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29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9화
229화. 고진감래(苦盡甘來)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대망의 날이 밝았다.
그건 단순히 천강과 자청옥검 측이 바라던 날이 아니라, 온 관중들도 기대해 마지않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용봉지회 대련장에는 사람들이 크게 붐비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이구만!"
"난 어제 기대가 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잤네."
"하핫. 나 또한 그러하네. 그래서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나?"
"아무래도 남궁존이 이기지 않겠나?"
일전에 저잣거리에서 자청옥검이 남궁선을 앞에 두고 떠든 말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었다.
남궁존도 남궁선을 따라 제왕검형을 배웠으며, 그 형이 2초식밖에 못 배운 것과는 달리 모든 초식을 다 익혔다는 사실이.
그건 이내 사람들로 하여금 후계 싸움이 벌어질 것을 유추하게 했고, 이른 아침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며 이리 싸움을 벌이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대다수 사람들은 이번 싸움에서 남궁존의 승리를 확신했다. 다만 기대를 하는 건, 그래도 명색이 장자니 박빙의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해서였다.
"온다."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고, 이번 싸움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강은 남궁선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짤막하게 말했다.
"연습하던 대로만 해라."
"예, 천님."
그 모습을 본 자청옥검 또한 아들의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들. 아주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승리, 그 이상의 것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자청옥검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대련장 위로 올라서는 두 남궁의 후계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본다. 검을 빼 사선으로 늘어뜨린 남궁선의 모습에 남궁존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오늘 기회를 봐서 죽여 버려야겠어.'
그게 힘들다면 큰 상처를 입히거나 팔 하나 가져오든가.
남궁존 그는 그 어미만큼이나 성정이 포악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어미가 가문에서 그 부분을 맡고 있기에, 그는 늘 자신의 성정을 숨기고 겉을 잘 포장해왔다.
아마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태우가 그의 성품을 알았더라면 절대 제왕검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존은 결국 제왕검형을 배우는 데 성공했고, 이제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건 장자인 남궁선뿐이었다.
'네놈만 없다면 남궁의 주인은 앞으로 나다. 오늘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그리고 남궁존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어미인 자청옥검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승에서 잘 보거라, 청음검선. 네 아들은 이번 대련에서 내 아들에게 지고, 결국 모든 걸 다 빼앗길 터이니.'
남궁존이 칼을 빼 든다.
무림맹주인 남궁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판이 팔을 들어 올리고는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폭풍전야의 고요와 같이 대련장 주위를 맴도는 적막.
싸움이 시작되었는데도 가만히 서 대기하는 남궁선의 태도에 남궁존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는 물었다.
"형. 뭐해? 덤비지 않고."
"아직 부족한 동생을 앞에 두고 형이 선수를 취할 순 없지. 어디 한번 들어와 봐라. 오늘 네게 검이란 게 무엇인지 내 직접 가르쳐 주겠다."
남궁존의 가슴에 욱하는 뜨거운 게 올라왔다. 애써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그의 눈썹 끝이 의지를 벗어나 잘게 꿈틀댔다.
자신의 도발이 먹혀든 걸 확인한 남궁선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오고, 그건 남궁존으로 하여금 결국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었다.
"하! 기고만장하긴!"
남궁존이 몸을 웅크리더니 단숨에 그 형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하늘 높이 검을 쳐들었다.
"어디 지고 나서고 그리 건방 떨 수 있는지 보자고!"
제왕검형 제1식 태산부수기.
대자연의 기운이 빠르게 모여든다. 그 거센 기류의 고요하던 대련장 위로 맹렬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멍청한 놈! 차라리 선수를 취했더라면 최소 발악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공격 한번 못 해보고 지면 쪽팔릴 것 같아 선수를 양보했더니, 뭐? 검을 한 수 가르쳐 줘?
남궁존의 눈 끝이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마치 그의 감정을 투영하듯 주변의 기류도 더욱 거세어졌다.
그 속에서 남궁선이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올라가, 이내 남궁존의 검 끝에 빨려들어 가듯 이끌려 올라가는 남궁선의 검.
남궁존의 입가에 조소가 올라왔다.
제왕검형은 대자연의 기운을 이용하는 상승무공이다. 그중 태산가르기는 검 끝에 온 내기를 모았다가 폭발적인 일격으로 상대를 부숴버리는 기술이었다.
남궁존은 남궁선의 검이 부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위험한 상황에 남궁태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과 함께 단번에 두 동강 내어주마! 죽어랏!'
그러나 남궁존의 조소가 의아함으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어?"
스르륵 올라간 남궁선의 검이, 남궁존의 검과 함께 내려오며 그 궤도를 옆으로 튼다.
그저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을 뿐인 간단한 행동에, 남궁존은 남궁선 뒤로 날아가 그대로 고꾸라져야 했다. 그것도 아주 꼴사납게.
'대,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대련장에 기이한 기류가 감돌았다.
남궁존도 그 어미인 자청옥검도, 심사로 앉아있는 심사관들과 모든 관중들까지. 모든 사람의 눈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올라왔다.
그저 한사와 천강, 천수향만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주억일 뿐.
