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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55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5화

255화. 개방

 

 

사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천강 또한 진즉에 인식하고 있었다.

초아로부터 암운신공을 습득해 그것으로 숱한 위기를 넘기고 기회를 만들어 내본 만큼,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점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에 합류할 때 꽤 호되게 당한 모양인지, 묵현도 며칠 전 천강에게 찾아와 말했다.

"사신들이 최대 변수다. 무림맹 한복판에 그냥 밀고 들어올 정도면 이미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 더구나 각 문파 장문인들조차 힘을 못 써보고 모두 죽을 정도니, 놈들에 대한 어떤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계획의 성공확률은 위태위태하겠지."

그렇다고 뿔뿔이 흩어지자니 위험하고, 모이자니 아군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심지어 갈수록 불어나는 사신들의 숫자.

"근데 내게 방법이 있어. 놈들의 증식을 막을 방법이."

"그게 무엇이지? 녀석들의 제조소를 찾아내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 텐데."

"맞아. 그런데 그 모래사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인력이 넘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천강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해 미간을 찌푸리길 잠시, 아리송하던 묵현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짐작한 것이다.

자식. 눈치는 빨라서.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사신들의 의심을 피하면서도 추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

모래사장의 바늘조차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인력이 많은 조직.

천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개방이다."

 

***

 

막사 내로 들어선 한 인물로 인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놀랄 만하지. 웬 거지가 떡하니 마교와 무림맹 간부 회의실에 나타났으니까.

정돈되지 않은 수염.

술에 취해 붉은 코.

그가 술병을 입안에 한 차례 털어 넣고는 빽 소리쳤다.

"흑살마신이 어느 놈이더냐!"

"어허! 네놈은 누구기에 행패인 것이냐!"

소림 방장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호통을 치나 노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대신 부라리는 눈으로 좌우를 훑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천강이 손을 들고는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야, 여기. 어서 오라고 개방 방주."

"에?"

"저, 저 사람이……."

노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진다.

"저자가 개방방주?"

개방.

중원의 무림 조직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파일방이다.

이중 앞의 구파는 세가를 제외한 조직으로 각 명문정파의 위세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으나, 뒤의 일방은 그렇지 않다.

경쟁자도 없이 홀로 존재하는 광대한 조직.

중원의 모든 소식을 관리한다고 할 정도로 인력도 많고, 그럼에도 따로 비용도 들지 않아 망하지도 않는 특이한 단체.

하오문도 울고 간다는 무림 제일의 정보조직, 그게 개방이었다. 그리고 지금 막사에 들어와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노인은 그 개방의 주인인 방주였다.

천강이 활짝 웃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바로 여기 개방 방주가 사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다."

그러나 삐딱한 자세로 앉아 암운사신이 반박한다.

"개방이면 이미 황실 측으로 배신한 무리 아냐? 왜 우리를 돕는다는 거지?"

그 말에 호응하는 사람들.

이미 무림맹은 일전에 사신들로 인해 개방 측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방은 그들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었다.

남궁선의 옆 빈자리에 털썩 앉은 작달막한 노인이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옘병. 누가 황실을 돕고 싶어 그런 줄 아느냐! 그놈의 동창(東廠)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쾅. 상을 내리치는 행위는 영락없는 술주정.

옆에 있던 당묘오가 코를 부여잡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남궁선이 하하 어색하게 웃는다. 천강의 시선이 개방 방주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이곳에 직접 나타났다는 거는 내 제안에 응하겠다는 소리지?"

제안? 사람들이 호기심을 담아 두 사람을 쳐다본다. 개방 방주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천강이 검은 안개에서 몽둥이 하나를 슥 꺼내 노인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것은 개방 방주의 상징인 타구봉이었다.

과거 색귀의 비밀 거처에 따라 들어가 놈을 쥐어패고는 빼앗았던 것.

그걸 본 개방 방주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잽싸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는 듯 천강이 그것을 회수해 도로 검은 안개에 집어넣었다.

"이런 씨부럴……."

