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2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8화
228화. 남궁의 후계 다툼
팡. 팡팡.
봉과 검이 수차례 맞붙었다.
그에 따라 강기가 서로 반발하며 폭음과 함께 불꽃이 번쩍번쩍 일었다.
남궁존과 합을 나누는 철장투귀는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보통 재능이 아니군.'
아니, 역시 남궁의 제왕검형이라고 해야 할까.
일개 어린 무림인을 단번에 고수를 탈바꿈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봉은 변화무쌍한 무기다.
빠른 공격도 할 수 있지만, 강한 공격도 가능하고. 때론 유(柔)하게 움직이다가 변초로 환(幻)의 공격도 가능했다.
말 그대로 무기를 소유한 자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한도 끝도 없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게 바로 봉이란 무기였다.
그럼에도 철장투귀는 좀처럼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상대는 강(剛)의 공격인 만큼 어떻게든 부드럽게 흘리려 했으나, 과연 남궁세가의 절기. 상승무공답게 자신의 상성 공격에 대해 어느 정도 보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젠장.'
분명 진지하게 임한 대련이었다.
상대가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줄곧 전력으로 임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차례도 눈앞의 어린 무림인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힘과 기세에서조차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봉에 내기를 실어 힘껏 내리치는 그와는 달리, 상대는 그저 머리 위에서 밑으로 내려치는 가벼운 일격에 불과했는데…… 마치 대자연의 기운이 호응하듯 순식간에 밀려들어 와 그의 온몸을 단단히 붙들었다.
이는 한 개인과 싸우는 게 아닌, 대자연과 싸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런 속에서 철장투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였다.
"기, 기권하겠소!"
철장투귀가 손을 들어 올리고는 기권을 선언했다. 고요하던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
"대단하다!"
"과연 남궁!"
"이거 차기 맹주도 남궁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남궁세가의 차남인 남궁존과 그 가문을 찬양하는 사람들.
남궁선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그건 단순히 관중들의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천강이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저 녀석…… 재능이 없는 건 아니네.'
아니, 도리어 매우 뛰어나다.
제왕검형의 완성도도 생각보다 높은 게, 이대로라면 남궁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철장투귀란 자가 쇠봉이 아닌 나무 봉을 들었다면 승패가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천강은 지금 이 결과에 만족했다. 그는 이번 싸움에서 남궁존이 이기길 바랐다.
천강이 한사와 남궁선을 불렀다.
"오늘 시합들 다 끝났지?"
"예."
"그렇소."
"그럼 바로 수련하러 가자."
도시에서 반 시진 정도 떨어진 물가 옆.
작은 천 옆으로는 자갈과 모래가 가득하고, 그 양측으로는 수풀이 길게 머리를 드리워 주위의 시야를 차단한다.
이제는 천강 일행의 수련장이 되어 버린 그곳에서, 남궁선이 검을 들고는 주저주저하다 천강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천님. 제가 정말 동생을 이길 수 있을까요?"
천강의 시선이 남궁선에게 닿았다. 그가 움찔 몸을 떨고는 고개를 숙였다.
……불안하겠지.
오늘 싸움에서 남궁존은 남궁선이 불안을 느낄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참고로 대진표대로라면 이틀 후 남궁선은 그 동생과 맞붙기로 되어 있었다. 천강이 그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었다.
"그래. 많이 불안할 거야. 근데 그거 아냐?"
"예?"
"싸움이 무공의 완성도나 성취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때로는 작은 몸부림이 모든 걸 뒤바꾸는 법이다. 범람하는 물을 막아놓은 튼튼한 둑이 그저 개미들에 의해 무너지듯 말이야."
눈치 빠른 남궁선이 천강의 말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흡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천강이 하늘 위로 손을 뻗고, 검 하나가 날아와 그 손아귀에 안착했다.
천강은 아까 전 남궁존의 싸움을 복기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남궁세가 가주와 싸움을 벌이던 때의 기억 또한 떠올렸다.