하지만 그 긴장감이 최고로 다다랐을 때, 누군가 번쩍 양팔을 치켜들고는 소리쳤다.
"최, 최고다아아아!"
"우와아아아!"
"미친. 제왕검형을 저리 가볍게 흘린다고?!"
제왕검형이 어떤 무공인가.
무려 남궁의 가주만이 소유한다는 남궁의 절대검법 아닌가.
혹자는 마교의 천마신공조차도 능가하는 기술이라 칭찬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절기가 이리 간단히 파훼되었으니,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역시 남궁!"
"장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사람들의 환호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남궁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침을 한 번 탁 뱉고는 자세를 갖췄다.
'이 시발 새끼가…… 지금 나한테 쪽을 줘?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격이 왜 실패했는지보단 남궁선이 그 자신의 공격을 파훼했다는 사실에, 하필 많고 많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수치를 당했다는 사실에, 남궁존의 본성이 훅 튀어나왔다.
"이런 좆같은 새끼가!"
욕설과 함께 남궁존이 단숨에 튀어와 남궁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수평으로 움직이는 검이었다.
제왕검형 제2식 회오리.
반 토막을 낼 기세로 짓쳐들어오는 매서운 검격.
그러나 그걸 맞이하는 남궁선의 얼굴엔 여유가 그득했다.
핑그르르 몸을 회전하더니, 이틀 전 냇가에서 천강이 보여주었던 그 움직임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후의 상황까지도!
"으헑……."
발이 꼬인 남궁존이 바닥을 뒹굴고, 그 검에 의해 팔 한쪽에 상처가 생겨 피가 배어 나온다.
그걸 본 심사관들이 무림맹주를 돌아보았다.
"맹주. 어떻게 하시겠소?"
그도 그럴 게, 이건 단순한 대련이 아니요. 후계를 결정하는 자리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대련을 중단하기 전 남궁세가 가주에게 묻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재 가주는 그들의 말이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며 그는 30년 전 일을 꿈꾸는 중이었다. 그가 처음 청음검선을 만났을 때의 일을.
-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태우라 하오.
- 무당파의 이대제자 청음검선입니다.
남궁선의 어미는 무당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무당파의 뛰어난 기재로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수련을 위해 중원을 돌아다닐 적 그는 그녀와 우연히 검을 섞게 되었고.
당시 남궁태우는 제왕검형이라는 절세의 무공을 가지고도 그녀에게 패배했었다.
그것도 단 일격도 성공하지 못한 채, 그녀의 살갗조차 베지 못하고 아주 처참하게 말이다.
당시의 인연은 이내 혼례로 이어졌고, 청음검선은 무당을 떠나 남궁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으니…… 그게 남궁선의 어미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무공을……!'
똑같다. 30년 전 그가 패한 방식과 정확히 똑같았다.
심지어 남궁선이 외모조차 그 어미를 닮다 보니 더더욱 남궁태우는 지금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궁태우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남궁존은 아주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과거 그가 그러했듯 아주 처참하게.
그걸 지켜보는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제왕검형은 모두가 인정하는 뛰어난 무공이지.'
그러니 그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가 대단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천강은 그걸 노리고 남궁선에게 일절 공격하지 말라 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남궁존은 더욱 조급해 날뛰었고, 제삼자가 보기에 갈수록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수차례 넘어진 뒤로는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했다.
남궁선은 이번 대련에서 공격 한 번 하지 않고도 승리를 거머쥐는 기적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걸 본 관중 중 누군가가 소리쳐 외쳤다.
"무전성린(無戰聖麟)! 상대의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기술에,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하였은즉, 무전성린이라 부르는 것이 어떠하오이까!"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이고 하나둘 그 칭호를 높이기 시작했다.
"무전성린!"
"무전성린!"
그리고 그 순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궁태우가 승패를 결정했다. 그렇게 대련의 승자는 남궁선으로 결정되었다.
사람들의 크나큰 환호가 도시를 크게 뒤흔들었다.
남궁존의 상태를 살피고 아무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남궁세가의 가주가 남궁선에게 나아왔다.
그는 남궁선의 양어깨를 꽈악 붙들고는 연이어 질문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네가 어찌 그 기술을 쓴 것이냐?"
"그게……."
"혹 어미가 떠나기 전, 네 어미의 무공을 전수받았던 것이냐?"
남궁선이 대답할 새를 주지 않고는 계속 묻는 남자. 그만큼 그는 지금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남궁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저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제야 남궁태우의 눈에 남궁선의 손바닥이 들어왔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기술을 이틀 만에 익히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 증거가 바로 걸레짝이 된 남궁선의 손이었다.
남궁존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노력의 흔적.
"하핫. 그래. 잘했다. 정말 잘했다! 일단은 시합이 계속 있으니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도록 하자."
"예……!"
처음이다.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가 이리 환하게 미소 지어주는 건.
남궁세가에서 태어나 늘 숨을 죽이고 살던 남궁선은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이 순간을 누리기까지 그는 무려 십 년을 넘게 참아야만 했다. 죽은 듯이 지내고, 재능은 최대한 숨기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목숨을 연명하는 길이었기에.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 이제 남궁의 주인은 너다. 축하한다.
천강의 전음에 남궁선이 밝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