그제야 사람들은 개방 방주가 황실조차 배반하고 천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타구봉이 없는 개방 방주는 사실 방주라도 불릴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구체적으로 저 노인네가 어떻게 사신 일을 처리한다는 거지?"

암운사신의 물음에 천강이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사신들을 거의 다 잡았거든. 최근에 한 50명 정도 때려잡았을 거야. 아마 저쪽에 사신이 남아있다고 해봐야 끽해야 다섯이 안 될 테지."

물론 그 다섯도 하나하나가 기척이 전혀 안 느껴지고 타격도 거의 안 받는 만큼 무서운 전력이라 할 수 있었으나, 오십이란 숫자에 비하면 확실히 나은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 못 잡은 놈들은 버리고, 사신들이 추가 생산되는 것을 영구적으로 막을 생각이다. 우리의 개방 방주께서는 그 제조소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야."

개방 방주는 사신 제조소의 위치를 진즉에 알고 있었다. 흑귀가 북경에 자리를 잡는 그날 바로 알았다.

사실 그것 때문에 황실 측으로부터 협박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중원의 거지들을 다 죽여 입막음을 하자니 너무 일이 커지게 생겼고, 그에 협조하고 그 비밀을 엄수하라는 협박을 했던 것.

'그러나 이번 싸움에서 무림 쪽이 승리하게 되면, 그 협박도 의미가 없지.'

또한 방주의 상징인 타구봉을 되찾을 수 있으니 현 개방 방주로서는 천강의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막말로 개방의 신물을 회수한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개방에서 방주 노릇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나직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과연 맹주!"

"역시 천님이십니다!"

문제가 터지면 바로바로 해답이 튀어나오는 천강의 행태로 인해, 마교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무림맹에서 천강은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략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 개방 방주가 눈을 반만 뜨고는 말했다.

"진짜 약속을 꼭 지키거라, 애송이."

"걱정 말라고, 영감. 그래서 사신 제조소 위치가 어디야?"

개방 방주가 구체적인 위치를 설명한다. 황실로부터 물건과 사람을 받는 장소와 주기까지도.

그걸 토대로 마교와 무림맹은 계획을 수립하고, 그 사이 중원에서는 싸움을 일으킨 황실의 명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로소 둔황에 머물러 있던 마교와 무림맹 연맹이 청해의 땅에 들어서게 되니, 무림맹이 마교와의 싸움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갔다.

 

***

 

"……하여 저잣거리 어디서건 황실을 욕하는 자가 수두룩합니다, 태감(太監)."

무림맹이 마교와의 일전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다. 그것도 승전보와 함께, 향후 100년간은 절대 공격하지 않겠노라는 협상까지 마치고.

그 소식은 중원 사람들의 큰 호의를 이끌어냈다. 반대로 그런 무림맹을 집어삼키려 한 황실은 아주 희대의 악한 정권으로 낙인찍히는 중이었다.

그 일의 선구자인 동창(東廠) 또한 마찬가지.

"동창의 폐지를 촉구하는 상소 또한 논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없는 동안 많은 게 바뀌었구나."

"소, 송구합니다."

태감이 턱을 매만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환관의 눈엔 두려움이 그득했다.

지금 태감은 사람인지 의심이 들 법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피부의 노랗고 검은 부분이 서로 섞이고 뒤엉켜 마치 추출하기 전의 금광석처럼 보였던 탓이다.

심지어 내기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면에서 더욱 그러했다.

턱을 쓸던 태감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나 현 상황이야 어떠하든, 결국 역사는 승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 저들이 사천을 향해 오고 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산서에 주둔 중인 대장군에게 기별을 넣어라."

"그 말씀은……."

태감의 안광이 번쩍였다.

"전쟁이다. 저들 중 그 누구도 중원에서 다시는 활동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고 태감 본인은 황제에게로 나아갔다. 황제 옆으로는 그의 대역인 마섬이 앉아 책을 읽어 드리는 중이었다.

