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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2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3화

223화. 용봉지회에 참가하다

 

 

'뇌명. 쟤들은 어때?'

중진이란 화산인의 머리통을 부순 천강의 질문에, 뇌명이 내기를 은밀히 방출해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명패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 모두 다 배신자입니다.

'그래?'

씨익.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걸 본 화산인들이 덜덜 몸을 떨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직감한 것이다. 맹수가 사냥을 시작했으며 그 사냥감으로 자신들을 지목했음을.

"왜, 왜 이러시오. 한사 때문에 그러시오?"

"아니. 좀 알량한 힘이 있다고 쫑알쫑알 떠들어댄 탓에 머리에 쥐가 나서 그런다."

"제발 자비를……."

목숨을 구걸하며 사정을 하는 모습이 딱했던 걸까. 한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천강을 막아서려 했다.

그러나 천강의 손이 더 빨랐다.

퍼버벅, 순식간에 열한 명의 머리가 으깨진 과실마냥 터져나가고 이내 추욱 바닥에 늘어졌다.

주변 상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도망을 간다.

그나마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용봉지회에 참여할 무림인들이라 망정이지,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거리는 완전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무림인들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 서서 가만있자, 거리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천강이 한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앞줄과의 멀어진 거리를 메우며 말했다.

"미안. 네 은원관계인데 내가 청산하고 말았네."

"아니오. 괜찮소. 나라면 아마 어떤 모욕을 듣더라도 끝끝내 검을 뽑지 못했을 것이오."

"그래도 이제 떨쳐내야지. 재들 말마따나 이젠 네 문파도 아니잖아?"

물론 완전 남남은 아닐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화산에서 쫓겨났음에도 아직 화산의 무공을 쓰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보통 문파에서 내쫓길 때는 단전을 폐하거나 해당 사문의 무공을 사용할 경우 척살령을 내리겠다는 등 엄중히 다스린다.

그러나 한사는 화산의 무공을 본인이 원할 때마다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건 쫓겨났을지언정 약간의 여지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 여지를 준 건 아마 최소 장로…… 혹은 장문인이겠지.'

어느덧 용봉지회 접수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이내 천강 일행의 순서가 되었다.

남궁선은 접수를 마쳤으나 한사가 접수원 앞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천강이 한사의 어깨에 팔을 올려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냥 이참에 확 다른 문파에 들어가 버려. 너를 인정해주는 곳으로. 아니면 이름 있는 세가에 장가를 들던가."

문파는 없으나 실력은 있는 자들을 선발하는 게 바로 용봉지회다. 어쩌면 이건 한사에게 기회일지도 몰랐다.

한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들은 내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소. 나는 무고함을 주장했으나 사제들은 거짓을 증언하고, 동기들은 고개를 돌렸으며 사형들은 내게 손가락질하고 죄인으로 몰아갔소."

"그런데 뭘 망설이는 거야?"

천강의 물음에, 한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기의 연화봉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이처럼 푸르고 평화롭고.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사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올라왔다.

"천 형. 그거 아시오? 난 화산이 좋소. 내게 누명을 씌우고 날 버린 화산이지만, 그래도 난 화산이 좋소. 그곳에 묻힌 스승과 같이 나 또한 화산의 한 그루 매화나무가 되고 싶소."

"……."

"난 내가 자란 그곳을 정말 사랑하오. 나는 이번 용봉지회에서 화산이 빛나길 바라오. 그게 내가 용봉지회를 참여하는 이유요."

그러고는 한사가 접수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화산의 이대제자 한사라 하오."

천강은 말없이 한사를 바라보았다.

살다보면 가끔 이런 이들이 있다. 답답하지만, 응원을 하게 만드는.

"자자, 그럼 가자. 밥이나 먹고 몸을 움직여서 울적한 기분 좀 풀자!"

