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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51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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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1화

251화. 뒤집힌 명분

 

 

사실 천강이 천수향에게 끌려다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남녀 사이에 있어 한쪽이 좋아한다고 그 반대쪽이 반드시 받아줘야 하는 의무는 없기에.

그럼에도 천강이 천수향에게 끌려다니는 건, 일종의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마교에 들어가기 전 받은 관심은 오직 적의뿐이었고, 마교에 들어선 이후로는 적의 혹은 무관심이었다.

교관조차도 배정받지 못한 천강에게 그래도 주태와 맹익이 있었지만, 그 둘은 오히려 천강이 매번 챙겨주는 입장.

그런 천강에게 호의가 담긴 관심을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 첫 번째가 스승이요. 두 번째가 바로 홍랑이었다.

비록 병적인 증세에 가까운 집착이라 꺼림칙해 도망은 다녔지만,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는 호의는 천강에게 꽤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이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다른 두 여자를 데리고 그 앞으로 나가야 하는 입장은 뭐랄까……. 솔직히 좀 그랬다.

하지만 얘들이 진짜 애인들도 아니고, 당당하자.

"천강 왔어?"

"어, 어어."

마음과는 다르게 떨리는 주둥아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수향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근데 같이 온 이들은 누구?"

천수향의 시선이 천강과 그 주변을 훑는다.

특히 그녀는 천강의 왼편에서 바짝 달라붙어 있는 연화와, 오른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초아를 집중적으로 훑었다.

'뭐라 해야 하지. 그냥 아는 애?'

오면서 계속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은 대답이 이제야 툭 튀어나올 리 만무하고. 천강이 머리를 긁적이자, 천수향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너 다른 여자 있는 거 이미 봤다고."

"아…… 그랬었지."

듣고 보니 기억이 난다.

용봉지회 예선전이 열리는 날 아침. 그녀는 천강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잘난 남자가 여자 여럿 끼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니, 내가 이해는 해. 대신 전에 말한 거 꼭 지켜."

"전에 말한 거라면……."

팔짱을 낀 천수향이 눈을 착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난 절대 조.카.랑은 한 지붕 안 돼."

"하핫. 여부가 있겠냐."

이 정도로 양보해 주고 나오는데 넙죽 절하고 받아들여야지.

아무튼 잘 해결이 되는 듯해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천수향의 넓은 배포로 일이 잘 해결되려는 순간이었다.

"근데 아줌마는 누구예요?"

연화의 생각 없는 질문에 천수향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시발 좆됐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도 여자에게 나이를 가지고 건드는 건 아주 큰 실례다.

이는 거의 얼굴을 가지고 못생겼다고 놀리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쉽게 말해 '난 너와 생사투를 하고 싶다.' 뭐 그런 뜻과 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지, 선전포고.

그리고 지금 우리의 연화는 평소 초아에게 하던 그대로, 생각 없이 그 말을 툭 내뱉었다.

"아줌……마?"

천수향의 머리칼이 돌연 바람에 휘날려 위아래로 팔랑거린다. 그건 자연적으로 분 바람이 아니요, 그녀의 몸에서 내력이 발산되며 나오는 현상이었다.

천수향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야야. 진정해!"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 물론 진정 못하겠지. 무려 70살 먹은 여인에게 아줌마 소리를 했으니, 약간의 미화가 들어갔다 해도 꽤 화가 날 것이다.

이런 건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 천강이 주둥이를 나불댔다.

"야. 아직 애잖냐. 얘 눈으로 볼 땐 너랑 나랑 이미 혼례 올렸을 것으로 비쳤다는 뜻이니까, 그냥 좋게 받아들여."

그제야 활활 타오르던 기운이 확 가라앉았다. 눈에서 형형히 쏟아져 나오던 살기 또한 마찬가지.

"……뭐야. 그런 거였어?"

"그래. 그렇다니까."

연화의 머리를 팔로 둘러 겨드랑이에 끼며 천강이 방긋 미소 지었다. 연화가 이리저리 버둥거렸다.

"읍. 으읍! 느 그른 뜨으 믈흔 으닌드! (나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닌데!)"

- 쉿. 넌 조용히 있어. 야, 초아 뭐해!

