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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2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4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20화

220화. 이십사수매화검법

 

 

여름의 날씨는 무더웠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천강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아직 화경과 절정에 불과한 한사와 남궁선에겐 그러했다.

특히 중검을 지고 가는 남궁선에겐 꽤 가혹한 일이라서 천강 일행은 웬만하면 물길을 따라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 서로 검을 나누고는 땀에 젖은 몸을 물에 시원하게 적시는 남궁선에게 천강이 물었다.

"남궁선. 너는 근데 신선환 안 먹냐?"

"이번에 가문으로 돌아가면 먹을 생각입니다."

"그래?"

흠. 잠깐 생각을 정리한 천강이 손짓했다.

한사와 물장난을 치던 남궁선이 후다닥 뛰어와 섰다. 천강이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주었다.

그것은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은 환이었다.

"어? 그것은……."

"신선환이다. 마을 지나올 때 하나 사 왔다."

신선환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큰 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에서조차 팔 정도로 흔했던 것.

아직까진 민간인들에게 퍼지지 않았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호기심 많은 이들이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먹었다가 그 효능이 전파되기라도 한다면 번지는 건 순식간이리라.

"받아라. 지금 먹으면 내가 도와주마."

"앗. 옙. 감사합니다."

남궁선이 신선환을 먹고 가부좌를 틀었다. 조금 있자 온몸에서 꾸물꾸물 노폐물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천강과 한사는 가만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천 형. 근데 이런 야외에서 환골탈태를 해도 되는 것이오?"

"걱정 마라. 네가 있고, 내가 있는데 뭐가 문제일까."

"하긴. 그것도 그러오."

사실 며칠 더 걸어가면 곧 용봉지회가 열리는 도시에 도착한다.

그때 숙소를 잡고 느긋하게 해도 되나, 천강이 남궁선에게 신선환을 지금 건넨 이유.

그건 남궁선의 적대세력, 남궁세가의 2부인 쪽 때문이다.

'놈들 또한 필히 용봉지회에 참여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여차저차 도시에서부터 맞부딪칠 텐데, 아무래도 절정보단 화경이 손이 덜 가겠지.'

또한 가문으로 돌아가 어차피 신선환을 먹게 될 예정이라면, 지금 화경의 경지에 올려놓은 뒤 독소를 빼주는 게 나을 것이다.

기껏 빚을 다 져 놓았는데 독으로 픽 죽어버리면 그것만큼 손해 보는 장사도 없지 않은가?

온몸에서 독소가 빠져나오고 환골탈태가 완전히 진행되는 걸 확인한 남궁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천님."

"아니다."

"그런데 원래 신선환 기운이 이렇게 몸속에 남아 돌아다니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냐. 그걸 해결해 줄 테니 등을 대 보거라."

남궁선이 등을 댄 순간 천강이 바로 그 독기를 흡수했다.

내기를 다 빨린 남궁선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천강은 그런 그를 들어 물길 옆 한 나무 그늘 아래 잘 뉘어주었다.

얜 잘 끝났고. 한사에게 손짓하는 천강.

"음? 나 불렀소?"

"그래. 너도 몸 상태 좀 보자."

"가, 감사하오!"

고수가 몸 상태를 봐주는 건 굉장히 값진 일이다.

그 왜 고수들이 몸의 안 좋은 곳이나 막힌 혈도들을 뚫어주고 깨달음을 준 뒤, 절대 고수가 되는 이야기가 꽤 있잖은가.

무림에선 그런 기적적인 일이 흔했다. 다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당사자가 되는 게 힘들 뿐.

한사가 기쁜 마음으로 등을 대고, 그 몸을 들여다본 천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음? 넌 신선환으로 화경에 오른 게 아니네?"

"역시! 천 형은 진짜 실력자요. 어찌 그것을 안 것이오? 장로님들도 모르는 것을."

어찌 알긴. 신선환의 독소가 안 보이니까 아는 것이지.

그러나 한사의 말을 가만 유추해보면, 다른 이가 몸을 살펴도 그 독 기운을 눈치 못 챌 만큼 신선환의 독소가 꽤 까다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꽤 일리가 있는 게, 보통 신선환의 독소는 옥침(玉枕)과 백회(百會)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아주 위험한 곳이니만큼 함부로 내기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결국 신선환을 먹었는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미약한 이질감으로.

