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5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4화
254화. 동맹
한동안 멍하니 있던 무림맹 사람들이 사태를 인지하고는 장문인들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진짜 이대로 맹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둘 생각은 아니시죠?"
"앞으로 저희끼리 어떻게 해야 한답니까? 할 수는 있는 겁니까?"
그러나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장문인들.
그 순간부터 천강의 욕을 해대던 이들은 말 그대로 대역죄인으로 몰리게 되었다. 어딜 가나 매서운 눈초리를 받는다.
"어후. 진짜 그런 건 좀 지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안 됐나? 꼭 그걸 자기들만 아는 양 입 밖으로 내야겠느냔 말이야."
"마교 쪽과 오해도 다 풀린 마당에…… 이제 함께 중원으로 돌아가 무림을 되찾기만 하면 되는데, 진짜 짜증 나네."
"제 잘난 맛에 설치는 미꾸라지 몇 마리에 이게 뭔 일인가 말이여."
사실 이번 일을 선동한 자들 또한 이런 결과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마교인이 무림맹주로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 몇 마디 한 것일 뿐, 대의를 망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렸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정말 경솔했소이다. 목숨을 구명 받고도 뒤에서 욕을 하다니."
"그대들에게도 미안하오. 우리 때문에……."
"하여 흑살마신을 찾아가 다시 맹주가 되어주기를 청할까 하온데, 여러분께서 함께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소?"
현재 무림맹에는 맹주가 될 만한 이라고는 하북팽가 가주 하나뿐이다.
당묘오의 경우엔 여성이라 맹주는커녕 정식 가주도 불가능한데다가, 나머지는 다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팽가의 가주는 맹주가 되기를 극구 거부하고 있는 상황.
"그대들도 알다시피, 우리 하북팽가는 무공만큼이나 성격들이 다혈질이오. 내가 가주는 어찌어찌해도 무림맹 전체를 이끌 그릇은 되지 못하오. 맹주는 힘도 힘이지만 경험과 지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오."
즉, 현재 무림맹은 그들을 이끌 우두머리 격 인재가 없는 상황이고. 그들을 이끌고 중원을 되찾아올 적합자는 사실상 흑살마신이 제일이었단 의미였다.
그저 마교인이라고 배척하기엔 너무도 필요가 큰 상황. 결국 모든 무림맹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흑살마신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는 사막 한가운데서 전갈을 앞에 두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흑살마신."
하북팽가 가주의 부름에 천강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흠흠. 어젯밤 천강을 깎아내리던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아와 천강에게 꾸벅 예를 갖췄다.
"어, 어제 일은 우리가 경솔했던 것 같소이다."
"간밤의 일을 사과하오."
그들의 사과에 천강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그동안 속여서."
"아, 아니오. 들었소이다. 미오왕과 음존처럼 그대 또한 무림을 위해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을 말이오."
천강의 입가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깎아내리다니…… 인간의 마음이란 이 얼마나 간사하단 말인가.
결국 저들이 사과하는 것 또한 천강이 필요해서일 뿐, 협이란 어쩌면 겉치레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쨌든 마교나 사파보단 낫지.'
비록 마교 출신이지만, 그래도 세상을 살만하게 하는 데엔 정파 쪽이 제일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천강이었다.
'아무튼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튕겨 보자.'
천강이 사과를 흡족히 받아들이며 말했다.
"그럼 그 일은 서로 간의 실수로 여기고 한발씩 물러나는 걸로 끝내자고."
천강이 다시 전갈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어 말을 꺼내려던 그들은 그로 인해 도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전갈의 행동을 가만 관찰하는 사이 그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무림맹 사람들.
"야야. 너희들 뭐하냐. 빨리 좀 말해 봐."
"아, 잠깐만. 좀만 기다려 보시오."
그러나 천강이 진지한 얼굴로 집중하자, 우물쭈물할 뿐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 그들은 장문인들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사실 무림 하수가 고수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엔 더더욱.
