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4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47화
247화. 죽진 않겠지만 꽤 아플 거다
까악까악-
문득 들려오는 새소리에 천강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해는 진즉에 자취를 감추었고, 어느덧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이동하자.'
천강이 발을 옮기자 금의위들이 목청을 높였다.
"네 이놈!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멈춰라!"
"여어. 해가 졌으니 잠은 각자 집에 돌아가서 자야지. 그럼 다들 다음에 보자고. 싸움은 그때 다시 제대로 붙는 걸로 하고."
천강이 바닥에 쓰러져 빌빌대는 자들을 지나 발을 옮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 소년?
가던 길을 멈추고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천강. 그 시선이 이내 한 남자, 항학에게 멈추었다.
"어? 어어?"
천강이 항학에게 찬찬히 다가간다. 그리고는 덥석 그를 들어 올렸다.
물고기마냥 천강의 손에 잡혀 버둥거리는 남자.
"자, 잠깐. 네놈 뭐 하려고! 어어어? 으아아아악!"
천강이 항학을 붙잡아 저 멀리 강가로 힘껏 내던졌다. 그는 포물선을 그리더니, 이내 강가 반대편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항학!"
"네 이놈! 이런 천인공노할!"
오. 잘 날아가네. 다치진 않았겠지?
- 예. 그래도 명색이 현경이잖아요.
무사히 반대편에 안착한 걸 본 천강이 다시 발을 놀렸다. 막야가 궁금증이 도지는지 슬쩍 물었다.
- 근데 방금 뭘 한 건가요?
'어. 혹시 모를 안배.'
- 저들이 내기를 회복한 뒤에도 바로 쫓아오지 못하도록 한 건가요? 동료를 데리러 가게?
'그렇지? 전쟁터에서 전우만큼 소중한 건 없다고 하니.'
뭐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긴 하지만.
천강이 발을 놀려 강가를 따라 하류로 이동했다.
강을 건널까 했으나, 혹시나 태감을 만나 도주하다가 묵현과 동선이 겹칠까 하여 그런 것이었다.
그 밖에도 자신이 본 미래가 반드시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
'솔직히 아까 내가 그 자리서 계속 기다렸다면,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
다만 그걸 확인하겠다고 시간을 죽이고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이동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쭉 하류로 이동하던 천강의 보폭이 점차 줄어들었다.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구간에 접어들면서 더 내려가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 너머에 한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미래는 바꾸지 못한다는 건가.'
천강을 보고 미소 짓는 남자.
천강의 신형이 밤하늘을 갈랐다. 바닥에 내려서자, 태감이 양팔을 벌리며 환영의 뜻을 비쳤다.
"간만이군.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만."
"거짓말하지 마. 내가 봤다면 네놈은 진즉에 봤겠지."
소리 내어 웃을 뿐, 부정하지 않는다.
"후후후. 미래를 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그 하나만으로도 매일이 즐겁다니까."
"근데 용케도 여까지 왔네. 북경에서 여기까지 거리는 꽤 될 텐데."
"아, 흑살마신 자네에게 배우지 않았나."
태감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천강이 양팔을 들어 올려 위에서 힘껏 내려찍는 태감의 발차기를 받아냈다.
그의 발바닥에는 나선의 기운이 어려 있었다. 암운행보였다.
"정말 멋진 기술이다. 이거라면 능히 풍월대주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좋아해 주니 주태 녀석이 기쁘겠는걸?"
"주태?"
"그래. 그걸 만든 놈이다."
북명신공.
팔에 붙어 있는 태감의 다리를 통해 내기를 빨아들인다. 그러나 눈치 빠르게 태감이 핑그르르 몸을 돌려 재빨리 벗어났다.
천강이 자신의 양팔과 태감을 번갈아 보았다.
'……강하다. 운철엔 단순히 적의 내력을 차단하는 능력만 있는 게 아냐. 천령초처럼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도 있어.'
조금 전 일격은 그저 단순한 내려찍기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천강은 선계 토끼의 첫 몽둥이질을 받아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면 무림의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해.'
