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5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50화
250화. 추종자들을 만들다
무림맹으로부터 수많은 인력이 줄지어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은 강을 건너 섬서를 거쳐 사천으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잡았다.
약 이천여 명에 달하는 숫자임에도 하나같이 무를 익힌 자들이라 그런지 속도는 꽤 빨랐다.
행렬의 중심부에서 천강이 사람들과 함께 발을 옮겼다. 그는 꽤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대로 된 문파도 없는 이한테 맹주의 자리라니. 참 내."
"그러게 말이야. 내 생각에는 만장일치가 나왔다고는 하는데 다들 눈치를 본 게 틀림없어."
"눈치라니?"
"음존의 이거잖아."
새끼손가락을 들고 흔드는 행태에 무리가 소리죽여 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강은 가만히 걸음을 옮기며 악기 연주에 집중했다.
그에 따라 저 하늘 위에서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내려 왔다.
보다 못한 신병이기들이 한마디씩 했다.
- 소년. 잡도리 함 해야 하지 않겠느뇨?
- 군의 기강은 엄히 다스려야 하는 법이다. 단번에 목을 치거라.
'신경 쓰지 말고 놔둬.'
- 엥?
신병이기들이 천강을 가만 바라본다. 악기 연주에 집중할 뿐,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것에 일절 신경 안 쓰는 모습을 보니 할 말이 없어진다.
- ……희한하네요. 평소와는 좀 다른데요.
- 그러게 말일세. 이전 같았으면 진즉에 벌써 목을 비틀었을 텐데 말이야.
그때 걸음을 딱 멈추는 천강.
- 옳지. 이제 잡도리를 하려나 보구나!
"정지.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는다."
"정지하십시오!"
"정지! 오늘 밤은 이 자리서 묵는다 하십니다!"
천강의 지시에 멈춰서 자리를 잡는 사람들. 천강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엥. 그게 끝?
공포가 황당하다는 듯 외친다. 그건 모든 신병이기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질문이었다.
***
뜨거운 열기가 차차 가라앉고 세상이 온통 붉다.
사람들이 노을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각자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천강 또한 자리에 앉아 질겅질겅 육포를 뜯었다.
이동할 때야 한 번에 여럿이서 대화하긴 힘드나, 둘러앉아 먹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천강을 내리까는 말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근데 진짜 걱정이네. 무림 초출에게 우리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진짜 장문인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서라. 장문인들도 음존 눈치를 보는데."
그들 대다수는 천강이 무림맹주가 되는 것에 음존의 압력이 있었을 거라 추정했다.
장문인들이 아니라 해명해도, 막 새 장문인이 된 이들의 입김이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고로 각 문파는 천강을 깎아내리는 데 정신이 없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아미파 사람 하나가 다가와 천강에게 과일을 건넨다. 천강이 양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맹주. 고생 많으십니다."
"고마워. 잘 먹도록 하지."
천강이 한 입 베어 물자, 그녀가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고는 말했다.
"저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왜 실력 발휘를 하지 않느냐고는 안 하네."
"맹주 정도의 실력자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힘을 숨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런 거 아닌데.
그냥 생사경 훈련하는 데 여념이 없어 그런 것일 뿐.
신병이기들 말마따나 언제고 기강을 잡긴 해야 했으나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태감을 다시 만날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빨리 다음 경지로 나아가야 했다.
이제 투파창귀에게서 얻어낸 악기도 두 개밖에 안 남았다. 즉, 앞으로는 다시 며칠씩 집중해야 하나의 생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인 건, 그만큼 다른 생물을 이해하는 속도도 압도적으로 빨라졌다는 점이었다.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데 눈 돌릴 새가 없었던 것.
"그럼 좋은 밤 되시길."
아미파 여인이 합장을 하고는 물러난다. 천강이 잘 가라며 손을 한 차례 흔들어주었다.
그런 그들을 주위에서 지켜보던 몇몇이 중얼거렸다.
"아. 맹주의 무능함이 드러날 만한 사건이 떡하니 일어나면 좋은데 말이야."
"그러게. 어디서 적습이라도 안 일어나나?"
그러나 그 말이 씨가 될 줄은 그들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
좌측으로는 자욱한 숲길이, 우측으로는 약간의 경사와 함께 탁 트인 평지가 자리한 산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곳곳에 피운 모닥불을 흔든다.
그 불길과 하늘 위 달빛이 닿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서는 은밀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 행렬의 제일 전방에는 음존이 있다.
- 뒤쪽에는 당묘오와 사천당가가 포진 중이다.
- 그렇다면…….
전음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 중앙을 공격한다.
사사삭-
검은 물결이 숲을 조용히 가로지른다. 그들은 고요하지만 곧 거대한 파도가 되어 무림맹의 중심부를 향해 돌진했다.
"저, 적이다!"
"기습이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무기를 들었을 땐, 이미 적들은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 자세를 취하는 사이 이미 적의 검 끝은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주,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쿠구구구구.