천강의 전음을 받은 초아가 눈치 빠르게 튀어와 연화의 입을 틀어막고는 질질 끌고 갔다.

주태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상당수 엿본 그녀는 눈앞의 색목인이 누구인지 진즉에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어휴. 정말이지 초아만이라도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지.'

훅 튀어나온 단어 한마디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네.

그렇게 천수향과 두 애들의 만남은 잘 해결될 수 있었다.

 

***

 

사천성에 도착한 지 한 시진(時辰)이 지났다. 아직 시간은 한 시진이나 더 남았건만, 무림맹 사람들은 벌써 복귀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복귀에 의아함도 잠시, 그들이 사 온 전쟁 물자를 본 천강이 문제점을 인지했다.

'뭐야. 저게 다라고?'

저건 거의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이 아닌가.

묵현이 후다닥 뛰어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확인차 물어보고 다닌 그가 이내 돌아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왜 그렇게들 조금씩 사온 거래?"

"다들 재물이 본가에 있다 보니 많이 못 샀다는군."

"무림맹에 돈 없었대?"

"그동안 무림맹에 다 모여 있었잖냐. 그 돈으로 그동안 먹을 걸 사고 다녔다더군."

그것참 골치 아프네.

다시 봐도 저건 전쟁이 아니라 뭐 어디 동굴에 틀어박혀 훈련하러 들어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화살이나 끈 등의 장비는커녕, 겨우내 먹을 거나 좀 사들은 행색이 절대 전쟁을 치르러 가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았다.

그걸 그들 자신도 느낀 걸까? 장문인들이 천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자신들이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한 것이겠지.

"빚을 져서 사면 되는 거 아냐?"

"그것에도 한도가 있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정파인들이잖냐."

협을 중시하는 그들에게 강탈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빚을 지기엔 무림인에게 그건 목숨만큼이나 중한 것.

천강이 골머리를 싸매는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천강이 묵현을 돌아봤다.

"내게 방법이 있는데."

"뭐지?"

"근데 묵현 네 동의가 필요해."

"음?"

 

***

 

"후우.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돈에 발목이 잡히는 날이 올 줄이야."

화산파나 무당파 뭐 이런 데는 이해한다. 이쪽은 재물 관련하여 딱히 큰 수입이 없으니까.

그러나 소림을 포함해 세가 등의 명문 정파들은 때아닌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겼던 적이 역사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던 그들에겐 이건 매우 쪽팔린 일이었다.

돈을 구걸하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할 일.

"어떻게 다들 조금이라도 빚을 져 전쟁하는 구색이라도 맞춰보도록 합시다."

하북팽가 가주의 제안에 다른 장문인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쪽팔린 게 문제랴. 이건 무림의 존망이 걸린 일.

그러나 마음과 행동은 괴리가 있는 법. 그걸 잘 아는 당묘오가 보기 드물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사천은 제 영역. 제가 힘을 써볼 터이니, 다른 분들께서 조금씩만 부담을 나눠주세요."

그제야 얼굴들이 좀 펴지고. 그렇게 어두운 낯빛으로 사천성으로 되돌아가려는 그때였다.

"저기 보십시오! 맹주께서 수레를 끌고 오십니다!"

모든 무림맹 사람들의 시선이 사천성 성문 앞으로 모인다. 그곳에서는 소 두 마리가 각각 수레를 끌고 그들에게로 나아오고 있었다.

두 수레 위에는 상자가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 무게가 상당한지 소가 힘을 쓰고 있음에도 쉽사리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무림맹 사람들이 좌우로 쫙 갈라섰다가 이내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천강과 묵현이 각각 수레에서 내려섰다.

"이게 다 무엇이오, 맹주?"

"뭐긴. 전쟁 물자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이지."

그러며 상자를 연다. 그 안에는 금원보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 이게 대체……."

"이 많은 게 다 금이란 말이오이까?!"

예전 북경에서 묵현의 남은 조력자들을 만나 실망감에 빠졌을 때, 한 사람. 그 안에 그들을 돕는 충신이 한 명 있었다.

서신으로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준 노인.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 찾아온 천강에게 역으로 귀한 선물을 돌려주었으니, 사천성에 자신의 재물 일부를 숨겨놓았다며 귀띔을 해주었던 것이다.

