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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3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30화

230화. 화산의 부흥을 위하여

 

 

자청옥검의 임시 거처.

그 안에서 남궁세가의 둘째 부인이자 남궁의 안주인인 자청옥검이 발을 쉼 없이 놀리고 서성였다.

그 모습에 남궁존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소자가 미흡하여 그만……."

"아닙니다, 아들. 어찌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입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요."

그녀가 보기에 이번 대련에서 아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가 익힌 제왕검형은 충분히 완벽에 가까웠지 않았던가. 일전에 사파 고수 철장투귀와의 싸움에서 남궁태우가 극찬한 사실만 봐도 그러했다.

그런데 설마하니 남궁선이 그 파훼법을 들고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모자였다.

"이제 어떡하죠? 아버지가 그 새끼를 후계로 책정할 텐데요."

"걱정 마세요. 이 어미가 어떻게든 수를 써볼 테니."

아직 시간은 있다. 후계 책정까지 어떻게든 일을 벌이면 돼.

악한 수를 꾸미는 자청옥검의 안광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러나 조금 있자 그녀의 아랫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호흡을 거칠게 가다듬으며 말했다.

"헉. 허억. 방금 가주님께서…… 후계자를 책정하셨습니다."

"뭐?!"

 

***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남궁태우에게 한걸음에 달려간 자청옥검.

그는 남궁선과 함께 찻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남궁선이 고개를 숙이고, 이내 그 아비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럼 시간도 꽤 되었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려무나. 혹 내일도 와줄 수 있겠느냐."

"예. 그러겠습니다."

참으로 눈치가 빠르구나.

자청옥검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피해주는 남궁선을 본 남궁태우는 그동안 자신이 장자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청음검선을 잃은 슬픔을 애써 외면하고자 그 피붙이 보기를 피했고, 그 결과 남궁선은 늘 살얼음을 걷듯 가문에서 혼자 커야만 했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겠지만, 그 사실이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드는 남궁태우였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아비 노릇을 해야겠지.'

남궁선이 물러나자, 자청옥검이 자리에 앉으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들었습니다. 남궁선을 후계로 책정하신다고요."

"그렇소."

"어떻게 저와 이야기 한 번 안 하고 결정하실 수 있죠?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잖아요."

후계자가 책정되면 곤란하다.

그전에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지만, 후계가 확정되고 나면 가문의 그림자들이 그 후계를 은밀히 수호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미뤄야 해.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러나 남궁태우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에 그녀의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그대 때문이오."

"예?"

"자청옥검. 당신이 반대할까 봐 그러했소. 당신이 욕심이 많은 걸 알기에, 가주의 권한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소.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지 못할 테니까."

"그 말씀은…… 남궁선이 우리 남궁존보다 더 뛰어나다 이 뜻인가요?"

남궁선에게서 그 어미 청음검선과의 추억을 떠올린 남궁태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오늘 당신도 봤을 것 아니오? 대남궁의 가주가 배우는 제왕검형은 분명 강대한 무공이나 결정적인 약점이 있소. 나는 늘 그것을 고민했지."

약점이 있다는 건 치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남궁선이라면, 대남궁의 후계로서 대남궁의 절기인 제왕검형을 직접 파훼한 남궁선이라면,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우리 가문을 위한 것이오."

앞으로 백 년 혹은 이백 년을 건재하기 위한…… 아니, 우리 남궁이 진정 무림에서 제일가는 가문이 되기 위한 결정.

"그에 나 혼자 결정을 내렸소."

"가가!"

"또한 앞으로는 옆에 가까이 두고 가르칠 생각이오. 언제든지 내 뒤를 이을 수 있도록."

확고한 남궁태우의 태도에 자청옥검은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손톱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감정을 삭이는 수밖엔.

 

***

 

"천님. 저 왔습니다."

"여어. 어서 와."

남궁선이 한사와 천수향에게도 예를 갖추고는 천강에게 쫑쫑쫑 뛰어갔다. 그것은 마치 강아지가 제 주인에게 달려가듯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님!"

"그래그래. 알겠다. 근데 울지는 말라고. 솔직히 네가 울면 주위에서 오해하거든."

"예?"

옆에 있던 천수향이 덧붙인다.

"여자 울린 줄 알고 말이지?"

"어. 잘 아네?"

"네 심리야 내가 훤히 꿰뚫고 있지."

솔직히 남궁선은 웬만한 여자들보다 예쁘장한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다. 몸까지 여리여리하니 더욱 오해를 살 정도로.

그러나 앞으로 제왕검형을 연습하다 보면 제 동생처럼 꽤 남자답게 변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남궁선은 끝났고…… 한사 너만 남은 건가?"

양손을 포개 그 위에 턱을 올리며 묻는 질문에, 한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남궁선은 제 목적을 달성했다.

뺏길 뻔한 장자의 직위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차기 가주로 확정까지 받았다.

이제 남은 건 한사뿐.

"후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솔직히 진소 사형은 꽤 강하니 말이오."

