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26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6화
226화. 모용세가의 가주
예선전이 끝났다.
한사와 남궁선은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한사의 경우엔 재능 자체가 너무 뛰어나 손쉽게 통과했고, 남궁선의 경우엔 명문정파의 자제답게 기본기가 탄탄해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예선전이 끝이 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자 사람들은 한 사람을 주목했다.
바로 청해에서 온 천!
일반인들이 그를 볼 수 있었던 건 딱 한 번. 화산파 무리와 격돌이 있을 때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천강의 인기는 크게 구가 중이었다.
그러나 천강은 무림 사람들에겐 다른 의미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무림맹 임시 회의실 문을 열고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전현이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모여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미안합니다. 가문에 일이 생겨 그만……."
"들었소. 마교가 본가를 급습했다고 말이오."
"예. 황보세가에 이어 저희 쪽도 공격을 당했군요."
"흠. 그럼 이로써 네 개의 문파가 공격을 당한 것이로군."
곤륜, 모용, 황보, 제갈.
설마하니 빈집에 가까운 본가를 급습할 줄 몰랐던 그들의 얼굴엔 낭패감이 어려 있었다.
"다른 분들도 조심하시지요."
아무튼 명문 정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모인 걸 확인한 무림맹주가 팔을 들어 올렸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이리 모시게 되어 미안하외다. 이리 모이라 한 것은 최근 3일간 일어난 소동으로 인해 그런 것이외다."
"들었습니다. 각 문파의 뛰어난 이들이 시체로 발견되었다고요?"
"그것이 한 사내에 의해 벌어졌다고 들었소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어찌 별호도 없는, 촌에서 온 새파란 젊은 애가 장로를 살해한답니까."
"그래도 분명 그 사내가 연관이 된 건 틀림없습니다."
모용세가 가주의 주장에 장문인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몽둥이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본 탓이다.
무림맹주가 턱을 쓸며 말을 이었다.
"우연이겠거니 하기엔 너무 일이 커졌소. 죽은 이의 숫자가 무려 칠백에 육박했소이다."
"치, 칠백?"
각 문파에서 쉬쉬해서 몰랐을 뿐, 그리 많은 수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에 여러분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볼까 해서 불렀소이다."
흠. 각자 턱을 쓸며 장고에 잠긴 채 말을 안 하는 사람들. 결국 보다 못한 모용세가의 가주가 제안했다.
"일단 당사자를 소환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천강은 점심 식사 중 무림맹에 불려가게 되었다.
천수향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는 따라간다고 했으나, 데려가 본들 한판 싸울 기세라 천강은 극구 그녀를 진정시키고는 무림맹 회의실로 홀로 발을 옮겼다.
- 소년. 소년은 걱정 안 되나요?
'뭐가?'
- 연쇄 살인 혐의를 받고 불려가는 것치고는 여유로워서요.
'뭐 어때. 내가 범죄자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황제 앞으로 판결받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끽해야 최대 형벌이 무림공적일 뿐, 그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왜냐? 이미 흑살마신은 무림공적이었던 것이다.
다만 의아한 점은 있었다.
'이건 무림맹에서 관여할 일이 아닌데.'
무림에서 치고받는 일은 각자가 해결해야 할 일.
"맹주님. 청해에서 온 천이란 자를 데려왔습니다."
"들라 하라."
천강이 성큼 발을 옮겨 무림맹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호오. 이자들이 현 무림을 다스리는 실세들이라 이 말이렷다?'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찾아오네.
대부분이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그중 몇몇 아는 얼굴 또한 있었다.
하북팽가의 가주가 천강을 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고, 사천당가의 임시 가주 당묘오가 천강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엔 아미파 사람도 있었다.
색귀에 의해 단전이 파괴될 뻔했다가 목숨을 건진 여인.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 일대제자인 그녀가 대표로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그녀가 천강에게 까딱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땐 고마웠습니다, 대협.
- 별말씀을.
그렇게 좌우를 한 번씩 살핀 천강의 시선이 제일 상석으로 향했다.
일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남궁선의 아비인 무림맹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흠흠. 이리 불러 미안하군. 최근 연달아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환부를 본즉 자네가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이 되어서 말이네."
천강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섰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천강의 대답에 곳곳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이 그 사실을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용세가 가주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올라온 걸 확인한 천강이 뒷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제 신병이기를 노리고 온 자들입니다. 무기를 들고 살격을 내질러오니 응대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오면서 듣기로는 제게 덤빈 자들보다 숫자가 훨씬 많이 집계되었더군요."
그러자 고개를 주억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모용세가 가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걸 본 천강의 고개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네놈이로군. 날 이곳으로 불러들인 게.
'혹시 태감이 알아챈 걸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번 일에 어떻게든 범죄로 엮어보려는 건 저놈이 분명했다. 뭐…… 생각처럼 일이 잘 안된 모양이지만.
"흠. 알겠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라."
"아니, 저리 보내시면……."
"어차피 진술로는 더 알아낼 것이 없소. 시간 낭비일 뿐이외다."
무림맹주의 말에 천강이 꾸벅 허리를 숙이고 발을 돌렸다. 뭐라 더 말을 하려던 모용세가 가주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실 천강의 말마따나 사망자 수가 너무 많았다.
그냥 숫자만 많으면 모르겠는데, 그 안엔 고수들까지 상당수 껴 있었다.
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당사자도 너무 과하게 집계되었다며 의문을 드러내니 그들로서는 다른 쪽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직접 사인(死因)을 확인해 보았소만, 죽은 이들의 반 정도는 날카로운 찌르기에 즉사하였소."
"저도 보았습니다. 대부분이 머리, 목, 심장 등등 급소를 일격에 꿰뚫렸더군요."
