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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2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7화

227화. 욕심이 화를 부른다

 

 

"왜 웃는 거지?"

천강의 미소를 본 모용걸이 사신 넷을 이끌고 다가오며 물었다.

"아아. 그냥. 근데 괜찮겠어?"

돌연 존칭을 반말로 싹 바꾸는 천강의 행태에 모용걸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뭐가 말인가?"

"감당 못할 짓은 벌이는 게 아냐. 네놈도 들어봤을 텐데. 내 물건에 손을 대려다가 죽은 수많은 녀석들에 대해 말이야."

"큭큭큭."

모용세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보기엔 지금 천강은 허풍을 떨고 있었다.

모용걸이 고갯짓을 하자, 사신 둘이 천강의 뒤로 가 도주로를 차단했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게 그렇게 갖고 싶어?"

천강이 천잠보의를 들어 보인다. 그 팔의 움직임에 모용걸의 눈에 탐욕에 물든 채 그것을 쫓아다녔다.

"허튼짓 할 생각 말고 내놓을 거면 그냥 내놓거라. 그러면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랄하네. 지금 네 눈은 전혀 안 그렇거든?"

"기어이 명줄을 단축할 셈인가."

픽 한 차례 웃은 천강이 몸을 일으켰다.

내어주든 안 내어주든 날 공격할 셈이다.

심안(心眼)으로 본 녀석은 분명 그러했다. 그러나 저리 계속 제안하는 건, 저잣거리가 바로 옆이라 혹여 중간에 다른 무림인들이 끼어들까 염려가 된 것이겠지.

"정말로 날 살려 보내준다 약속할 수 있나?"

"물론. 내 관심은 오로지 천잠보의뿐."

"좋아. 그럼 가져봐."

천강이 천잠보의를 벗어 모용걸에게 던졌다.

신이 나 곧바로 몸에 걸치는 모용세가 가주. 그가 희열 가득한 얼굴로 천잠보의를 내려다보았다.

"하핫. 이것이 신병이기! 과연 신비한 느낌이로다!"

"가주. 저자는 어떻게 할까요?"

"음?"

천강을 가만 바라보던 모용걸이 씨익 이를 드러냈다.

"적당히 두들겨 팬 뒤 단전을 파괴하고 놓아줘. 무림맹 앞에서 딴소리 못하게 혀와 손가락들도 다 자르고."

사신들이 천강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줄곧 천강의 시선은 천잠보의를 덮고 있는 모용세가 가주에게 가 있었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됐는데.'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천잠보의 탐(貪)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한마디 했다.

"인간. 넌 날 감당 못 하겠군."

"어어? 신병이기가 직접 말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굶주림과 식욕을 강하게 느낀 탐(貪)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는 모용세가 가주를 단번에 먹어 치웠다.

"끄, 끄아아……."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용걸. 그러나 이미 내기부터 싹 다 빨려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심연에 가까운 공허한 입속을 구경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수행원들이 급히 달려가 검강으로 천잠보의를 내리쳐도 흠집 하나 안 나고, 결국 모용세가의 가주는 탐(貪)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꺼억. 잘 먹었다. 근데 아직 배고파."

"그래? 그럼 다른 놈들도 먹어. 너 줄게."

"후후. 인간 중에 난 네가 제일 마음에 들어."

천잠보의가 순간적으로 네다섯 곱절 늘어나 사신들을 붙잡았다.

인간을 꽤 사냥해 보았는지 녀석은 전광석화로 움직여 내기를 쪽 앗아갔고, 이후엔 바닥에 엎어져 파들거리는 이들을 하나씩 먹어 치웠다.

"끄어억."

"사, 살려줘."

"으음. 질기구만. 인간이 뭐 이리 단단하지?"

몇 번 씹다가 그냥 목구멍 뒤로 넘겨버리는 녀석. 그렇게 화경급 사신 다섯은 탐의 활약으로 가볍게 제압되었다.

'오늘 이놈을 잡았으니, 이곳 용봉지회에 모인 배신자 무리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겠네.'

자고로 무언가를 속행할 땐 머리부터 쳐야 하는 법이다.

