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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52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2화

252화. 마교와 무림맹의 만남

 

 

한 차례 큰 바람에 흙먼지가 인다.

그것이 가라앉자 차츰 시야가 환해지면서 저 멀리 푸른 초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너머 자리한 널따란 평야와 그 위 까마득히 솟아있는 산도.

구름을 관통해 올라간 머리 없는 산에는 한여름임에도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천산을 가만 바라보던 천강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각자 끼리끼리 모여 식사 중인 무림맹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현재 무림맹은 천산을 앞에 두고 둔황 인근에서 주둔 중이었다.

천수향이 다가와 천강에게 차를 건넨다.

"아직 소식 없어?"

"어. 아무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지."

다짜고짜 무림맹에서 나타나 협상을 하자 하니, 마교에서도 꽤 당황스러울 거다.

그것도 무려 2천의 병력을 끌고 말이다.

"네가 직접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아니, 그럴 필욘 없어."

이미 사천성에 있던 마교 지부에서 보고가 날아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얼마 전 왔다 간 일귀를 통해 이곳 상황이 모두 전달됐을 것이고.

"우리는 그냥 편히 기다리면 돼."

그러며 기지개를 쭉 펴는 순간, 천강의 눈에 이변이 감지되었다. 풍미관 끝자락 부근에서 어떤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이 먼 거리에서 느껴질 정도면 최소 수백의 숫자.

천강이 외쳤다.

"마교에서 나온다. 내일 점심쯤이면 도착할 테니, 다들 일찍 자두라고."

"예에! 맹주!"

신뢰감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하늘 위로 울려 퍼지고, 그렇게 마교와 무림맹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

 

서로가 서로를 향해 도열한 양 세력.

200보가 좀 넘는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마교와 무림맹 사이로는 거대한 천막이 쳐져 있고, 오늘 그곳에서 양측 세력의 협상이 이루어질 전망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면 협상이라기보다는 진실의 장이라는 게 더 맞겠지만.'

현재 마교도 자신들이 중원에서 어떤 오해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다만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는 건, 마교 또한 내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느라 바빴기 때문.

그러나 이제 이렇게 대화의 장이 마련이 되었으니, 오늘 양측의 불화를 최대한 종식하는 게 천강과 마교가 할 일이었다.

"자자. 그럼 갑시다."

천강을 필두로 무림맹의 핵심 인사가 천막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마교 측에서도 천마를 필두로 상위 서열의 마두들이 나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후우. 정말이지 마교에 비하면 무림맹은 오합지졸이구만.'

그나마 천수향이 이쪽에서 있어서 망정이지, 자칫 힘 균형이 안 맞았으면 마교 측에서 공격해도 할 말이 없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미 천강의 신분을 들었을 것임에도 마교 측 사람들이 천강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 흑살마신…… 자네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 야, 천강. 씨발 네가 맹주라고? 푸하하핫.

- 서, 선배님.

미안. 이해해달라고. 이게 다 마교를 위한 큰 그림이니까.

그러나 천강이 봐도 어이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인…… 그것도 신교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무려 무림맹의 맹주로 있으니.

아무튼 서로를 향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대부분이 새 장문인들이고, 마교 사람을 직접 마주한 경험이 없거나 적은 만큼 무림맹 측은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그득했다.

그에 반해 천강의 존재를 아는 마교 측에서는 마치 제집인 양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 그게 아니라도, 천수향과 팽가의 가주를 제외하면 마두 혼자서 다른 장문인을 다 쓸어버릴 수 있을 만큼 전력 차가 큰 것도 있었고.

인사가 끝이 나자, 천마가 천수향을 향해 가볍게 화두를 던졌다.

"얼마 전까지 저희 측 신녀로 있으시더니, 우리 마교의 대접이 소홀했던 모양이오."

"뭐…… 가끔은 바람을 쐬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래서 만족스럽게 쐬셨소이까?"

"어. 아주 충분히."