그렇게 천강이 한사와 남궁선을 이끌고 식당으로 옮기려던 찰나였다. 돌연 접수원이 천강을 불러 세웠다.

"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응? 왜?"

대답은 안 해주고 후다닥 사라진다. 그리고 그 접수원이 다시 나타날 때, 그의 뒤로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후광이 아니라, 황금빛 머리칼로 인해 생긴 착시현상이었지만.

한사와 남궁선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넙죽 허리를 숙인다. 이제는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한사의 태도엔 공손함이 듬뿍 실려 있었다.

"천강."

"아하핫. 여, 여기서 다 만나네?"

"그러게. 분명 한 달 전에 내가 일행들하고 잠깐…… 그래. 아주 잠.깐. 시간을 보내라고 했는데, 말 한마디 없이 홀라당 날 두고 도망을 가?"

"도망이라니,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애들에게 물어봐. 오늘은 만나려나, 내일은 만나려나. 나 너 오길 한참을 기다렸다니까?"

"……정말?"

천수향의 매서운 시선이 한사와 남궁선에게 향했다. 두 사람의 고개가 위아래로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다! 우리 지금 밥 먹으러 가는데, 너 식사는?"

그제야 천수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같이 가."

그렇게 한 달간 평온함을 즐기다 다시 뒷목을 잡히게 된 천강이었다.

 

***

 

마교의 하남 지부. 고급 식당.

돈 많은 이들이나 드나드는 가게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이곳 하남에 몰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음식을 입에 넣던 천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천수향에게 물었다.

"뭐? 네가 본선 심사를 맡았다고?"

"어.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는데, 무림맹주가 찾아와서 하도 부탁을 해대서……. 뭐 인력이 부족하다나 어쩌나."

무영신투의 비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무림맹 인력엔 큰 공백이 생겼다.

그로 인해 골치를 앓는 와중에…… 짜잔! 무려 다섯 존자 중 하나를 발견했으니, 무림맹주는 그녀에게 사정사정하며 올해의 심사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수고하고. 같이 맛난 거 먹으러 다니나 했는데 아쉽게 됐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읊어대는 천강의 말에, 천수향이 씨익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걱정 마. 앞으로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설령 내가 심사를 안 맡아도 천강 네가 바빠서 안 될걸?"

"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네 이름 참가신청서에 써 올렸거든."

천강이 물을 마시다 기침을 했다.

"……농담이지?"

"우리 낭군이 명성을 떨치면 그 뒷바라지를 하는 이로서 어찌 아니 기쁠까. 후훗."

"뭐? 야, 나 안 해. 애들 싸움에 껴서 뭐하라고."

"아니, 해."

"왜?"

"한여름에 부인을 홀로 두고 땀 흘리게 했으니, 그 대가로 너도 땀 좀 흘려."

"……."

물론 그건 겉으로 하는 말에 불과했고, 천수향이 웃는 낯으로 천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 이번에 용봉지회의 목적이 마교 토벌인 거 알지?

- 어. 뭐 정보 좀 나왔어?

- 응. 듣기로는 승자에게 토벌대 지휘를 맡긴다는 것 같아. 물론 형식적인 자리에 불과할 테지만, 꼭두각시 역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다른 법.

천강이 마교 출신인 걸 아는 만큼, 직접 지휘를 맡는다면 양측 간에 싸움 없이 온건한 해결법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게 천수향의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태감(太監) 쪽 세력도 견제하고.

'하긴. 결국 태감을 상대하려면 온 중원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저 형식적인 모양새. 대외적인 모습에 불과하더라도, 그게 내 밑에서 이루어지는 거라면 좋은 것이다.

- 고마워.

- 별말씀을.

그렇게 용봉지회에 천강 또한 참여를 하게 되고, 예선전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

 

예선전은 일주일간 치러질 예정이었으며, 세 사람 중 천강이 제일 먼저 움직이게 되었다.

"그럼 나 갔다 온다."

"다녀오십시오, 천 형!"