흘리기조차 쉽지 않아 보이는 위력.
"왜? 당황스럽나?"
"……."
"사실 나도 지금 꽤 놀랍네. 그 운석 덩어리가 이리 대단할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게 마음만 먹으면 산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천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심검의 문제를 해결하니, 정작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구나.
"자, 이제 우리의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자."
"아니."
"음?"
"솔직히 여기가 끝을 보기엔 좋은 무대는 아니지."
천강의 몸이 흑색 도포로 뒤덮이고, 이내 그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감의 안광이 번뜩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단숨에 뛰어 물가 한가운데로 날아드는 태감.
천강의 신형이 매우 빠르고 느껴지는 기척이 없긴 해도, 동체시력으로 그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그는 단숨에 천강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는 금나수를 펼쳤으나…….
"어?"
촤라락 펼쳐져 태감의 몸을 꽉 옭아매는 천잠보의. 그리고 그 직후, 훅 겨드랑이 사이로 튀어나오는 흑색 절굿공이.
그것은 정확히 태감의 명치를 가격했고 이내 어마어마한 내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미안. 함정이다."
온몸의 혈도를 개방해 발산한 내력이 흑색 절굿공이로 모인다. 탐(貪)이 태감을 단단히 붙든 걸 확인한 천강은 자신이 가진 내기의 반을 절굿공이에 쏟아 부었다.
그 양이 만만치가 않은지 절굿공이가 미친 듯이 흔들거렸고 뜨거워졌다. 태감의 눈이 빠질 만치 크게 뜨였다.
"네, 네놈 어찌 인간이 내기가 그리 많이……."
"대답은 나중에 다시 만나면, 뭐 그때 생각해보고 해줄게."
"으아아. 놔라! 놔아아아!"
태감이 몸을 흔들며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탐의 욕망은 이미 그의 내기를 빨아먹다 못해 피부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럼 잘 가라고."
죽진 않겠지만 아마 꽤나 아플 거다. 아주 많이.
지천뇌공.
천강이 방출한 모든 내기가 절굿공이에 스며든다. 그것은 그 모든 걸 끝자락에 응집해 태감의 몸 위에 폭발시켰다.
쿠콰콰콰콰콰-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강의 바닥이 훤히 드러나고 그 파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태감은 빛의 속도로 사라졌으며, 천강조차도 그 반발력으로 그 반대로 쏘아져 나갔다.
- 아아. 아쉽다. 문어마냥 질겨서 결국 팔 하나도 뜯어내지 못했잖아.
귓가로 탐의 투덜거림이 들려오고. 그렇게 천강은 산서의 중부지방까지 단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쿨럭. 쿨럭.
속에서부터 뜨거운 액체가 한 움큼 올라온다. 자꾸만 흐려지는 의식으로 인해 태감이 고개를 흔들며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젠장. 이 내가 이런 수모를…….'
지금껏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내상이란 걸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부의 무술을 훔쳐보며 무(武)를 터득한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 건 무려 현경 때.
애초에 그의 상대가 될 만한 자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내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온몸이 넝마가 돼, 곳곳의 뼈가 금이 가고 근육이 찢어져 고통을 호소하는 중이었다.
이미 피부는 갈가리 찢겨 간간이 물길이 그의 몸을 씻어주지 않았다면, 그는 피를 뒤집어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단전을 필사적으로 보호한 보람이 있군…….'
태감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자 하나 자연스레 감겼다.
그렇게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한 시진? 아니면 두 시진? 새벽닭이 우는 소리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명색이 생사경이라고 빼앗겼던 내기는 거의 다 회복이 되었고, 그저 온몸의 상처가 욱신거릴 뿐이지 몸도 상당히 치유될 수 있었다.
태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옮겼다. 어젯밤 흑살마신에게 일격을 맞고 날아가는 와중에 본 게 있었던 것이다.
조금 발을 옮기자 이내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천강에게 당해 내기를 회복 중인 금의위였다.
