘러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

 

"여어. 한사 너무 얼어있는 거 아냐?"

"하, 하핫. 그래 보이오?"

"어. 마치 홍루에 막 들어섰을 때와 같은…… 읍읍."

"천 형! 사람 많은 곳에서 그 이야기는 좀 참아주시오!"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웃던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어. 아무튼 너무 긴장하지 마. 긴장하면 되는 일도 안 된다. 평소처럼 너답게 살짝은 얼빠진 자세로 임하라고."

한사가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천강의 의도를 알아듣고는 미소 지었다.

그래. 과한 긴장은 내기 운용에 방해가 되는 법이지.

"시합을 시작하겠소. 양측 선수는 올라오시오!"

"그럼 다녀오겠소이다."

천강에게 예를 갖춘 한사가 성큼 발을 옮겨 시합장 위로 올랐다. 그 반대쪽에서는 화산의 일대제자이자 차기 장문인으로 지목된 진소가 막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훑는다.

"양측 모두 준비되셨소이까?"

심판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둘. 그들은 서로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문득 한사의 머릿속에 얼마 전 천강의 말이 떠올랐다.

- 야. 너 이번 용봉지회에 참여한 이유가 뭐라고 했지?

- 화산을 다시 빛내고 싶어 참여했소이다.

- 그래? 흠…… 내게 말이야. 화산을 다시 부흥하게도 하고, 네가 다시 화산으로 돌아가게도 하는 좋은 방안이 있는데.

- 정말이오?! 그, 그게 무엇이오?

눈을 빛내며 묻는 그에게 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 그게 무엇이긴. 네가 강하다는 걸 증명하면 되는 거지. 이번 용봉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가면 가장 확실하고.

- 천 형. 그건 나도 아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 쉽지 않지. 그래도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다 해결될 테니.

'시키는 대로…….'

일단 그 시작은 검으로 사형을 꺾는 것!

"시작!"

심판이 팔을 들어 올리고 뒤로 쭉 빠졌다.

그와 동시에 진소와 한사의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와 서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파파파팡.

쾌검 대 쾌검.

환검이 어우러진 극쾌(極快)의 향연에 관람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함이었다.

검강과 검강이 부딪치며 일어난 폭음과 섬광은 구경하는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역시…… 못 보던 사이에 더 성장했군.'

화산에서 쫓겨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느덧 목 밑까지 따라온 한사의 실력에 진소가 마른침을 삼켰다.

시야에 불꽃이 번쩍이며, 진소의 눈앞으로 옛 기억이 아른거렸다.

 

***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진소라 하옵니다."

"진소라…… 가히 하늘이 내린 기재로다! 네가 들어온 것은 우리 화산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하늘의 뜻일 터! 앞으로 열심히 수련해, 우리 화산의 과거 영광을 되찾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그리하겠습니다."

마교의 침공 이후, 화산의 잃어버린 이백 년.

그걸 회복하기 위해 장문인도, 장로도, 진소 자신도, 그리고 동기들도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도 가시밭길과 같아, 모두가 금세 지쳐 떨어져 나갔다.

그럴 때마다 진소는 장문인인 스승을 찾아갔다.

역대 선인들의 위패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스승을 볼 때마다, 진소는 더욱 검을 휘두르고 화산을 높이 올리고자 용을 썼다.

그래서일까.

그는 약관(弱冠)의 나이에 장로의 수준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던 때에 한 소년이 화산에 들어왔다.

무(武)를 익히기에 다소 늦은 열세 살 안팎의 나이.

그는 전생에 무(武)를 통달한 무신이라도 되듯 한 번 보면 뭐든 척척 해냈고, 그 모습이 기특해 진소 또한 그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사형. 사형이 조금 전 보여주신 건 무엇인가요?"

"지금 네가 익히고 있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마지막 구결이다. 너는 아직 17초식을 익히고 있으니, 아마 내년쯤이면 배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매화검법의 마지막 구결……. 저 한 번만 더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하핫. 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친절히 가르쳐 주었었다. 어디엔 어떤 뜻이 담겨있고 어디엔 어떤 원리가 담겨있는지를.

그런데 그날 저녁. 수련하던 진소에게 찾아온 소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형! 오늘 오전에 사형이 가르쳐 주신 마지막 구결 연습해 봤는데, 혹 맞는지 한 번 봐주세요!"

그러고는 조그마한 손끝에서 펼쳐지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

그걸 본 진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이 내린 기재라던 자신이 1년에 걸쳐 완성한 초식을 단 하루 만에 터득하였으니, 그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시의 진소는 아직 어렸고, 그는 그때 오직 한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그것은 질투였다.

 

***

 

콰콰콰콰쾅.

강기와 강기가 수차례 부딪쳤다.

'매영조하(梅影造河).'