천강이 속으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도 한땐 스승님에게 말 한마디 걸기 위해 한나절을 기다린 적도 있었지.'
그러나 장문인들이라고 무슨 힘이 있으랴.
천강에게 호의적인, 속사정을 아는 여섯 장문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파와 세가 모두 똑같이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들은 한쪽에서 쉬고 있는 천수향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허리를 숙였다.
"저어. 음존께서 말씀해주시면 안 되오이까."
"응? 뭘?"
"저기 그게……."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여인.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 뚝 떼는 그 표정 앞에서 그 누가 진실을 고할 수 있으랴.
"그, 그냥 음존께는 비밀로 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소. 자칫 잘못해서 맹주 자리를 내던진 이유라도 알아차리시는 한……."
꿀꺽. 남궁선과 한사의 말을 들은 그들은 결국 천강의 옆으로 도로 돌아가고. 천강은 두 시진 정도 느긋하게 수련을 하고서야 고개를 그들에게로 돌렸다.
천강의 시선이 닿자, 사람들의 얼굴이 꽃봉오리 피듯 화악 밝아진다.
"응? 왜 다들 잠도 안 자고 거기서 그러고 있는……."
"천 대협!"
"천 대협!"
돌연 빽 소리를 치는 사람들. 장문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는 외쳤다.
"다시 맹주로 돌아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강이 말없이 그들을 쭉 훑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인 장문인들 또한 제법 진중하고도 간절한 감정이 얼굴 위로 역력히 드러나는 중이었다.
"알다시피 나는 마교 출신이라."
"괜찮소이다! 그래도 마교에 들어가기 전엔 중원 사람 아니었소이까?"
"……뭐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또한 마교와 무림맹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황!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건 그대 혼자의 생각인가, 아니면 모두의 생각인가?"
천강의 물음에 무림맹에서 한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건 우리 모두의 뜻이오이다. 부디 맹주 자리를 다시 맡아주시오!"
참……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안 할 수도 없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뒤 그 앞에 공수(拱手)를 취했다.
그걸 보고는 기쁘게 공수로 화답하는 사람들.
'화합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적에게 반격을 날리는 것뿐.'
그렇게 천강의 사건을 기점으로 마교와 무림맹 사이로 든든한 동맹이 형성되었다.
***
"후우. 드디어 끝났군."
"수고 많았소이다, 맹주."
"수고 많았네, 흑살마신."
천강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마교 측과 무림맹 측이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천강은 무림맹 쪽 사람들 중 신선환을 복용한 이들의 내기를 막 빨아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소림의 방장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헛. 어찌 영약이라 속여 독초를 먹이고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소."
"곤륜 장문인께선 그럴 만하오. 기존의 방법으로 환골탈태를 하시지 않았소이까?"
"그렇긴 하네만."
"신선환을 먹으면 여기 머리 부근에 이종진기가 생긴다오. 그게 독이었다니. 허허헛."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황실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그래도 무림맹은 복을 받은 것이외다. 우리 마교는 그로 인해 전력 대부분이 다 사망했으니 말이오."
"아니, 어쩌다 그리되었소?"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뭐 마교 측에서도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니, 안 해준 것이겠지.
천강이 자리에 앉으며 툭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일반인에게까지 몸에 좋은 영약이라고 속여 팔았지. 무인들에겐 경지에 상관없이 운 좋으면 한 방에 화경에 도달할 수 있다고 소문을 냈고."
"아니, 그것에 속는단 말이오?"
자칫 마교 측의 신경을 긁을 수도 있는 말이라 그런지 소림 방장이 꽤 조심스레 묻는다.
천강은 천수향이 주는 물통을 받으며 물었다.
"혹시 무림맹 도시에서 떠날 때 저잣거리 상황 기억나는 사람?"