거대한 지진이 일었다.
기습을 하던 모든 사신들과 그들에게 맞서 대응하려던 모든 무림맹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엔 복면인 하나가 바닥에 찌그러져 파들파들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무, 무슨……."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 천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 복면인들이 땅을 끌어안거나 밤하늘 위를 날아오르거나 하기 시작했다.
"도망쳐라!"
"작전은 실패다."
"도주하라."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끼고는 빠르게 내빼는 적들.
천강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오호. 그래도 이번 사신들을 지휘하는 놈은 제법 결단력이 있는 모양이네?'
뭐 그런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검은 안개에서 사사삿- 신병이기들이 쏘아져 나갔다. 그것들은 도주하는 사신들을 하나씩 맡아 뒤쫓았다.
숲 안으로 사라지는 천강.
이내 산 곳곳에서 큰 소음이 일고 채 일각(一刻)이 지나기 전, 천강은 자신이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모든 무림맹의 시선이 천강에게로 모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강은 자리에 털썩 드러누워 양팔을 머리맡에 끼웠다.
두 눈을 감자, 이내 적적해진 밤하늘 사이로 악기 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천강의 눈치를 보며 사신들의 시체를 치우지도 않은 채 각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다음날.
다시 행군을 시작하는데 신병이기들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 내가 노망이 들었나? 어제랑 많이 다른 모습인데?
- 인간이란 생각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더니, 그런가 보오.
그도 그럴 게, 갑자기 주변 무림맹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던 것. 심지어 대화도 그러했다.
"이번 용봉지회 준결승 때 기억나나? 가볍게 발로 상대를 제압하는 거?"
"아아. 난 결승 때가 더 인상 깊더군. 화산의 쾌검을 바위로 찍어 누를지 그 누가 생각했겠느냔 말이야."
천강의 앞뒤로 칭찬 일색이 이어진다.
신병이기들의 황당함이 극에 다다를 때쯤 천강이 외쳤다.
"정지. 여기서 점심을 먹고 이동한다."
행렬이 멈추어 서고, 끼리끼리 모여 식사를 하는 사람들. 그때 몇 사람이 천강에게 이것저것을 들고 다가왔다.
"맹주님. 이것 좀 드셔 보시지요."
"이거도 잡숴보십시오."
- …….
- 허허.
하루아침에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에 신병이기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저러나 여전히 천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여어. 고마워. 잘 먹을게."
- 혹시 소년. 이렇게 될 걸 알고 그랬나요?
'응? 뭔 소리야?'
그저 훈련에 방해가 돼 사신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했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천강의 빠른 움직임으로 인해 간밤에 목숨 줄을 구원받은 사람들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뒤에서 욕을 하던 우리를 지켜주시다니……!'
'이분이야말로 대협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분 아닌가!'
그뿐이랴.
전대 장문인들조차 고전해 명을 달리했던 복면인들을 혼자서 다 쓸어버리는 무위. 그걸 코앞에서 목도한 그들은 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분은 진짜다. 음존의 뒷배가 아닌 순수하게 본인 실력으로 오른 진짜배기!'
그렇게 천강을 욕하던 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천강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 대부분이 남자인바, 여심뿐만 아니라 한순간에 남심까지 휘어잡게 된 천강이었다.
***
"워워. 다들 정지!"
정지 명령에 수많은 병사들이 순차적으로 걸음을 멈추어 서고, 수신호에 착착착 일직선으로 도열을 한다.
한 차례 인 흙먼지가 싹 가라앉고, 산서 밑자락 도시 앞으로는 10만 대군이 오와 열을 갖춰 선 장관을 연출했다.
대장군 도첨이 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당장 사람을 보내 항복을 받아오거라!"
"예에!"
후다닥 대장군의 명을 들고는 나아가는 병사.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도시로 들어간 병사가 돌아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늦는 것이냐."
"혹 저희 쪽 사람을 이미 죽인 것 아닙니까? 그러고 시간을 벌어볼 요량일지도 모르지요."
"아서라. 시간을 벌려 했다면 협상을 핑계 삼아 몇 차례 오고 가게 했을 터."
그런데 깜깜무소식이었다.
항복을 받으러 간 병사가 돌아오지 않고. 그렇게 약 한 시진이 지나자 대장군이 소리쳤다.
"다시 사람을 보내보거라!"
"예에!"
그러나 막 출발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떠났던 병사가 말을 타고는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놈! 왜 이리 늦게 오느냐!"
"그, 그것이…… 도시에 아니, 무림맹에 아무도 없사옵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더란 말이냐."
"정말입니다. 무림맹 건물 내로 사람 하나 개미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뭐라? 그럼 그놈들이 다 어디 갔더란 말이냐!"
대장군의 벼락같은 호통에 병사가 쩔쩔매며 대답했다.
"그, 그게…… 사천성에 가 있답니다."