'매영조하(梅影造河).'

진소와 한사의 검에서 똑같은 초식이 펼쳐졌다.

먼저 펼쳐진 진소의 검을, 늦게 펼쳐진 한사의 검이 모두 맞받아쳤다. 그걸 본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런 미친!"

"수십 개의 환검 찌르기를 검 끝으로 다 맞받아친다고?!"

"무슨 저런 신적인 무위가!"

그랬다. 한사는 진소의 검을 모두 맞받아쳐내고 있었다. 그가 펼친 기술을 그대로 사용해.

그건 마치 거울을 맞댄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매인설한(梅忍雪寒)!'

진소의 검이 바닥에서부터 피어올라 수십의 환검을 만들어 올린다.

한사의 검 또한 아주 근소한 차이로 그 하단에서 타고 오르고, 이내 두 매화나무가 몸을 크게 떨었다.

'매인설한(梅忍雪寒)!'

시선을 압도하는 그 화려한 검격에 사람들은 두 사람의 싸움에 완전히 몰입되었다.

시간상으로는 찰나에 불과했으나 벌써 수백 번을 주고받은 공방. 두 사람이 물러나 호흡을 골랐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 초식뿐.

사실 이걸 위한 23초식이라 할 수 있었으니,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마지막 한 초식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23초식을 펼치는 동안 주변엔 대자연의 기운이 몰려들고, 마지막 초식에 그 위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해도에 따라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이십사수매화검법이 상승무공으로 분류가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주변을 격하게 맴도는 기운을 느끼며 진소가 입을 열었다.

"겨우 준비한 게 이것이냐? 어제 네가 말한, 화산이 나아갈 길이란 게 겨우 이것이냔 말이다! 너와 어울려준 것도 어찌 보면 시간 낭비인 듯싶구나!"

그러나 말은 그리해도 진소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 자신의 공격을 정확히 맞받아쳤다는 건, 한사의 실력이 이미 그를 압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모질게 말하는 그는…… 어쩌면 죽기 위해 한사를 도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죽음보다도 힘들다는 걸 이제 와 깨닫고 있는 진소였다.

진소가 두 손으로 검을 움켜잡고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그와 그 검 주위로 대자연의 기운이 몰아쳐, 불꽃과 같이 활활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만 항복하거라! 지금이라도 그런다면, 불명예스럽더라도 그 생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쿠콰콰콰콰-

진소의 주위로 맹렬한 선풍이 일었다.

23초식을 누적해 모은 그 대자연의 흐름은 능히 남궁존이 펼친 제왕검형인 회오리의 몇 곱절은 더 되어 보였다.

당장에라도 찢어발길 듯이 주변을 초토화하는 상승 기류.

관중석 앞으로 실력 있는 무인들이 도열해 그 기운을 막아선다. 진소가 턱을 치켜들고는 외쳤다.

"보이느냐! 이것이 내가 만든 우리 화산을 빛낼 새로운 비기!"

화산은 쾌(快)와 환(幻)의 검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초식이 없다. 24초식조차도 쾌검이기에 진소는 이 부분을 다르게 해석해 보았다.

쭉 이끌어온 내기를 폭발적으로 사용한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고, 마침내 그는 성공할 수 있었다.

기존의 24초식은 끌어온 대자연의 기를 2할 정도밖에 이용하지 못한 것에 반해, 새로운 방법은 9할가량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네가 준비한 것을 꺼내 보아라! 아직 피지 않은 매화여!"

한사가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모습은 꽤 위태위태해 보였다. 마치 태풍 앞에 선 자그마한 촛불과도 같았다.

언제라도 꺼질 수 있는 그런 작은 불꽃.

그러나 돌연 한 기운이 한사의 검을 타고 올라 일렁였다. 그것은 석양이 지는 하늘처럼 붉기도 했고, 창공의 하늘처럼 푸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매우 작은, 그러나 선명한 기운.

한사의 몸과 검에서 자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한때 마교의 침공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그러나 무려 이백 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현현한 화산의 상징. 매화의 꽃잎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백 년간 엄동설한의 고통 속에서 피워낸 하나의 설중매였다.

"자, 자하신공이다!"

"화산이 잃어버린 절기를 되찾았다!"

숱한 사람들의 놀람 속에 한사의 검이 움직였다.

섬광과도 같은 검격이 쏘아져 나가고, 그 검 끝이 진소의 볼 옆을 스쳤을 때 태풍은 온데간데없고 자그마한 미풍만이 시합장 위로 내려앉았다.

한편의 백일몽과 같은 적막 속에, 한사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24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엉망이 된 용봉지회 시합장 주위로 매화의 향이 은은히 퍼져 나갔다.

그건 마치 추운 겨울을 지나 춘분의 때를 알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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