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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5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3화

253화. 덕을 쌓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천 형. 계시오?"

"한사?"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 한사가 들어와 인사한다. 그가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더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여긴 갑자기 무슨 일이냐?"

천강의 물음에 한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마교 오면 내게 여자 하나 소개해준다 하지 않았소?"

"어쭈. 그때 빈말로 한 말 아니었어?"

"천 형도 참. 협을 중시하는 자는 허투루 농을 던지지 않소."

천강이 작게 웃었다.

"안 그래도 아까 보니, 너에게 소개해 주려는 애도 오긴 했더라."

"정말이오?"

"어. 화정마녀라고 무당파 장로를 쓰러뜨린 앤데 딱 네 나이 정도 된다. 얼굴은 홍루의 여인들에 전혀 밀리지 않을걸?"

한사가 마른침을 삼킨다. 그 반대편에 앉은 천강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뭐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도사가 여자에게 정신 팔렸다는 소문을 내러 온 건 아닐 테고 말이야."

속없는 놈처럼 굴어도 천강은 한사의 성격을 안다.

한사가 머리를 다시 긁적이더니, 몇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진중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때 천 형이 내게 그러셨소. 코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라고."

"……그랬지."

장마 기간 동안 청해에서 마을 주민들을 도왔던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당시 한사는 눈앞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 그 마을의 복덩어리를 함께 치워버린 전적이 있었다.

그 뒤로 한사는 협을 입에 담는 횟수를 반 이상 줄이게 되었다. 아마 당시 일은 한사 본인에겐 큰 깨달음이 되었을 것이었다.

한사가 말을 이었다.

"이건 정 때문에 내린 결정이 아니오. 내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니, 우리에겐 천 형이 필요하오. 또한 마교도 필요하고."

순망치한이라 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현재 마교와 무림맹은 함께 해야 미래가 있었다.

"이번엔 멀리 보고 결정한 것이오. 우리 화산은 천 형의 뜻을 따를 것이외다. 그러니 밖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마시오."

참 내. 누가 한사 아니랄까 봐, 의리 하나는 최고로구만.

천강이 검은 안개에서 물건 하나를 빼 건네주었다.

"자, 받아라."

"이게 무엇이오?"

"읽어봐라. 무엇인지."

책의 겉면에 쓰인 글자를 읽은 한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자하신공. 』

"이, 이것은?"

"아직 네 자하신공은 좀 불안정해. 그걸 보면 더 완벽해질 거다."

일전에 천강은 일귀에게 연락을 해, 천산의 보고에 있는 자하신공 비급을 가지고 오라 일렀다.

그것을 지금 건네준 것이다.

"어찌 이 귀한 것을 제게 선뜻……."

"그래도 나 믿고 따라준다는데, 가만 있을 순 없지."

아마 저거라면 화산파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명분은 충분할 것이다.

‘일단 하나는 끝났고.’

후우. 문제는 다른 문파들인데.

그때 막사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다. 얼핏 보면 계집으로 오해할 외모를 가진 무려 남궁의 가주, 남궁선이었다.

"응? 남궁선?"

"한사? 아, 저보다 먼저 움직이셨군요."

남궁선이 천강에게 나아와 예를 갖췄다. 그 또한 한사와 같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일전에 저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제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신 것도 말이지요."

"무리할 필요는 없어. 그냥 나중에 개인적으로 갚아도 돼."

"이건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개인적으로 갚는 겁니다. 저희 남궁도 천님을 따를 것입니다."

이리 나와 주니 참으로 고맙네.

돌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이 둘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이번엔 웬 거구의 사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남궁선이 들고 다니는 중검보다도 더 무겁고 큼지막한 도를 멘 사내.

하북팽가의 가주는 온 중원이 다 아는 애처가 중의 애처가다.

그런 그녀가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며, 조금 전 그 부인을 통해 천강이 흑살마신인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전해 들은 그도 천강에게 협조하기 위해 나섰다.

"우리 팽가에서 은원관계는 철저하오. 비록 맹주가 마교 출신이라 한들, 나와 가문이 은혜를 입은 사실에는 변함이 없소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우린 앞으로도 맹주를 따를 것이니."

그 뒤로도 사천당가와 아미파, 제갈세가에서도 찾아왔다.

사천당가 당묘오의 경우엔 언니와 딸의 눈치를 본 것 같고, 아미파는 천강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던 탓이다.

그들은 하북팽가의 안주인과 같이, 색귀의 마수로부터 구명을 받을 적 이미 천강이 흑살마신인 걸 알게 되었었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현 또한 마찬가지. 무영신투의 비고에서 생사를 함께한 만큼, 그에겐 천강에게 협조를 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막사 안은 천강에 대해 호의를 보이는 이들로 넘쳐났다.

- 허헛. 이전 날의 일들이 이리 돌아올 줄이야.

- 이렇게 될 걸 알고 그런 건가요, 소년?

'그럴 리가. 다만 맹자님 말씀을 늘 기억했을 뿐이지.'

덕을 쌓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그에 기회만 있으면 늘 이곳저곳 빚을 지우고 다닌 것이다. 언젠가는 다 돌아올 걸 아니까.

'문제는 다른 장문인들과 아랫사람들인데.'

천강에게 빚이 있어 호의적인 문주들과는 다르게,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를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천강의 명에 따르긴 따라도 형식적인 움직임일 뿐, 그럴 거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수 있었다.

