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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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1화
21화
“늦었어!”
귀청을 울리는 고함과 함께 이무환의 우수가 도를 든 흑의인의 머리를 짓눌렀다.
도를 든 흑의인은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꼬꾸라졌다. 목이 없어지고, 머리가 어깨에 닿은 그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단숨에 세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자, 남은 흑의인 둘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때마침 영호승을 비롯한 풍운대의 대원들이 뒤에서 달려왔다.
“조장! 그자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마차를 쫓아가십시오!”
그사이 포위망을 다 빠져나간 마차가 금검대의 호위 아래 숲이 우거진 계곡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어느새 백여 장으로 벌어져 있는 상황.
그 사이에 있는 흑의인들 만해도 백여 명이나 되었다.
활을 쏘던 자들을 처리하러 갔던 신검대 열 명이 돌아와 그들을 막고는 있지만, 적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당장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제기랄!”
한 소리 내지른 이무환은 입술을 씹으며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구릉에서 한 사람이 바람처럼 달려 내려왔다.
나철위, 바로 그였다.
“이 조장! 무슨 일이 있어도 마차를 지켜야 하네!”
‘나도 알아!’
이무환은 속으로 소리치며 단숨에 오십여 장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흑의인들의 머리를 타넘었다.
갑작스런 그의 출현에 신검대원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이무환은 그들을 상대할 정신이 없었다.
계곡 안으로 들어간 마차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문제는 들리는 소리에 섞인 기운이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기운보다 강하다는 것이었다.
‘제기랄! 진짜 고수들은 저 안에 있었어!’
마차가 골짜기로 들어가자 새로운 적이 나타나서 마차를 공격했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사마성문과 사마성안이 직접 나서서 적을 상대했다.
적들은 결코 흑마련의 무사들이 아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자들. 대체 어디서 온 놈들이란 말인가!
“마차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사마성문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자신조차 두 명을 막기가 버거울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신검대의 무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크크크, 마차의 계집을 죽여라!”
밝은 청의를 입은 중년인이 살소를 흘리며 달려들었다.
사마성문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이를 악물었다.
“뜻대로 안 될 것이다, 이놈들!”
이무환이 계곡 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여 명의 금검대원이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이무환은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적은 기껏해야 열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흑마련의 무사들과 달리 백의나 황의, 하늘색 청삼 등 밝은 색 복장이었다.
제삼의 세력이라는 말.
그들 중 백의를 입은 오십대 중년인이 자신을 보더니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뜬다.
“풍운? 호오, 풍운대원이 여기까지 오다니, 제법이군.”
이무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그를 향해 달려갔다.
한 걸음에 죽죽 오 장씩 나아가는 자신의 신법에 놀랐는지 백의중년인의 표정이 신중하게 굳어졌다.
“아직 어린놈 같은데, 그만한 실력이 있다, 이 말인가?”
이무환이 툭 쏘아붙였다.
“두고 보면 알아!”
백의중년인이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의문이라는 표정이다.
“방금 나에게 한 소리더냐?”
“거기 당신밖에 더 있어?”
어느덧 오 장으로 줄어든 거리가 눈 깜빡일 순간에 지척으로 변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무환의 좌수가 백의중년인을 향해 뻗어나갔다.
곧바로 공격할 줄은 몰랐던 듯 백의중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틀었다.
순간 이무환의 몸이 한 바퀴 휘돌더니 두 발이 바람개비처럼 백의중년인을 후려 찼다.
파바바박!
권각에 자신이 있던 백의중년인은 망설이지 않고 두 손을 휘둘러 이무환의 회풍각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백의중년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수백 근 철퇴를 맨손으로 막는 기분. 게다가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발길질이다.
몇 번만 더 부딪치면 팔목이 부러질 듯했다.
백의중년인은 일곱 번의 발길질을 막고 뒤로 물러났다.
금천신문 십팔빈객 중 한 사람, 팔공권마 안유병.
권장에 있어서는 안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절정의 고수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새파란 애송이에게 밀리다니.
자존심이 상한 안유병은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며 두 손을 교차시켰다.
