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2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1화
221화. 남궁세가의 암투
웅성웅성.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산비탈을 벗어나 널따란 평야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모여드는 인파가 눈에 들어오고.
그들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준 즉 거대한 산 하나가 구름 가운데로 우뚝 서 있는 게 보였다.
하남의 명산 숭산이었다.
섬서를 지나 하남의 땅에 들어선 천강 일행은 숭산과 그곳에 모여드는 인파를 보며 나직이 감탄을 터뜨렸다.
"용봉지회가 유명하긴 한가 보오. 내 이리 많은 사람은 처음 봤소."
"햇병아리처럼 굴지 마, 한사. 그래도 사천성 저잣거리 정도밖에 안 되잖아?"
"그렇긴 하오만."
"아직 거리가 상당히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 정도면…… 묵을 숙소는 없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럼 어떻게 하오?"
천강은 걱정하지 말라며 두 사람을 타일렀다.
"참가하면 묵을 곳은 줄 거야. 물론 예선전을 통과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지만."
"예선전? 그것은 무엇이오?"
천강이 발을 옮기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용봉지회. 아직 어리지만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에게 용과 봉의 칭호를 수여하고, 그 외에 최고의 무인을 뽑는 명예로운 행사. 그래서 참가하려는 사람이 많아. 그러다 보면 돈이 많이 들 텐데, 무림맹은 그런 걸 싫어하거든."
그래서 만든 게 예선전이다.
일단 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검사를 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오?"
"그건 예선전을 맡은 문파에 따라 달라."
무림의 구파에서 돌아가며 맡는다. 2개의 문파가 힘을 합쳐 예선전을 주관하고, 그에 따라 시험의 성격이 달라진다.
"예전에 사천당가와 하북팽가가 함께 했을 땐, 1,000보 정도 되는 굴에다가 독이 가득한 생물들을 풀고 지나가게 했어."
"예?"
"그게 무슨……."
"팽가에서는 자고로 무인이 제일 먼저 갖춰야 할 건 배짱. 즉 담력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호응하듯 당가에서는 극한의 위험을 자극하는 데엔 독만 한 게 없다며 그리한 거였지."
그 당시 예선전은 진짜 볼 만했는데.
상당수의 참가자가 게거품을 물고, 또 어떤 이들은 피부가 시퍼렇게 변해 의원을 찾고…… 난리도 아니었지.
"그거 너무 각 문파에게 유리한 것 아니오? 당가 출신이면 독이 무섭기는커녕 친숙할 터인데."
"맞아."
예선전을 주관하는 건 굉장히 피로한 일이다. 이건 일종의 행사를 담당한 문파에게 그 수고를 인정해 주는 이점과 같았다.
그 설명을 듣자 그제야 한사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럼 천님이 보시기에 이번 시험은 어떨 것 같습니까?"
"이번엔 소림과 제갈의 합작이니…… 글쎄. 함정이 가득 설치된 숭산에 올라 그 석수에서 물이라도 퍼오라고 시키지 않을까? 아무튼 둘 다 잘해보라고. 응원해 줄 테니."
"응? 형님은 참여 안 할 생각이오?"
"이 더위에 내가 무슨 땀을 빼겠냐. 젊은 너희 둘이 실컷 내 몫까지 땀을 흘리고 와라. 난 시원하게 객점에서 희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마."
한사와 남궁선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무튼 숭산이 내다보이는 도시는 꽤 크고 주위로 도시도 여럿 있었다. 일찍 출발한 만큼 다행히도 묵을 곳을 잡는 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직 며칠 시간이 남은 걸 확인한 천강은 한사와 남궁선을 놔두고 마교의 하남성 지부로 향했다.
고급 식당으로 위장한 그곳에서 천강은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여어. 소운 선배 오랜만이야."
"그래. 너도 잘 지내지?"
"물론."
"혹시 내가 존칭을 해 드려야 할까?"
"상관 안 해. 나 그런 거 신경 쓰는 성격 아니니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소운은 천강이 흑살마신인 걸 안다. 마교의 일이 일단락된 이후, 그 아비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탓이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보아도 소운은 눈앞의 사내가 50년 전 마교를 구한 그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천강은 처음 봤던 그대로 자유분방하고 여전히 거침이 없는 후배의 모습이었다.