"한사, 넌 손 볼 게 없다. 튼튼하네."

"나도 남궁선처럼 내기를 쪽 빨아주면 안 되오?"

"왜?"

"저번에 한 번 쪽 빨려보니 은근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말이오."

용케도 그걸 기억하고 있네.

예전 사천제일미에서 당소여와 처음 만났을 때, 그 독에 당했던 한사의 내기를 한 번 빨아내 준 적이 있었다.

내기를 완전히 비우면 대자연으로부터 새 기(氣)가 급히 들어오며 은연중에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한사는 그 감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는 살짝만 뺀 거고, 지금 남궁선의 경우엔 달라.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꼬박 누워 있어야 하니…… 오늘은 이곳에서 노숙해야 할 것이다. 그 준비나 해라."

"하긴. 나도 닷새나 걸린 환골탈태를 순식간에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료. 알겠소. 내 바로 불 피울 준비를 하겠소이다."

환골탈태를 잠깐 도와줬을 뿐인데, 어느덧 세상은 붉게 물들고 해는 뉘엿뉘엿 지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녁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시원한 바람이 피부 위를 노닐 즈음, 한사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강가 옆 자갈 위에 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불그스름한 숯이 뿌연 연기를 타고 하늘 위로 승천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생사경에 들어서기 위한 훈련을 마저 해야 할 터인데.'

투파창귀로부터 얻은 악기들을 가지고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하고는 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애초에 악기와는 일절 연이 없던 까닭이다.

"천 형. 저녁은 어찌하시겠소?"

"물이 있고 그 안에 사는 생물이 있으니, 어찌어찌 되지 않겠냐."

"그럼 간만에 이 아우가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구료."

그러고는 검을 들고 물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한사.

화산인 하나가 수중에 섰다.

그는 나무라. 자연과 동화된 그의 움직임에, 물은 그를 흘러 지나가고 물고기는 그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에게선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아니, 계절로 따지면 과실의 향일지도 모를 일이다.

향기를 품은 나무.

그 나무를 미풍 한 줄기가 흔든다. 그 검 끝이 서서히 수면 위를 유영한다.

핑그르르- 물 위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원을 그려 나가니 그것은 만검(滿劍)이요. 이후 잔상을 일으키며 일직선으로 물속을 드나드니 그것은 쾌검(快劍)이라.

자잘한 물방울이 생기지 않은 그 깔끔한 동작이 다 끝났을 땐, 한사 주위로 물 분수가 연달아 일었다.

모닥불 주위로 떨어지는 물고기들을 내기로 감싸 받는 천강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들에게서 묘하게 매화향이 난 탓이다.

'저 녀석도 은근 비밀이 많아 보인단 말이지.'

행동은 어수룩해도 실력만큼은 장로 못지않은 녀석.

저런 게 일개 제자 수준이라니.

'흠. 역시 현재 중원은 화산이 대세인가?'

한사가 후다닥 다가와 천강 앞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은 마치 칭찬해달라고 하는 아이와 같았다.

"천 형, 어떻소?"

"일단 화산의 검을 잘 이해하고 있네. 검술의 원리나 그런 부분은 내가 지적해 줄 게 없다. 다만."

한사가 마른침을 삼킨다. 천강에게 완전히 집중한 그 행태엔 평소의 어수룩한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저 무(武)의 극(極)을 추구하는 한 명의 무인(武人)만이 있을 뿐.

"기교나 경험이 부족한 게 흠이지. 일전에 남궁적 기억하냐?"

"아……."

"무공의 상성을 이긴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지만, 결국 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조차도 다 넘어서야 한다."

그건 한사에게 해주는 조언이기도 하지만, 천강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 강(剛), 중(重), 유(柔), 쾌(快), 변(變), 환(幻). 이 모든 걸 이해하는 것이 생사(生死)의 경지요, 그걸 능수능란 다룰 줄 아는 경지가 바로 자연경(自然境)이니라. 』

천해지경은 이 복잡한 원리를 단순하게 다른 개체 100개를 이해하라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 이외의 생물을 이해할수록, 천강은 천마신공의 이해도와 위력이 빠르게 상승하는 걸 느꼈다.

한사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알겠소이다. 가르침 정말 감사하외다. 그럼 혹시 천 형께서 귀찮지만 않으시다면……."