'일단 남궁존의 제왕검형은 거의 완성에 가깝다고 봐도 되겠군.'
거의 9할 정도. 물론, 나머지 1할을 올리기 위해 10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의 무공 성취는 놀라울 만했다.
'그리고 내기도 생각보다 많아.'
남궁선과 한사 두 사람은 천강이 주기적으로 영약을 만들어 먹였다.
그런데도 내기 차이가 크게 없는 걸 보면, 저쪽에서도 최소 만년설삼 두어 개를 구해 먹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창궁무애검법으로는 승리를 확실시 못하는 상황이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천강은 편법을 쓰기로 했다.
예전에 제왕검형을 상대해보고 철저히 밟아준 입장으로서,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물론 당시엔 흡성대법으로 쓰러뜨린 것이지만, 그 당시의 경험과 지금의 신검합일 경지가 어우러지자 자연스레 파훼법이 떠올랐다.
"남궁선. 너는 네 동생과의 싸움에서 제왕검형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예?"
"대신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주는 기술을 연마한다."
그러면서 천강이 남궁선에서 손짓했다.
"제왕검형 절기로 공격을 해봐라."
마른침을 삼킨 남궁선이 자신의 거대한 검을 치켜들고는 천강을 향해 쇄도했다. 그 안에는 태산을 파괴할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동생과 비교해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격.
그러나…….
"어?"
천강의 가벼운 행동 한 번에, 그대로 천강을 지나쳐 엎어지는 남궁선. 그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자, 한 번 더."
다시 한번 펼쳐지는 검격.
이번에는 수평 베기였다. 팽이처럼 핑그르르 돈 남궁선의 검 끝이 마치 회오리처럼 천강에게 짓쳐들어왔다.
그러나 천강은 이번에도 가볍게 움직일 뿐이다.
검을 가져다 댄 뒤 남궁선의 회전 방향과 동일하게 회전하자, 남궁선은 본인이 달려들었던 방향으로 그대로 튕겨 나가 물속에 얼굴을 처박아야만 했다.
"모든 무공은 세상의 이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상성을 가지고 있지. 난 지금 너의 강(剛)검을 유(柔)로 받아낸 것이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무림인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부분.
그러나 설마하니 남궁의 비기라는 제왕검형조차도 이리 쉽게 파훼 될 거라고는 남궁선은 생각도 못 했다.
천강이 아직 자빠져 있는 남궁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네가 느끼는 그 어이없는 감정을 최근 한사는 계속 느끼고 있다. 너와 대련할 때마다 말이야."
"이게 무공의 상성……. 근데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냐?"
"제 검은 중(重), 강(剛)입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이가 모든 속성의 공격을 터득하려 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남궁선은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강은 그 걱정을 일축했다.
"네 모든 기술을 유로 바꾸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상대로부터 들어오는 공격을 유로 흘릴 줄만 알면 된다."
천강이 검을 들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공격할 필요도 없다. 유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냐. 그저 모든 걸 평화롭게 만드는, 화합의 기술이지."
마치 검무를 추듯 꽤 아름다운 형(形)이 천강의 손에서 피어났다.
그 안에는 대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제왕검형의 물길을 훼방 놓는 검결이 담겨 있었다.
천강의 검이 우뚝 멈춰 선다. 그 주위로 유영하던 자연의 기운이 빠르게 흩어져 사라진다.
"남궁선. 넌 동생과의 싸움에서 제왕검형을 펼치지 마라. 공격도 하지 마라. 그저 자연의 흐름을 따라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예, 천님!"
천강에게 배움을 얻은 남궁선이 그 수련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 대련 상대는 막 심사를 마치고 돌아온 천수향이 해주었다.
천강이 한사에게 다가오자, 그가 두 사람을 보고는 이야기했다.
"근데 천 형. 저건 무당의 검 아니오?"
"음? 용케도 알아봤네?"
