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67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7화
267화. 시왕(十王)
지옥에는 죄를 판결하는 열 명의 왕이 있다.
각각의 지옥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자들. 그들을 일컬어 시왕(十王)이라 한다.
그중 제10지옥을 관장하는 오도전륜대왕은 그 특성상 판결을 내리는 일이 워낙 적어, 명계를 싸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오도전륜대왕께서 오신단다!"
"다들 청소. 청소!"
바삐 움직이는 저승사자들. 천강 또한 준비를 해야 했다.
일전에 일개 감독이 생사경의 경지인 걸 확인하였은즉, 적어도 대왕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면 자연경은 될 터.
무제(武帝)에게 암운신공을 사용하다 걸린 전적이 있는 천강은 재빨리 몸을 내뺐다. 다시 쥐구멍으로 들어가 봤자 길이 없다는 걸 알기에 무작정 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오도전륜대왕이 돌아가기를 기다리는데, 저승사자들의 구역에서 빠져나가질 않는다.
- 꼼짝을 않는데요, 소년.
- 다른 방도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구나.
흠. 그러게.
저승사자들과 잡담을 하고 술을 마시는 기색으로 보아, 하루 이틀 있다가 돌아갈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그에 천강은 발을 움직였다.
-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일단 어디든 이동해 보자고.'
저승사자들의 거처와 그 구역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천강은 우선 이곳의 지형을 알아볼 겸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눈이 소복이 쌓인 구역에 들어서자, 돌연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설마 너희들 때문에 그런 거 아냐?
그 왜 날붙이가 높이 들려 있으면 벼락이 집중적으로 모이지 않던가.
- 그러기엔 우리보단 네가 있는 방향에 더 가까운 것 같으니라.
듣고 보니 또 그렇긴 하다. 검은 빛깔의 낙뢰는 집요하게 천강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물론 천강에게 그것을 피하는 일 따위…… 또한 그것들을 막아 흡수하는 것 따윈 매우 쉬운 일이었으나, 천강은 최대한 빨리 발을 놀려 산을 넘어갔다.
이 벼락으로 인해 아까 보았던 오도전륜대왕의 이목이 끌릴까 했던 것이다.
다행히 정상을 넘어 반대편 흙바닥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이 조용해졌다.
'들키진 않았겠지?'
- 모르죠. 워낙 소리가 커서 말이에요.
- 십 리 밖에서도 들릴 만한 소음이었느니라.
확실히 그럴 수도.
신병이기들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인 천강이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그렇게 중턱쯤 당도했을 때였다.
돌연 천강이 내려온 산 정상 위로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 소년, 아무래도 걸린 모양입니다!
'나도 들었어!'
천강이 발을 놀리며 좌우를 빠르게 훑는다. 갈라진 땅으로 붉은 용암이 흐르는 대지에는 딱히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 누구냐! 게 섰거라!"
노도와 같이 온 지역에 내려앉는 그 외침은 가히 왕의 기백이라 할 만했다. 검은 바위 위로 붉은 용암이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강은 한 바위 뒤에 숨어 도망갈 길을 모색했다.
'그나마 암운신공이 검은빛이라서 바로 안 걸렸지, 이대로는 위험해.'
딱 봐도 자연경. 아니, 자연경과는 뭔가 근본적으로 좀 다른 느낌이긴 한데.
어찌 됐든 결론은 매우 위험하다는 뜻.
정상에서 노호를 내지른 오도전륜대왕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푸른 안광이 넘실대는 눈이 사위를 이리저리 매섭게 훑었다.
'아마 사거리 안에 들면 곧바로 내 존재를 눈치채겠지.'
산 아래까지 내려가 봐야 하나?
시선을 밑으로 주자, 뿌연 증기가 올라오는 용암 가득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저 증기를 은엄폐 삼아 이동하면 그래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그에 은밀히 발을 옮겨 하산을 하려는 그때, 오른편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쪽이야, 이쪽!"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불혹(不惑)쯤 된, 허름한 복식을 한 사내가 천강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그의 뒤로는 기어서 들어가야 할 만큼 아주 작은 굴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는 천강의 시선을 받는 순간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몸을 감추었다.