단순히 생물을 따져 봐도 그 머리를 치면 숨이 멎고, 무리는 대가리를 치면 힘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그리고 천강의 예측대로 한 몸처럼 움직이던 배신자 무리는 갑자기 사라진 지휘자로 인해 멍하니 대기하기 시작했고, 이내 천강의 습격에 하나둘 이승을 떠야만 했다.

또한 암운신공을 사용해 탐을 통해 그 시체를 감쪽같이 다 지우자, 무림맹으로서는 뭘 수사할 수도 없었다.

그저 최근에 실종 사건이 잦다며 주의하라고 할 뿐.

그렇게 본선에 진출할 즈음에는 배신자 무리는 오직 화산과 남궁 쪽만 남게 되었다. 천강은 그 둘을 일부러 남겨두었다.

 

***

 

뜨거운 태양 볕에 땅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기.

그러나 숭산의 앞에선 그보다 더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주인 남궁태우가 앞으로 나와 팔을 치켜들었다.

"그럼 현 시간부로 용봉지회가 시작됨을 알리노라!"

우와아아아-

온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 행사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을 뽑아 용(龍)과 봉(鳳)으로 명명하고. 10강을 선정해 큰 상과 명예를 수여하는 자리다.

한 번 이곳에 이름을 날린 이들은 최소 5년간은 호사가들과 민간인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흩날리니, 명예를 최고로 치는 이에게도. 그리고 돈이 목적인 이에게도.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기다려지는 축제라 할 수 있었다.

그 용봉지회 본선의 막이 이제 막 오른 것이다.

"천강, 잘해."

천수향이 천강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응원한다. 천강이 픽 작게 웃었다.

"걱정 마셔. 애들 싸움에 뭔 일 있을까."

본선부터는 순수하게 대련 형식으로 올라간다.

일대일 대결이고, 한쪽이 기권 혹은 장외로 떨어지거나 그도 아니면 전투불능이 되었다고 판단돼 심사관들이 경기를 종료시키면 승부가 나는 방식이었다.

천수향이 심사 자리로 가고, 천강은 무대 위로 올라섰다.

'마치 기경만회를 하는 기분이로군.'

잘 닦인 바닥 위에서, 다수의 구경꾼들의 시선을 받으며 싸우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한 20년 됐나?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상대측에서 사람 하나가 올라왔다. 천강의 첫 상대는 소림의 삼대제자였다.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내 시주께 한 수 배우겠소이다."

그러나 공손한 말투에 비해 눈빛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현재 천강은 모든 문파로부터 동문을 살해한 무도(無道)한 이로 여겨지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정당방위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천강이 뒷짐을 졌다.

심판이 시작을 알리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상대는 천강을 향해 단번에 뛰어와 장법을 내질렀다.

"어디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보겠소이다!"

그러나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달려든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소림승.

발로 밀어 차 날려 보낸 천강이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역시나 애들 싸움에 낀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이건 뭐 괴롭히러 온 것도 아니고.'

심판이 후다닥 올라와 결과를 선언한다.

"자, 장외패. 승자는 청해에서 온 천!"

우와아아-

"천! 천!"

그 이후의 싸움도 속전속결이었다. 천강의 싸움은 채 일합이 넘어가질 못했다.

보는 무인도 일반인들도 이 놀라운 상황에 그저 입을 쉴 새 없이 나불거렸다.

"아니, 내기를 전혀 안 쓰고 싸우다니. 저게 정녕 가능하단 말이오? 무슨 이상한 술수를 쓴 게 아니오이까?"

"그러게 말일세. 무려 화경도 한 방에 나가떨어지다니."

몇몇은 그 부분에 대해 무림맹의 의견을 구했으나, 숱한 고수들이 봐도 천강의 싸움에서는 일절 내기를 느끼지 못했다.

"문제가 없소이다. 아무래도 외공 쪽 고수인 듯하오."

그 한마디에 모두의 눈이 뒤집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림에서 외공은 그저 삼류…… 잘 쳐줘야 이류 정도의 강함을 논할 때나 등장한다.

