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48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48화
248화. 무림맹주가 되다
산서의 밑자락.
하남과 섬서 맞닿아 있는 경계선엔 거대한 강, 정확히 표현하면 큰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산서의 하단을 빙 둘러싸 천혜의 요새이면서도 각 지역으로 언제든 통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
그곳에는 무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곳엔 때아닌 바쁜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 마교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은 각 문파들이 모두 모인 탓이다.
"어서 오시오. 사천의 무인들이여."
"맹주를 뵙습니다."
용봉지회 기간 동안 각 문파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마교가 그들이 행사를 치르는 사이 본가를 공격한 것이다.
그나마 그 공격이 사천을 빗나간 건 천만다행이었다. 사천의 문파들은 당묘오의 서신을 받자마자 곧바로 짐을 싸 이곳으로 이동해 왔다.
하지만 무림맹에 도착한 그들의 상태는 꽤 좋지 못했다.
"오다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무서운 놈들이더군요."
"어떤 자들이오?"
"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죽은 자와 같이 말입니다."
습격 도중 주위를 순찰하던 소림의 병력이 도우러 와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화를 입을 뻔하였다.
그 순간 함께 했던 소림의 장로가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더 무서운 건 몸이 매우 단단하다는 것이외다. 도망가는 놈들 중 하나를 우리가 나한진을 펼쳐 막았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었소이다."
나한진의 일격을 막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소림은 처음으로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소림 역사상 나한진을 뚫고 나간 이들의 수는 끽해야 다섯으로 손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모두 한 세기에 이름을 날린 이들.
소림사 측의 이야기를 들은 무림맹주가 회의를 소집했다. 무림맹의 모든 장문인들이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소식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적들이 생각보다 매우 강하오."
맹주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인다.
"모두 화경의 실력자들이라 했지요?"
"문제는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더군. 어디서 기습해 올지 예측이 안 되고."
"검강으로 급소를 찔러도 잔 상처에 불과했다고도 들었어요."
"그런 놈들이 스물 이상……."
"이제는 다짜고짜 오고 가는 상인들까지 공격한답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그저 무림인들만 공격하면 모르겠으나 상인을 건들면서 무림맹으로서는 상인들의 호위를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식량이 바닥이 나, 지금 이곳에 모인 수천의 사람이 굶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들의 목적이 무림맹의 고립인지, 그게 아니면 상인들을 호위하고 나서는 무림인들을 급습해 그 수를 줄일 생각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오늘 안에는 그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현재 무림맹이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는 고작 십 일 버티는 양에 불과했다.
"그래도 일단 최소 한 번은 호위를 갔다 와야겠구려. 나 하북팽가의 가주가 참여하겠소."
"그럼 저희 사천당가 또한 참여하지요."
각 문파가 적극적으로 응하고 나섰다. 평소에는 서로 신경전을 치르느라 바쁜 이들이었으나, 외부의 적이 출현함으로써 똘똘 뭉치게 된 그들이었다.
"그럼 우리 소림이 부족한 숫자를 지원하고 나서겠소이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오늘의 회의를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적습이다!"
별안간 적의 습격이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쿠콰광. 회의실이 자리한 건물 내로 복면인들이 밀고 들어왔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두 적에게 장법을 먹이는 소림 방장. 그 일격엔 제아무리 화경이라도 단숨에 저승의 문턱을 보고 오게끔 할 정도의 위력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쓰러진 사신들이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양측이 서로를 도와 살격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빨리. 더 빨리.'
물 위를 빠르게 달리는 한 인영. 머리 위로 검은 안개를 달고 다니는 그는 천강이었다.
태감과 한판 붙은 뒤로 뭔가를 느낀 천강은 빠르게 무림맹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신들이 여럿 있다고 해도 무림맹이 알아서 잘 막을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어제 태감과 붙어본즉 그저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나야 토끼 녀석의 절굿공이와 흡공, 탐(貪)이 있어서 망정이지, 다른 이들 입장에선 사신을 제압할 방도가 없다.'