- 어떻게 할 것이냐?
- 시왕이 바로 뒤까지 다가왔어요, 소년!
젠장. 별다른 선택지가 없구만.
천강이 빠르게 몸을 날려 그 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아까 본 사내가 천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에게 잡히기 싫거든, 날 어서 따라오게."
후다닥 굴 안쪽으로 기어가는 남자.
그 뒤를 쭉 따르자 어느 시점부터 남자가 숨을 돌리고는 내기를 사용했다. 이제껏 내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혹여나 걸릴까 해서였던 모양이다.
남자의 신형이 마치 물 흐르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강과 이름 모를 남자는 말 없이 약 반 시진가량을 이동하였고, 그런 뒤에야 움직임을 멈추고는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강이라 합니다."
"나는 이규라 하네."
"근데 여긴 어딥니까?"
천강의 질문에 그가 손짓했다. 그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하자, 곧 굴에 밝은 빛이 내려앉았다.
그러고 눈에 들어온 밖의 전경.
사위로 회색빛 돌이 가득했고, 저 아래로는 웬 거대한 구덩이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선 이유는 몰라도 시끄러운 소음이 실시간으로 이는 중이었다.
"아까 뿌연 연기와 용암 봤나?"
"예."
"거기는 초강대왕이 관장하는 화탕지옥이네. 아마 그대로 내려갔다면 곧바로 걸렸을 게야."
"그럼 여긴 어딥니까?"
"여기는 변성대왕이 관장하는 독사지옥이지. 이 굴은 왕들의 시선을 피해 양측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길일세."
그러면서 각 지옥은 거대한 산맥들로 나뉘어 있는데, 그 구역을 넘어가려 하면 검은 번개가 친다고 했다.
영혼들이 함부로 이탈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둔 일종의 경계 체계라는 게 그의 설명.
"자네가 그곳 산맥을 넘으면서 인 우렛소리는 시왕(十王) 모두에게 들렸을 걸세. 계속 거기 있다가는 꼼짝없이 잡히는 셈이었던 게지."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남자가 아니었다면 무려 자연경 고수 열 명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뻔했네.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도록 하자.
천강의 정중한 인사에 그가 손사래를 쳤다. 대신 그는 천강을 빤히 쳐다보더니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근데 자넨 산 자지?"
"예?"
"자네에게선 사기(死氣)가 전혀 안 느껴져서 말이네."
아차차. 검은 안개를 좀 없애자, 그제야 사기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천강의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선 미동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확신을 하고 물어본다.
"그리 속여본들 내 눈을 피할 순 없네. 자넨 산 자야, 그렇지?"
천강이 몸을 일으켰다. 경계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를 이규의 시선이 물끄러미 쫓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 말인가?"
보통은 천강을 봐도 망자라 여기지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천강을 산 자로 확신하고 있었다.
천강의 질문에 그가 진한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나는 이곳 독사지옥을 관장하는 6번째 판관, 변성대왕일세."
***
늑대와 여우를 피하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갔는데, 정작 그 집주인이 집에 있는 상황이라니.
천강은 꼼짝없이 그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뭐 변성대왕이 엄청나게 세서 직접적인 힘으로 제압된 건 아니었고, 그저 도망칠 기회를 살피기 위해 조용히 힘을 숨기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천강이 산 자인 것은 알아챘어도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그 적절한 예로, 천강의 뒤를 몰래 따르는 신병이기들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무제(武帝) 때와는 달라.'
분명 느낌은 자연경에 가까운데 묘하게 괴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자연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혹시 그거 아닐까요? 그 선계인 말로는 지옥의 시왕들이 자주 바뀐다고 했잖아요.
- 어쩌면 본래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즉 그 말은 요놈이 실제로는 자연경이 아닌데 시왕의 직위에 오르면서 일시적으로 받은 권능이다?'
그렇다며 수긍하는 신병이기들.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어찌 됐든 암운신공의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한 내뺄 기회는 언제든지 올 터.
변성대왕은 천강을 데리고 아까 보았던 거대한 굴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옥졸들이 꾸벅 허리를 숙여 보였다.
"대왕님. 그 영혼은?"