진정한 무(武)는 내기를 사용하는 것. 즉, 내가중수법이 최고라는 게 중원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화경. 그 화경이 외공을 수련한 무인에게 단 일격에 나가떨어졌으니…….

이는 무(武)의 상식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못 믿겠소! 어찌 외공 따위 조잡한 술수가 내공을 수련한 이를 압도한단 말이오! 혹 신병이기 때문이라면 모를까!"

물론, 무림맹의 의견에 반하여 끝까지 따지고 드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기에.

그러나 그는 곧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화산파 진소."

"예, 맹주님."

"현 중원에는 명불허전 외공 고수가 한 분 존재한다네. 바로 금강왕(金剛王)이시지. 자네는 지금 그분 또한 욕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군."

그 대화는 이내 저잣거리 내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자연스레 천강은 금강왕의 제자가 아닐까 여겨졌다.

외공 고수가 내공 고수를 쓰러뜨렸다는 사실보다는 그게 머릿속으로 더 받아들이기 쉬워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그날의 본선 경기가 끝이 나고, 천수향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천강. 근데 왜 내기를 사용하지 않는 거야? 넌 내공도 묵빛이 아니잖아?"

일반적으로 마공은 검은빛을 띤다. 그러나 북명신공은 무색. 굳이 따지자면 흰빛에 가깝다.

그럼에도 천강이 내공을 쓰지 않는 이유는 하나.

"아아. 괜히 흡공이 발동됐다간 골치 아파서."

"아하? 근데 전생에는 잘만 쓰더니?"

흡성대법은 본인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명신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내기를 흡수한다.

그에 천강은 도리어 싸움 중 내기를 운용하지 않도록 억제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무튼 천강 대단해! 내기도 안 쓰고 화경을 일격에 쓰러뜨리다니!"

그러게. 새삼 신물(神物)을 들어 올리겠다고 먹어 치운 천령초가 이리 강력할 줄은 천강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천강과 천수향이 숙소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었는지 한사와 남궁선이 팔을 흔들었다.

칼을 들고 있는 모양새가 오늘도 한 수 배워보려는 모양.

천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을 이끌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

 

삼 일째 날이 밝았다.

약 천여 명에 가깝던 본선 진출자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오늘 경기까지 치르면 도합 육십 정도의 수로 추려지니, 슬슬 강자들이 제 실력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화산! 잔상이 수백 개가 이는 게 마치 꽃이 흩날리는 것 같구만!"

"하하핫. 역시 팽가는 무식하고 강력한 한방이지!"

대련을 하는 각 문파들의 개성이 도드라지고.

"그만!"

"아직 더 싸울 수 있습니다!"

"이미 승패가 갈렸소."

심사를 보는 이들이 싸움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점점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천강은 단 한 합에 적들을 보냈고, 사람들은 그런 천강을 일컬어 일합무신이라 일컫고 있었다.

천강이 내려오고 다음 대련자들이 무대로 올라간다. 남궁선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된 상태였다.

이번 시합은 남궁세가의 차남인 남궁존과 사파의 이름난 고수 철장투귀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서로 떠들기 시작했다.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아무래도 철장투귀가 이기지 않겠는가?"

"무려 제왕검형을 익혔는데도?"

"에이. 그래도 무림에 몸을 담근 세월이 너무 차이가 심하지 않은가. 철장투귀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별호를 얻은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어가는구만."

그랬다. 철장투귀는 십 년 전부터 이름을 떨쳐온 고수였다.

무거운 쇳덩어리 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신위에 숱한 무림인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왔다.

"또한 경험치만 있다면 봉만 한 게 없지. 모든 조화로운 공격과 변칙이 가능하니까 말이네."

"듣고 보니 그것 그렇군. 쯧쯧. 대련 운이 너무 없구만."

"그래도 남궁세가니 아마 용(龍)의 칭호는 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모두가 남궁존의 패배를 예상하고 도박도 하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정작 싸움이 시작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남궁존이 철장투귀와 막상막하로 싸운 것이다. 아니, 서서히 철장투귀가 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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