저번에 잠깐 보았지만, 천강이 봐도 진소라는 화산파 제자는 만만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과연 일대제자 중 최고라 해야 할지.

화산에서 일대제자 중 제일 강하다는 건 곧 차기 장문인이라는 뜻. 내일 한사는 그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사. 천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하십시오."

남궁선의 응원에 한사가 작게 미소 지었다. 꽤 든든한 응원이었던 탓이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소, 천 형."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사가 밖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은 혼자 수련하고 싶다는 부탁에 천강 일행은 밖으로 나서는 그를 조용히 응원했다.

 

***

 

'후우. 세상은 오늘도 너무나 아름답구나.'

늘 수련을 하는 강가로 발을 옮기며, 저물어져 가는 석양을 바라본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고개를 감춤에 따라 사위에선 땅거미가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기다랗게 늘어진 음영과 붉게 물든 세상을 바라보는 한사의 눈엔 아른함이 내비쳤다.

연화봉에서 보는 석양과 이곳에서 보는 석양은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모습은 대동소이했기에.

문득 가만 보고 있으면, 아직 화산에 있을 시절……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스승의 묘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화산으로.'

스승이 계신 그곳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내일 있을 대련에서 반드시 성공을 해야만 했다. 사형을 꺾고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 그 자신도 화산도 미래가 있을 수 있었다.

한사가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매화란 무엇인가. 매화란 어떤 나무인가.'

화산에 제자로 입문해 그가 처음 받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든 화산인들에게 동일했다.

화산의 매화들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검을 수련하고 도를 닦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매화를 떠올린다.

그들에게 매화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과 같이 하나의 수족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일부.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매화나무라 칭하곤 했다.

'매화란 무엇인가. 매화란 어떤 나무인가…….'

사념에 갇혀 있던 한사의 눈이 스르륵 뜨였다. 그의 주위로 웬 무리가 그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눈앞으로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진소 사형."

"오랜만이다, 한사.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느냐."

"……매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그 한마디에 진소의 미간이 좁혀졌다. 잠시 침묵으로 일관한 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가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

"내일 시합에서 기권을 선언해라."

한사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한사가 화산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 이면에는 진소의 지시가 있었다.

이대제자 밑으로는 차기 장문인인 진소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벌어진 일.

그러나 처음 두 사람은 꽤 돈독했었다.

그저 장난으로 가르친 이십사수매화검법 24초식 마지막 구결을 한사가 단 하루 만에 성공한 뒤로 나빠졌지만.

무려 1년에 걸쳐 터득한, 남들 같으면 5년은 공들여 익힐 구결을 하루 만에 익힌 그 모습에 당시 진소는 한 감정을 느꼈고.

한사의 괴롭힘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한사를 가만 바라보던 진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화산은 빛을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승리해야 하지. 우린 그걸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뛰어난 우승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승리도 중요하지만 부상 관리 또한 철저해야 한다.

그에 다른 문파 같은 경우엔 동문끼리 붙으면 보통 사전에 협의를 거치곤 했다.

어느 정도 선에서 싸움을 끝낼지, 누가 승리하기로 할지 등등을 말이다.

그들은 오늘 협상이 안 될 경우, 한사를 죽이기 위해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차마 그 일까진 하기 싫었던 진소는 진심으로 한사를 설득했다.

그건 일종의 죄책감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한 죄책감.

"오늘 남은 16명 중 화산 사람은 너와 나뿐이다. 아미파와 곤륜이 마교로 인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받고. 최근 의문의 사건으로 모용세가와 황보, 제갈, 소림의 인력이 사라졌지."

사실상 명문 정파의 반에 가까운 참가자가 사라져 버린 셈.

"그럼에도 이렇다 할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우리 화산에선 겨우 두 명의 참가자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건 그만큼 화산이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화산을 부흥시키길 원했다. 어쩌면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을 이용해.

그러나 고개를 젓는 한사.

"미안하오. 난 내일 꼭 나가야겠소."

"내일 출전을 한다 한들 네가 화산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으냐."

"물론, 화산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외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오. 난 내일, 우리 화산이 나아갈 길을 보일 생각이오."

그 한마디에 주위 화산인들이 칼을 빼 들었다.

"한사, 네가 오늘 무얼 잘못 먹은 모양이구나!"

"네가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넌 그저 화산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한 반쪽짜리 도사에 불과하다!"

그러고는 칼을 겨누며 다가서는 사람들.

진소가 팔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행동이 우뚝 멈춰 서고, 한사를 말없이 바라보던 진소가 몸을 홱 돌려 발을 옮겼다.

"좋다. 어디 기대해 보마."

돌아가는 길에 진소의 동기가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런 거야?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그로서는 지금 진소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 갔던 것. 진소가 그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녀석은 내 상대가 못 돼."

그러나 말은 그리했지만, 진소는 한사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다. 진정 화산을 위해 불타오르는 그 어떤 감정을.

- 오랜만이다, 한사.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느냐.

- ……매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한사, 너는 조금도 변한 게 없구나. 조금도.'

근데 나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길을 걸으며 진소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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