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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43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43화

243화. 출병

 

 

'미친. 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지?'

일전의 천산 때와는 달리 이번에 태감은 흡공에 걸렸음에도 꽤 자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마치 그 이치를 통달이라도 한 듯.

뭐 그래도 그건 이해를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자연경 즈음 되면, 무의 극에 다다른다고 하니까.

문제는 탐(貪)의 속박을 너무 쉽게 벗어난 게 충격이었다.

탐은 상대의 기운을 먹어 치워 무력화시키기도 하지만, 워낙에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존재다 보니 힘도 만만치 않았다.

명색이 흉수. 사실상 녀석에게 사냥감으로 낙인찍히고 잡히는 순간, 그 사람은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기는 쪽 빨리고, 맞닿은 부위의 뼈와 근육은 으스러져 가루가 될 테니까.

그런 녀석을 뿌리치다니.

'상당히 튼튼했어. 사신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절굿공이로 내려친다 해도 타격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런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북명신공이 있어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승리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천강이 태감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

'……생사경에 도달해야 해.'

최대한 빨리. 녀석이 중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

 

저벅저벅. 저벅저벅.

북경의 거리거리마다, 대로건 소로건 혹은 좁은 골목이건 상관없이 수많은 관군들이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고 다녔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붙잡아 관아로 끌고 가 흑살마신을 보았는지에 대해 취조를 했다.

마교 침공의 소문은 이미 중원 곳곳에 다 퍼진바, 비록 당사자들은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었다.

"황제 폐하께서 마교를 대대적으로 문제 삼고 나선 모양이야."

"가만 놔뒀다간 우리 같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해서라고 하시더군."

"매일 신하들을 불러다 회의를 하신다지?"

"듣기로는 이번에 처형된 반란의 무리도 그 마교 쪽 신앙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빨리 흑살마신과 마교 무리가 일망타진 되었으면 좋겠구만!"

객점에서 식사를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묵현과 천강이 바깥을 내다보았다.

대로를 통해 기나긴 병사들의 행렬이 나타나더니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그 모습을 구경한다. 누군가 지나가는 병사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를 가는 겐가?"

"황제 폐하께서 마교 일당의 소탕을 명하셨소. 그걸 위해 가는 중이라오."

"대체 얼마나 많이 출병을 하였길래 이리 길게 이어지는가?"

"10만이오."

10만의 병력.

천강의 시선이 묵현을 향했다. 결국 명분이 없으니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과 달리, 황제는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 칼이 어디를 향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묵현. 병사들의 복장을 보니 중무장이다. 저건 천산으로 가고 있는 게 아냐."

"그래. 무림맹으로 향하는 거겠지."

일단 무림맹을 황군으로 토벌한 뒤, 사파와 흩어진 무림인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인 것이다.

명분은 뭐 간악한 마교와 타협했다는 걸 들고나오겠고.

"우리도 슬슬 이동하지."

"그래. 근데 그전에……."

천강은 묵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저잣거리 한복판으로 발을 옮겼다.

그곳에는 반란군 무리의 마지막 처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

 

- 소년. 여긴 왜 온 건가요?

묵현을 잠시 숨겨놓은 채 처형장에 나온 천강.

이미 처형은 한참 동안 진행이 되었던지 모래 위로 붉은 핏물이 자욱했고, 그 주위로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잠깐 볼일이 좀 있어서.'

머리에 쓰개를 눌러써 얼굴을 가린 천강이 인파 무리에 섞여 처형장 중심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낯이 익은 세 사람이 이제 막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묵현을 찾아왔던 자들로, 묵현을 팔아먹고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약속 전날 묵현과 천강은 사고를 치고, 약속 당일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몇 차례나 청루로 찾아오더니 기어이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인과응보지.'

처형을 진행하는 자들이 각 사람의 뒤에 가 섰다.

중년 사내 둘이 형을 관리‧감독하는 이에게 목청을 높였다.

"어, 억울하오! 우리는 태감의 일을 돕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소이다. 그런데 그 대가가 어찌 이렇단 말이오!"

"우린 죄가 없다. 태감을 불러주게!"