"아아. 도망친 놈이 하나 있지 뭔가. 그래서 내 친히 잡아 왔다."
"오. 그러셨군요."
그러며 서로를 향해 음흉하게 웃는 녀석들.
"이놈도 그곳에 집어넣어라."
"예이!"
옥졸들이 다가와 천강의 등에 대고는 창끝을 찔러 내민다. 천강은 찬찬히 걸음을 옮겨 예의 그 구덩이로 다가갔다.
"끄아아악!"
"꺼져! 꺼지라고!"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덩이 안에는 머리가 삼각형인 독사가 수백 마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뒹구는 중이었다.
죽지도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는 그들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덜 물려 보겠다며 다른 이의 몸 위로 올라서려 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싸움이 일면서 일종의 영혼으로 세워진 탑이 만들어졌다.
밑바닥에 있는 자는 큰 고통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느라 정신없었으나, 무리의 제일 위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상대적으로 제일 평온한 상태였다.
"어이. 빨랑빨랑 안 들어가냐!"
천강의 등을 창끝으로 콕콕 찍는 옥졸들.
'흥미롭네. 별것 없어 보이는 조잡한 창이 이리 따갑다니.'
영혼에 직접 타격을 입히는 무기인 건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순간 걱정이 들었다. 그 말인즉슨, 저 밑에 독사들 또한 영혼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준다는 뜻 아닌가.
"어여 들어갓!"
옥졸 하나가 뒤에서 천강을 뻥 발로 밀친다. 천강의 신형이 독사들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 소년!
바닥에 닿자마자 그 주위 대기하고 있던 수십의 독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로 인해 천강의 몸은 순식간에 뱀으로 인해 완전히 둘러싸이게 되었다.
-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뇨?
- 그치만 대기하라 하지 않았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명계의 높은 하늘에서 신병이기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나 정작 천강은 아주 평안한 얼굴로 독사들의 이빨 세례를 즐기고 있었다.
'따끔하긴 한데 딱 그뿐이구만. 이 또한 백호의 혼 때문이려나.'
백호의 혼은 그 어떤 영적인, 정신적인 타격이라도 보호해주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물리는 순간엔 따끔해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연기는 해줘야겠지? 재미가 없으면 자신의 치부를 숨기겠다고 죽이려 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시작된 천강의 몸부림.
독사들을 사정없이 떼 낸 천강이 단숨에 뛰어 망자들로 이루어진 탑에 올라탄다. 그리고는 날아드는 발길질을 맞아주면서 제일 위로 쭉쭉 올라섰다.
"이놈! 감히 어딜 내 자리를 노리려고!"
꼭대기에 다다르자, 살아생전 꽤 무(武)를 익혔는지 강기가 둘린 발차기가 날아왔다. 천강은 그 발을 잡아 그를 독사가 가득한 바닥에 떨어뜨려 주었다.
"으아아아악!"
후우. 위 공기는 참으로 좋구만.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변성대왕.
"하하하하핫. 재미있구나! 여봐라. 이들의 형벌이 얼마나 남았느냐."
"앞으로 이틀 남았습니다요."
"그럼 지금부터 놀이를 시작하겠다."
대왕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옥졸들 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이가 구덩이에 다가와 소리쳤다.
"현 시간부로 놀이를 시작한다."
"놀이?"
"놀이라고?!"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돈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구덩이 밖 한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세 사람이 앉아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옥졸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들 중 서 있는 자가 한 명이 되는 순간, 그는 다음 판결을 받으러 가는 순간까지 이 밖에서 쉬도록 안배를 해줄 것이다."
즉, 서로 치고받고 싸워서 홀로 서 있으란 말.
"그럼 시작하라!"
우와아아아-
갑자기 영혼으로 이루어진 탑이 우르르 무너진다. 그리고는 서로 주먹과 발을 날리며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한다.
독사들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는 천강에게도 누군가가 달려들었다. 조금 전 영혼의 탑 꼭대기에서 쉬다가 천강에 의해 독사 밭으로 떨어진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천강을 쓰러뜨리기 전에는 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
"네 이놈! 나랑 끝을 보자!"
양발에 강기를 실은 채, 녀석이 천강을 향해 매섭게 발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