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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2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2화

222화. 한사의 사정

 

 

남궁세가의 이야기를 마친 한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뒤론 줄곧 이곳에 와선 저리 검을 휘두르고 있소. 벌써 반 시진 째요."

천강의 시선이 한동안 남궁선에게 머물렀다. 한사가 옆에서 작게 소곤거렸다.

"근데 가만 보면 남궁선도 참 독하오. 나 같으면 진짜 일주일도 못 버텼을 것인데…… 근데 더 어이가 없는 건 뭔지 아시오?"

"뭔데?"

"그렇게 염장을 지르고 가는데, 남궁선에게 예를 갖추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단 것이오."

응당 장자의 신분이 있으니 그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나, 직계고 방계고 남궁선에게 예를 갖추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저잣거리에 남궁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해도 너무한 것 아닌지."

"……그러게. 내가 봐도 쟤 참 독하다."

생긴 건 명문세가의 규수 같은데, 하는 행동은 독종이 따로 없다.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선에게 다가갔다. 한사가 쭐레쭐레 그 뒤를 따랐다.

검을 휘두르다 천강을 발견한 남궁선이 이마의 땀을 닦고는 예를 갖추었다.

"천님. 오셨습니까."

"어. 너 손 좀 보자."

"예?"

"나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한다."

양손을 내미는 소년.

한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손바닥은 살갗이 다 찢어져, 보기만 해도 쓰라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몸의 아픔보다도 마음이 더 하다는 것이겠지.

"강해지고 싶냐?"

천강의 질문에 남궁선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천년 구미호 같은 작은어머니 밑에서 눈치 하나로 살아남은 남궁선이다.

그는 지금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했다.

"예. 강해지고 싶습니다! 머리 위 하늘처럼, 모두가 고개를 올려다볼 만큼 진정 강해지고 싶습니다!"

"강해지는 건 어렵지 않다. 그저 간절한 마음에, 자신을 이끌어줄 이를 만나면 그뿐."

팔짱을 끼고는 턱을 치켜든 천강이 미소 지었다.

"넌 진짜 운이 좋은 거야."

"감사합니다, 천님!"

그렇게 천강의 지도가 시작되었다.

굳이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천강의 행태에 신병이기들이 의아함을 표했으나, 천강이 남궁선을 돕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솔직히 좆같잖아?'

- 예?

'내가 뒷배 없이 커봐서 지금 쟤의 심정을 아주 잘 알거든.'

어릴 적엔 부모가 없어 밥을 먹을라 치면 그 작은 몸뚱어리로 배는 뛰어다녀야 했다.

암운곡에 들어선 뒤로는 스승을 해주는 이가 없어, 살기 위해 남들 걸 필사적으로 훔쳐 배워야 했고.

나는 뭐 하나 얻을라치면 진짜 좆 빠지게 뛰어다녀야 하는데, 뒷배 있는 놈들은 뭐든 쉽게 얻었었다.

특히 전생에 소교주 녀석이 무언가 갖고 싶은 게 생겼다?

그걸 얻기 위해 당사자도 아니고 그 아비도 아닌, 무려 천강과 그 스승이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솔직히 그년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냐. 자기 아들을 어떻게든 가주로 만들고 싶겠지.'

그래도 그렇지, 저잣거리 사람 다 있는 곳에서 대놓고 장자권 뺏고 있다며 이야기하는 건 선 넘었다.

자식 앞에서 죽은 어미를 들먹이는 것도 그렇고.

암살은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 하나같이 다 마음에 안 드네.'

- 소년, 의외로 협이 있군요.

- 저 도사 놈 뭐라 할 땐 아주 질색을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협이고 지랄이고, 암튼 그년은 내 아이를 건드렸어.'

없이 큰 만큼 천강은 제 울타리 안에 있는 이를 늘 소중히 했고, 누가 그걸 건드리는 걸 추호도 가만두지 않았다.

이래저래 말을 길게 풀었지만 결국 내 새끼 건드렸으니 가만 안 둔단 의미였다.

'죽이기 전에 그년에게 똑똑히 보여줘야겠어.'

본인이 뉘 집 새끼를 건드린 건지 말이야.

 

***

 

일단 천강은 남궁선에게 하체 운동을 시켰다.

천강이 시킨 일이라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하는 소년.

그 모습에 천강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올라왔다. 누군가 날 믿고 따라와 준다는 건 참으로 기분이 좋은 일이다.

도리어 옆에 있던 한사가 의아함을 가지고 물었다.

"천 형. 본선에 나가 이기게 해준다더니 웬 하체 운동이오?"