황제가 손을 들자 마섬이 책을 내려놓고는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책 겉면 위로 『장자』라는 글자가 태감의 눈에 들어왔다.

"장자의 글을 읽고 계셨습니까?"

"예전에는 병법서가 재미있었는데, 요새는 이런 책이 재미있더군."

젊을 적 하루에도 수차례 병법서를 읽던 황제는 최근 들어 장자나 주역과 같은 책들을 읽고 있었다.

잔잔한 미소를 지은 황제의 시선이 태감에게로 가 닿았다. 태감이 꾸벅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래. 요새 굉장히 바쁘다던데 무슨 일인가."

"폐하. 소신 태감, 며칠 궁을 비워도 되겠습니까?"

"중원 일 때문인가?"

"예. 그렇사옵니다."

황제가 태감을 잠잠히 쳐다보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황제의 입이 나직이 움직였다.

"오소여.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

"네 안의 분노가 널 미치게 만들고 있구나."

태감은 황제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생사경, 즉 신선의 반열에 오른 인물.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 잘 아는 것과 그걸 행함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는 법.

중원의 일을 마주할 때마다, 태감은 마음 한구석으로부터 몸 전체로 화르륵 타오르는 불같은 기운을 억제하지 못했다.

황제가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잠시 바깥의 전경을 가만 바라보고는 이야기했다.

"화를 풀지 못하면 몸이 상하는 법이지. 나는 그대가 아프길 원치 않는다."

"……폐하."

"갔다 오려무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태감이 바짝 머리를 조아렸다.

이 싸움은 태감 본인이나 무림이나,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야 끝이 날 것인바, 황제로부터 한시 동안 자유를 얻은 태감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두근거렸다.

예를 올리곤 자신만만하게 어전을 나선 태감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외쳤다.

"가자. 물건들을 수레에 챙겨라."

 

***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자고. 모두들 맡은 역할 잘 수행하고."

어둠이 아직 잔재하는 이른 새벽녘. 사람들이 나아와 천강을 배웅한다.

지금부터 천강은 개방 방주와 함께 북경으로 올라가, 사신 제조소를 파괴할 계획이었다.

그래야 그만큼 무림맹의 인력들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작전의 성공확률도 상승할 테니까.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쟁이 벌어지기 전 돌아올 거야."

황궁에서도 바로 움직이기엔 절차라는 게 꽤 복잡할 테니.

그래도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

"내가 없을 때 일이 터지면 계획대로 하도록 해. 양쪽 싸우지 말고."

사람들이 걱정하지 말라며 환하게 웃었다. 뭐 미오왕과 홍랑이 알아서 잘 조율할 터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럼 갑시다, 영감."

"잠깐. 내 술병 하나만 더 챙기고."

양손에 술병 네 개를 챙겨 든 개방 방주를 내기로 감싸 들고는 천강이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그럼 우리도 다시 훈련에 매진하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경공을 수련한다. 청해의 넓은 평지 위로는 마치 메뚜기 떼가 날아다니듯 숱한 무림인들이 뛰고 날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멀리서 사람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와 하는 보고에 그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적들이 움직였습니다. 10만 황군이 막 주둔지를 정리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벌써?"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가 아닌가?

"저들이 움직이려면 족히 달포는 있어야 한다고 예상했는데."

암운사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정보가 확실한지 내가 직접 확인하고 오도록 하지."

"얼마나 걸리겠나?"

"닷새면 충분해. 대신 저 정보가 사실이라면 시간이 촉박할 테니까, 신선환 풀 회수 담당 인력은 지금 나와 함께 이동하자고. 산서 마교 지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거기서 흩어지면 늦지 않을 거다."

그렇게 독성을 유발하는 풀을 회수하기 위한 자들이 암운사신과 함께 중원으로 먼저 향하고, 남은 이들은 조금 늦은 걸음으로 사천성을 향해 이동했다.

미리 현장에 도착해 지형을 숙지하기 위해서였다.

초가을. 황실과 무림의 전운이 사천으로 빠르게 밀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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