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살마신 264화
무료소설 흑살마신: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흑살마신 264화
264화. 금나한의 약조
무제(武帝)의 가르침에, 천강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제가 과연 그것을 시간 안에 이룰지 모르겠습니다."
"뭐 못하면 별수 없지 않느냐. 죽어서 깨닫는 수밖에."
저기요, 시조님?
"후학 얼굴 보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
무제의 얼굴에 다시 고민이 올라왔다.
약육강식. 강한 자가 살아남는 자연의 섭리에 통달한 신선이라도, 제 후학이 죽는다는데 마냥 뒷짐 지고 있을 순 없겠지.
뭔가 가능성을 느낀 천강이 무제에게 계속 졸랐다.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쉰 무제가 말했다.
"좋다. 그럼 조금 전 내가 보여준 것들 기억하느냐? 그중 하나를 따라 하는 데 성공한다면 내 네게 선물 하나를 해주도록 하마."
"정말입니까?"
약조를 받은 천강이 의욕적으로 몸을 풀었다. 그 모습에 팔짱을 끼고는 흥미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는 무제.
'적당히 시도하다가 포기하겠지.'
그 자신이 보여준 것은 생사경에 도달해도 겨우 흉내나 낼 법한 것이니까.
그러나 천강이 자세를 갖추자, 돌연 바람이 일더니 숱한 이파리가 떨어지며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이내 짝을 찾아 나비 형상을 갖추고는, 나비 떼가 되어 서쪽 하늘로 쭉 날아가 사라졌다.
'그런?!'
무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숱하게 실패하던 천강이 간단히 성공해 버렸으니 어찌 아니 그럴까.
그러나 그 나비 떼를 가만 응시하던 무제(武帝)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핫. 그런가? 그런 거였군!"
조금 전, 천강은 무제의 제안을 듣고는 잠깐 고민에 잠겼다.
'너무 쉬운 건 안 돼. 쉬우면 감동을 일으킬 수 없어.'
그렇다고 어려운 것…… 예를 들면 마른하늘에 비를 내린다든지, 잘린 나무를 붙인다든지 그런 건 지금의 천강이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나비 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에 천강은 자신의 내기를 왕창 쏟아 부어 무제가 했던 걸 그대로 재현해냈다.
이파리 두 개를 합쳐 두 날개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나비들을 모아 서쪽 하늘로 날려 보내고.
문제는 자신의 내기를 사용하는 걸 숨겨야 했는데, 그걸 위해 천강은 암운신공을 사용했다.
물론 거기에도 난관은 있었다.
'주태가 개발한 암운신공은 묵빛이다.'
암운신공은 내부의 내기가 밖으로 방출되는 걸 반사해 도로 돌려보내고,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내기는 은연중에 빨아들이는 기술이다.
그에 다른 이들이 볼 때는 검은빛을 띠곤 했던 것이다.
그것을 천강은 최대한 무색으로 만들었다.
'암운신공을 각기 반대 방향으로 두 겹을 두르는 거야. 안에서 외부로 방출되는 걸 막는 것 하나. 그리고 외부로부터 내부로 흡입되는 걸 방지하는 것 하나.'
그러다 보니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빛과 내기가 반사되면서 반짝임이 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무제가 그걸 보고는 눈치를 챈 것이었다.
"내기도 많고, 운용 실력이 꽤 제법이구나.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다."
윽. 역시 신선을 속이는 건 불가능한 건가.
그래도 걸릴 건 예상했다.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어려운 걸 고른 것이었고.
과연 결과는?
"죄송합니다."
"아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포기를 하지 않고 도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좋아. 성공!
무제가 허공을 휘저었다. 서신 하나가 그의 앞으로 나타났다.
"받아라."
"이게 무엇입니까?"
천강이 펼쳐 보려는 걸 무제가 제지했다.
"혹 생사경에 못 이르고 싸움에 임하게 되면, 그때 펼쳐 보거라.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천강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무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배움도 받았은즉 이승에서의 시간이 상당히 흘렀을 터.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였다.
무제가 천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설령 내가 건네준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준비하는 걸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하늘이 널 주시하고 있음을 기억해라."
"걱정 마십시오. 저 그리 안주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하핫. 그래. 그럼 잘 가거라. 네가 선계에 정식으로 올라올 날을 고대하고 있겠다, 나의 후학이여."
천해지경이 펼쳐지고 문이 만들어졌다. 공손히 예를 올린 천강은 그 문을 통해 이승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천강을 맞아주는 신병이기들.
- 이제 돌아오는 것이냐!
- 얼마나 재미있으면……!
그저 대화 몇 번에 현실에서는 5일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제 천강에게 남은 시간은 이십여 일에 불과했다.
***
어둠이 자욱이 내려앉은 공간.
허공에서 노란 등불이 흔들흔들하고, 그에 따라 빛과 어둠이 서로 영역을 빼앗았다가 내주기를 반복한다.
찍찍- 사람의 기척에 주변의 흙을 갉아먹던 쥐들이 후다닥 몸을 내빼고. 이내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감(太監)과 그를 수행하는 환관이었다.
"태감. 황실을 향해 욕을 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더는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어느 정도지?"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중원의 반 이상이 신선환의 진실을 깨달을 전망입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그만큼 저들도 최선을 다해 발악 중이라는 거겠지.
"이대로라면 정말 위험합니다, 태감. 혹 난(亂)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난(亂)이라…….
안 그래도 일전에 무림맹 사건으로 골머리를 싸매다 간신히 진정시킨 여론이다.