두 사람의 대화에 무림맹 측에서 천수향을 주목했다. 아마 해명해달라는 의미겠지.

그러나 천수향은 자신에게 모여든 그 시선을 한방에 옆으로 치워버렸다.

"미오왕. 이제 슬슬 너도 중원으로 돌아오는 게 어때?"

"엥?"

"미오왕?"

"미오왕이라니."

이번에는 무림맹뿐만 아니라 막사 내 모든 이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흑선마희가 인상을 팍 쓰고는 천수향을 노려보았다.

"음존. 서로 간의 유희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나?"

"아아. 우리 낭군이 청루의 루주한테 독박을 뒤집어썼다지 뭐야. 그게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이도 열받아서 네 명패 던져주고 돌아왔대."

"윽."

흑선마희가 할 말이 없는지 궁색해졌다.

청루의 루주가 귀영왕인 걸 아는 만큼, 대략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유추가 되었던 것이다.

연화의 아비인 권광투마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 하하핫. 놀랍구려. 흑선마희께서 무림의 다섯 왕 중 하나였다니."

"다들 미안하네요. 딱히 속이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저 무림과 마교 모두의 안정을 위해 한 것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잠시 들떠 있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게 무슨 뜻이오?"

"마교에서 겪은 내분과 현재 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 뒤에 태감(太監)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전 조사 차 마교에 잠시 몸을 의탁한 거랍니다."

그러며 시작된 설명.

태감의 목적은 무림인의 멸망이며, 그걸 위해 50년 넘게 준비하고 또 준비해왔다는 것을 흑선마희가 소상히 이야기했다.

무려 다섯 왕 중의 하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만큼, 그 말이 갖는 무게감은 엄청났다.

대다수 사람들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을 정도로. 그만큼 그녀의 명성이 중원에서 뛰어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리라.

물론, 의심을 하는 자도 있었다.

"태감이라니…… 이리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저는 그자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흠흠. 저 또한 동의하외다."

마교 측은 그동안 여울나무가 황실 쪽과 어떤 내통을 하는 걸 지켜봐 왔기에 의심하지 않았으나, 맹인처럼 지낸 무림맹 측은 그 모든 걸 단번에 받아들이기엔 다소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삼인성호라 했다. 세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그 말이 사실이 되는 법.

"아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보증하는 거니까 의심하지 않아도 돼."

다섯 존자 중 하나인 천수향이 나서고.

"진소 사형이 죽기 전 내게 말해주었소. 태감은 각 문파의 배신자들을 선동해 무림을 멸하는 걸 꿈꾸고 있다고 말이오."

화산파의 장문인인 한사까지 그 말에 지지하고 나서자, 의심하던 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머리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꼴이기에 그런 건지도 모른다.

- 결국 소년의 계획대로 됐군요.

- 허헛. 매번 놀랍구나.

사실 천강은 양측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두 세력은 오랜 기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화합 또한 그러했다. 오히려 각자의 선조들은 피까지 흘려가며 칼을 겨눈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 서로 간에 대화가 잘 오갈 수 있을까?

'택도 없는 소리지.'

차라리 고양이와 개 둘을 붙여놓고 사이좋게 지내는 걸 바라는 게 좋으리라.

그에 천강은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천마에게 전음을 날렸다.

- 어이, 천마 나으리.

- 음?

- 네가 들고 온 계획 버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천강의 말을 들은 천마는 음존 천수향에게 일부러 신녀 운운하며 화두를 던졌다. 천수향은 그걸 받아 미오왕에게 투척한 것이고.

무려 존자와 왕이 마교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교에 음흉한 속내가 있진 않을까 하는 의심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대신 반대로 그 행보에 이유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무려 무림의 절대 고수 두 명이 어떤 위기감을 느끼고 마교로 넘어갔고, 그 결과 모든 원흉이 황실이었다는 뭐 그런.

"그럼 이 모든 일이 정말로……."

마교 측에서 모든 누명을 벗고, 무림맹에서는 진실을 듣고. 그렇게 모든 게 잘 해결되고 있는 그때였다.

