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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2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4화

224화. 예선전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는 산에 올라가는 이들을 가만 바라보는 소림사 2장로와 제갈세가 3장로의 입가엔 흡족한 미소가 올라왔다.

"허허. 저번 용봉지회에 비해 전체적으로 수준이 확 올라갔군요."

"그러게 말이오. 참으로 좋은 소식이지요. 이제야 전화(戰火)의 불길이 사그라들고 무림에 볕이 들려나 봅니다."

원(元)이 망하고 명(明)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후퇴했다.

특히 무림을 이루는 근간은 바로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며 무림이 망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토록 많은 이들이 용봉지회에 참여한 걸 보니 그들은 마음 한구석에 뭉클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번에 용봉지회에 얼마나 참여했답니까?"

"4천이오."

"허헛. 정말 어마어마한 수로군요. 이거 잘하면, 눈을 감기 전 우화등선 하는 이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생사경(生死境)의 경지부터는 하늘의 부름을 받아 우화등선을 한다고 한다.

이미 현경의 실력자들이 다수 출현하는 마당에 생사경이라고 불가능하진 않을 터.

그에 많은 이들이 무림의 고수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쩌면 먼 후대에 기록될 역사적인 순간에 자신들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그러고 보니 기록이 어제 바뀌었다고 들었소만."

"아, 어제 화산파 일대제자 진소라는 아이가 반 시진(時辰)의 기록을 달성했소이다."

화산파 일대제자 진소는 화산파 일대제자 중 제일로 불리는 이다. 차기 장문인으로까지 지목된 이.

원래라면 최단 기록은 제갈세가의 사람이었으나, 약 일각(一刻)의 기록을 더 앞서며 화산에서 최단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왜 예선에 참가한 지 모르겠구려. 그 정도면 그냥 본선에 바로 진출해도 될 터인데."

"화산의 장문인께서 그런 부분을 못 보시지 않소."

"하하핫. 그랬구먼."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터였다.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서 무림맹주를 필두로 사천당가, 소림사, 제갈세가의 가주가 나타난 탓이다.

두 장로는 사람들을 시켜 급히 자리를 만들고는 시원한 걸 준비케 했다.

"아니, 다들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아아. 담소를 나누며 지나는 길에, 여기 당 가주의 여식이 오늘 예선전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오."

"당가에서도 말입니까?"

사천당가의 임시 가주 당묘오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냥 본선에 참여하라니까는 기어이 제 손으로 올라간다 하여…… 별수 없이 그리되었습니다. 후훗."

"허허헛. 그럼 예선전에서 누가 최단 기록을 달성할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었군요."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제 막 올라갔습니다. 일각(一刻)이 다 되어가는군요. 아직 한참을 기다리셔야 하니 여기 시원한 냉수라도……."

그러나 그 순간, 모두의 고개가 숭산의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합격 패를 내미는 사내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패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다섯의 담당자, 그리고 헉헉거리며 뛰어와 뒤늦게 패를 내미는 여인이 있었다.

 

***

 

약 일각(一刻) 전.

예선전 시작 신호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산을 오른다. 그 모습을 잠시 가만 바라보던 천강 또한 발을 선선히 움직였다.

그런 그를 바짝 따라오는 당소여.

"어이. 넌 왜 날 따라오냐."

"그냥 가는 방향이 같은 거예요."

하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어차피 걸어가면서 할 일도 없겠다, 천강은 뒷짐을 지고는 당소여에게 물었다.

"근데 각 가문마다 한 명씩은 예선전 참여 안 해도 된다던데. 넌 왜 참여한 거냐?"

"그냥…… 특별대우 받는 게 싫다고 할까요."

"얼씨구. 배가 불렀네."

"배가 부르다뇨. 순수하게 제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 말이 진심이라면 꽤 기특한데?"

천강의 칭찬에 당소여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볼을 붉혔다.