“이놈!”
이무환은 허공에서 일곱 번에 걸친 회풍각을 돌려 차고 그 반동을 이용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담긴 권풍이 그를 향해 밀려들었다.
“조심해라! 그가 바로 팔공권마 안유병이다!”
나철위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무환은 당연하게도 안유병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강한 자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솔직히 알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앞을 막았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
“안유병이고 안무병이고, 아나 이거나 받아봐라!”
이 장 허공에 떠 있던 이무환은 직룡탄(直龍灘)의 수법(手法)을 각법(脚法)으로 변화시켜 안유병의 머리를 내려 찼다.
순간 벼락이 떨어졌다.
도끼가 장작을 쪼개듯, 사자탄의 거센 물줄기가 직선으로 갈라지듯 안유병의 권풍이 쩍 갈라졌다.
“헛!”
대경한 안유병은 허공을 향해 내지른 두 손을 거두어들이고는, 얼굴로 떨어져 내리는 이무환의 발을 막았다.
쾅!
“크읍!”
답답한 신음이 안유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다시 몸을 띄우고 마차를 향해 날아갔다.
겨우 얼굴이 박살나는 것을 모면한 안유병은 이를 악물고 이무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저런 놈이……!’
호위대의 전력을 완벽히 분석한 만큼 십 할의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놈이 끼어들었다. 아니, 차라리 끼어들었으면 나았다. 그러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놈은 끼어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전력에 포함되어 있던 놈이었다.
결국 수하들이 상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말이 아닌가.
‘전혀 계산에 없던 놈이야.’
왠지 모르게 불길함이 엄습했다. 그만큼 이무환이 그에게 준 충격이 컸다.
“당신은 나하고 놀아야 할 것 같소.”
그를 향해 나철위가 달려들었다.
풍운대주 나철위, 안유병이 아는 그는 기껏해야 초일류의 초입에 든 고수다. 자신의 상대가 아닌 것이다.
안유병은 이무환에게 당한 분노를 나철위에게 퍼부었다.
“오냐, 이놈! 내 묵사발을 만들어주마!”
그의 쌍권에서 분노가 담긴 권풍이 일더니 태풍처럼 앞으로 밀려갔다.
순간이었다. 달려오는 나철위의 철검에서 십여 줄기의 검기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오는가 싶더니, 그의 권풍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네 목숨이나 걱정해라, 안유병!”
“헛!”
눈을 부릅뜬 안유병은 찰나간에 십팔권을 쏟아 붓고서야 나철위의 검기를 해소했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저놈이나 이놈이나, 도대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공할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풍운대 놈들이!
‘대체 풍운대가 최약체라고 말한 놈이 누구야!’
결국 그는 십성 전력을 끌어내 나철위를 상대해야만 했다.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이었다.
“좋다, 이놈! 어디 한번 해보자!”
한편, 그사이 이무환은 십 장 거리를 날아 마차 위에 내려섰다.
갑자기 자신이 마차 위에 내려서자 금검대의 무사들 중 두어 명이 대경해서 마차 위를 향해 검을 돌렸다.
이무환이 버럭 소리쳤다.
“놈들이나 잘 막아!”
그제야 이무환을 알아본 금검대원들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특히 소정완은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갑자기 힘이 용솟음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안다. 이무환이 부대주 오천상조차 어쩌지 못한 고수라는 걸.
무형지기까지 사용할 줄 아는 절정고수!
“악귀가 왔다! 힘들 내!”
이무환의 비수 같은 눈초리가 소정완의 뒤통수에 꽂혔다.
‘지미, 꼭 거기서 그렇게 말해야 돼?’
생각 같아서는 소정완이 죽든 말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야 자신이 귀찮아지지 않을 테니까.
“이무환 소협이신가요?”
그때 마차 안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마하연, 동생의 목소리였다.
이 상황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침착한지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냐, 오빠가 왔다! 이제 걱정 마라, 예쁜 동생아!’
쉴 때, 마차에서 내린 사마하연을 딱 한 번 봤다.