그러나 그들 앞에 선 관리의 입가엔 조소만 올라올 뿐이다.

"하. 죄가 없다?"

"그렇소!"

"들어라. 이자들은 대명의 주인이신 황제 폐하를 두고, 다른 이에게 절하며 그에게 폐하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 그건……."

"그런데 죄가 없다 하느냐? 뭐 하느냐! 반역도들의 목을 치지 않고!"

그제야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자비를 구하는 자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제발!"

쯧쯧. 토사구팽이라. 쓸모가 다 하면 버려지는 것을…….

형을 집행하는 자들이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들의 칼이 햇빛을 받아 강하게 번들거렸다.

죽음을 직감하고는 눈을 질끈 감는 사람들.

그런 그때, 그들 앞으로 나아오는 이가 한 사람 있었다.

'태감은 지금 황제와 붙어 있느라 바쁘겠지.'

인파를 뚫고 처형장 안으로 들어오는 천강의 행태에 감독관이 검지를 치켜든다. 사주를 경계하던 병사들이 천강을 향해 창을 들고 나아온다.

그러나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병사들.

"뭐 하느냐. 당장 놈을 쫓아내지 않고!"

"모, 몸이 안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들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병사들과 집행관도, 감독관들도 모두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천강을 보고는 누군지 알아본 사형수들이 화색을 띠었다.

"오오. 그분께서 우리를 구하라고 지시하셨던가?"

그러나 천강은 자신을 반기는 두 사람을 지나쳐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노인이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천강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왜 날……."

흑살마신의 철칙. 받은 건 갚아주기.

그건 비단 원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은혜를 받았으니 그걸 갚는 게 도리다.

적당히 호기심을 푸는 건 덤.

"궁금해서 말이야. 배신하면서까지 살아남았는데, 왜 묵현을 도왔는지."

그러자 노인이 작게 웃었다.

"그저 제가 모시던 주군께서 얼마나 멋지게 성장하셨는지, 죽기 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의 눈에는 진정성이 비치고 있었다. 천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북경에 온 뒤로 만난 이들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봐. 나라면 널 살려줄 수도 있는데. 같이 가자."

그러나 거절하는 노인.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너도 그 명분인지 뭔지 때문에 그러는 거냐?"

"허헛. 그럴 리가요. 다 죽어가는 마당에 어찌 명분이 중요합니까."

이 노인 갈수록 마음에 드는데.

그러나 그는 천강을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이유를 들어본즉, 충분히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제 가족은 모두 죽었습니다. 아들도 손자도…… 참척이라 하지요. 이미 이 세상에 미련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스러울 뿐."

"……수고했다."

"감사드리오. 부디 주군을 잘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며 그는 천강에게 사천성에 있는 자신의 재물들에 대해 작게 귀띔했다.

"부족하나마 그것들이라면 폐하께서 행동하는 데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에 신병이기들이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 정말 이대로 그냥 갈 건가요, 소년?

- 비록 나이가 있으나 아까운 인재니라.

'아니. 본인의 길은 본인이 정하는 거다. 남이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린애라면 모를까. 이미 세상의 순리를 체득한 나이이니.

그래도 이대로 가기엔 받은 게 컸다. 잠시 고민에 잠긴 천강이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은혜를 베풀어 주는 수밖에.'

천강을 응시하는 노인의 눈이 커진다. 천강이 그 혈도를 짚어 전신의 촉각을 다 마비시킨 탓이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일전의 서신과 사천성 재물에 대한 보답은.'

노인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천강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곧 잠시 멈추었던 형은 다시 집행되었다.

 

***

 

"우리 이만 간다."

천강과 묵현이 떠날 채비를 마쳤다. 청루의 루주, 무형천모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북경의 일은 다 마치신 건가요?"

"어. 더 이상 이곳에선 우리가 할 일이 없네. 호랑이가 아가리를 닫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지."

"그래도 조금만 더 있다 가시지요."

한쪽 팔을 잡으며 앙탈을 부리는 그녀에게 천강이 눈을 부라렸다.

"너 이거 홍랑한테 말한다?"

"어멋. 내 정신 좀 봐."