언제고 흑살마신이 오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난감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소운이었다.
소운이 어렵게 구한 용정차를 타주며 물었다.
"숙소는?"
"구했어. 저기 예선전 치르는 곳 근처로."
"잘했네. 너도 참여하려고?"
"아니. 내가 참여해서 뭐 하겠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긴. 역대 교주들도 못 깬 묵범귀영의 기록을 깬 넌데 예선전이라니……. 그럼 이곳엔 무슨 일이야?"
"일하러 왔지, 일. 배신자들을 처리하고, 신선환 상황도 살펴보고."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습격과 그로 인한 용봉지회.
지금 중원의 무림인들이란 무림인들은 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혹시 신선환에 대해서는 소득 좀 있어?"
소운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각 도시마다, 작은 마을까지 그토록 유통이 많이 될 정도면 분명 큰 작업소가 있을 것인데…… 도통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후우. 지금으로서는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니긴 하지. 중원 땅이 원체 넓어야지."
"진짜 그 말이 딱 맞아. 냇가에서 바늘 찾는 기분이야."
소운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안쪽 서랍에서 종이를 여러 개 꺼내 일일이 확인한 후 천강에게 그것들을 내어주었다.
"자, 각 문파 배신자들 명단."
"고마워."
"맞다. 사천성에서 너한테 연락이 왔어."
"나한테?"
서신을 펼쳐본즉 익숙한 문체가 눈에 들어왔다. 보낸 이는 암룡이었다.
아무래도 홍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천강을 위해 직접 서신을 보낸 모양이다.
『 청루‧홍루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황실에서 여론을 꽉 잡고 있어서 신선환에 대한 진실이 퍼지기가 쉽지 않은 상태랍니다. 오히려 북경 근처에서부터는 긍정적인 소문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 합니다. 』
조사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신선환의 독성을 일으키는 풀을 못 찾고 있는 게 결정적이라고 하였다.
독을 일으킨다는 증좌가 없으니, 말 그대로 천산 쪽에서 퍼지는 소문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터.
『 그나마 개방과 하오문은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나, 개방은 이미 황실 측에 거의 다 포섭된 상황이고. 그나마 하오문이 음존으로 인해 대대적 숙청이 일어나면서 새로이 연결고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쉽게 말해 천수향을 이용하라는 말이었다.
그리한다면 신선환의 추적도, 떠도는 소문도 둘 다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뜻.
"고마워, 선배. 나 이만 가볼게."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사람 보내."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자 한사와 남궁선이 없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여 내기를 펼치자, 천강보다 신병이기들이 한발 먼저 발견해 천강에게 보고했다.
두 사람은 강 근처에 있었다. 천강은 조용히 나무 밑으로 가, 남궁선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한사에게 물었다.
"한사."
"앗. 형님. 오셨소이까?"
"어. 근데 쟤 왜 이리 열심이야? 무슨 일 있었어?"
그랬다. 평소 훈련을 하면 대부분 대련의 형식을 취하던 두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남궁선 혼자 열심히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게…… 아무래도 제왕검형을 동생 쪽에도 가르쳐준 것에 마음이 크게 상한 것 같소."
"그건 무슨 소리야?"
한사가 볼을 긁적이며, 천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있었던 일을 찬찬히 이야기했다.
***
천강이 마교의 하남지부로 향한 사이, 한사와 남궁선 두 사람은 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둘 모두 이곳 소림 쪽에는 와본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그런 면에서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남궁선? 호위는 어디 가고 혼자 돌아다니는 겝니까?"
그녀는 자청옥검.
남궁세가 가주의 둘째 부인이요, 남궁선에게는 작은어머니다.
남궁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그녀는 한 차례 한사를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남궁선에게 주었다.
'분명히 죽은 줄 알았는데?'
마지막 보고를 받았다. 이틀 후 작전을 시행할 것이라고.
그에 응당 죽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던 아이가 살아있으니 그녀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남궁선 또한 이곳에서 떡 하니 그녀를 만날 줄은 몰라 당황스러운 건 똑같았으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글쎄요. 어머니께서는 남궁적의 소식을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남궁적?"
"예. 의문의 기습을 받아 절 호위하던 모두가 다 명을 달리했습니다."