사실 그녀가 예선전에 참가한 이유는 하나였다.

'뭐? 천 대협이 예선전에 참가했다고?'

당묵정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그녀는 단숨에 본선 직행의 권리를 버리고 예선전에 참가 신청했다.

그런 뒤 이루어진 시험 일자 조작.

합격 여부는 몰라도 시험 일자 정도는 얼마든지 손댈 수 있는 사천당가였다.

현재 사천당가는 오대세가 중에서도 남궁을 누를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훗. 이모가 없는 틈에 천 대협과 갖는 오붓한 산보!'

그러나 그 오붓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산세가 점점 심해지자, 천강이 고개를 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기관진식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군.'

혹시나 큰 사고로 번지지 않게끔 숨어 지켜보는 다수의 사람들도.

'지금부터는 속도를 내도 되겠어.'

어릴 적부터 인생을 즐겨본 적 없는 천강이다. 무언가를 목표했으면 곧장 달려가 그걸 이루는 게 천강의 방식.

스승과 함께할 때 잠깐 그런 성격이 사라졌었으나, 이후에 이종진기의 문제에 쫓겨 더더욱 치열하게 살아온 그였다.

예선전을 끝내고 돌아가자는 일념에 천강이 속도를 올렸다. 당소여가 눈을 크게 뜨고는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무, 무슨 속도가?!'

다리에 온 내기를 실어 쫓아가는데도 거리가 점차 벌어진다.

그러나 정작 당소여보다 그 주위에 숨어 지켜있던 이들이 더 놀라고 있었다.

'미친. 함정에 한 번을 안 걸려?'

마치 함정이 어디에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그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소림사에 도착한 천강. 합격(合格)이라 적힌 패를 받는 사이 당소여도 도착하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걸 받아든다.

천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어? 너 꽤 하잖아?"

사실 별생각 없이 뛰어 올라온 천강은 당소여가 자신을 따라왔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그에 진심으로 놀라 말한 것이었다.

조금 전 지나온 함정들이 꽤 만만치 않았기에.

천강의 칭찬에 당소여가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고는 여유를 부렸다.

"뭐…… 이래 봬도 무림의 봉(鳳) 중 하나니까요."

"이야. 남자들이 선녀 선녀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겠구만. 이 정도로 날고 기는 매력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지."

연이은 칭찬에 당소여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왈.

"천 대협. 혹시 예선전 끝나고 시간 되세요?"

그러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고, 그 옆에 있던 동자승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분 방금 막 출발하셨습니다."

"에?! 천 대협! 천 대혀어업!"

천강은 올라올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그 뒤를 따르는 당소여는 200보의 거리를 두고 간신히 2등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대체 어, 어떻게 된 몸뚱어리야. 헉. 허억. 화경인 내가 내기를 다 쓰다니……?'

그저 달렸을 뿐인데 내기를 다 쓴 상황에 당소여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일각(一刻)이 조금 못 돼 도착한 천강과 살짝 넘겨 도착한 당소여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크게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처음엔 믿을 수 없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지금 이 중요한 행사에 무슨 잔꾀를 부린 것이냐아아아!"

그러나 소림 장로의 벼락같은 호령에도, 개가 짖나? 천강은 별 반응이 없고. 도리어 당가의 당묘오가 눈을 매섭게 뜨며 반박했다.

"그 말은 제 딸아이도 잔꾀를 부렸다 이 말입니까?"

"흠흠. 그것이 아니오라."

무림맹주가 천강과 당소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청해에서 온 천이라……. 그래. 오늘 예선전을 어찌 이리 빨리 끝낼 수 있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그냥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게 끝?"

천강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소림 장로가 바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고 천강이 누구인지 확인한 당묘오가 그 손을 막아 고개를 저었다.

- 지켜봅시다.

탁 그걸 쳐내고는 일단 한발 물러서는 소림 장로. 무림맹주가 이번에는 당소여에게 물었다.