-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 게냐?

천강이 그 문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자, 천강을 돕고자 하는 장문인들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화산은 괜찮소. 이게 있으니 말이오."

"저희 아미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맹주의 정체를 모르는 이가 없으니까요."

화산파는 자하신공의 비급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따라올 것이고, 아미파 또한 마찬가지.

그럼 나머지 문파들이 문제인데.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천강. 이내 그 눈이 번쩍 뜨였다.

"혹시 다들 연기 좀 하나?"

사람들이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연기…… 말이오?"

 

***

 

"참 내. 무림맹 맹주가 그 흑살마신이었다고?"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지?"

"아마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기를 안 쓴 거지. 다들 봤잖아?"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인다. 내기를 운용하지 못하고, 외공을 익혀 그런 줄 알았던 그 이면엔 그러한 진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막 듣던 대로 사악하지는 않던데."

"아서라. 마교가 얼마나 음흉하다고. 다들 그러다 당하는 거야. 말투랑 행동은 얼마나 또 거만한지. 퉤."

악담하는 이들의 말에 사람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게,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걸 본 탓이다.

전대 장문인들을 학살한 사신들의 습격으로부터 지켜주었고, 황실의 덫에서 빠져나와 명분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사천성에서는 어떠한가. 인맥을 발휘해 전쟁 물자를 갖추는 데 도움까지 주지 않았던가.

사람은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협을 중시하는 정파인들은 자신이 받은 것과 갚아야 할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이득에 휘둘릴 만한 이들은 진즉에 배신자의 길로 다 사라져 버렸으니, 사실상 지금 이곳에 남은 무림맹 사람들은 가슴에 진짜 협을 품고 있는 이들이라 봐도 무방했다.

한쪽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그는 일전에 사신에게 죽을 뻔했다가 천강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자였다.

"그래서 너희들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뭐냐?"

"어어?"

"계속 흑살마신을 깎아내리는 저의가 뭐냐고 묻는 것이다."

"저, 저의라니! 우리는 그저……."

"어찌 됐든 우리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흑살마신이란 자에게 빚이 있다. 그것도 최소 두 번. 근데 은혜를 갚아야 할 대상을 깎아내리다니, 그러고도 너희들이 무림인이냐?"

사내의 말에 사람들이 호응하며 고개를 주억인다. 그것에 탄력을 받은 그가 더욱 호통을 쳤다.

"사파라도 은혜를 받으면 말을 아끼고 갚으려 하거늘, 너희들은 도리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칼을 뽑아라. 난 네놈이 나와 같은 협을 추구하는 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챙. 챙챙.

천강을 비호하고 나선 자가 칼을 뽑자, 그 주위 있던 자들도 따라 칼을 뽑았다.

그들 모두 한땐 천강을 욕하다가, 사신들의 죽음 앞에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고는 돌아선 열렬한 추종자들.

그 매서운 기세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악의적으로 선동질하던 십여 명의 사람들도 칼을 뽑았다.

"그, 그깟 마교 나부랭이의 명을 따르느니, 난 나대로 무림을 위해 힘쓰겠다!"

"그렇다! 어찌 외세…… 그것도 철천지원수인 마교의 힘을 빌려 평화를 구축하려 하는가!"

그들을 둘러싸고는 구경하던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 고뇌가 올라온다. 양쪽 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던 탓이다.

그때 묵직한 기운이 그들 가운데로 내려앉았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사위를 짓누르는 무거운 기운. 손가락조차 들기 힘든 그것은 절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힘겹게 목소리의 근원지로 향하자, 그곳엔 그들의 맹주인 흑살마신과 각 문파의 장문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강의 신위에 그 악담을 하던 자들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욕을 할 땐 몰랐지만, 그의 능력을 직접 몸소 겪어보니 자신들이 어떤 화를 불러온 지 체감된 것이다.

'이, 이 정도의 기운이라니.'

'정녕 저게 사람이란 말인가?'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그러나 그 누구 하나 피를 보지 않고, 내기를 회수한 천강이 잠잠히 이야기했다.

"너희들은 중원의 무림을 수호할 자들이다. 황실이라는 거대한 풍파를 피해 막 몸을 추슬렀으니, 이제 서로 힘을 합쳐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해야 하거늘…… 어찌 서로 싸우는 것이냐?"

"그, 그게……."

"나 때문인가?"

천강의 물음에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그들을 가만 지켜보던 천강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마교 사람이 맞다. 그런 내가 맹주가 되어 열심히 뛰어다닌 것은, 무림맹이 살아야 마교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때문에 무림맹이 내분이 일어난다면 별수 없지."

천강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그들 가운데 내려앉았다.

"나 흑살마신은 현 시간부로 무림맹 맹주 자리를 내려놓겠다."

그 파장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산서에서 사천과 청해를 거쳐 이곳 사막에 오기까지 천강은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늑대와 같았다.

지략으로 숱한 고난을 돌파해냈고, 그 자신의 강함 또한 확실했으니.

비록 오늘 하나의 큰 사건으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은연중에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맹주의 뒷모습은 그들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버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맹주 자리를 내려놓는단다.

"그럼 나는 이만 가도록 하지."

천강이 조금도 고민 없이 몸을 홱 돌려 발을 움직였다. 무림맹 사이로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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