남궁적에게 대의를 맡긴 그녀의 입장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이야기.
그저 남편을 따라 무림맹에 있다 보니 소식이 엇갈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
자청옥검의 시선이 남궁선을 훑었다. 못마땅하다 못해 살의까지 비치는 그 시선에 같이 있던 한사는 왜 남궁선이 그토록 눈치가 빠른지 알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하면 죽을 테니까.
"근데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용봉지회에 참여하러 온 겝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럼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남궁존이 이미 신청을 해버렸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멋. 그러고 보니 아직 남궁선은 용봉지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겠군요. 후후."
그녀가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걸 요약하면 이러했다.
세가와 구파는 각각 자신의 문파에 속한 이 한 명씩을 예선전을 치르지 않고 바로 본선으로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경우 응당 남궁선에게 제일 먼저 와야 할 기회였으나 그걸 배다른 동생인 남궁존이 가로채 갔단 의미였다.
"그러게 가문으로 소식을 일찍 일찍 보내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우리 남궁존이 형님 걸 가로챌 일은 없었을 텐데요."
마치 약 올리듯 나긋나긋 이야기하는 행태에 한사의 얼굴이 뻣뻣이 굳었다. 눈치 없는 그라도 느낄 만큼 지금 그녀는 노골적으로 조롱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코웃음을 치는 남궁선.
"그럼 지금이라도 물러 주시면 되겠네요."
"네? 그게 무슨……."
"이런. 잘 안 들리셨습니까? 그럼 똑똑히 말씀드리지요. 지금이라도 물러 달라 이 말입니다."
이전 같았으면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할 남궁선이었다. 평소 시녀에게조차도 제대로 부탁도 못 하곤 전전긍긍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당돌하게 변한 모습에 남궁 사람들의 눈에 당혹감이 올라왔다.
그런 배경엔 천강이 있었다.
'변하고 싶어. 이런 모습 지긋지긋해.'
하지만 정작 어찌 변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작은어머니나 그 아들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자라야 할지를 모르는 그는 오랜 기간을 몸을 움츠려야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때는 있는 법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꽃은 피고 열매는 맺는다.
천강을 만난 남궁선은 진정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창공과 같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러면서도 태산같이 굳세고 흔들림 없는 강함이었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천강의 모습에, 진정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찾은 남궁선은 과감히 그 변화를 시도했다.
- 남궁선님. 훌륭하십니다.
문득 남궁진언의 그런 목소리가 귓가로 들린 것만 같았다. 남궁선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재차 물었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흠흠. 이미 서류가 위로 올라가 무를 수 없군요. 애석하게도 이번 용봉지회에서는 아우가 참여해야 할 것 같네요."
아래 사람들에게 눈짓을 한 그녀는 발을 옮겼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서기엔 자존심이 상한 걸까?
다시 우뚝 멈춰선 그녀가 몸만 살짝 돌려 말했다.
"솔직히 실력도 아우가 더 낫고요."
"그게 무슨 의밉니까?"
자청옥검이 비릿한 미소를 드러냈다.
"이전에야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지 못해 그 형과 고만고만했으나, 이제는 다르니 실력 차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인즉슨 가주와 후계만이 배운다는 제왕검형을 그 아우에게도 가르쳤다는 뜻이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차기 가주로 남궁존을 선택했거나 혹은 두 아들을 경쟁시키겠다는 것.
"가주께 듣기론 이제 고작 2식을 배웠다는데, 우리 남궁존은 무려 4식까지 배웠으니…… 어디 상대나 될까요?"
먼저 배운 건 남궁선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강제로 중원을 돌아다니게 한 뒤, 마치 남궁선이 실종된 것처럼 꾸며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제왕검형을 배우게 한 그녀였다.
"어디 혼자서 얼마든지 발버둥 쳐 보세요. 그래 본들 대세는 변하지 않을 터이니. 뭐 명줄이 짧았던 어미가 살아온다면 또 모를까. 호호호."
비릿한 웃음과 함께 그 한마디를 남긴 자청옥검이 사람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이곳 하남에 남궁선을 위해 일해 줄 이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 잃고 유일하게 남은 장자의 지위와 제왕검형. 그러나 그조차도 빼앗길 위기에 놓인 남궁선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