"몇몇 환부는 검강의 흔적까지 발견되었지요."
"그 말씀들은……."
무림맹주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무래도 천잠보의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다 죽은 모양이오."
솔직히 그게 가장 정확했다. 무림에서 왕왕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고.
비급이나 영약 등 귀중한 물건을 함께 훔치자 해놓고 서로 배신하는 일은 역사적으로도 숱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그 환부는 천강의 신병이기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천강이 몽둥이 휘두르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은 탓에 벌어질 수 있었던 오해였다.
"그럼 적당히 공문을 밝혀, 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건 어떻나요?"
"좋은 의견이오."
"좋네요."
당묘오의 의견에 팽가와 아미파에서 호응하고 나서고,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세가의 가주만이 얼굴 위 주름을 만들어냈다.
'젠장. 수감돼 장비를 압수당하면 그 틈에 몰래 빼가려 했건만.'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걸은 강해지는 데에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
태감이 천강의 존재를 알아챈 게 아니라, 이번 일은 그저 그의 사욕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천강의 신병이기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걸 배신자들에게 은밀히 풀었고, 그들이 천강에게서 물건을 뺏길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뒤엔 자신이 갈취하기 위해.
그러나 암살은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판단한 그는 천강을 죄인으로 몰아 수감시킨 뒤, 그 후에 빼 갈 계획을 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문파의 상황을 간과하고 말았다.
모용세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장문인들이 다 내부 배신자들로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죽은 이들은 다 의심을 받는 자들. 안 그래도 명분이 없어 처리를 못 하던 그들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그에 너도나도 적당히 사건을 덮은 것이다.
그렇게 외부로는 신병이기를 노리고 달려들다 역으로 제압당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
"역시 권력 있는 자들이라는 건가. 사건이 순식간에 종결되네."
"흥. 다 내 눈치를 본 덕인 줄 알아."
천수향의 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지금 용봉지회에서 천강은 음존의 젊은 애인으로 꽤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무림맹주도 그 부분을 무시할 순 없었으리라.
'그래도 좀 아쉽게 됐네.'
- 어떤 점이 말인가요, 소년?
'지금까진 알아서 척척 찾아와주니 참 편했는데, 오늘부터는 직접 찾아다녀야 하잖아.'
후우. 생사경 훈련, 마저 해야 하는데.
'뇌명아, 지금까지 배신자 몇 명 잡았지?'
- 761명입니다.
'남은 이들은?'
- 900명 정도 남았습니다.
아직 많이 남았네. 결국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다만 그전에…….
천강이 천수향을 돌아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로 옆에 앉아있던 천수향 또한 천강을 돌아봤다.
"흐응~ 표정을 보니 내게 부탁할 게 있는 모양이네."
"어. 내 신병이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공문이 오늘 저녁에 내려진다고?"
"맞아."
"그럼 그거 살짝 미뤄줘."
"응?"
천강의 말을 이해 못 한 천수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강이 설명을 구체적으로 덧붙였다.
"그거 내일 아침으로 미뤄주면 좋겠는데."
홍랑은 집착이 심하다. 그러나 그만큼 그녀는 천강이 하는 부탁이라면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은 채 들어준다.
천수향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알겠어."
자, 그럼 마지막 미끼까지 다 풀었고. 이제 결과만 보면 되는 건가?
그리고 그날 밤. 찌가 크게 움직였다.
뿌려 놓은 떡밥에 무려 대어가 움직이고 만 것이다.
***
천강은 이번 일이 태감(太監)의 작품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태감이 천강의 존재를 알아챈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었기에.
그걸 위해 천수향에게 공문을 미뤄 달라 부탁한 것이었다.
'만약 태감이 시킨 일이라면 오늘 밤은 배신자들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천강과 무림맹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는 데 실패했으니 그로선 굳이 전력 손실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지막 미끼에 대어가 나타났다.
저잣거리 뒷골목 으슥한 골목에서, 천강이 모용세가의 가주와 그 똘마니들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 무림맹에서 하지 말라고 공문까지 띄웠는데, 이래도 됩니까?"
"걱정하지 마라. 공문은 내일 아침 뿌려질 예정이니."
"하긴. 그전에 제게서 신병이기를 뺏어간다면 욕을 좀 먹을지언정 문제가 없긴 하지요."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내놓거라."
모용걸의 요구에 천강이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약 올리듯 삐딱하게 그를 바라봤다.
'모용세가 가주 본인은 화경, 나머지도 전부 화경이군.'
다만 특이한 점 하나. 모용세가의 가주와 그 졸개들에게서 내기가 전혀 안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내기를 숨기는 걸 기가 막히게 한 건가 했는데, 현재 검강을 구현하는 와중에도 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선 하나였다.
'녀석, 사신이었군.'
모용세가 가주 모용걸.
어느 날 갑자기 전대 가주가 독으로 사망. 그 뒤를 이을 장자도 뒷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그렇게 가주가 된 인물.
그 재능이 너무 보잘것없어 가주로 세워야 하나 말이 많았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강해진 이유로 신선환을 들었다. 그 뒤로 신선환은 무림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영약이 되었다.
'중원에서 장문인 배신자는 모용세가가 유일해.'
태감(太監)은 대부분의 시간을 궁에 갇혀있다.
그 때문에 그는 배신자들을 통솔할 이를 따로 세워야 했고, 마교 쪽에선 그 역할을 맡은 이가 투파창귀였다.
'중원 쪽은 누가 황실과 잇고 있나 궁금했는데, 이놈이었나?'
신선환에 사신이라…… 그 두 가지만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결국 이번 일은 모용세가 가주 본인이 단독으로 일으킨 일이라는 뜻이 되는군.
모용세가 가주를 바라보는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