"모든 검술의 위력과 완성도는 하체에서 나오는 법이야. 특히나 쟤 같이 무거운 검을 쓰는 경우엔 하체가 훨씬 튼튼해야 하지."

"그건 그렇소만…… 솔직히 그것만으로 남궁세가의 비기라는 제왕검형의 절기를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오."

"네가 뭘 모르는구나."

제왕검형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깟 제왕검형, 지금의 천강은 삼재검법으로도 이길 수 있었다.

진짜 중요한 건 경지와 경험.

내가 상대보다 경지가 높고 경험이 많다면 능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무공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경지와 경험을 아득히 넘어서는 절대적인 무공도 존재한다.

천마신공이나 북명신공이 그러했다.

그러나 애초에 천마신공은 선계에서 온 무공인데다가, 북명신공 또한 선계로 올라간 무제(武帝)가 창시한 무공이다. 결국 둘 다 인간 수준의 무공이 아니라는 뜻.

그런 절대무공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은 경지와 경험이 무공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암운신공처럼 예외적인 것도 있지만.'

아무튼 남궁선은 얼굴도 계집 같더니 몸도 계집 같아서 중검을 다루는 데 약간 불안정한 감이 있었다.

더 성장하기 위해선 일단 그 부분을 확실히 하는 게 좋았다.

"남궁선."

"옙!"

"넌 앞으로도 실력을 더 키우고 싶거든, 다른 것보다 하체랑 허리단련을 꾸준히 해라. 그것만 해도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거다."

물론 내기로 그 부분을 해소할 수 있지만, 육체는 그릇이다.

꾸준히 단련해 놓는다면 언젠가는 한 번 정도, 내기가 바닥이 나 목숨 줄이 간당간당할 때 필히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평소에는 그만큼 내기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을 것이고.

열심히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 천강이 머리 위로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에서 절구가 날아와 안착했다.

'어떻게든 성장하려고 하는데 도와줘야지.'

영약을 만든 천강이 남궁선에게 그걸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낮에는 하체 단련, 밤에는 내기를 하체에 효율적으로 싣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을까.

"헛."

한사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남궁선의 검을 견뎌내지 못한 그의 검이 손아귀를 벗어나 하늘로 솟구친 것이다.

그것은 이내 핑그르르 돌다 바닥에 툭 수직으로 박혔다.

한사와의 대련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승리를 따낸 남궁선이었다.

"좋아. 잘했어. 이제야 하체 단련의 효과가 서서히 나오는구만."

"감사합니다, 천님."

꾸벅 허리를 숙이는 남궁선과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천강.

두 사람을 가만 바라보던 한사가 후다닥 달려와 남궁선을 밀치고는 넙죽 엎드렸다.

"천 혀어어어엉!"

"왜, 왜? 뭔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저도 영약에, 가르침 하나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강이 픽 웃음을 흘린다. 그에 따라 한사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그래. 아니 되시겠다."

"에엣? 아니, 어째서?!"

자식이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천강이 발을 옮기자 한사가 천강의 바지 끄덩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결국 그 간절함에 한사 또한 영약 하나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

 

남궁선이 천강에게 가르침과 훈련을 받은 지 어느덧 팔 일이 지났다.

천강 일행은 용봉지회의 신청을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사실 용봉지회의 신청은 진즉에 받고 있었으나, 줄을 서기 귀찮은 천강 일행은 일부러 며칠 시간을 늦춘 것이었다.

"확실히 줄이 줄긴 했군요."

"대략 한 시진이면 접수를 할 수 있겠네. 근데 한사. 너 뭐해?"

천강과 남궁선이 의아한 얼굴로 한사를 바라본다. 그는 웬 거적때기 하나를 주워 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핫. 그게 말이오……."

목소리를 확 낮추고는 설명하는 한사.

"내 실은 중원에 수련을 위해 나온 게 아니라 문파에서 쫓겨났소이다."

"응? 그건 뭔 소리야?"

천강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

그도 그럴 게, 눈앞의 한사는 말 그대로 도사의 표본이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말이며, 어떻게든 남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행동이며…… 근데 이런 놈이 쫓겨나?

천강이 눈을 반만 뜨고는 물었다.

"너 사매(師妹) 속곳이라도 훔쳐봤냐?"

"그, 그, 그 무슨 오해를 살 소리를!"

"근데 왜 쫓겨나?"

천강의 열혈한 추종자가 된 남궁선이 봐도 그가 쫓겨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럼 사고(師姑)였나요?"

"아니,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럼 사저(師姐)구나?"

한사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는 소리를 높였다.

