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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살마신 240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흑살마신 240화

240화. 충신

 

 

"폐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세 사람이 묵현의 앞에 꾸벅 절을 올린다. 묵현이 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직접 용안을 뵙는 건 처음이오나, 모습이 초대 황제를 빼다 박으셨습니다!"

"그러하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천강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웃음소리를 낼 뻔했다.

대충 봐도 불혹(不惑) 즈음 되어 보이는 이가 초대 황제를 운운하니 어찌 아니 그럴까.

'쟤네 둘은 무슨 열 살에 황제 얼굴이라도 본 듯 말하네.'

- 아부이지요, 아부.

- 권력을 먹고 산다는 게 본디 그런 것이니라.

정작 고희(古稀)가 넘어 보이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히 있었다.

"어떻게 이곳 사정은 전해 들으셨습니까?"

"그래. 사정이 매우 좋지 않더군. 그래서 일단 대장군부터 만나보려 하는데, 대장군이 어디 수감되어 있는지 아나?"

묵현의 물음에 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실의 제일 안쪽에 비치된 옥에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지?"

"어전회의가 진행되는 동쪽에 위치한 작은 옥이옵니다."

"들어본 적 없는 정보네만."

"그럴 것입니다. 동창(東廠)이 공식적으로 설립이 되고 만들어진 곳으로 그들이 관리‧감독하고 있는 곳입니다."

쉽게 말해 적진 한가운데 있다는 뜻.

천강이 묵현에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천강은 묵현의 수행원 역할을 연기 중에 있었다.

"주군. 소신이 보기엔, 대장군을 만나는 일은 포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튀어나오는 반발.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그동안 세 차례 대장군을 만나러 갔다 와본 적이 있는 만큼, 안전상에는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적들도 설마 폐하께서 그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적진임에는 분명한 사실. 어찌 적진 한가운데로 폐하를 인도하려 하는가!"

"하. 한낱 호위가 말이 많구나! 아는 게 없거든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천강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두 사람을 보며 천강이 혀를 찼다.

'새끼들, 연기 되게 못 하네.'

이들을 만나기 전, 천강과 묵현은 간단히 작전을 짰다. 저들이 황실 측에 포섭된 이들인지 아닌지를 우선 확인부터 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 천강은 저들의 의견에 대해 '아니 되옵니다.'를 연신 남발하기로 했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천강이 진지한 얼굴로 묵현에게 말했다.

"주군. 그냥 몰래 잠입하는 게 어떻습니까?"

"하하핫. 아주 황실의 경비를 우습게 보는군!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 그러지?"

"폐하. 저희를 믿으시옵소서. 저희가 무사히 대장군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겠사옵니다."

나름 필사적인 얼굴이 두 사내로부터 흘러나왔다.

장고 끝에 묵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대들을 한 번 믿어보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희만 믿으십시오, 폐하!"

"……."

언제 대장군을 만나는 게 좋겠느냐는 의견에 그들은 익일 술시(戌時)를 제안했다. 그 시간이 면회를 할 수 있는 시간 중 경비가 제일 적은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내일 보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천강은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문 옆으로 가 섰다.

"쯧쯧. 건방진 녀석이……."

천강을 눈으로 한 번씩 흘기고는 지나가는 사람들.

- 요놈들 먹어 치워도 되나?

'아니. 이런 놈들 먹으면 탈 난다. 참아.'

이들이 살아남은 경위는 안 봐도 뻔했다. 아마 묵현을 데리고 오겠다는 약조를 하고 그 목숨을 보장받았겠지.

어쩌면 이들이 대장군 밑에 있다가 태감의 함정에 걸린 그 당사자들일지도 몰랐다.

정치는 색을 뒤집듯 바꾸는 자들이 잘 살아남기 때문이다.

'묵현 녀석, 힘이 많이 빠지겠구만.'

그래도 위험을 감수해서 만난 자들인데, 이런 놈들이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방문을 닫을 준비를 하는데, 마지막으로 나서던 이가 천강의 손에 무언가를 덥석 쥐여 주었다.

그것은 서신이었다.

"폐하를 잘 부탁하네."

서신을 건네준 노인이 그 동료들을 따라 사라진다. 천강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섰다.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지, 천강?"

"뻔한 것 아니겠냐."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의 묵현.

이야기를 들어본즉, 정치하는 자들이라 그런지 저들의 표정을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니, 속내를 뻔히 보여주는데 뭐가 힘들어?'

그러나 신병이기들의 대답을 들은 천강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 저 소년 말이 맞다. 보통내기들이 아니더구나.

- 심장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우리도 간파하기 힘들 뻔했어요, 소년.

심안(心眼) 때문인가? 아니면 생사경의 경지에 가까워지면서 생긴 부가적인 효과라던가?

아무튼 천강은 혼란스러워하는 묵현에게 노인의 서신을 건네주었다.

직접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왠지 그 안의 내용이 그의 혼란을 잠재워줄 것 같았던 것이다.

서신을 본 묵현이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천강에게도 보여주었다. 그것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 ……북경 내 누구의 말도 믿지 마시옵소서. 저와 함께 온 이들의 말도 믿지 마시고, 소신의 말도 의심을 하시옵소서. 이곳 루주도 믿지 마십시오. 그녀는 황제 편은 아니오나 그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

 

그 안에는 그들이 살아남은 경위가 기록되어 있었다.

묵현에게 연락이 오면 그 모든 소식을 동창에 넘기기로 약조한 것이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건넨 증표로 관군의 말을 빌린 시점에서 이미 황실에선 추격을 시작했다고 쓰여 있었다.