멀리서 봤지만 정말 예뻤다. 미모가 화여경과 쌍벽을 이룬다더니 결코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런 동생이 부르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이무환은 목에 최대한 힘을 주고 낭랑히 대답했다.
“그렇소. 걱정 마시오! 누구도 낭자를 건들지 못할 것이오!”
‘내가 바로 네 오빠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목소리를 바로 옆에서, 아니, 위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붕 뜰만큼 기분이 좋았다.
부슬부슬 짜증나게 내리던 비가 이제는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무환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서 제일 가까운 곳을 가리켰다.
“너!”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가더니, 막 금검대원의 가슴에 검을 쑤셔 박으려던 청의인의 귓구멍을 터뜨렸다.
“컥!”
뒤이어 비틀거리는 그의 목에 금검대원의 검이 꽂혔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비명이 터지더니 두 명의 황의인이 마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측에 있는 놈이 소리쳤다.
“안에 있는 계집을 죽여라!”
좌측에 있던 놈은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날렸다.
두 황의인과 마차의 거리는 기껏 이 장 정도.
한 걸음이면 마차의 문이 부서지고 안에 있는 사마하연의 심장에 검이 꽂힐지도 모르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차 지붕에 서 있던 이무환의 신형이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막 마차의 문을 향해 돌진하던 황의인 하나가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눈앞에 잘생긴 청년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헛! 웬 놈이……?”
“오빠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 것도 없었다.
황의인은 잘생긴 이무환의 얼굴에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커다란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을 덮는 걸 느끼고 잽싸게 몸을 틀었다.
땅!
이무환은 좌수로 상대의 검신을 잡아 부러뜨리고, 우족으로 번개처럼 올려 차면서, 오른손에 들린 도로 우측을 내려쳤다.
일정한 초식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런 공격이다.
두 황의인은 황급히 손과 검을 들어서 이무환의 공격을 막았다.
퍽! 쾅!
그들은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흐트러진 머리, 경악으로 부릅떠진 눈, 파르르 떨리는 입술가로 흘러내리는 피.
이무환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며 도를 휘둘렀다.
도집에 든 도였지만, 맞으면 바위도 박살나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쒜엑!
찰나간에 수십 개로 갈라진 도영이 일 장 범위를 덮었다.
피할 수 없음을 느꼈는지, 두 황의인은 이를 악물고 맞부딪쳤다.
콰광!
“크윽!”
“커어억!”
주르륵, 일 장 이상을 뒤로 나뒹군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무환은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다시 마차 위로 올라갔다.
두 명의 황의인을 향해 금검대원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내부가 뒤틀린 황의인들은 본신의 내력을 반도 쓰지 못할 터. 이제 그들은 금검대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또 다른 적이 마차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두 사람.
그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의 백의인, 안유병보다 더 강해 보이는 자들이.
“고마워요, 이 소협.”
자신이 위험을 막아주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마차 안에서 사마하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이 오빠가 지킨다! 이 오빠가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해주마!’
힘이 솟은 이무환은 재빨리 상황을 둘러보았다.
나철위가 안유병을 몰아치는데 곧 결판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에 의해 세 명이 무너지자, 금검대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진 상황. 당장 마차를 위협할 수 있는 자들은 다가오는 두 사람뿐이다.
“좋아! 어두워지기 전에 끝을 내자고!”
이무환은 창공을 나는 갈매기처럼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가오던 두 사람은 이무환이 거꾸로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자 멈춰 서서 기다렸다.
“정말 대단한 놈이로구나! 황은쌍교를 단숨에 무력화시키다니!”
그중 눈동자에 붉은 기가 도는 백의노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은쌍교의 협공은 그조차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강했다.
그런데 이제 스무 살 정도의 새파란 놈이 손발짓 두어 번에 만신창이로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무환은 말대꾸하는 것보다 공격을 택했다.
팍!
땅에 내려서자마자 그 힘을 이용해 백의노인을 덮쳤다.
“어림없는 짓!”
백의노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쌍장을 밀어냈다.
후우웅!
강력한 장력이 대기를 뒤틀며 이무환을 뒤덮었다.