"요새 누가 사매, 사저 속곳 구경한다고 쫓겨나고 그런답니까!"

근데 목소리가 너무 큰 탓인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한사는 쥐구멍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툭 찌르며 천강 왈.

"그럼 왜 그러는데? 목욕하는 거라도 훔쳐봤어?"

"……그게 누명을 썼습니다."

"누명?"

대체 어떤 누명을 써야 한사 정도의 실력자가 쫓겨나는 거지?

"이른 아침, 스승님께 아침 인사를 드리러 갔소. 그런데 스승의 묘가 파헤쳐져 있는 것 아니오."

"설마……."

한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처음 발견한 자가 범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뒤집어쓰고, 이후에 목격자들이 속출하면서 그대로 문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중원은 예나 지금이나 진짜 더럽게 싸우네.'

이 일이 일어난 경위는 안 봐도 뻔했다.

한사는 천강이 봐도 놀랄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들어본즉 기본만 스승에게 배웠다 하니, 이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하늘이 내린 기재라 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위의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도사라는 놈들이 하는 짓은 길거리 양아치보다 못하네.'

아무튼 한사가 얼굴을 저리 숨기는 건, 혹여나 같은 사문 출신들을 만날까 해서란다.

"아니, 걔들 만나는 게 어때서?"

그러나 그 순간, 마치 하늘의 장난처럼 참가 신청을 마치고 지나가던 화산파 사람들과 한사가 딱 마주쳤다.

"어? 이게 누구야?"

"한사 아냐?"

"애들아, 한사다!"

마치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천강 일행을 에워싸는 열두 명의 사람들.

그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이가 한사에게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한사야.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오, 중진 사형."

"그때 그렇게 쫓겨나고 내가 마음이 참 아팠다. 어떻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것이냐?"

이죽이죽 웃는 모양새가 참으로 얄밉다.

전생의 화산은 인생사를 가르치려 들어서 짜증이 나더니, 이번 생의 화산은 말부터 행동까지 하나하나가 전부 밉상이다.

한사가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혹 스승의 묘를 파헤친 진범은 찾으셨소이까?"

"아, 그거? 암. 찾았지!"

"정말이오?"

화색을 띠는 한사의 이마에 중진이라 불린 사내가 검지를 콕콕 두드렸다.

"여기 있잖아. 스승의 묘를 파헤치고 그 물건들을 가져다 판 배은망덕한 진범이."

한사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천강이 보기에 그의 실력이라면 능히 눈앞의 사내와 그 패거리를 박살 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아니하는 것은 한때 한 문파에 속한 정일 터였다.

그러나 그 따스한 마음을 그들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은 한사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더니 낄낄거리며 물었다.

"너도 용봉지회에 참여할 생각인가 보구나?"

"그렇소."

"근데 누구 마음대로 참가하는 것이지?"

중진이 한사의 어깨를 툭툭 강하게 때렸다. 그에 따라 한사의 상반신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넌 더 이상 매화가 아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쫓겨난 죄인일 뿐이다. 이곳 무림에 그런 네놈을 써줄 곳이 존재할 것 같으냐?"

"난 죄인이 아니오. 난 무고하오."

"아니, 넌 죄인이다. 돈을 위해 스승의 무덤을 파헤친 더러운 쓰레기지. 뭐 실력은 있어 본선에 올라갈지 몰라도, 그런 네놈을 데려갈 이는 없을 것이다. 괜히 화산의 이름에 먹칠할 생각일랑 말고 어서 이곳에서 꺼져라."

그러고는 다시 웃는 사람들.

한사의 고개와 어깨가 축 처졌다. 보다 못한 남궁선이 검을 움켜쥐고는 앞으로 나서려는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땅에 크게 진동이 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상황에, 주변 상가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하늘이 노했다!"

누군가의 크나큰 외침은 모두의 심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하늘이 노한 게 아니었다.

한사로부터 다섯 보 떨어진 거리, 중진이란 사내가 서 있던 자리의 지반이 움푹 가라앉아 있었다.

땅은 짙은 가뭄을 맞이한 것처럼 쩍쩍 금이 갔고, 그곳에 있던 사내는 머리통 없이 몸만 남아 파르르 몸을 떨어댔다.

주변에 있던 화산파 사람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낱 시체로 변모한 그는 화산파의 일대제자 중 두 번째로 강한 사내였다.

"주, 중진 사형을……."

"단 일격에?"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화산파 사람들의 외침에, 천강이 흑색 절굿공이를 회수해 어깨에 멨다. 그리고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아. 좆같은 소리를 계속 들으려니 짜증이 나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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