"같은 도사잖소. 화산은 주기적으로 무당과 검을 나누어서 말이오. 그에 나도 두어 번 무당 사람과 맞붙어 본 적이 있어 바로 알아챌 수 있었소."
그러며 한사가 볼을 긁적였다.
"근데 무당의 무공을 저리 가르쳐 주어도 되오? 혹 그쪽에서 문제라도 삼으면……."
"아아. 걱정 마. 저건 무당의 검이 아니라, 검술의 기본인 중 하나인 흘리기니까."
그러나 단순히 흘리는 기술은 대자연의 기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오늘 철장투귀가 남궁존과 싸우며 고전한 게 그런 이유였다.
자연의 기운을 이끌어 그 길을 열고, 그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제왕검형 정도의 검격을 막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흔히 무공…… 그중 상승무공으로 분류한다.
한사가 보았을 때, 저 정도 기교라면 분명 무당의 태극원리가 진하게 가미되었다 봐도 무방했다.
'근데 뭐 천 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한사가 자신의 검을 들고 천강의 앞에 섰다. 솔직히 지금 그는 남궁선의 검에 관심을 가질 여유 따윈 없었다.
"한사. 준비됐냐?"
"물론이오."
"그럼 바로 시작하지."
***
"오늘 잘했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한쪽은 어깨를 두드리고, 반대쪽은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고.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태우의 칭찬에 남궁존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좀처럼 칭찬에 인색한 그가 칭찬할 만큼 오늘 있었던 대련은 꽤 대단했다.
"그럼 그만 가 보아라. 오늘 일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너무 자만심을 갖지도 말고."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남궁존이 예를 갖추고 돌아가고, 함께 있던 자청옥검이 슥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흥. 그깟 사파 나부랭이쯤이야, 우리 아들에게는 처음부터 안 됐어요."
"하핫. 그래도 그는 사파의 이름난 고수요. 오늘은 남궁존이 잘했다고 봐도 무방하오."
아들 칭찬에 자청옥검이 입가에 미소를 띤다. 그녀는 남궁태우에게 바짝 다가가, 그 손등 위에 손을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우리 아이를 후계로 지목하면 안 될까요? 온 사람들이 다 칭송을 하던데…… 차기 무림맹주도 우리 남궁 쪽에서 하겠다면서."
"흠흠. 아직은 좀 더 생각해본 뒤 결정하고 싶소."
"언제까지 말인가요?"
"일단 이번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진 한 번 지켜봅시다. 남궁선 또한 중원을 돌아다니며 깨달음을 얻고 열심히 준비했을 터이니."
"예……."
그렇게 남궁태우가 떠나고 자청옥검이 아랫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남궁선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진즉에 그 뒤에 사람을 붙였었다.
그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자신이 전해 들은 사실을 그대로 그 주인께 전달했다.
"일합무신과 화산파의 한사라는 자와 같이 수련하고 있답니다."
"수련? 뭔가 특이한 점은?"
"없답니다. 그저 대련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흥.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그깟 대련 몇 시진씩 해본들 변하는 건 없는데 말이야.
제왕검형은 만만한 무공이 아니다. 그 어떤 검술이라도 다 부수고 파괴하는 신적인 무공이다.
그녀는 이틀 후 있을 대련이 돌연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꼭 올라와서 우리 아들과 붙었으면 좋겠네.'
그러다 번뜩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더 지켜볼까요?"
"됐다. 가서 우리 남궁존 수발이나 들거라. 그리고 가면서 남궁십검을 불러들여라."
그녀는 남궁십검을 시켜 남궁선이 맞붙을 상대들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고 싸우게 했다. 그러면서 부상 한두 개씩 입히도록.
그녀는 이번 용봉지회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남궁존이 남궁선을 이기게 함으로써 그 장자의 직위까지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후후후. 둘이 직접적으로 붙고 나면, 남궁태우 당신도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겠지.'
자청옥검의 거처 안으로 여인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