몇몇이 손을 들고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마을 주민들이 신선환을 너도나도 사서 복용하던 그 모습을.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막사 안으로 내려앉았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천강이 검지를 슥 치켜들었다.
"뭐 너무들 심각해 하지 마. 적의 수법을 모를 때야 위험하지. 이미 안 시점에 이건 기회라 할 수 있으니까."
"어떤 기회 말이오이까?"
천강이 씨익 입가에 미소 지었다.
"중원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절호의 기회."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원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막사 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천강이 설명을 시작했다.
"황실은 무림인을 없애기 위해 신선환이란 영약을 공급했어. 그걸 효과적으로 먹이기 위해 일반인들까지 끌어들였지. 그 민낯이 온 세상에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
무림맹 측이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
"과연…… 그렇군."
"이건 명분 정도가 아니라 반란이 일어나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군요."
"무려 사람들에게 독을 먹인 꼴이니."
그때 남궁선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문제는 그걸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네요."
그랬다. 신선환을 섭취해도 일반인들은 그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기라는 걸 느끼지 못하니 독기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심지어 몸에 아무런 해가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혈액순환이 잘 되고 앞이 잘 보이니, 황실 입장에서는 그냥 먹으라고 권장만 해도 좋다는 소문이 부지불식간에 알아서 활활 번져 나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중원의 여론도 동창이 꽉 잡고 있으니…….
"그래서 우린 황실과의 전면전이 일어날 때까지.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 신선환의 독소를 일으키는 풀을 찾아야 해."
"어떻게 말이오?"
"어떻게긴.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지."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살짝은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당묘오의 질문에 천강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병력을 황군 가까이 이동시키면 저들은 필히 그것들을 가지고 나타날 거다."
"그때 갈취하자는 말이군요."
"그래. 다만 미리 길목 곳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갈취해야 해. 그것들이 도착한 뒤 갈취하려다간 본대가 위험해질 수 있어."
즉, 본대끼리 싸우는 척 전운을 감돌게 하고. 동창에서 신선환의 독성을 유발하는 풀을 보내오면 그것을 중간에 가로챈다.
그런 간단한 계획이었다.
실제로 성공 확률도 매우 높으며, 설령 태감이 직접 나타나 가로채는 걸 실패한다손 치더라도, 미리 중간중간에 하오문 인력을 배치해 그것을 가져온 경로를 추적한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본대는 어디까지나 구색만 갖출 뿐,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는 이들을 실력 있는 자들로 차출해야겠군요."
"그렇지. 시간 날 때마다 다른 것보다 경공을 수련시켜 놓으라고. 본대도, 현장을 뛰는 이들도 말이야."
당묘오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천강의 옆에서 천수향이 그녀를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후훗. 봤어? 우리 낭군에겐 다 생각이 있다고!"
"얼씨구. 언니는 남편 관리나 잘해. 내 딸이 낚아채 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
"야! 나 진짜 조카라고 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 그럼 내가 끼어볼까? 나도 슬슬 남자가 고픈데."
이글이글. 당가의 두 여인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서로를 노려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엔 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근데 아직 중요한 문제 하나가 남았네."
천마의 잠잠하지만 묵직한 음성에, 서로를 향해 막 달려들려던 두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 외에 사람들의 시선 또한 모두 천강과 천마에게로 향했다.
천마가 천강에게 나직이 물었다.
"사신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렇다. 이 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최대 방해 요소가 있다면 바로 사신.
내기도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로 인해, 요 근래는 마교의 첩자들조차 중원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놈들부터 처리해야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즉, 그만큼 성공 확률이 올라간단 의미.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는 그들을 대체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그것이 바로 천마가 주목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천강의 입가엔 미소가 그득했다.
"걱정 마. 그 부분은 해결책을 마련했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귀가 막사 입구를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꾸벅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주군. 모셔왔습니다."
"어. 들어오라 해."
일귀가 나가고 한 인영이 들어온다. 그를 보는 순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