그런 상황에 신선환 사건까지 터진다면, 확실히 누구라도 민중들을 이끌고 들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게 왕들이 되었건, 혹은 현 황제의 손자가 되었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동창은 중원의 추이를 살피는 데에만 집중하라."
"예, 태감. 하온데……."
환관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들은 황궁의 비밀통로 중 하나에 들어와 있었다.
그 비밀통로는 황궁의 깊은 지하로 이어졌고, 지상으로부터 얼마나 내려왔는지는 몰라도 아직 끝없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지금 어디를 가시는 중이십니까?"
"모든 권세가들은 세상이 망하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준비를 한다. 보통은 자신의 거처 아래에 귀한 물건들을 숨겨두곤 하지."
줄곧 내리막으로 이어지던 길이 평탄해졌다. 그 길을 조금 더 나아가자, 문 하나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태감, 여기는?"
"몽골에 칭기즈칸이란 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물건들을 노획했다. 그 아들과 손자는 이곳 중원에 자리를 잡으며 몇몇 진귀한 물건들을 궁 지하 밑 깊숙한 곳에 숨겼지."
태감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거대한 공동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 안에는 금빛을 마구 뿌려대는 금으로 된 장식부터 해서 각종 보석과 귀금속, 무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궁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들조차도 이리 많은 재물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태감은 그것들에는 제대로 된 시선 한 번 안 주고 정중앙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바닥을 후려치자, 곧바로 쩍쩍 갈라지며 거대한 구멍이 덩그러니 생성되었다.
"횃불을 줘 보거라."
"예, 여기 있습니다."
횃불을 받아든 태감이 그 구멍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시야에 한 번 본 적 있는 전경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흑살마신을 이기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그에게 오늘 아침 돌연 환상이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통로로 들어가 한 물건을 줍는 그 자신의 모습이.
'분명 이쯤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왜 갑자기 그런 환상이 보인 것에 대해서는.
하지만 하나는 확신했으니, 그걸 가진다면 흑살마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찾았다.'
무너진 공동 안. 한쪽 선반에 놓여있는 작은 팔찌.
그 어떤 보석도 달려있지 않은 밋밋한 모양새였으나, 태감은 그것을 보는 순간 그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었다.
"크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핫!"
이제 이것만 있다면, 그 귀찮은 것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살아 움직이는 희한한 천도, 무기인지 절굿공이인지 모를 그 괴상한 무기도!
"하늘이 날 돕는데 그 누가 날 이길쏘냐! 하하하하핫!"
광소가 어둠 속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주군. 잘 다녀오셨습니까?"
천산의 보고에서 나오자 일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천강이 일귀를 이끌고 절벽을 내려가며 물었다.
"하르간은 어찌 됐지?"
"북방으로 채취하러 갈 필요도 없이, 두 수레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며 일귀가 천강에게 보따리를 꺼내 보였다. 펼쳐 보니 그 안에는 예의 신선환의 독성을 일으키는 풀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걸 덥석 집어 먹어보는 천강.
- 아앗. 소년! 그거 나쁜 버릇이에요! 몸에 좋나 안 좋나 일일이 먹어보다니요!
'미안.'
딱 걸려버렸네.
혹시나 천령초처럼 효과가 있을까 하여 먹어본 거였는데 말이야.
아쉽게도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무림맹이랑 마교에서는 어찌하고 있나?"
"그 풀을 토대로 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장사치들이 사재기하려 하는 속셈이라며 매도하던 여론이 지금은 꽤 진중해진 상태입니다. 사천과 산서는 거의 신선환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상황이고요."
못해도 열흘 이내에 중원에 반 가까이 퍼져나갈 거라는 전망이었다.
"이대로라면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다들 한시름 놓는 중입니다."
그러나 분명 좋은 소식임에도 천강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주군? 무슨 걱정 있으십니까?"
"아니다."
무제(武帝)를 만나 들은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싸움은 고만고만해야 더 재미있는 법이라 했지.
신선환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다고 해도, 그게 싸움의 최종 결과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결국 이 싸움의 결말은 나와 태감, 둘 중 승리하는 쪽으로 기울 터.'
천강의 시선이 전방을 훑는다.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저 멀리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천강과 일귀가 바닥에 내려서자, 한쪽에서 거대한 거구가 그들을 향해 나아왔다.
11척은 족히 더 되어 보이는 장신에 다부진 몸. 피부는 마치 강철과 같고, 얼굴은 야차 그 자체다.
"금나한님을 뵙습니다."
천강과 일귀가 예를 올리고는 음식을 싼 보따리를 내밀자, 그들을 맞이하는 금나한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하하핫. 그래.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이리 앉거라."
금나한이 자리에 앉아 음식 보따리를 푼다. 평소보다 배는 많은 양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무슨 좋은 일이 있거나, 내게 부탁할 일이 있는 모양이로군!"
역시. 덩치는 곰 같아도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니까.
"예. 일전에 일귀에게 약조하신 게 떠올라 찾아왔습니다."
매번 음식을 싸 들고 찾아와주는 천강와 일귀에게 감명한 금나한은 과거 일귀에게 약조를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도울 일이 있거든 언제든 선뜻 이야기하라 했던 것이다.
"암. 그랬지! 그러나 내가 인간계 일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은 감안해 주었으면 한다."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네 부탁이 무엇이냐."
술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켜며 묻는 질문에 천강이 다른 술병을 건네며 이야기했다.
"이곳 무저갱은 명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명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