"잉? 사천성?"
***
"자자. 다들 전쟁 물자 사 가지고 모이는 거야. 정확히 두 시진 후다."
"예!"
천강의 명령에 무림맹 사람들이 우르르 흩어진다. 천강 또한 찬찬히 발을 옮겨 사천성의 거리로 발을 들였다.
떠나기 전 홍루에 들러 암룡을 데려갈까 해서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황군 녀석들 당황해서 멍하고 있겠지.'
설마하니 도망갔을 거라고는 생각 못할 테니, 북경으로 소식을 보낼 것이고. 무림맹은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그럼 이따 봐, 천강!"
"어. 잘 갔다 오라고."
당가 쪽으로 가는 천수향과 헤어져 홀로 유곽으로 향한다. 그런데 홍루의 누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천강은 잊고 있던 사실이 번쩍 떠올랐다.
'맞다. 그 꼬맹이들 여기에 있었지?!'
그 꼬맹이들이란 초아와 연화다.
천강이 마교를 떠났단 소식을 듣자마자 따라 나온 무서운 녀석들.
애들이 크면 조금은 그 집착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건만, 연화의 식탐이 근본적으로 변하질 않듯 집착 또한 그러했다.
'나중에 다시 오자.'
그런 생각을 하며 천강이 몸을 싹 돌리는 그때였다.
"어멋. 천 대협!"
천강을 보고는 손을 흔드는 홍연. 그녀와 함께 있는 암룡과 묵현, 청청, 그리고 예의 그 꼬맹이 둘.
"천강!"
"츤그으응! (천강!)"
막 밖에 저잣거리에서 군것질이라도 하고 오는 모양인지 양손에 꼬치를 들고 우르르 뛰어온다.
특히 연화 같은 경우엔 입안이 이미 먹을 것으로 그득해, 얘가 사람인지 다람쥐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천강에게 매달리는 두 아이.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는 두 남녀.
묵현 일행과 재회한 천강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이내 미소 지었다. 그래도 몇 년 함께한 정이 있다고,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천강이었다.
"천강! 나갈 거면 같이 나가야지. 너 혼자 이 맛난 걸 먹고 다니다니……!"
"연화야. 내가 먹을 걸 먹으러 여기 나왔겠냐. 일하러 나왔지."
"정말로? 진짜 다른데 돌아다니면서 맛난 거 먹고 다닌 거 아냐?"
……솔직히 맛난 거 먹고 다니긴 했다. 너무 음식들이 맛있어서 순간순간 중원에 나온 목적을 까먹을 정도로.
천강은 애꿎은 연화의 볼을 잡아당기며 시선을 초아에게 돌렸다. 의외로 떼를 쓰는 연화와는 다르게 초아는 잠잠했다.
"초아?"
"으응?"
"너 왜 그래?"
초아를 가만 바라보던 천강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연화랑 매일같이 티격태격 다투던 애가 양손을 모으고는 다소곳이 서 있으니 어찌 아니 그럴까.
얜 또 왜 그래.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아……니거든?"
오. 순간 이마에 힘줄이 올라왔었는데.
반응을 보니 멀쩡한 것 같고. 그럼 대체 뭐지?
천강이 기웃기웃 초아를 살피자 그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말했다.
"그냥…… 오늘부터 여인다운 여인이 되어볼까 해서."
"그건 무슨 개소리야?"
"천강 너 중원 여자들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나도 좀 변해보려고."
그러고는 수줍게 웃는 모습에, 천강의 눈이 반으로 접혔다.
"……평소 하던 대로 해. 갑자기 이러니 무섭다."
"후훗. 뭐라고 하셨나요, 천 대협?"
"우에에에엑. 야. 너랑 진짜 안 어울리거든? 그냥 원래대로 돌아와!"
그러나 끝끝내 중원 여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홍루의 여자들을 흉내를 내고. 천강은 한참을 그에 시달려야 했다.
'어휴.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마인의 본성이 어딜 가는 건 아니니.'
그건 그렇고, 문제다. 이 두 꼬맹이를 천수향과 대면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대체 어떤 변명을 대야 하지.
아니, 애초에 그 앞으로 데려가는 게 맞긴 한가?
천강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이, 묵현과 청청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너도 청청이랑 잘 지내고 있지?"
"혀, 형님!"
이런. 너무 속 보이게 물어봤나.
그래도 천강으로서는 한마디 해줄 수밖에 없었다.
"넌 꼭 청청하고 빠른 시일 내에 결혼해서 살아라. 다른 여자 거들떠보지도 말고."
"고맙습니다, 아주버님."
청청이 넙죽 인사를 받는다.
이후 홍루의 여인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눈 천강은 아이들을 이끌고 무림맹이 모이기로 한 장소로 돌아갔다.
무얼 느낀 것인지는 몰라도, 사천당가로 갔었던 천수향이 홀로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강이 쭈뼛거리며 그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