"어이. 일단 한 발씩 가자고. 지금의 넌 남궁선과 일대일 대련이 최선이야."

"하하핫. 알겠소. 그 외에 혹 조언해주실 건 없소?"

"있지."

천강이 눈을 매섭게 뜨고는 한사를 혼냈다. 일전에 그는 당소여와의 싸움에서 다 이겨놓고 실수를 해 죽을 뻔했었다.

"넌 좀 물러. 상대가 항복했는지는 주둥이가 아닌 그 기세를 봐야지. 특히 생사투에서 무기를 먼저 거두는 건 무슨 짓이냐."

"그래도 여자를 상대로는 협이 살지 않……."

"너 그때 장마 기간에 내게 뭘 배웠지?"

한사의 입이 궁색해졌다.

당장의 홍수 피해를 막는 것이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장래에 그들의 생계를 막는 길이기도 했다.

당시의 깨달음을 다시 떠올린 한사가 마음을 착 가라앉혔다.

"진정 네가 그토록 원하는 협이라는 걸 실천하고 싶다면,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거다. 네가 여자라고 검을 거둔 행동이 누군가에겐 무시의 뜻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것 같소. 내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소."

"그 정도만 손보면 넌 더 흠잡을 데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이야."

천강의 칭찬에 한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무려 현경 고수가 하는 말이니 어찌 아니 그럴까.

"물론, 내가 지적해준 부분 고치는 데에만 족히 100년은 더 걸리겠지만."

한사의 얼굴이 도로 원상회복되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는 물고기 내장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근데 천 형. 형수님과 길이 엇갈린 것 아니오? 벌써 며칠째 깜깜무소식이오만."

"걱정 마. 알아서 잘 찾아올 거야."

죽지 않는 한 천강을 끝끝내 찾아올 것이다.

천강은 천수향을 다시 만날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뭐…… 어디서 만날지 이야기 안 하고 왔으니, 만나면 몇 대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까지는 지금의 평안을 풍족히 누릴 생각인 천강이었다.

"한사. 그런 식으로 해서 어느 세월에 저녁 먹을래? 빨리빨리 안 하냐."

"빠르게 하겠소이다!"

"더 빨리. 검술 배워서 어따 쓰려고 아껴? 지금 팍팍 써. 화산검술! 이렇게 좀! 응?"

"아앗! 스승님께 받은 검으로 생선 손질을……!"

천강의 손에서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졌다. 그러나 스승에게 받은 검으로 생선 내장 손질하는 것에 충격을 먹은 한사는 그 모습을 보고도 비명만 질렀다.

어느덧 한사의 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화산의 검을 거의 이해한 천강이었다.

 

***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잘들 다녀오시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산길로 들어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용세가의 네 장로들은 한숨을 쉬었다.

"걱정이오. 우리 모용세가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나 또한 무섭소이다. 현 가주는 너무 급진적이오."

모용세가의 현 가주는 사실 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골격은 물론 역대 모용세가의 후계를 통틀어 그러한 소질이 또 없을 정도로.

전대 가주가 의문사하고, 이어 장남이 병을 얻어 사망하지만 않았더라면 차남인 그가 가주가 될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주가 됐고 언제부턴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모용세가의 현 가주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었다. 무림에 처음 신선환을 들고 나타난 이 또한 그였다.

또한 가문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고, 최근엔 황실을 드나드는 일이 잦아 네 장로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주께 다시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떻습니까?"

3장로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1장로.

"숱한 젊은이들이 지지하고 따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가 늙고 도태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전대 가주님을 따라 모용세가를 살려보겠다며 뛰어다니던 때가 그립소이다."

씁쓸함을 가지고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

그런 그들이 중정을 지날 때였다.

바람 소리가 작게 일고 그들 주위를 수십의 복면인이 둘러쌌다. 네 장로가 검을 빼 들고는 그들에게 겨눴다.

"웬 놈들이냐!"

그러자 메아리치듯 사방에서 돌아오는 대답.

"그대들은 무림인이다."

"우리는 사신."

"오늘 너희들은 여기서 죽는다."

"단 한 놈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죽음으로써, 그대들의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여라."

모용세가의 하늘 위로 날붙이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그 뒤로는 새벽닭이 울기까지 그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후 땔감을 팔기 위해 찾아온 나무꾼이 본 것은 그저 텅텅 비어버린 저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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