현경과 화경답게 그들은 자신들의 내기를 상당수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그들에게 내린 천수는 딱 오늘이 끝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폐하의 충직한 개들인 금의위 아니신가?"
"음? 너는?"
"누구냐!"
"웬 놈이냐!"
태감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 그도 그럴 게,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인 인간이 나체로 아는 체를 해 오니 어찌 아니 그럴까.
그러나 무를 익힌 자들답게 곧 그 정체를 간파해냈다.
"네놈은 설마……."
"태감?!"
금의위가 서로를 쳐다본다. 설마하니 여기서 태감을 조우하리라고는 생각 못한 것이다.
태감은 늘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해왔고. 그에 무림에서 그는 현경인 지존으로, 황실에선 그저 무(武)를 좀 익힌 화경으로 보여 왔다.
그래서일까. 금의위 중 그를 마주하고도 긴장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 옷을 건네는 이조차 있었다.
"이것을 입으시오."
"……."
금의위와 동창은 서로 견원지간이지만, 금의위 대부분은 군인 출신들. 황제와 함께 전장을 돌아다닌 자들이다.
그들은 황제가 아끼는 이에게 손을 대는 건 아니라 판단해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태감의 마음은 그들의 호의를 받을 만큼 따뜻하지 못했다.
촤아악-
"어?"
태감에게 옷을 건네던 금의위 하나가 자신의 몸을 손으로 매만지다 쓰러진다. 태감은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나, 그의 몸은 정확히 양분돼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강가 위로 일순 적막이 내려앉았다.
금의위들의 볼과 입 근육이 씰룩이고, 이내 그들이 각자 무기를 움켜쥐고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네 이노오오옴!"
"태가아아암!"
고함을 치며 달려드는 무리. 그러나 그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무려 명(明)의 군대를 이끄는 수뇌들로, 몽골에 수많은 공포를 심어준 자들의 말로치고는 지나치게 허무한 결과였다.
마을에 먹을 걸 가지러 갔다가 화를 잠시 면한 금의위의 막내가 현장을 보고는 툭 음식들을 떨어뜨렸다.
순식간의 그의 앞에 다다른 태감이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쥐어 입속에 넣기 시작했다.
그 앞에 서 있던 금의위가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고, 태감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음식 먹는 걸 멈추고는 그에게 다가가는 태감.
"사, 살려주십시오, 태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예?"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 태감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 눈엔 공허하리만치 짙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자들이 누군 줄 아나?"
"그, 그걸 제가 어찌……."
"바로 무림인이야. 그들이 내 가족을 죽였거든. 그것도 심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근데 그 현장에는 사실 우리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 군인들도 있었지."
금의위가 몸을 움직여 살살 뒤로 내뺀다. 그러나 덥석 태감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우리 가족을 구해 달라 했어. 근데 너희는 들은 척도 안 했지."
"제, 제발……."
"대체 너흰 그때 뭘 했지? 우리를 지키겠다며 온갖 먹을 것과 세금을 다 가져가면서, 정작 내가 살려 달라 외칠 땐 뭘 했느냔 말이다."
태감이 자리에서 일어나 멀어진다. 금의위는 떨리는 두 다리를 움켜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 방향으로 이동했다.
혹여나 태감의 생각이 바뀌어 그를 죽이러 올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건 부질없는 행동에 불과했다.
'어……?'
무거운 아랫배. 목구멍을 가득 메우고 올라오는 뜨거운 액체.
고개를 밑으로 내린다. 맹꽁이마냥 부풀어 오른 배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 태감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그의 몸속을 난도질해놓은 결과였다. 원체 크게 겁을 먹어 당사자인 그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아, 아아……."
결국 채 10보를 이동하기 전, 그는 피를 토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태감이 비틀거리며 북동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쓰레기 같은 것들. 무인은 악이다. 다 죽여 버려야 해."
그는 잠깐 강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명의 빛이 내려앉은 강가엔 이른 아침부터 까마귀 떼가 날아들었다.
"더 강해져야겠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