"맹주님! 곤륜에서 이제 막 도착했답니다!"

막사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곤륜파의 장문인과 살아남은 다섯 떨거지 중 하나였다.

"늦어서 죄송하외다. 새 맹주께 나 곤륜의 문주인 팔룡구검이 인사드리오."

"인사드립니다, 범천입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는 범천이 천강을 보는 순간, 어어? 눈을 크게 뜨고는 검지를 치켜들었다.

"네 이놈! 맹주께 그 무슨 버릇이냐!"

"흐, 흑살마신?!"

……그럼 그렇지. 내가 처리하는 일치고는 너무 조용히 해결되더라.

막사 내 모든 시선이 천강에게 집중되었다.

 

***

 

천강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깨달은 건 아직 어린 암운곡 시절이었다.

동기인 주태와 1년 후배인 맹익, 그리고 천강은 쥐 굴 졸업 관문 때 성적이 좋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교관을 배정받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뭔가를 배우거나 얻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야만 했다.

뭐 몰래 수련을 훔쳐본다든지, 영약 창고를 턴다든지 그런 것.

그런데 매번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요 세 사람이 벌이는 일은 늘 크게 부각되곤 했다.

- 누, 누구…… 으아아아!

- 불이야!

4년 차쯤 되었을 땐, 암운곡에 무슨 사고만 나면 교관이나 총책임자나 모두 요 세 명을 찾아올 정도로.

그때 천강은 깨달았다.

'아…… 이건 하늘이 내게 내린 숙명이구나.'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군인이 되는 건데.

그럼 상관의 눈에 아주 잘 띄어서 빠르게 승진할 것 아닌가?

본디 군대란 중간만 가는 게 최고이건만, 군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천강은 마인이 된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그래도 이미 마인이 되는 길은 밟고 있는 상황.

그 뒤로도 천강은 사고를 치고 다녔고, 사실 스승을 만난 것도 그 덕을 본 게 꽤 있었다.

암운곡 졸업 후 혼자가 되면서 천강은 자신의 숙명에 대해 더욱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건 나만의 숙명이 아니었어. 주태랑 땡추도 나와 같은 거야.'

세 사람 다 같은 운명을 타고난 게 분명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로, 천강 혼자서 다니면 생각보다 일이 많이 요란하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조차도 충분히 시끄럽긴 했지만, 셋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천강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동기와 후배를 바라보았다. 지금 세 사람은 좁은 공간에 한데 뭉쳐 있었다.

"'선배'보고 흑살마신이라니. 아……."

땡추가 말실수를 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푸하하하핫. 천강! 어쩐지 너답지 않게 조용히 끝난다 했다!"

주태 녀석이 검지로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린다.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흑살마신임을 아주 확인 사살시켜주는 두 동료의 모습에 천강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다행히도 남궁선과 한사가 자신의 문파들을 예로 들며 배신자와 황실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뒤에야, 곤륜에서도 현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었지만. 그건 협상이 진행되는 이 막사 내에서의 일일 뿐.

막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천강은 무림맹 사이로 흐르는 불편한 기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곤륜의 사람들을 저자가 다……."

"그렇다면 우리 쪽도……."

- 어떡하죠, 소년?

'뭘 어떡해. 언제까지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언젠가는 한 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쉽사리 말을 꺼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천강은 정파인들을 속여 무림맹의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긴 했어도, 어찌 됐든 그들 문파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던 건 분명한 사실.

정파인들의 눈빛에 적의가 드러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방도가 없을까.'

아직 황실과 전쟁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래서는…….

맹주 자리를 유지하기는커녕 언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후우. 원래 계획대로라면 황실과의 결전을 다 마치고 공개하는 것이었는데.'

고민을 하는 사이 해가 내려앉고 사막 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떠오른 달을 가만 보며 맹주의 임시 숙소에서 어찌해야 하나 가만 서 있는데, 그때 누군가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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