"다녀오세요!"

이른 아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예선전이 이루어지는 숭산의 초입으로 향한다.

숭산은 밑자락은 험난하지 않으나, 중반부터 경사가 확 심해지는 꽤 험준한 산이었다.

그리고 천강의 예상대로 이번 시험은 제갈세가와 소림사의 특색이 짙게 배어있었다.

"소림사까지 올라가서 그곳에서 주는 패를 들고 내려오면 되는 쉬운 시험이야. 기한은 하루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천수향이 고개를 끄덕인다.

"곳곳에 기관진식이 펼쳐져 있어. 대부분은 쉽지만 몇몇은 꽤 까다롭지."

"갇혀도 내력발산만으로는 못 푼단 의미로군?"

"맞아."

즉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조심성 없이 날뛰면 갇히게 될 거란 의미였다.

예선전 시험장 앞에 도착하자 천수향이 천강을 돌아보았다.

긴장을 하는 천강. 그건 예선전을 앞둔 탓이 아니요, 그 앞에서 돌연 무게를 잡는 천수향 때문이었다.

천수향이 천강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며 입을 열었다.

"너 여자 여럿 있더라."

"응?"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당장 마교에서 너 좋다고 따라오던 애도 둘이나 있더만."

초아와 연화를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천강이 오해라고 걔들이랑 그런 생각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천수향이 조금 더 빨랐다.

"뭐…… 잘난 남자는 역사적으로도 여자 여럿 끼니 내가 이해는 해."

50년 간 천강을 쫓아다니면서, 천강이 다른 여자랑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수차례 했었다.

그러니 여자가 몇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그녀였다.

"근데 조카는 절대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카랑 이모가 한 지붕 아래라니. 그건 추호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천강?"

……난 너희 넷 다 아니거든?

그러나 하하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천수향이 천강에게 가볍게 볼 뽀뽀를 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천강 또한 마주 손을 흔들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파 안으로 합류했다. 신병이기들의 들뜬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한다.

- 소년, 부럽네요.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인가 봐요.

- 흠흠. 드디어 네 인생에도 춘분의 때가 도래한 모양이구나.

'조용히들 해라. 너희들 나 놀리는 거 다 알거든?'

- 이런. 걸렸나요?

- 우리도 아직 멀었구먼.

아무튼 이제 시작이구만. 용봉지회 예선전.

천강으로서는 처음이다. 구경이 아닌 직접 몸으로 참가하는 건.

제갈세가의 사람이 나와 참가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기 시작했다.

"모용세가의 모용서."

"하북팽가의 팽가유."

그러다 한 차례 헛기침을 하는 남자.

"흠흠. 사천에서 오신, 홍랑의 남편 되시는 분?"

아니, 그게 뭐야!

진중한 얼굴로 예선전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연달아 터졌다.

참가자가 많은 만큼, 보통 문파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출신 지역과 특징을 섞는 경우가 허다한데 천수향이 그걸 노리고 장난을 친 것이다.

홍랑이란 별호를 모르는 현세대 사람들은 그저 그걸 이름으로 생각하고는 천강을 향해 덕담을 했다.

"허허. 형씨. 부인분 내조가 엄청나신가 보오."

"부인 자랑을 여기까지 와서 하네."

"크으. 부럽구만, 부러워."

뭐가 부러워 인마.

천강은 후다닥 담당자에게 달려가 수정을 요구했다. 정말이지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

그렇게 수정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 그때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 차례 일고, 쭉 호명하던 제갈세가 사람 또한 살짝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천당가의 장녀 당소여."

"진짜 당소여야?"

"현 무림의 5봉(鳳) 중 하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 확인을 하고는 천강에게 손을 흔드는 처자. 이내 살랑살랑 발을 옮겨 천강의 옆으로 와 앉는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며 왈.

"이모는요?"

이래서 아까 그 이야기를 한 거구만.

천강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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