당장 천강이라도, 일전에 놈들 두 놈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데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번엔 당시와 달리 화경급 사신들이다.
천강이 고개를 들자, 저 멀리 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팡. 천강이 단숨에 물을 박차 하늘 위로 솟구쳤다. 곧 거대한 도시와 그곳 중심에 자리한 무림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느껴지는 무거운 적막.
'벌써 뭔 일이 터진 건가?'
천강이 주위를 둘러보다 한 여인에게 다가갔다. 왠지 남자들은 하나같이 패잔병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천강이 다가서자 여인이 어멋 입을 가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음? 혹시 저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일합무신님 맞으시죠!"
아아. 그래서 알아본 거였나.
흥미롭게도 이번 용봉지회에서 여인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았던 건 천강이었다. 말없이 건들건들한 자세로 상대를 단 일격에 쓰러뜨리는 그 모습이 여심을 크게 자극한 것이다.
천강이 이곳 분위기가 왜 가라앉았는지 물어보자, 여인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 마교가 급습했거든요."
"급습?"
"예. 갑자기 나타나더니, 장문인들이 회의 중인 곳으로 밀고 들어가…… 대다수가 명을 달리했어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으니 현경이라 한들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다행히도 사천당가의 독이 먹혀 망정이지, 그조차도 없었다면 무림맹은 오늘 지도상에서 지워졌을 거라고 했다.
천강이 고맙다며 답례로 여인의 손을 한 번 잡아주고는 바삐 보냈다. 조금 있자 담을 호다닥 넘어 달려오는 천수향이 눈에 들어왔다.
"천강!"
"어. 나 온 거 어떻게 알았어?"
"마을에 있다가 하늘에서 뭐가 똑 떨어지는 걸 보고 너인 줄 알았지."
참 눈도 좋아.
아니, 촉이 좋은 건가. 그 시점에 하늘을 올려다보다니.
"대충 이곳 이야기는 들었어. 살아남은 장문인은?"
"아주 엉망이야."
이야기를 들어본즉 엉망 정도가 아니었다.
하북팽가, 아미파, 화산파, 사천당가를 제외한 모든 수뇌가 다 명을 달리한 것.
무림맹주인 남궁태우조차도 죽었다는 사실은 천강에겐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기껏 마교의 누명을 풀어줄 열쇠가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좀 쉽게 가나 했는데, 이러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 꼴이로군.
"그래도 듣기로는 독이 좀 효과가 있었다면서?"
천강도 처음 사신을 잡을 적엔 독으로 제압했었다. 그나마 독이 효과가 있다는 건 꽤 희소식.
하지만 천수향의 표정이 좋질 못하다.
"독 저항도 만만치 않아. 그나마 내 동생이랑 조카, 1장로가 만든 독 정도가 약간의 효과가 있지, 나머지는 통하지도 않았어."
"네 독은?"
"내 거 맞은 놈이 살았을 거 같아?"
그럴 리가 없지. 듣기로 무려 천강 자신을 죽이기 위해 50년간 갈고 닦은 독이라고 했다.
그걸 맞는 순간 현장에서 즉사했고, 그걸 본 사신들이 부리나케 도주해 피해가 이 정도라 했다.
"문제는 몇 방울 안 남았어. 끽해야 대여섯 잡을 정도밖에 안 돼."
"여러모로 난관이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
"그건 뭔 소리야?"
"설명할게. 애들 좀 모아 봐."
천강은 천수향을 통해 모든 장문인들을 불러들였다.
***
천수향은 중원에서 꽤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광존이 자신의 악명을 줄이고자 의도적으로 천수향의 치부를 왜곡하고 크게 조장한 탓이다.
심지어 무력만으로도 이미 각 장문인들과 동등한데, 당가의 실질적인 힘은 독이니…… 정파의 장문인들은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크게 반발하지 않고 따르곤 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죽은 지금 상황에, 천수향은 암암리에 무림맹에서 맹주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름에 모든 문파의 장문인들이 회의실 안으로 모여들었다.
'직접 보니 상황이 더 안 좋군.'