- 부족하나마 그것들이라면 폐하께서 행동하시는 데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너만 허락해 준다면 그걸 좀 쓰고 싶은데.'

천강의 설명을 들은 묵현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찾은 노인의 재물.

그것은 금원보 500개가 들어있는 상자들이었다.

하……. 장난 아니네.

황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금원보들을 보며 천강이 묵현에게 물었다.

'아니, 보통 반역자로 처형당하면 재산 몰수 아냐?'

'그렇다. 근데 들은 적이 있다. 나를 돕는 이들 중에, 이곳 중원을 휘어잡는 대상(大商)이 있다는 걸.'

천강과 묵현을 도왔던 그가 바로 그 대상(大商)이었던 모양.

천강이 주위에 모인 무림맹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자금은 여기 청해에서 온 묵현이 댄 것이다. 그는 우리의 무고함을 알고,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기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 그를 기억하고 감사들 하라고."

무림맹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붉게 물들었다. 백 마디 말보다도 표정과 행동으로 진심을 보이는 게 참으로 그들다운 모습이었다.

하북팽가 가주가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았다.

"청해에서 온 묵현이라 하였소? 이 은혜 꼭 갚겠소이다. 나 하북팽가의 가주가 약조하오!"

그러자 이어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

"우리 소림에서도 오늘 받은 이 은혜를 두고두고 갚을 것이외다. 그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오!"

"저희 사천당가도 약속하지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세요!"

수많은 무림 정파인들이 묵현 앞에 두 손을 모아 감사를 드러냈다.

몇몇의 생각 없는 욕심분자들로 인해 모든 조력자들을 잃고, 그렇게 자신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묵현은…… 반대로 한 충신과 한 결단으로 인해 새로운 조력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 일은 조금도 모르는 것이구나.'

묵현은 이날 세상의 이치를 조금 깨달았다.

 

***

 

"자네 들었나?"

"무림맹 이야기 말이지?"

"마교를 소탕하기 위해 직접 천산으로 향했다고 하더군."

"용봉지회를 열더니 예상대로 된 게지. 듣기로는 무려 2천 명이 살짝 넘는 인원이라던데."

각 마을 혹은 도시마다 무림맹의 행보가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 꽤 되었으나, 전쟁 물자를 구매한다며 사천성에서 대거 물품을 사들이자 그로 인해 물가가 치솟았고. 그 이야기는 상인들의 귀에 들어가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사천성의 기본 물자들 가격이 하나같이 폭등했다더군."

"어서 늦기 전에 우리도 가세."

사실상 이야기를 퍼 나르는 건 대부분이 행상인들이다. 수많은 상인들이 사천성으로 물건들을 사 들고 나아가자 그 소문은 힘을 받아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덩달아 그와 대비되는 소문도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황실에서 무림을 잡으려고 아주 수를 쓰더군."

"반란군이랑 무림맹을 엮었다던데. 참 내."

"탐이 나겠지. 무림맹 자리를 뺏기만 해도 그 상권을 모조리 독식할 수 있지 않나?"

"평화롭게 협상하면 되지 왜 그런 구린 방법을……. 역시 반란을 일으킨 정권이라 별수 없는 건가?"

"예끼.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언제 어디서 동창(東廠)에게 끌려가려고."

"걱정하지 말게. 요새 황실 욕하는 자들이 한둘인가? 객점에 앉은 손님의 3할 이상은 다 나라님 욕하는 중일세."

무림은 민중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다. 그들의 삶의 터전과 늘 가까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음흉한 수를 써 먹어 치우려 한 것은 어찌 보면 역린을 건드렸다고 볼 수 있는 행위.

"동창이 잡아가 사형시켜도, 밤낮으로 해도 자리가 모자랄 것이야."

그리고 실제로 동창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지?"

"통제가 안 됩니다. 대장군 쪽에서도 어서 답신과 함께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젠장. 아직 태감께서는 움직이지 못하시는데."

결국 뒤집힌 명분을 회복하지 못한 황실은 사람들의 몰매를 맞고, 10만 황군은 그 어느 도시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산서 중부 평야에 자리를 잡았다.

식량은 북경에서 직접 조달하게 되었다.

그 사이 무림맹은 사천을 떠나 천산이 보이는 둔황으로 쭉쭉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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