바로 톡 떨어지는 여인.

홍랑과는 무슨 관계인지 몰라도 그녀가 한 성깔 한다는 것은 제대로 인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젠 어디로 가시려는 건가요?"

묵현이 준비하는 걸 기다리며, 달빛이 비치는 바깥 전경을 가만 구경하던 천강의 시선이 루주에게 향했다.

가만 쳐다보는 천강의 행태에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호호 웃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는지."

"받아."

"예?"

다짜고짜 천강이 던지는 걸 루주가 양손으로 받는다. 그것은 특이한 필체로 미오왕이라 적혀 있는 명패였다.

"이걸 왜 저에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구워삶아지고, 나이가 들면 뒷방 늙은이로 쫓겨나는 법이다. 모든 무림인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넌 어떨 것 같나."

"……."

"오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묵현의 세 똘마니를 기억해라. 편드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뒤에서 찌르지 말고."

묵현이 준비가 끝났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천강이 찬찬히 방 밖으로 나섰다.

그들의 신형은 한 자락 검은 연기가 되어 밤하늘로 사라졌다.

 

***

 

"처형 진행 중에 난입자가 있었다고?"

"예, 태감. 그런데 그의 용모가 요 근래 북경에 수색 중인 이들 중 하나와 행색이 상당히 흡사하였습니다."

태감의 시선이 목이 날아간 한 노인에게로 향했다.

나름 필요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잘 감추는 이들로 남겨두었더니, 그런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가?

'나도 아직 멀었군.'

태감이 성큼성큼 발을 옮기고, 그 뒤를 감독관과 병력들이 뒤따른다.

그들은 청루로 들어섰다. 누각에 도달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루주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태감을 뵙습니다."

"이곳으로 흑살마신이 왔을 것이다. 어디로 갔지?"

오늘 낮. 태감은 천강이 처형장에 나타날 것과 이후 청루 루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미래를 보았다.

그러나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그는 천강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고, 아직 그가 어디에서 다시 나타날지는 모르는 상태기에 루주를 닦달하러 온 것이었다.

"글쎄요. 저 같은 한낱 기루의 여인이, 그 유명한 무림인의 소재지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자 태감이 코웃음을 친다.

"당장 사실을 분다면 그 목숨은 살려주겠다. 귀영왕."

귀영왕(鬼靈王).

무림의 다섯 왕 중 하나.

왕들 중 나이가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으며, 혹자는 그녀가 사람이 아닐 거라 말하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마다 큰 재해가 일었기 때문이다.

현 황제의 반란 또한 그러했고, 그보다 조금 더 먼 시기 원나라의 멸망 때도 그러했다.

어떤 학자는 그녀가 신선이며, 지상에 큰 화가 내리기 전 그것을 미리 경고하기 위해 그 이름을 빌린 것이라 주장할 정도로.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해석에 불과했지만, 태감 입장에서도 그녀는 재해 그 자체였다.

현 황제는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태감의 섬뜩한 살기에 무형천모가 픽 웃음을 흘렸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뭐 좋을 대로 생각하시죠."

"무슨 뜻이지?"

"실제로 저는 아는 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폐하께서 원하신 일에 대해서는 저는 시키는 대로 다 했으니 꼬투리잡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태.감."

무형천모를 가만 노려보던 태감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분 시선이 이곳에 닿는 걸 감사히 생각해라. 그러나 네년은 평생 이곳 북경을 한발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폐하께서 최대한 오래 사시길 빌어라. 그게 네년에게 주어질 천수일 테니까.

태감이 사람들과 함께 청루를 벗어났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태감의 얼굴. 그러나 순간 멈칫하더니 그가 북경의 경비대장을 불러들였다.

"지금 당장 수색을 전면 멈추고, 발 빠른 이들을 추려 추격대를 형성해라."

"어디로 말입니까?"

"산서다."

"산서면 지금 황군이 향하고 있는 곳 아닙니까? 그냥 그들에게 맡기심이……."

태감이 걸음을 멈추었다. 말은 하던 경비대장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경비대장.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루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표정이 엉망이던 태감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의 시선이 남서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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