장문인 전체 수준이 확 떨어졌다. 명문 정파가 모였음에도, 천강과 천수향을 제외하면 현경에 오른 자가 고작 하북팽가 한 곳이었다.
당묘오의 경우엔 현경에 막 입문한 정도인 상태.
그런 그녀 혼자서도 다른 장문인들을 모두 압살할 만큼 전체적으로 장문인들 수준이 좋지 않았다.
근데 진짜 문제는 얼굴 전체에 드러날 정도의 짙은 패색이었다.
'이거 이야기했다가 사기만 더 떨어뜨리는 꼴이 아닐까 걱정이 되는군.'
천강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꺼냈다.
"현재 북경에서 황군이 출발했다."
"황군?"
"오오. 드디어 마교를 토벌하기 위해 직접 움직인 것인가!"
사람들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그런 그들의 상상을 부숴야 한다는 사실에 순간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았으나, 천강이 사실을 토로했다.
"그들은 무림맹을 토벌하기 위해 오고 있는 중이다."
"예에?"
"아니, 그 무슨……."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천강을 쳐다보나, 천강은 할 말을 할 뿐이다.
"북경의 저잣거리에서 출병하는 병사에게 직접 들은 말이니, 서로 간에 입씨름하지는 말자고. 힘만 빠지니까."
"언제 도착하는데?"
천수향의 질문에 천강이 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이쯤 도착해 있을 거야. 아마 빠르면 칠 일, 늦어도 십 일 안에는 이곳에 당도하겠지."
"병사 숫자는?"
"십만."
시, 십만?! 자지러지는 목소리와 행태가 사방에서 일어난다.
몇몇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기도 했다.
천강은 지도의 한 지점, 즉 무림맹이 자리한 곳을 톡톡 두드리며 그들에게 다시금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십만의 병사가 십 일 이내에 이곳에 도착해, 모든 무림인들을 지워버릴 거다."
"대체 왜 그런다는 것이오?"
"뭐 명목상으로는 마교와 힘을 합쳐 반란을 도모했다는 죄목이지만…… 그 속내로 보건대, 그들에겐 이게 기회인 것이지."
"기회라니. 무슨 기회 말이오?"
"무슨 기회겠어."
천강이 고개를 들고는 작게 웃었다.
"무림을 정복할 기회지."
그 한마디에 좌중엔 침묵이 내려앉았다. 추가로 이런저런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황제들이 무림을 호시탐탐 탐낸 저력이 있어왔기에.
"우리를 모두 제거한다면, 무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거지."
암담한 현실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늘 생글생글 웃던 당묘오조차도 지금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충분히 현실을 일깨워준 것 같으니…….'
이제 희망을 줄 차례.
탁. 천강이 손가락을 튕겨 이목을 집중시켰다. 건들건들 걸음을 옮겨, 상석에 자리한 천수향의 옆으로 간 천강이 입을 열었다.
"내게 계획이 있다."
"선인께선 무슨 계획이 있으시오?"
하북팽가의 진중한 물음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무림맹주의 지휘를 얻기를 바란다는 것이오?"
"한시적으로 말이지."
그러자 반발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오!"
"어찌 문파조차도 없는 이가 무림 전체를 이끄는 수장이 되려고 하는가!"
"절대 용납할 수 없소이다!"
하지만 천강으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어차피 이번 용봉지회 우승자에겐 마교를 토벌할 지휘권을 주기로 했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새 장문인들의 물음에 기존의 장문인이었던 팽가와 당가의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은 간판과 같은 명예직이었으나 그 사실을 조용히 넘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수 가까운 인원들이 불만을 토해낸다. 특히 가장 많은 병력을 보유한 소림에서 극구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요, 소년?
'뭐 이미 예상했잖아? 계획대로 가야지.'
쾅. 천강이 상을 강하게 내려친다. 그리고는 투기 가득한 눈으로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쓸어보았다.
"아니면 쌈박하게 제일 강한 자를 뽑는 건 어때? 난 여기 있는 모두를 이길 자신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