 

『 그래도 혹여나 쓸 만한 정보를 얻고 싶으시다면, 황궁 제일 남동쪽에 자리한 옥으로 가보시옵소서. 그곳에 장각이라고 대장군의 수족 하나가 아직 살아 있나이다. 』

 

'그래도 충신은 하나 있네.'

심지어 머리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답을 미리 써온 걸 보면 말이다.

"묵현. 어떻게 할 거냐?"

"네 생각은 어떻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힘들 땐 선진들의 지혜와 경험을 빌리라 하지 않았나."

자식. 기억력은 좋아서.

천강이 바깥으로 고갯짓했다.

"가자."

"어딜? 아니, 지금 바로?"

"어. 이런 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해."

두 사람은 오늘 북경에 도착했다. 저들과는 내일 만나기로 했고.

놈들은 설마하니 천강과 묵현이 오늘 움직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할 것이다.

묵현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자신의 짐을 챙겼다.

"단순히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

"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널 보면 늘 선선히 대답을 해주긴 하는데, 진짜 중요한 대답 한두 개는 항상 감추곤 하더군."

천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에 대해 빨리도 파악했네.

 

***

 

어둠이 나지막이 내려앉은 시간.

달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을 한 무리가 바삐 움직인다.

그들은 청루를 나선 두 사내를 빠르게 뒤쫓고 있었다.

목표물들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부리나케 도망을 가고 있었으나, 마치 늑대무리에게 쫓기는 사냥감처럼 점점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222호. 셋을 이끌고 왼편을 에워싸라. 243호는 오른편."

사신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두 사람을 에워싼다. 결국 인적이 뜸한 곳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그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일합무신."

"여어. 이렇게 또다시 만나네. 근데 이런 큰 도시에서 싸워도 괜찮겠어? 사람들이 몰려들 텐데."

"상관없다. 모이기 전 끝을 보고 발을 빼면 그만이다."

일합무신을 잡으러 온 사신들에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사신이었다. 무려 화경에 다다른 사신.

오직 무림인들을 멸하는 걸 목표로 만들어진 그들에게 무림인은 사냥감이요, 그들 자신은 사냥꾼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흑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걸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무림의 유명 문파와 세가들을 돌아다니며 시작한 사냥.

그것이 그들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상대가 명성이 자자한 구파의 장로라 한들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했으며, 이름난 도가의 장문인조차도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지 못했다.

- 어, 어떻게?

- 괴물…….

오히려 바닥에 쓰러져,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보는 게 그들이 취한 마지막 행보였다.

그런 일을 수차례 겪다 보니 그들에게 무림인이란 그저 파리와 같은 벌레에 불과했다.

앵앵거리며 덤벼드나 어울려주기조차 귀찮은 존재.

"녀석의 특성은 단단함이다."

"타격을 주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체력엔 한계를 보였다."

"지치면 그 방어에 틈이 보일 것이다."

사신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그 날붙이에 화르륵 검강이 일렁였다.

"쳐라!"

사신들은 이번 임무 또한 지금까지 한 숱한 임무들처럼 금세 끝이 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쿠구구구구.

땅을 크게 뒤흔드는 진동.

고개를 든다. 제일 먼저 달려든 동료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처럼 바닥에 납작 붙어 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들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잘됐네. 나도 이곳엔 피해야 할 녀석이 있어서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거든."

내려친 절굿공이를 회수해 어깨에 메는 사내. 천강이 진한 미소를 보이며 그들에게 손짓했다.

"빨랑빨랑 안 덤비고 뭐 해? 쌈박하게 가자."

 

***

 

덜컥 겁을 집어먹은 짐승들은 특징이 있다.

표현을 크게 한다는 것이다.

소리는 목청껏 힘을 주는가 하면, 행동은 일부러 과장되게 하고 몸집을 부풀려 자신의 조그마해진 간덩이를 철저히 숨긴다.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취하는 그 행동은 비단 짐승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도 그러하다.

"겁먹지 마라! 그래 봐야 적은 혼자다!"

지휘자로 보이는 사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처음 등장했을 때, 어둠 속으로 무겁게 쫙 깔리는 어조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행동이었다.

그 지시에 따르는 사신들 또한 매한가지.

비집고 들어올 자리도 없으면서, 사방에서 순번 없이 일제히 천강에게 달려든다.

천강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대신 어둠 속으로 묵직한 타격음과 바닥을 뒤흔드는 진동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퍽. 쿠구구구. 퍽. 쿠구구구구.

"이런 미친?!"

"도, 도움이 필요……. 컥."

"정보가 잘못됐다. 이 녀석은 절대 평범한 무림인이……."

"255호, 대피 명령을!"

한 번 타격음이 들릴 때마다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는 사신들의 몸뚱어리.

그렇게 총 열여덟 번의 폭음이 연이어 일어난 직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위가 도로 잠잠해졌다.

그저 바람 소리와 저 멀리 저잣거리에서의 떠드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밤하늘을 타고 전달되어 올뿐.

조용해졌던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다시 연주된다. 255호라 불린 사신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주춤주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놈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이다. 도망가야 한다.'

그에 홱 몸을 돌려 도주를 시도하나, 그 앞에서 환히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어이. 동료들을 두고 어딜 가나? 의리 없게."

녀석이 천강의 몽둥이에 맞고 그 동료 옆으로 날아갔다.

천강이 화경급 사신 스물을 제압하는 데는 채 일다경(一茶頃)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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