"사천당가의 여식 당소여. 네가 말해 보거라. 어찌 이리 빨리 왔느냐."

그러나 당소여로서도 할 말이 없긴 매한가지. 그녀는 그저 천강의 뒤를 허겁지겁 따라오느라 함정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냥 내기를 전력으로 써서 뛰어왔습니다."

"그럼 혹시나 기관진식들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오이까?"

소림방장의 질문에 제갈세가의 가주가 충분히 일리가 있을 수 있다며 확인하러 올라갔다.

하지만 이각(二刻) 후. 돌아온 제갈전현은 사건의 경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천강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흥미 가득한 눈으로 천강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살피는가 하면, 팔이나 다리 근육, 손금과 관상을 봤다.

- ……요놈 잡아먹어도 되나?

- 참아.

천강이 애써 탐(貪)을 진정시키는 사이 제갈전현의 행동은 지속됐고. 결국 참다못한 소림의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아아. 내 정신 좀 보게. 미안하외다. 일단 기관진식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 그럼?"

"거기 숨어있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요 두 사람은 정상적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 게 맞습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숭산 초입에서부터 소림까지 그냥 뛰어갔다가 와도 일각(一刻)의 시간이라면 놀라울 일인데, 현재 그곳은 함정으로 그득했다.

이곳 출신인 소림의 이대제자들이나 기관진식에 능한 제갈세가의 무인들에게 똑같이 시켜도 이 정도의 시간은 절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자세히 말해 보거라. 비결이 무엇이냐."

사람들의 반응과 무림맹주의 질문에 천강이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설렁설렁 다녀오는 건데.

천강이 슥 천잠보의를 들어 올렸다.

"그건 이것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천잠보의라고 노상에서 곤란한 일에 처한 도인을 도와 얻은 도구이온데, 기관진식 등의 결계에 가까이 다가가면 이게 신호를 줍니다."

탐(貪)은 오랜 기간 이철괴의 기관진식에 갇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기관진식만 보면 과도한 신경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에 천강은 탐이 시키는 대로 방향을 잡아 발을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함정에 걸릴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한 번 만져 봐도 되겠느냐?"

"신병이기라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신병이기……!"

일반 무기도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이 무림의 예의다. 그중 신병이기는 더더욱 그랬다.

자칫 기존 주인과의 공명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천강의 행태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소림 장로는 거기에 대고 불만을 토해냈다.

"남들은 온전히 제 실력으로 뛰는데 신병이기라니!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과연 저게 진짜 신병이기인지조차도 말입니다. 혹 압니까? 저 안에 시험 정보가 누출돼 함정 표기가 되어 있을지 말입니다!"

하아. 누가 땡중 아니랄까 봐. 끝까지 물고 늘어지긴.

보는 눈들이 있어 참는다.

특히나 천강 자신을 향해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당묘오가 상당히 거슬렸다. 대체 왜 저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

'아무튼 사태 수습은 해야겠지.'

천강이 잠잠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최대한 저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기도, 근육도, 머리도, 그리고 무기나 장비도. 그 사람의 힘이라 생각합니다만."

"뭐라?"

"아닙니까? 무림인들은 각자 자기가 쓰는 무기와 장비를 늘 품고 삽니다. 당장 이번 시험만 봐도, 그저 오르락내리락 발만 움직이면 되는 걸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고 뛰고들 있잖습니까?"

그 말에 소림의 장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천강의 이야기는 그곳에 모인 모두가 듣기에도 합당한 말이었다.

"무인이 자신의 무기를 들고 다닌 것에 불과하다. 이는 장비가 아니요, 신체의 일부이다. 이 말인가?"

무림맹주의 물음에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론은 따분하지만 늘 먹힌다. 특히 정파인들에겐.

"하하하핫. 옳도다. 그 말이 맞도다!"

결국 무림맹주가 직접 통과를 지시하고, 천강은 수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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